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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속으로

[2013-12-26 헤럴드 경제] ‘가지 않은 길’ 가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자신의 마포 사무실 벽에 걸린‘ 실사구시(實事求是)’ 족자 앞에서 “매일 싸움만 하는 그렇고 그런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인도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인생 4막을 시작한 이유를 풀어갔다. 이 족자는 김 전 의장이 2009년 중국 톈진대학교 학생들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톈진대는 1895년 설립된 119년 역사의 중국 명문대학으로 김 전 의장에게 외국인 최초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 내리 5선 국회의원, 국회의장 까지 지낸 김형오가 정치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지역구 민원인을 만나고 정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밤 12시쯤 집에 가서 잠만 자고 나와야 했고, 김형오라는 이름 석 자를 찾느라 신문을 샅샅이 뒤져야 했고, 두피가 약한데도 독한 염색약으로 머리를 검게 해야 했고, 소신과 상관없이 당론에 따라야 했을 것이다. 국회의원 6선의 배지를 달고 있지만 아무리 출중한 인재가 들어와도 둔재가 되는 정치판에서 그렇고 그런 정치인 중 한 사람이라는 눈총을 받았을 것이다.

# 정치를 떠난 김형오. 검정색 코르덴 바지에 강렬한 크림슨색 셔츠를 받쳐 입은 활기 넘치는 60대 중년. 염색을 하지 않아 더 많은 흰머리는 연륜을 풍긴다. ‘멋대가리’ 없는 부산 사나이는 부부 동반 점심모임에서 2시간 정도는 너끈하게 신변잡기로 수다를 떨 수 있으며, 신문의 정치면은 제쳐두고 문화면에서 삶의 향기를 새록새록 맡는다. 이런 건 덤이다. 김형오는 “정치인도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전투구로 정치판에 뛰어들고, 낙선하면 오매불망 여의도만 쳐다보고, 떠밀려 추하게 은퇴하고, 떠나서는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는 사람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김형오의 인생 4막. 언론인으로 3년→공직자로 13년→국회의원으로 20년, 그리고 이제 전업작가로의 인생역정에서 ‘술탄과 황제’는 기념비적이다. 1453년 비잔틴 제국 최후의 날, 동서양의 리더십이 격돌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 책은 김형오의 인생 4막을 알리는 피로 쓴 역작이다.

“오로지 팩트를 추구하고 기술하기 위해 작가가 읽었을 수백 권의 책과 고심의 흔적이 페이지마다 서려 있다”(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기독교와 이슬람이 만나고 부딪히는 숙명적 도시를 무대로 아무도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세계적 수준의 독창적인 글로벌 문화교양서”(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 같은 헌사를 받았다. 신변잡기와 정책홍보성 잡서만 난무하는 정치권에선 유례 없는 성공작이다.

또 있다.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인권위원장)은 “정치인에게도 지성의 세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몹시 낯선 명제다. 이 해묵은 통념을 일합에 무너뜨린 사람이 있다. 김형오의 이 저술은 평생 대학에 기대고 산 필자를 부끄럽게 만든 수작”이라고 서평에 썼다.

김형오는 작품으로, 지성으로 정치를 떠나고 있었다. 그에게 작가, 그 이후 정치에 대한 미련은 남았을까. 그를 만난 날은 공교롭게 지난 19일이었다. “아, 오늘이 대선 1주년인가. 몰랐는데.”

걸어왔고, 후배들이 걷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는 여전히 아쉽다. “정치를 바꾸려면 골격만 놔두고 정당을 해체해야 한다”고 했다.

▶떠나는 5선 의원,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돌을 던졌다=2011년 8월 31일. 김형오가 기자들 앞에 섰다. 미리 준비해온 원고를 거침없이 읽어 내려갔다. “당이 힘들고 어려울 때 백의종군하는 모습이 정치권 신뢰 회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불출마 선언이다.

정치권은 술렁였다. 유력 정치인의 결단이 세대교체 피바람을 불러올 것이라는 예언부터, 국회의장까지 할 만큼 했으면 불출마는 당연한 관례라는 평가까지 극과 극을 오갔다.

정작 당자사는 태평했다. 20년 동안 지내온 국회를 떠나는 홀가분한 마음뿐이었다. 가슴 한편은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으로 벅찼다. “아마 불출마 선언이 뜬금없이 들렸을 거야. 돈 먹다 걸려서 그런 거냐, 건강에 문제가 있는 거냐, 뒷담화가 무성했지. 기분은 참 안 좋더라고. 나름 깨끗하게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이런 취급 받으니 말야.”

김형오는 인생 3막을 마무리 짓는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오래전부터 마음먹었던 인생 4막, 책 한 권 써보고 싶은 늦깎이 작가의 꿈을 여는 ‘의미 있는 순간’이었지만, 정치인에게 ‘축하받는 은퇴’는 애당초 기대하기 힘들었다. “책 쓰려고 그만둔다 하면 남들이 얼마나 건방지다 생각할까. 내 스스로도 책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말야. 그래서 내막을 말하지 못하고 그냥 정치를 할 만큼 해서 관둔다 한 거지.”

우연치 않게 같은 날 터진 하나의 사건도 김형오의 퇴장을 가만두지 않았다. 성희롱 발언으로 강용석 의원의 제명안이 상정됐다. “김영삼 이후 첫 국회의원 제명이거든. 내가 사랑했던 국회가 요 모양밖에 안 되나 싶어 발언했지. 그랬더니 돌팔매만 질리게 오더라고.”

김형오는 본회의장에서 “여러분은 강 의원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요?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정도 일로 제명한다면 우리 중에 남아 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라는 소위 ‘돌팔매’ 발언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한동안 언론과 시민단체의 돌팔매를 참고 견뎌야만 했다.

김형오는 정치인의 인생은 돌고 돈다고 했다. “며칠 전 지나가다 보니 강용석 얼굴이 크게 (성희롱 발언을 최초로 폭로하고 제명을 적극 주장했던) 그 언론사 건물에 걸려 있더라고. 그렇게 씹더니. 세상 참 이런 아이러니가 어딨나.”

▶3류가 싫어 정치를 버린 베스트셀러 작가=2012년 11월 21일, 꿈꾸던 ‘베스트셀러’ 작가로 김형오는 돌아왔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1453년 5월 29일.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와 비잔틴 제국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고뇌를 소설 형식에 담은 인문학 서적 ‘술탄과 황제’가 그의 한 손에 들려 있었다. ‘술탄과 황제’는 지금까지 45판이 인쇄됐다. 1000권 파는 것조차 힘겨운 인문학 실종 시대에 4만5000권이 팔린, 좀처럼 보기 힘든 베스트셀러의 저자가 된 것이다.

“한 제국이 멸망하고 새 제국이 들어서는 극적인 무대 한가운데 내가 서 있다 생각하니 너무나 신나고 흥분되는 거야. 내용 자체도 너무 기기묘묘한 게 다 있어. 시작부터 배를 끌고 산으로 올라가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전투가 다 있는 거지. 육상전, 해전, 공중전, 땅굴전, 외교전, 첩보전까지. 난 그때 완전히 미쳤지.” 2009년 1월, 터키 이스탄불 군사박물관에서 정복자 술탄과 눈물로 끝까지 항전했던 황제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전율이었다.

“책 읽기를 시작하다 보니 500년 넘게 계속되던 서양 중심 세계관에 한 방 먹인 이 순간을 왜 나만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내가 해볼까 하고 슬슬 좀도 쑤시고 말야.” 2년 여에 걸친 집필을 시작한 순간이다. 그는 세계의 중심이 뒤바뀐 사건을 정치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정치는 목소리 큰 사람들이 이끌고 가다 보니 3류처럼 보여. 이건 아니다. 세계와 같이 호흡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그냥 그저 그런 6선 의원이 되기보다는 새로운 목소리 한번 내보자 했지.”

▶피로 쓴 ‘술탄과 황제’ 그리고 또 다른 행복=호기 넘친 시작과 달리, 베스트셀러의 탄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요즘 유행하는 TV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4명의 원로배우들이 세계 여행을 다니는 프로그램)들과 같은 나이에 5차례나 터키를 가서 홀로 길을 헤맸다. 오타 하나도 용납하지 못하는 그의 깐깐한 성격까지 더해져 글 쓰기는 말 그대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새벽 2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집사람도 정치 관두면 여행도 가고 산책도 할 줄 알았겠지. 근데 더 바쁜 거야. 책 다 쓸 때까지 일체 말도 하지 말라고 했으니 기가 찼겠지. 나중에 책이 나오니까 ‘피로 썼다’고 말하더라고. 사위들한테도 책 그냥 받을 생각 말고 사 보라면서 말야.”

작가 이후 인생 5막을 기대하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책을 냈더니 정치색과 상관없이 강연 다닐 수 있고, 입고 싶던 청바지도 입고, 두피가 벗겨져도 해야 했던 염색도 안 하니 머리도 좋아지고, 이렇게 좋은데 왜 돌아갑니까.”

▶우연과 행운…권력의 한가운데 선 30대 청년=5공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82년 여름 어느 날, 외교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원에서 평범한 연구관으로 일하던 그는 청와대 비서실로 자리를 옮겼다. 유신시대 기자로 인생의 첫 막을 열었고, 다시 3년 만에 공무원으로 우연치 않게 2막을 시작했던, 글 쓰기를 좋아했던 한 청년이 비로소 역사의 한가운데에 본격적으로 데뷔한 셈이다.

“권위주의 시대였으니, 비록 청와대 행정관 같은 낮은 자리였지만 정치의 속살을 제대로 봤지.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정치는 냉혹하고 무상한 것’이야. 끝나면 말짱 도루묵일 뿐이지. 권력무상이라고들 하는데 정치가 소설 같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나온 말 같아.”

인생 3막도 우연히 열렸다. 국무총리실, 청와대에서 정무담당 공무원으로 10년 넘게 일한 그가 공직에서 더 이상 높은 곳을 바라보긴 힘들었다. 몸은 민정당, 그의 고향은 야당 정치인 김영삼이 주름잡는 부산이었다. 출마하면 백전백패였다. 행운이 찾아왔다. 3당 통합이다. 높기만 했던 벽, YS가 단숨에 자신의 우군이 된 것이다. 김형오는 “어찌 하다 보니 인생이 그리 흘러왔다”며 “결국 작가로 돌아온 것을 보면 ‘글 쓰는 게 좋았던’ 초심으로 돌고 돌아 이뤄진 셈 아닌가 싶다”고 담담히 회상했다.

정치를 위한 변명, 그래도 욕먹는다=정치가 많이 발전했다고 했다. 3김시대 보스 정치가 어느 순간 막을 내렸고, 돈정치도 옛날 이야기일 뿐이고, ‘정책국회’도 생활화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정치는 숙명처럼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치인은 국민이 낸 세금을 먹고 사는 동물이지. 그러다 보니 욕을 먹는거지.”

국회의장 시절 야심차게 밀었던 ‘개헌’이 물거품이 된 것은 정치인 김형오에게 참 아쉬운 일이다. 국회의원 4년, 대통령 5년 임기가 같이 끝나는 2012년이 개헌의 적기였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한 게 안타까울 뿐이다. “개헌요. 앞으로 20년 기다려야 할 겁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술탄과 황제’를 피로 썼다고 했다. 김 전 의장은 21세기 복잡다단한 시대에 정치인이 되려면 배를 산으로 끌고 올라가는 술탄의 창조적 리더십, 삭막하고 메마른 풍토를 녹일 수 있는 황제의 진정성을 모두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현구 기자/ phko@heraldcorp.com

▶정당법을 바꾸면 새로운 정치가 보인다=정당법, 즉 당 대표만 바라봐야 하는 국회의원을 만드는 정치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에 제대로 말 못하는 집권여당, 강경파 실세에 끌려다니는 야당이 오늘날 답답한 정치의 근본 원인인 만큼, 이 구조 자체를 뒤집자는 처방전이다.

“정당을 더 이상 국회의원들의 발목을 잡는 기구로 놔둬서는 안 돼. 지금 같은 정당 체제로는 백약이 무효거든. 장관 지낸 사람, 대학총장, 유명 판검사, 시민단체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 되지만, 맨날 하는 소리는 똑같지. 공천권을 가진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거든.”

곧이어 정치개혁의 답을 상향식 국민공천, 당의 민주화, 대표와 사무총장 없는 의회중심 정당 세 가지에서 풀어냈다. “미국 민주당, 공화당 대표가 누구인지 아나. 아무도 몰라. 없거든. 그래서 200년 정당이 나오는 거야. 우리는 대표 있고 사무총장 있고, 실세 있고 해서 길어야 18년 정당뿐이고.”

레시피는 그대로 놔둔 채 간판과 주방장만 바꿔온 정치개혁 역사의 실패에서 역으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콘크리트 벽만 놔두고 인테리어니 아웃테리어니 다 없애야지. 비바람만 안 들어올 정도로 해서 정당이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러면 자연스럽게 바람도 들어오고 사람들도 오가고 할 수 있다고.”

김형오는 국회달력을 만들자고도 했다. “우스갯소리로 국회가 오늘 열릴지, 내일 열릴지 국회의장도 모르는 나라가 우리나라야. 외국사람들이 알면 ‘뭔 소리냐’고 한다고. 본회의, 상임위 일정을 못 박아두면 국회 건물도 클 필요가 없고, 개회를 하네 마네 싸울 필요도 없는 거야.” 너무나 간단하지만, 우리 정치권이 60년 넘게 짊어지고 온 정쟁을 끊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이 시대의 리더십은 술탄인가 황제인가=다시 ‘술탄과 황제’로 돌아왔다. 역사 속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오늘날 우리 정치의 교훈을 찾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술탄을 달리는 리더십, 황제를 눈물의 리더십으로 나름 정의한 그는 후배 정치인들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책에서 술탄은 배를 산으로 끌고 갈 정도로 돌파력 있고 정치적 재능이 있지만,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보다 두세 배 일하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천재성을 가진 인물이다. 반면 황제는 훌륭한 연설도 없고 카리스마도 없지만, 마지막 순간에 대리석 바닥에 떨어지는 눈물로 모두를 감동시키고 따르게 하는 숨겨진 리더십이 있다. 김형오는 복잡다단한 21세기를 앞서가려면 정치인은 모두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하는 술탄의 노력, 삭막하고 메마른 풍토를 녹일 수 있는 황제의 진정성 모두를 가져야만 한다”고 조언했다.

‘상하수도론’도 후배 정치인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종교는 맑을수록 좋은 상수도지만, 정치는 하수도다. “먹으면 반드시 배설해야 하는 게 사람이라면, 하수도가 막히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게 정치”라고 했다. “때로는 오물에 손도 집어넣고, 또 오물이 얼굴에 튀는 것도 각오하는, 말로 시키는 것이 아닌 직접 행동하는 정치인이 돼야 한다”면서 김형오는 인터뷰를 마감했다.

대담=정덕상 정치부장/jpurn@heraldcorp.com

정리=최정호 기자/choijh@heraldcorp.com

 

[김형오는 누구…]

▶1947년 11월 30일 경남 고성 출생

▶1966 경남고등학교 졸업

▶1971 서울대 문리대 외교학과 졸업

▶1976 서울대 외교학과 대학원(정치학 석사) 졸업

▶1975~1978 동아일보 기자

▶1978~1982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

▶1982~1986 대통령 비서실(공보ㆍ정무) 근무

▶1986~1990 대통령ㆍ국무총리 정무비서관

▶1992~2012 국회의원 5선(14~18대)

▶1999 수필가 등단

▶2004~2005 한나라당 사무총장

▶2006~2007 한나라당 원내대표

▶2007~2008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2008~2010 제18대 국회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