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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조송현의 이슈 인물 <4> 김형오 전 국회의장

바로가기 ☞ 조송현의 이슈 인물 <4> 김형오 전 국회의장

- 여야, 총선 후보공천과정 졸속
- 인물평가에 많은 시간 걸리는데 선거 20일 전 결정은 말도 안돼
- '신공항 재검토 발언' 포기 아닌 김해공항 확장 뒤에 이전 전략

여야 정치권이 4·11 19대 총선이란 전장에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루고 있다. 장수선발부터 이전투구, 반칙 사례도 적지 않았다. 심판관인 유권자들은 벌써부터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한국 정치 지형도가 요동친 지난 20년간 다섯 차례 총선에 나가 승리하고 국회의장까지 지낸 정치인의 눈엔 이런 모습들이 어떻게 비칠까. 지난 22일 부산 영도구 태종대 전망대에서 김형오(전 국회의장) 의원을 만났다(공식적인 직함은 '의원'이 맞으나 관례에 따라 '의장'으로 호칭하고 인터뷰했다). 일찍부터 불출마 결단을 해서인지 표정과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5선에서 국회의원직을 마감하는 소회가 총선을 맞아 남다를 듯합니다.

▶한국정치 풍토에서 긴 세월 동안 정치를 하고 대과 없이 마치게 된 것을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도덕적 양심, 보수의 가치·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정치 역정은 파란만장했습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다시 여당으로 권력구조가 요동쳤어요. 다만, 이 기간 정치가 우리 사회 다른 분야에 비해 국민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치에 깊숙이 몸담은 사람으로서 큰 책임감 느낍니다. 요즘 각당 후보의 무리수와 억지 행태를 보니 '저렇게까지 해서 하고 싶은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의장께서도 선거마다 힘든 싸움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웃으며) 하기야 저도 다섯 번 선거 모두 애를 태우며 '끝물 공천'을 받고 치열한 선거를 치렀지요. 어느 계파에도 들지 않는 내 성격 탓이 큽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엔 민주계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넣어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 나름의 경쟁력을 갖출 방법을 생각한 끝에 정책분야에 올인하기로 한 겁니다. 청와대와 총리실에서 정책을 다루면서 총체적·통괄적으로 보는 눈을 키운 게 힘이 됐고요. 계파에 휩쓸리지 않고 정책으로 승부한 것이 5선에 국회의장까지 하게 된 밑거름인 것 같습니다. 

-여야 할 것 없이 공천과정에서 눈살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많던데요. 

▶공천심사위원회 구성과 심사과정이 모두 졸속이에요. 국민의 심판을 받으려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인물을 평가해야 하는데, 이번엔 선거 20일 남겨두고 공천했어요. 말이 안 되는 일이죠. 큰 정당들 반성해야 합니다. 적어도 투표일 3개월 전에 공천을 마무리하고, 그 3개월 전에 공심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후보들도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동의합니다. 지금은 다양화·다기화·첨예화 시대입니다. 발전속도가 엄청 빠르죠. 옛날식 사고와 식견은 안 됩니다. 전문가적 소양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국회의원은 진정한 봉사활동을 하는 자립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행히도 요즘 그런 인물이 잘 보이지 않아요.

-총선 결과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괜찮은 싸움이 될 것 같은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누리당이 절망적이었는데, 상대방 실수로 득점하고 있어요. 하기야 정치에서는 자기가 잘해서 점수를 따는 것보다 상대방의 실족으로 득점하는 경우가 더 많죠. 하 하 하.

봄비가 가늘게 내린 이날 기온은 쌀쌀했다. 태종대 전망대 커피숍은 날씨 탓인지 손님이 거의 없어 을씨년스러웠다. 김 의장은 몸을 좀 녹이자며 막걸리를 주문했다. 의장 시절 질문을 시작하자 작심한 듯 대답을 쏟아냈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미디어법을 왜 굳이 직권상정해 처리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여당이 미디어법 수정법안을 2008년 12월 24일 국회에 제출해 26일 직권상정하라고 압박하는 거예요. 세상에 다른 법안도 아니고… 말이 안 되죠. 버텼죠. 보수언론들이 '손끝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으려는 김형오' 운운하며 인격모독에 가까운 비판 기사를 도배하더군요.

-그래서 직권상정하기로 작정했던 겁니까?

▶6월 30일까지 6개월간 협상한 뒤 그래도 합의를 못하면 직권상정해 처리하겠다고 선언을 했지요. 여야가 합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데다 이 법안 때문에 다른 국회일정이 올스톱된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지요. 여당은 정부에 체면을 세우고, 야당은 여당의 강행처리에 당해 여론의 동정을 얻겠다는 정치전략을 구사하는 게 훤히 보였죠.

-그 이후 국회가 제대로 되려면 직권상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요.

▶직권상정제도가 타협을 할 필요가 없게 만듭니다. 다수당은 대화보다 시간만 보내다가 밀어붙이면 되고, 소수당은 선명성을 내세워 버티다가 동정여론을 얻으면 손해볼 게 없다고 판단하니까요. 양원제 같으면 잠깐 욕먹으면 된다는 식의 행동은 할 수 없지요. 단원제의 병폐이기도 합니다.

-의장 취임 초부터 개헌을 주장하셨는데, 당위성을 인정받고도 추진력을 얻지 못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5년 단임제는 독재방지,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어요. 하지만 대통령에게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돼 있고, 필연적인 레임덕과 이로 인한 정치 불안정 등 폐해가 엄청납니다. 특히 '불행한 대통령'의 악순환은 불행한 국민의 불행이고 국가의 불행이자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를 개편할 때가 됐다고 봤는데 청와대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여당도 소극적이더군요. 나중이 저의 임기가 끝난 뒤 뜬금없이 이재오 의원이 개헌을 하자고 나섰는데, 그때는 야당이 들고 일어났죠. 타이밍을 놓친 겁니다. 

-의장 취임 때 '국민에 희망을 주고 신뢰를 얻겠다'다는 포부를 밝혔는데요.

▶포부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책임감을 느낍니다.

김 의원은 의장 시절 미디어법 직권상정 이후 '신공항 전면 재검토'와 '강용석 의원 옹호' 발언으로 또다시 전국적인 논란의 중심에 섰다.

-'신공항 전면 재검토' 발언은 당시 부산 시민에 대한 배반행위라는 비판이 비등했는데. 정말 신공항이 필요없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전면 재검토'가 백지화를 뜻하는 건 아니잖아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저의 발언은 전략을 내포하고 있는 겁니다. 우선 신공항 건설 문제를 대구와 연계해선 절대 승산이 없다는 것이고, 그 다음 김해공항을 일단 확장해 쓰면서 확장 이전 논리를 개발해나가자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진작 그런 논리를 펴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허탈하게 웃으며) 많이 했죠. 김해공항은 왜 안 되냐부터 논의하자고 부산시에 얘기 했는데 이슈가 되지 않더군요. 

-강용석 의원 제명안 부결에 총대를 메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는데, 후회하지 않는지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비난이 쏟아지는 데다 딸들까지 걱정을 하는 상황이 되니 후회가 됩디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날인데, 그 선언도 묻히고 정치적으로 엄청 손해봤어요. 다시 말하지만 발언의 진의는 국민에게 엄청난 실망을 안겨준 18대 국회 구성원 모두 책임이 있고, 강 의원보다 더 큰 잘못을 한 의원들도 있다는 것이었고, 강 의원의 행위 자체가 영구제명감은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5선 국회의원 이후'가 궁금합니다.

-총선이 끝나면 터키 이스탄불에서 2개월간 칩거하며 '비잔틴 최후의 날'을 집필할 겁니다. 대선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야 할 것 같고, 이후 평인으로 돌아갑니다. 정치인은 은퇴란 게 없습니다. 의원직은 그만두더라도 언제나 이 나라를 지켜보고, 요구가 있다면 성실히 복무할 것입니다. 편집부국장


■ 대선 예비주자 약평

- 박근혜, 안정성 불구 포용력 미지수
- 문재인, 포용력은 朴보다 나을 듯
- 안철수, 권력의지 여부 확인돼야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계파에 속하지 않고 5선을 기록하고 국회 수장을 지낸, 정치인으로서는 흔치 않은 경우다. 이는 정치적 소신과 시각이 객관적이었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 다음은 안정성·국가관·비전을 기준으로 한 대선 예비주자에 대한 김 전 의장의 약평.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장점은 안정성 국가관에 대한 높은 신뢰다. 그러나 새로운 세력, 다양한 견해에 대한 포용력은 미지수다. 21세기 환경에 맞게 국민에 비전을 제시하는 데도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정치경험이 적다는 점에서 안정성에 의문이다. 국가관은 특전사 출신이니 의심할 수 없으나, 좀더 지켜봐야 한다. 다양한 정치집단과 견해에 포용력은 박 위원장보다 나을 것 같다. 21세기 비전을 놓고 볼 때 문 상임고문의 구상을 들은 바 없다. 박 위원장보다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탈피해야 하는 것도 과제.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연구원장은 균형된 시각과 21세기 비전과 안목은 장점이다. 본격 정치에 뛰어들지 않은 상황에서 안 원장의 국가관과 안정성을 논하기는 시기상조다. 정치는 그야말로 치열한 곳이다. 관건은 안 원장이 과연 권력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대통령 자질 여부는 그 다음의 문제다.



● 약 력

▶1947년 경남 고성 출생 ▶1966년 경남고 졸업 ▶1971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1976년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1975년 동아일보사 기자 ▶1982년 대통령 비서실 ▶1992년 14대 국회의원 당선(15, 16, 17, 18대 국회의원) ▶1999년 수필가 등단 ▶2000년 한나라당 부산시지부위원장 ▶2004년 한나라당 17대 총선 선거대책본부장 ▶2004년 한나라당 사무총장 ▶2006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2008년 대한민국 국회의장 ▶새누리당 19대 총선대책위원회 고문 ▶부인 지인경(59) 씨와 2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