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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헤드라인

[2017-04 서울대 총동창신문] 명사칼럼 - 웃으며 떠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제 469호 2017년 04월 (2017-04-17)




웃으며 떠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김형오(외교67-71) 부산대 석좌교수, 전 국회의장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수감으로 한 시대가 저물었다. 촛불은 아래로부터 타올랐고 태극기는 바람을 가르려 했지만 불길을 막지 못했다. 공익과 공공성, 그리고 법에 의한 지배가 민주주의의 기본가치임을 일깨웠다.


기존 제도에 대한 뼈아픈 성찰, 타성에 젖은 관행과의 과감한 작별, 국민 공감의 새 정치를 시대가 요구한다. 5월 9일, 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제대로 검증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민심과 여론은 대체로 가늠된다. 진용은 짜여졌고 윤곽도 드러났다. 정책이나 이슈보다는 이미지 대결, 조직과 세력 대결로 부딪치다 립 서비스로 끝나고 말 선거다. 이번에도 어떤 대통령을 뽑느냐가 아니라 누가 되느냐에 관심이 모아질 듯하다. 준비 안 된 대통령에게 맡길 만큼 여유롭지도, 한가하지도 않은 나라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또 간절한 소망은 이번에 당선될 대통령만큼은 마지막 날 청와대를 떠날 때, 제발 웃으며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직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대통령이 너나없이 불행하게 떠났다. 쫓겨나거나, 시해 또는 자살로 생을 마치거나, 본인 아니면 자식·형제가 감옥에 가야 했다. 퇴임 후엔 어떤 공적 활동도 없다. 청와대가 한국 현대사, 그 비극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다음 대통령은 자신의 행운을 기뻐하기보다 불운을 걱정해야 할 것 같다. 그만큼 앞길이 어둡고 험난하다.


우선 전임자 문제로 여진이 심상찮다. 임기 내내 촛불과 태극기가 충돌하고, 각양각색 시위와 요구가 분출할지도 모른다. 경제 사정은 어느 때보다 좋지 않고, 안보는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자국 중심의 실리주의와 패권 논리가 한반도를 압박하고 한국의 위상을 위축시킨다. 리더십은 실종되고, 정치권은 진영 논리와 기득권에 매몰돼 있다. 포용과 통합은커녕 갈등·분열·대립 구도가 깊어져만 간다. 무엇보다 여소야대 국회다. 협조보다는 비협조가, 양보나 타협보다는 선명성과 원칙론이 지배하기 십상이다. 그것이 차기 지방 선거(2018년 6월)와 국회의원 선거(2020년 4월)에서 이기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비민주적 정당 운영과 책임 못 질 ‘표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고 자성보다는 비난, 자책보다는 남 탓으로 돌리는 버릇도 여전할 것이다. 다음 3년이 대략 그렇게 흘러갈 듯싶다. 그러니 다음 대통령도 밝게 손 흔들며 청와대를 떠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대통령의 웃는 얼굴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명운이 그의 운명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청와대를 웃으며 나올까? 득표율만큼의 지지율이라도 받고 떠날 수는 없는 걸까? 역대 대통령의 실패를 현장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에 몇 마디 적는다.


대통령 임기는 짧다(어쩌면 이번엔 3년으로 끝날 수도 있다). 첫 1년은 전 정부에서 만든 예산을 조정하고 새 진용 짜느라 소진하고, 후반 1~2년은 레임덕(권력 누수)에 빠진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2~3년이다. 도중에 세월호나 메르스 같은 악재를 만나면 제대로 한 일도 없이 임기가 끝나고 만다. 그러니 첫째로 욕심을 부리지 말라!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매년 국정 목표와 우선순위를 바꾼 박 대통령의 과욕과 무능이 스스로를 구속 사태로까지 몰고 오지 않았는가. 헌법상 한국 대통령은 권한이 막강하다. 개헌을 통해 권한을 줄이겠다는 당초 약속은 지키지 않고, 오히려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다 망신살이 뻗친 것이 한국 대통령의 역사다. 임기 3년차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수족이라 믿었던 검찰이 등을 돌리고, 끽소리 못하던 공무원은 딴생각을 한다. 측근 비리가 새어나오는 것도 이때다. 언론은 대통령 약점 캐기에 바쁘고, ‘민의의 전당’은 민의도 국정도 표류시킨 채 ‘차기 후보 옹립을 위한 각축장’으로 전락한다. 기회를 엿보던 사람들이 때를 놓칠세라 ‘정의의 사도’인 양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대통령에게 시비를 건다. 성공하면 ‘왕관’이요, 실패해도 ‘투사’로 남는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러진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추락은 국가 공신력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새 대통령은 이번에야말로 개헌을 통해 권한과 책임을 분산하라! 그래야 대통령도 살고, 국민도 나라도 살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은 부지런해야 한다!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토론과 회의, 독서와 숙고, 확인과 경청, 타협과 설득에 바쳐라! 고독한 결단과 무한 책임은 무덤까지 따라간다. 상대방과 반대파의 주장을 경청할 때 설득의 여지가 생기는 법이다. 전임 대통령들이 실패한 이유는 자기 논리, 나만의 동굴에 갇혀 편한 사람, ‘예스맨’만 만났기 때문이다. 청와대라는 ‘교만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대통령이 게으르면 나라 전체가 태만해진다. 득표율만큼의 지지율이라도 받고 떠나는 대통령이 되란 의미는 자기 지지자들(만)을 위한 정치를 하란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당선을 위해,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었던가. 그 정신, 그 자세로 임해야 지지율을 지킬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내 진영, 내 지지자 중심의 정책과 인사를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내 편의 양보를 받아내는 지혜와 용기를 먼저 발휘해야 상대방, 반대파가 비로소 마음을 움직인다. 끈질긴 대화와 설득은 대통령의 필수 조건이다. 그리하여 내가 아닌 남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해줄 때 그는 진정 청와대를 웃으며 떠나게 될 것이다. 어떤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인가를 매순간 생각하며 행동하라! 그러면 길은 쉽게, 또렷이 보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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