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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헤드라인

[추도사]‘나라를 사랑한 벽창우’ 강영훈 총리님 가시는 길에…

제 정치인생을 열어주신 강영훈 총리님 장례식이 오늘 현충원에서 있었습니다.

그분과의 각별한 인연으로 제가 장의위원장을 맡아 추도사를 낭독했습니다. 

추도사를 작성하는 내내 총리님과 함께했던 시간을 추억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습니다. 현충원에서 낭독한 추도사 원문을 실어봅니다.

 

          사진 연합뉴스

 

청농 강영훈 전 국무총리님!

신록의 계절 5월에  연둣빛 나뭇잎들의 배웅을 받으며

하늘나라로 긴 소풍을 떠나셨습니다.

 

청농(靑儂)이란 아호에 걸맞게

푸른 5(30)에 세상에 오셔서 한평생 푸르게 사시다가

이토록 푸르른 5월에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하셨습니다. 

사무치는 이 허전함을 어찌 감당할까요.

뒤늦은 후회가 가슴 가득 밀려옵니다.

 

고난과 영광의 시대, 이 나라에 축복처럼 빛났던 큰 별 하나가

지상에서의 소임을 마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총리님은 바람 잘 날 없었던 파란과 곡절의 대한민국 근현대사,

그 격랑과 격동의 한복판에서 능력과 인품, 애국애민의 정신으로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으며 굵직하고도 또렷한 발자취를 남기셨습니다.

 

목숨 걸고 나라를 세우고 지키신 건국과 건군의 주역이시며,

학자 외교관 국무총리 적십자 총재 등 책임 있는 공직자로서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신 한국사의 산 증인이셨습니다. 

갈등과 분열과 불통의 시대를 포용과 화합과 소통의 리더십으로

감싸 안으며 이끄신 큰 어른, 참스승이셨습니다.

 

철두철미한 공인 정신, 대쪽 선비의 올곧음과 청렴함으로

언제나 바른 길을 걸으며 빛나는 업적을 남기신

선공후사와 멸사봉공, 자기희생의 지도자셨습니다. 

윤동주의 서시를 헌사로 바쳐도 넘치지 않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삶을 살다 가셨습니다.

 

위기의 시기에는 솔선수범과 언행일치의 전범을 보이셨습니다.

육사 교장으로 재직 중이던 1961, 5.16을 맞아

대의와 소신을 지키시려고 고초를 마다않으셨습니다. 

한평생 민본, 민족,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지키고 몸소 실행하셨습니다.

 

저에게는 혈육과 같은 정을 베푸시며 각별한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1978년 외교안보연구원장으로 계실 때,

제 기사가 마음에 드신다며 평범한 기자였던 저를 스카우트하셨습니다.

그렇게 외교안보연구원, 국무총리실에서 직속 상사로 모시며

제 인생의 2막이 열렸습니다.

백면서생이던 저를 정치의 길로 이끌어

제 인생 3막도 총리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언제 어떤 순간에도 제가 믿고 기댄 든든한 버팀목이셨습니다.

정신적 지주, 영원한 멘토이며 스승이셨습니다. 

총리님을 두 번씩이나 가까이 모신 것은 제 인생 최고의 행운입니다.

 

총리님은 너그럽고 다정다감한 신사셨습니다.

머무신 곳 그리고 함께 일했던 모든 이들로부터

최고의 상사라는 칭송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신분과 나이를 따지지 않고 격의 없는 대화를 즐기셨습니다.

권위를 버림으로써 권위가 더욱 빛나셨습니다.

제가 아는 한 가장 완벽한 인격체이셨습니다.

 

고향의 힘좋고 고집센 소 벽창우(碧昌牛)에 빗대

스스로를 고집불통이라 하셨지만,

그것은 투철한 국가관과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

그리고 청렴강직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이해합니다.

 

집안은 늘 사랑이 넘치고 화기애애하였습니다.

현모양처의 표상이신 사모님과 함께

슬하의 21녀의 자제분, 두 며느님과 사위분

모두 훌륭한 사회인으로 역할하십니다.

손자 손녀들 역시 자랑스럽고 반듯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극진한 간호 간병과 효성을 다하신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애도와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총리님, 글로 첫 인연을 맺어 이렇게 글로 마지막 인사를 올리려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감히 이름 석 자 한 번 불러 보렵니다.

강자 영자 훈자 총리님.

부하로서, 후배로서, 제자로서, 멘티로서

당신과 한 시대를 같이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늘 국가와 민족 그리고 남북통일을 위해

기도하시던 그 모습, 잊지 않겠습니다.

 

못다 이루신 일과 꿈 그리고 유지(遺志),

부족하지만 저희들이 받들고 기리며 이어 가겠습니다.

 

님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 길잡이별로

저희 곁에 머물러 계실 것입니다.

 

나라를 걱정하시던 무거운 짐 이제 다 내려놓으시고,

하느님 품에 안겨 편히 쉬시고 잠드소서.

  

 

2016514

장의위원장, 전 국회의장 김형오

삼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