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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헤드라인

대통령과 여야 3당이 가야 할 길

대통령과 여야 3당이 가야 할 길

 

대통령, 참고 또 참으며 국회와 소통하라

총선 전 대통령은 선거 개입에 해당할 아슬아슬한 발언들을 했다. “(노동 개혁이 좌초되면) 국회는 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 “20대 국회는 19대 국회보다 나아야”, “(국회 직무 유기에) 국민이 직접 나서야”, “20대 국회는 확 변모되어야 한다. 투표일이 가까워지자 발언 수위와 강도는 더욱 올라갔다. 대통령의 언급이 누구를 향하고 어느 당을 염두에 둔 것인지 유권자는 다 안다.

뚜껑을 열어보니 국회를 심판해 달라는 대통령의 뜻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다. 국정 지형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청와대는 대변인 이름으로 단 두 줄짜리 성명을 냈다. “민생 챙기는 일하는 국회라는 판에 박힌 주문이었다.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성명에 언론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은 또 유체 이탈 화법이라 했다. 비등하는 여론을 의식했는지 다시 한 번 대통령이 나섰다.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회와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했지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국회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서슴없이 지적하고 따끔하게 질책하다가, 오히려 그로 인해 화를 키우게 됐는데도 에둘러 3단 화법을 씀으로써 내 탓은 없고 남의 말하듯 하니 많은 이들이 어리둥절하게 된다. 대통령 국정 지지도도 31.5%로 폭락했다(부정 평가 62.3%, 리얼미터 414-15일 조사). 대통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냉정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임기 하반기다올가을부터는 내년도 대통령 선거로 관심이 넘어간다. 몸 바쳐 지지해줄 정당도 없고 믿었던 인물도 자기 목소리를 낼 것이다. 선거 때 그토록 호가호위했던 진박신박진진박도 청와대와 거리를 두고 각자도생을 꾀할 것이다. 단임제의 현실이다. 앞으로 2년이 채 남지 않은 임기는 국회와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힘의 균형추는 기울어졌다. 대통령으로부터 비난과 질책의 대상이었던 국회가 이제부터는 갑질을 할 것이다. 대통령은 참아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의 숙명이다. 대통령이 얼마나 잘 참고 국회와 소통을 자주 하느냐에 따라 청와대를 웃고 나오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들어갈 때와 달리 뒷모습이 쓸쓸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박 대통령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국민이 여전히 많은 것도 희망적이다.

더민주, 자기 순결의 우물에서 벗어나고 이중 잣대를 버려라

말에 책임지는 것이 정치의 시작이요 끝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대선 후보는 물론이고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무릎 꿇고 공언했다. 비감어린 목소리, 비장한 자세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을 누르고 제1당이 되었지만 호남에선 참패했다. 광주에선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호남 전체 28석 중 겨우 3석을 건져 체면을 구길 대로 구겼다. 문 전 대표가 말한 지지를 거두는 정도가 아니라 그를 아예 거부하고 탄핵했다. 그런데 참 묘하다. “호남 민심이 저를 버린 건지는 더 겸허하게 노력하면서 기다리겠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렇게 분명한 사안이건만 더 살피고 더 고민할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자기가 말해놓고 남더러 판단해 달라니, 그것도 주류가 자기 세력인 당에서 결정하라니 더 할 말이 없다. 이런 분이 아니었는데 정치하면서 사람 변했다는 얘기가 많다.

정치가 국민 신뢰를 받지 못하는 근본 이유가 식언이다. 남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면서 나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운데 어찌 국민이 믿고 따르겠는가. 단임제 이후 몇 번의 정권 교체가 있었다. 여당 때 추진하던 정책을 야당이 되면 반대하고, 거꾸로 야당 때는 강력 반대하다가도 여당이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슬그머니 집어든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래도 솔직한 편이었다. 더민주당이 수권 정당이 되려면 자기 편만 바라보는 정치, 곧 진영 논리와 만년 야당 안주론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두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섣부른 정의감으로 매사를 재단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이른바 진보라는 사람으로부터 듣는 가장 당혹스런 표현은 당신 같은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 몰랐다!”이다. 칭찬일 때도, 비난일 때도 있다. 자기 순결의 우물에서 나와야 넓은 세상을 보게 된다.

둘째는 이중성 내지 이중 잣대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은 경계를 하듯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정당을 어찌 믿고 정권을 맡기겠는가. “문제는 경제다라고 했으니 경제 살리기에 진력하는 모습을 제대로 한번 보여주기 바란다. 그러면 국민은 더민주에게 국정을 맡겨도 되겠다 생각할 것이고 정권 교체도 할 수 있다또 다시 서민이냐 재벌이냐, 분배냐 성장이냐 하는 이분법적 편 가르기로 경제를 정치화시킨다면 나라도 당도 국민도 힘들어진다.

국민의당, 대선 행보에 앞서 내부 정비부터 먼저 하라

총선에 녹색 바람을 몰고 온 안철수 대표는 한껏 고무돼 있다. 예상을 뒤엎고 38석으로 당당히 교섭 단체를 이루고 국정의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었다. 어느 당도 국민의당과 손을 잡지 않으면 과반을 넘을 수 없다. 야당 연합이 아닌 독자 노선 고수로 승리를 거두었다. ‘철수정치 에서 처음으로 (no) 철수한 것이다. 그의 얼굴에 자신감이 살아나고 목소리에 힘이 넘친다. 더민주의 1/3 의석인데도 득표율(26.74% : 25.54%)에서 1.2%포인트 앞섰다고 제1야당 운운하며 국정을 주도하겠다고 한다. ‘정권 교체는 그의 단골 메뉴다. ‘다음 대통령은 나로 들린다. 그러나 매사 잘 나갈 때 조심해야 되는 법이다. 안 대표가 아는지 모르는지 두 가지 핵심 문제를 차제에 언급하려 한다.

첫째, 이번에 국민의당을 찍은 사람들은 그 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이 싫어서였다. 공천 싸움, 막말 파동, 계보 챙기기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술 더 뜬 보수 정당에 식상한 수도권 새누리 지지 유권자들과 친노 세력의 몰염치에 배신감을 느낀 호남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으로 잠시 옮겨 갔을 뿐이다. 국민의당이 마음에 들어 찍은 것이 아님은 1분만 생각해도 알 것이다. 정치에 식상한 국민을 향한 호소가 먹혀든 것이지 국민의당 역시 뚜렷이 내세운 것이 없다.

둘째로 대선 행보에 앞서 내부 정비부터 먼저 해야 한다. 선거 전 교섭 단체 만들기에 급급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의원을 받아들인 당 아닌가이념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고, 도덕적 잣대도 모호하다.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고 크게 뭉뚱그렸지만 이건 선거용 구호일 따름이다사안별로 자로 재듯 할 수는 없겠지만 목표철학지향점이 분명해야 하며 정당 핵심 구성원 간에는 특히 그래야 한다. 좋게 말하면 개성 뚜렷한 분들이 많아 오색 무지개를 연출할 수도 있겠지만 잘못하면 잡탕밥으로 죽을 쑬지도 모른다. 안 대표의 정치력은 지금부터다. 국민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려면 먼저 처절하고 치밀한 내부 토론을 거쳐야 한다. 20대 국회 시작일인 530일 전에 당의 정체성과 방향부터 정립해야 한다. 북핵, FTA, 양극화 해소 방안, 재벌-노조 문제, 성장-복지-분배 문제, 증세-감세 논란, 국회 운영의 근본 방향 등 큰 틀을 짜서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모든 사안에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치열한 노선 정립 과정에서 당을 떠날 사람이 있다는 것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몸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이 당을 건강 체질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은 결코 쉽게 태어나지 않는다.

새누리당, ‘선거 참패 백서를 만들고 정신 똑바로 차려라

나는 선거 전부터 여러 매체와 강연을 통해 지도자는 모름지기 포용과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간곡히 말해왔다. 더민주당 임시 사장은 노구를 이끌고 전국을 다니며 현재 의석 이하를 얻으면 의원직 사퇴는 물론 정계 은퇴를 하겠노라고 공언했다. 3당 대표는 자기 지역구가 위험한데도 돌보지 않고 전국 유세를 강행하며 목청을 높였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포용과는 거리가 먼 계파 싸움하느라 목젖을 세웠고 자기를 버리거나 비우는 모습은 누구 하나 보이지 않았다. 스토리가 없고 감동을 주지 못하는 지도자가 전국을 유세한들 득표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보수 정당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하고도 누구 하나 제대로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 비대위를 구성하는 이유가 뭔지를 알 수 없게 하고 있다. 뼈를 깎는 자기반성을 하겠다는 자세는 어디를 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무기력한 모습이면 원내 주도권을 뺏겨 숫자에 관계없이 3당 신세를 못 면하겠다.

새누리당이 다시 태어나야 할 이유가 분명 있다. 북한 문제가 심상찮고 경제 사정이 엄혹하기 때문이다. 보수 정당의 존재 이유다. 그러나 이런 무기력한 자세라면 자칫하면 나라가 결딴날 수 있겠다. 포퓰리즘에 덩달아 휩쓸리고 나라 지키겠다는 사람은 없어지면 가진 자들은 슬슬 해외로 빠져나간다. 단속과 규제는 심해지고 쇄국적보복적 정치와 경제가 판을 치면 나라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당장 18개월 남은 대선에서조차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초조할 건 없지만 준비가 너무 안 돼 있다.

새누리당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한 길은 이제 더는 내려갈 곳도 없으니 밑바닥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선거를 망쳤던 모든 요인들을 철저히 분석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우선 가감 없는 선거 참패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새누리 당원이라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과감히 치부를 드러내고 밝혀야 한다. 다시는 이런 엉터리 선거를 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있는지 없는지는 백서의 진정성에서 출발한다. 또 기존의 모든 당직자들은 일선에서 후퇴해야 한다. 마음 같아선 의원직 사퇴까지 거론하고 싶지만 그것은 그들의 양심에 맡긴다. 조금 서툴더라도 완전히 새 인물로 갈아치워야 한다. 거듭 말한다. 이번 선거는 가장 좋은 환경에서 출발하여 가장 나쁜 결과를 얻었다. 완전히 자기 잘못으로만 이런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뼛속 깊숙이 새겨야 한다.

두 번째 길은 완전히 당을 해체하는 길이다. 기존의 인물계보계파로는 보수의 정체성도 보수 개혁도 이룰 수 없다고 판단되면 뿔뿔이 헤어지는 것이다. 이제 시대는 다당제를 요구하는 추세다. 사안에 따라 협력하고 경쟁하고 대립할 일이 많아졌다. 획일적 일원론적인 당론에 얽매여 개별 의원의 경륜도 장기도 발휘하지 못하는 엉터리 정당보다는 작지만 기민한 신보수 정당()이 국민에게 더 어필할 수도 있겠다. 어느 길이든 국민이 볼 때 보수 정당이 정신 차렸구나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몇 배 몇 십 배 더 노력해야 한다.

정치 상황이 복잡 미묘할 때 나타나는 이기적 행태가 또 하나 있다. 전형적인 지역구 밀착형이다. 중앙 정치가 어찌 가든 지역구에서 조직을 단단히 만들고 몸으로 때우는 사람들을 곧잘 본다. 한마디로 지방의원 할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잘못 뽑은 것이다. 이번에 확인한 우리 국민의 높은 정치 수준으로 볼 때 4년 후 이런 함량 미달 정치인들도 퇴출될 것이 뻔하다.

정치 지형이 복잡해졌다. 정당은 앞으로도 유효한 제도이고 기구인가. 그런 도전적인 질문이 던져졌다.존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한 교훈을 철저히 받아들여 스스로를 혁파하는 정당만이 그나마 신뢰를 받고 살아남을 것이다.

- 뉴욕에서 김형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