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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헤드라인

[국회보 4월호] 문제는 리더십이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제18대 국회를 끝으로 "다시는 국민에게 표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5선의 국회의원과 국회의장이라는 화려한 영광을 뒤로 하고 정계 은퇴를 했지만 떠난 지 6개월 만에 '술탄과 황제'라는 한 권의 책을 들고 작가로 변신했다. 당시 이어령 전 장관은 김 전 의장의 책을 두고 "아마 저자의 이름을 가리고 읽는다면 어느 젊은 작가가 쓴 실험소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했을 정도로 호평했다. 부산대 석좌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 전 의장은 지난해 7월부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회장에 추대되어 김구 선생의 유업을 선양하고 추모사업을 하고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올해는 광복 71주년이자 백범 탄생 140주년이 되는 해"라며 '문화의 나라'를 원했던 김구 선생의 정신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최근 우리 정치의 갈 길을 제시하고 리더십 회복을 갈망하며 펴냈다는 칼럼집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를 펼쳐 보였다. 그는 "앞으로 3년 연속 선거가 이어지는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며 우리 정치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그리고 비전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4년 전 '술탄과 황제'가 역사에 대한 천착이라면 이번 저서는 한국정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처럼 들립니다. 책을 낸 동기가 있습니까.

정계를 은퇴하고 정치와 거리를 두니 몸도 마음도 편안하더군요. 세상사에 얽매이지 않고 미뤄뒀던 책을 읽거나 인문학 공부를 할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간간이 언론에 기고도 했습니다. 이 책은 내가 경험한 세계에 중점을 두고 초로의 정객이 후배 정치인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사심 없이 던지는 제언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집필했습니다.


리더십 회복을 갈망하며 집필했다는데, 어디에 주안점을 두었습니까.

정치의 문제는 리더십에 있습니다. 올 4월 총선과 내년의 대통령 선거 그리고 2018년 지방선거까지 줄줄이 선거가 이어집니다. 선거를 할 때마다 정치인들은 나라 형편은 생각하지 않고 온갖 복지공약을 내놓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심상치 않은 남북관계와 심각한 경제문제로 위기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선거 때가 되면 여야 가릴 것 없이 복지는 왕창 베풀고 세금은 왕창 깎아주겠다는 등의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하게 됩니다. 이로 인한 국력 낭비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곧 총선도 있습니다만, 유권자에게 선거란 리더십 선택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선거에서 우리는 어떤 리더십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리더십이란 무엇입니까.

지도자들과 국민이 함께 각성해야 합니다. 빛의 속도로 변한다는 디지털 시대지만 회의체인 국회는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고, 리더십 또한 발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영삼·김대중 양김(金)씨로 대표되는 민주화 시기에는 영웅적 리더십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구성요소들의 리더십이 총체적으로 발휘되어야 합니다. 국민이 바라는 리더십은 두 가지입니다. 자기희생과 실천적 비전을 제시하는, 이른바 지도자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 같은 헌신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찬 바닷물에 가장 먼저 몸을 던져 수천의 생명을 이끄는 '퍼스트 펭귄'의 자세로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리더십이어야 합니다. 뒤에서 남을 보고 '안 한고 뭐해'라며 호령하기 보다는 앞장서서 먼저 뛰어드는 용기,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솔선수범이야말로 이 시대의 리더십이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정치권에서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이지만 국회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정당과 당론이 있습니다. 이유는 정당에서 국회가 해야 할 모든 결정을 당론으로 정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노동개혁 입법을 위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대화와 타협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정당 대 정당의 협상이 되고, 정당 지도자 간의 싸움이 되니 결론이 쉽지 않습니다. 충성심을 강요하는 정당이 국회를 이끌어가는 한 일하지 않는 국회, 싸움만 하는 국회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국회가 욕먹을 것이 아니라 정당이 비판 받아야 하며 '공룡과 같은 한국 정당'은 혁신이 아니라 혁파라고 할 만큼 개혁되어야 합니다.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을 둘러싸고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보입니다. 국회의장의 권한이 국회운영을 좌지우지할 만큼 막강한지요. 그리고 '국회 선진화법'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까.

국회를 움직이는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다수결, 둘째 소수의견 존중, 셋째 대화와 타협입니다. 세 가지가 정립이 돼야 합니다. 소수의견은 존중하되 대화와 타협을 통해 다수결로 가야하는 거지요. 지금 논란이 되는 국회선진화법의 바탕은 의장의 직권상정을 없애는 데 있습니다. 직권상정이 있으면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고 다수당은 의장보고 직권상정을 빨리 하라 하고, 소수당은 직권상정을 막는다며 단상점거에 들어갑니다. 국회의장은 사회권을 빼면 큰 권한이 없습니다. 국회의장으로 있을 때 국회가 오늘 열릴지 내일 열릴지 저도 알 수가 없더군요. 국회를 여는 문제를 두고 교섭단체 대표들이 대단한 권한인 양 싸웁니다. 학생이 학교에 갈까 말까를 두고 다투는 격입니다. 그래서 미국처럼 운영하자고 해서 나온 것이 국회선진화법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국회선진화법은 맹점이 많습니다. 일례로 우리는 안건을 신속처리 대상으로 지정하려면 5분의 3 이상의 의원이 찬성해야 하고 상임위와 법사위의 심사기일까지 마치자면 최장 270일을 기다려야 합니다. 의욕만 앞서고 디테일에 실패한 선진화법은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5선의 국회의원과 국회의장으로서 후배 정치인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해 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총선 승리를 위한 전략과 전술만 있고 국민은 하나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선거구 획정 지연사태는 국회의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기득권 집단으로 뭉쳐 정치신인에게 진입장벽을 쌓은 거예요. 이렇게 되면 유권자는 묻지마 투표를 하거나 실망감에 정치에 대해 무관심해집니다. 국민이 무섭다고 느낀다면 지금 같은 모습을 보이진 못할 것입니다. 보스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국민에게 충성하면 비록 오늘 죽더라도 다음에는 반드시 국민의 지지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국민 중심의 정치이고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진정한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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