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대망론, 신드롬인가 신기루인가
김형오
그것은 신드롬이었습니다. 서울시장 출마설과 동시에 안철수 교수는 여론 조사에서 단숨에 1위를 차지했습니다. 모든 상식과 통념을 하루아침에 바꾸었습니다. 우리 사회 기득권을 향해 날린 그의 ‘3단 옆차기’는 엄청난 충격과 전율로 기성 정치권을 강타했습니다.
안 교수가 몰고 온 새로운 물결은 새 질서, 새 구도를 열망하던 국민 정서를 적시고 스며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물결은 기존의 야당과 여당, 어느 쪽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기득권 세력을 더 많이 포용한 여당 쪽에 미치는 데미지가 더 크지만, 야당도 별 피해 없다고 생각한다면 낭패를 당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를 계기로 꿈틀대면서 잠재해 있던 불만과 분노의 휴화산(민심)은 활화산처럼 폭발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충격파로 정치권은 호된 몸살을 앓았습니다.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존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국민의 신뢰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까지 그들만의 정치, 국민을 맘대로 이용하고 함부로 팔아먹는 정치를 해왔으니 국민이 식상하고 분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정치권은 앗 뜨거워라 하면서 일제히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말로만 그치고 행동이 안 따른다면 우리 정치는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혁신과 환골탈태가 절체절명의 과제로 주어졌습니다.
나는 안철수란 존재와 그의 역할에 기대가 큽니다. 그런 사람, 그런 움직임이 있어야 정치인이 각성하고 정치 발전이 이루어지고 선의의 경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론 걱정도 없지 않습니다. 마음이 착해선지 여려선지 안철수는 애초부터 정치할 그릇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제3당을 만들자는 윤여준 전 장관의 말을 하루 만에 부인해 거론한 사람을 머쓱하게 만든 점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모사․책사로 통하는 이의 말을 따르기엔 그의 순수성이 용납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위해 일을 도모하겠다는 사람을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해버렸으니 그 옆에 사람 붙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는 자기 세력 확장 기회를 스스로 차단해 버렸습니다. 정치 욕심이 없고, 큰 꿈을 안 가진 건가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들고 가겠다(?), 설마하니 그런 건 아니겠지요?
박원순 변호사에게 시장 후보를 양보하는 과정 또한 너무나 안이하고 상식에서 비켜나 있습니다. 워낙 인기 있고 국민 신뢰가 높아 오히려 ‘아름다운 양보’란 평가를 받았지만, 다른 정치인이 그랬더라면 ‘야합, 흉계, 음모, 뒷거래’란 비난의 화살 속에서 그날로 매장 당했을 일입니다.
그는 정치를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치밀한 자기 계산은 있을지 모르나 치열함은 부족했습니다.
자기 세력을 못 만들거나 일부러 안 만든 채 인기만으로 대권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가수 서태지도 10대와 20대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졌다면 진작 대통령이 되었을 것입니다.
기존 정당(가령 민주당) 후보가 된들 마찬가지입니다. 몸은 가도 안철수 정신과 신념은 발휘를 못해 결국 이용만 당하고 말 것입니다. 안철수의 마음을 담아낼 그릇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거지 다른 사람이 절대로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만약 당선되더라도 불행한 대통령이 되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고, 그러면 국민도 불행해집니다.
안철수 교수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불의 치열함과 얼음의 냉혹함을 함께 갖추십시오. 기존 판을 뒤엎는 것은 말이 아니라 몸입니다. 행동이고 실천입니다. 하루 24시간을 매달려도 부족합니다. 정치를 바꾸려면 안 교수 자신부터 바꾸십시오. 철저한 검증도 각오해야 합니다. 가짜들이 설쳐대는 어설픈 민중운동이 아니라 진짜 민중운동 차원의 새 국민운동을 일으키십시오. 새 정치의 기수가 되겠다는 각오로 투철하고도 철저한 삶을 지금부터 살아가십시오. 거듭 몸을 던지고 또 던지십시오.
나는 그대가 정치를 바꾸려는 작업을 하면 할수록 한나라당 재집권을 위해 헌신할 것입니다. 우리 후보가 누가 되건, 불리하건 유리하건 보수의 가치 보전을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질 것입니다. 한나라당 재집권이 나라를 살리고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는 나의 신념은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대의 선전(善戰)은 한나라당에도 분발과 혁신의 채찍질이 될 것입니다.
나도 안철수 교수를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습니다만 강렬한 기억으로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조금 흐릿한 느낌이랄까요? 어쩌면 그런 조용하고 어정쩡한 모습이 기존 정치권에 식상한 국민에게는 순수하고 신뢰감을 주는 모습으로 다가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나는 그런 모습이 연막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선에서는 몰라도 본선에서는, 결선에서는 절대로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명탄 아래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그대 모습이 문득 궁금해집니다. 지금의 이 모든 신드롬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는지….
안철수 교수, 서울시장과 대선 출마 여부를 떠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습니다. 그대는 정치의 세계에 발을 디뎠습니다. 이제부터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할 각오를 하기 바랍니다. 한두 번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입니다. (나이도 있으니) 여유를 갖고 철저하면서도 치열하게 정치 무대에 오르십시오.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염원하는 수많은 국민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한국 정치 이래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고뇌하는 뜻 있는 정치인을 위해서라도…. 그때는 지금처럼 ‘전격 등장’하지 말고 ‘본격 등장’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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