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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김형오의 말말말

“죗값을 치렀다. 아니, 치르고 있다. 이제 그만 용서하자”

강용석 의원을 위한 변론
“죗값을 치렀다. 아니, 치르고 있다. 이제 그만 용서하자”

김형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어제 오후 강용석 의원 제명안과 관련한 저의 국회 발언을 두고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습니다. 인터넷에 제 이름 석 자 치기가 두려울 정도입니다. 이 블로그의 방명록과 게시판도 저를 향해 날아온 돌로 수북합니다.

저는 마치 밀실에 숨어 은밀한 목소리로 궤변과 부적절한 비유를 동원해 제 식구를 감싼 파렴치범처럼 매도되었습니다. 성경을 오독하고 예수를 모독한 사람처럼 돼 버렸습니다. 숲은 없고 나무만 있습니다. 아니, 나무도 없고 곁가지만 있습니다. 잎사귀만 달랑 몇 장 있습니다. 본질은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제 양심에 떳떳하지 못한 일이었다면 애초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본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될 줄도 몰랐습니다. 그 바람에 제 발언 중 일부만이 앞뒤 맥락도 없이 전해져 왜곡된 해석을 낳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본회의가 시작되기 전 제 발언의 전문을 보도자료 형식으로 언론에 돌릴 걸 그랬습니다.

제 발언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강용석 의원이 뼈아픈 오점을 남겼다. 일생일대의 ‘취중 실언’을 했으며, 그것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그는 이미 충분한 벌을 받았다. 만신창이가 되도록 돌팔매질을 당했다. 사법적 심판도 아직 진행 중이다. 죗값을 치렀고 또 치르고 있는데도 우리가 거기에 더해 그를 제명 처분한다면 잔인한 짓이다. 이제 그만 용서하자. 대못이 박힌 자리에 다시 망치질을 하지 말자. 그를 마음의 감옥, 정신의 지옥으로부터 걸어 나오게 하자. 한순간의 잘못으로 그 전까지의 성과가 모두 무너지고 미래마저 캄캄하게 돼 버린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통해서라도 제 발언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도 제게 돌을 던진다면 저는 기꺼이 그 돌을 맞겠습니다. 왜냐면 이 발언은 저의 진심이고 소신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인격 그리고 아이덴티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난이 두려워 저를 위장하고 위선하는 비겁한 사람이 되기 싫습니다.

다음은 국회 본회의 발언의 전문입니다.



오늘 저는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개인적인 결심(19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세상에 알리고 마음이 깃털처럼 홀가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선 심경은 안타깝고 곤혹스럽기만 합니다. 이런 예민한 사안에 발언자로 나선다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솔직히 발언 이후 쏟아질 언론과 여론, 시민단체의 비난이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침묵하고 있는 ‘다수 혹은 소수’의 목소리를 누군가 대변해야 한다면, 그게 저라면 기꺼이 받아들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것이 선배 의원으로서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용석 의원을 위한 변명’이라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발언은 저를 위한 변론, 또 여러분을 위한 변호이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강 의원, 우리가 아는 강 의원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서서 소신을 지키며 의정 활동을 충실히 해온 정치인이었습니다. 지성과 교양과 예의를 갖춘 정의롭고 호감 가는 반듯한 후배였습니다.

그런 그가 참으로 어리석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일생일대의 실언을 했습니다. 뼈아픈 오점을 남겼습니다.

저 역시 처음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만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실망과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이 자리에서 그의 잘못된 ‘취중 실언’을 옹호하거나 두둔할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강용석 의원은 이미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충분한 벌을 받았다고 한다면 너무나 몰염치한 저만의 생각일까요? 시대감각에 뒤떨어진 편협하고 부도덕한 ‘제 식구 감싸기’일까요?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간음을 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와 돌로 쳐 죽이려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던진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고 마침내 혼자 남은 예수는 여인에게 말합니다.

“나도 너를 정죄(定罪)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저 또한 묻고 싶습니다.

“정말로 여러분은 강용석 의원에게 돌을 던질 만큼 떳떳하고 자신 있는 삶을 살아오셨나요?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요?”

고백하건대 저는 돌을 들 수가 없습니다. 던질 수가 없습니다. 그럴 만한 자격도 없으려니와 그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도록 돌팔매질을 당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직도 사법적 심판이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까.

정치인으로서는 물론이고 인간적으로 겪고 있는 가혹한 수모와 모욕은 형언하기 힘들 지경이 아닌가요. 저는 그 어떤 고매한 인격을 지닌 분도, 설사 사악한 마음을 가진 이라도 한 인격을 영원히 죽음으로 모는 행위를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강 의원은 지금 피를 철철 흘리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이미 그를 충분히 단죄했고, 그는 또 뼈저리게 참회하고 있으니까요.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이런 제 생각을 비난해 저에게 돌을 던진다면 기꺼이 그 돌을 맞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또한 이미 죄의 대가를 치른 자식을 호적에서 지우려는 아버지가 있다면 아마 말리고 싶어질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979년 10월 4일, 우리 국회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를 국회의원직에서 제명했던 오점을 남겼습니다. 최초면서 유일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그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할 생각이십니까? 만약 이만한 일로 강용석 의원이 제명 처분된다면 우리들 중 이 자리에 남아 있을 국회의원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이제 그만 용서합시다. 죽음의 십자가에서 끌어 내립시다. 한 인격을 더 이상 잔인하게 유린하지 맙시다. 대못이 박힌 자리에 다시 망치질을 하지 맙시다. 그를 마음의 감옥, 정신의 지옥으로부터 이제 그만 걸어 나오게 합시다. 단 한 번의 잘못으로 그 전까지의 성과가 모두 무너지고, 앞으로 전개될 미래마저 캄캄하게 해버린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제 개인적인 신상에 관해서는 따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신 의원 여러분 모두 19대 국회에서도 국정 논의의 중심에 서서 뜻을 펼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