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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과 황제

탈고(脫稿)했습니다. 동시에 탈고(脫苦)했습니다. - 김형오

   드디어 손을 털었습니다. 참 힘들고 오랜 기간이었습니다.길게는 2009년 1월부터니 4년 세월이었고, 짧게는 지난 4월 중순부터였으니 꼬박 5개월 반이 걸렸습니다. 금년 4월과 5월은 이스탄불 현지에서 취재 및 연구로 보냈고, 6월부터는 서울에서 본격적인 집필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선거철이라서 신문과 방송의 인터뷰 요청이 적지 않았지만, 6월 초 한두 군데 나가다 보니 이래선 내 일을 못하겠다 싶어 딱 끊었습니다. 그 뒤로는 지난 24일 처음으로 한 TV 프로에 출연했습니다.

  세기의 정복자 오스만 튀르크의 술탄 메흐메드 2세와 이에 맞서는 비잔틴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두 주인공입니다. 1453년 5월 29일, 천년 제국이 망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제국이 들어서기까지 50여 일간의 치열한 전쟁과 두 제국의 리더십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전투, 승리, 패배, 삶, 죽음, 인간, 숙명, 용기, 정의 등을 키워드로 각종 무기와 전략까지 총체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처절함과 애틋함, 사람과 나라에 대한 사랑을 느끼며 작업했습니다. 가제는 <술탄과 황제>, 부제는 ‘세계사를 바꾼 리더십의 격돌’입니다.

  이 나이에 휴일도 없이 하루 10시간 또는 그 이상을 책상머리에 앉아 있으려면 엄청난 체력과 정신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알게 됐고, 혼과 얼을 작품에 쏟아붓는 진정한 작가들과 문필가들을 새삼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제야 마쳤습니다. 마쳤다는 것은 오만방자한 말이고, 출판사에 원고를 넘겼습니다. 이는 결코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 손을 놓았을 뿐 보완 작업을 해나가야 합니다.

  작업하면서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왜 이걸 한다고 덤벼들었지, 그냥 비평이나 하면서 쉽게 쉽게 살 걸. 이럴 줄 알았으면 젊었을 때 영어 공부 좀 열심히 해둘 걸…. 사전 찾아가며 외국 서적을 읽는 일은 고역이었습니다. 올여름은 왜 그리도 더웠는지, 에어컨 거부 반응이 있는 저로서는 정말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국회에서 함께 일했던 비서진은 저를 돕느라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선풍기와 부채로 삼복을 보냈으니 그 자심한 고생은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일단 마치고 나니 그래도 뿌듯하군요. 보람과 성취감을 맛봅니다.

  첫째, 자화자찬 같지만 스스로가 대견하게 여겨집니다. 내가 이 엄청난 일을 해내고 말았다니! 하는 자부심입니다.

  둘째, 외국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책을 쓰자는 애초 목표에 어느 정도 근접했다고 봅니다.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인의 위상에 손상을 주지 않을 거라는 또 하나의 건방진 자긍심을 갖습니다.

  셋째, 우리 정치권과 한국 문단에 조용한 파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뒤로 가는 정치가 아니라 앞으로 가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세계와 겨루어야 하고, 세계사적인 안목과 조류를 알아야 합니다. 이 책이 그런 시각 확장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또 정치 이후의 삶을 모색하는 동료들에게 활로까지는 아니더라도 방향 제시 내지는 제2의 인생 설계에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문단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로부터 따끔한 비평과 따뜻한 격려도 받고 싶습니다.

  아무튼 세계사를 바꾼 획기적인 사건이 이상하게도 그에 훨씬 못 미치는 다른 사안들보다 홀대받고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작업입니다. 세상, 특히 한국 독자들에게 널리 알리려면 무엇보다 술술 읽히고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딘 글재주로 쉽고 흥미롭되 품격을 유지하는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동안 이 책을 위해 도움 주신 수많은 분들, 그리고 역사와 정의의 이름으로 스러져간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즐겁고 편안한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  2012년 9월 26일, 일단 펜을 놓으며 김형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