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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12-11-23 비잔틴 최후의 3일, 두 영웅의 인간적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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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과 황제 / 김형오 지음 / 21세기 북스

역사의 한 장면을 영화처럼 재현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마치 종군기자가 된 듯 역사의 현장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다섯 번 다녀왔고 지난 4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47일간 현지에 머물면서 막바지 취재 및 연구활동을 했다. 그 같은 공력을 바탕으로 1453년 비잔틴 제국 최후의 3일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다룬 이 책은 인문학적 책읽기의 재미를 안겨주는 책이다. 전개 방식은 소설이지만 그 내용은 본격적인 역사서다.

수많은 배를 이끌고 산을 넘어간 사나이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였다. 그와 대결한 또 다른 사나이가 있다.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에서 끝까지 항복을 거부한 채 자신의 사랑하는 제국과 함께 장렬히 산화한 비잔틴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 오스만 튀르크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문명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1400년간 지속된 로마 제국 최후의 날이었다. 동양과 이슬람 문명에 서양·기독교 문명이 정복된 순간이기도 했다.


▲ 김형오 의장실 자료사진

책은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는 날을 중심으로 50일간의 치열한 전쟁을 치른 두 제국의 리더십과 전쟁의 과정, 삶과 죽음, 양대 진영 영웅들의 인간적 고뇌를 입체적으로 살려냈다. 전쟁의 과정과 사용된 무기, 전략과 전술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일어났던 혼란까지도 그려냈다. 이 전쟁은 지상전, 지하전, 해상전, 공중전, 유격전 등 모든 전략과 전술이 총동원된 드라마틱한 전쟁이었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사생결단과 몸부림이 처절했다.

콘스탄티누스 11세의 가상의 일기장과 술탄의 비망록이라는 구성이 특이하다. 세계적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읽으면서 소설인지, 인문서인지 착각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전쟁을 치르는 리더의 인간적 면모는 보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일기장 한 대목을 보자.

“경이롭고 불가사의한 일이다. 술탄의 함대가 갈라타 언덕을 넘어 골든 혼 바다에 진입하였다. 최소한 해발 60m에 이르는 그 험한 산등성이와 비탈진 언덕을 수많은 배를 끌고서 넘어갔다니. (중략) 이 모두가 불과 이틀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 기막힌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콘스탄티노플의 테오도시우스의 삼중성벽은 이 도시를 난공불락의 도시로 불리게 했다. 저자는 삼중성벽의 구조와 최후 공성전의 과정,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군사들을 독려하는 술탄과 황제의 연설문 등을 정리했다.

저자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패자의 기록도 함께 쓰려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술탄과 황제 그들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들과의 진지한 대화를 시도했다”고 말하고 있다. 책은 역사의 디테일을 다루는 저자의 솜씨와 개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역작이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