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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7 부산일보/윤현주의 맛있는 인터뷰] 백범 사상 선양에 앞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윤현주의 맛있는 인터뷰] 백범 사상 선양에 앞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백범의 솔선수범·희생·헌신, 한국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덕목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백범 좌상 앞에서 백범은 솔선수범, 희생, 헌신을 체화한 분이라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kimjh@


대한민국 정치 풍토에서 무계파·무계보이면서 큰돈도 없이 국회의장 자리에 오른 사람은 흔치 않다. 김형오(71) 전 의장은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합리적 보수주의자, ‘여의도의 신사등으로 불릴 만큼 정치인 중에서 비교적 괜찮은 이미지를 남겼다.

 

그는 정계 은퇴 후 왕성한 저작 활동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3년 전부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회장을 맡아 백범 사상을 선양하는 데 앞장서 오고 있기도 하다.

 

3·1운동 100주년과 백범 서거 70주기를 맞아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서울 용산구 임정로 26 백범기념관 안의 회장실에서 이뤄졌다. 그는 예의 논리정연함으로 기자의 질문에 막힘 없이 답했으며, 대한민국 정치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 국가 비전 등을 풍부한 경험과 식견으로 풀어냈다.


  •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맡아

  • 상하이~충칭 임시정부 역정 펴낼 예정

  • 백범일지풀어 쓴 백범 묻다인기

  • 정치 지도자들이 배워야 할 덕목 강조

  • 일제 잔재 청산 대승적 견지에서 봐야

  • 현 정부 외교안보 중요성 등한시 염려

  • 국민 친화력 탁월, 정책 유연성 떨어져

  • 개헌의 참뜻, 핵심은 권력구조의 재편

  •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 분산시켜야

  • 한국당, 돈 들여 연 전당대회 자승자박

  • 여당, 경남지사 판결 불복 전략적 실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기념사업회회장은 어떻게 맡게 됐나?

“2015년 김구 선생 아들인 김신(작고) 장군께서 강권해 맡게 됐다. 마지막 봉사라는 소명의식으로 임하고 있다.” 


-올해가 백범 서거 70주기인데, 기념사업회 차원의 특별한 계획은?

올해는 백범 서거 70주기일 뿐만 아니라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이다. 서거일인 626일에 뜻깊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상하이~충칭까지 임시정부 역정을 담은 답사기가 곧 나온다. 지난해 한·중 학자 11명으로 전문가 팀을 꾸려 답사하고 당시의 모습과 현재 변화된 모습, 임시정부와 김구 선생의 역할, 임정 요인들의 고난의 삶을 엮은 책이다. 역사에 남을 역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


-지난해 출간한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가 화제인데, 어떤 책인가?

백범과 관련해서는 수많은 책들이 나와 있다. 백범일지는 우리 국민들의 교양서 아닌가. 하지만 백범일지를 제대로 읽고 백범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백범 묻다…〉백범일지를 쉽게 풀어 쓴 책이다. 60개 항목의 문답을 싣고 항목마다 나 자신의 해설을 달았다.”


- 백범 묻다…〉는 곧 6쇄가 나올 정도로 많이 읽히고 있다. 백범의 리더십에서 오늘날 정치 지도자들이 배워야 할 덕목은 뭔가?

백범은 말과 생각과 행동이 초지일관된 삶을 산 보기 드문 분이다. 그리고 솔선수범과 희생과 헌신이 몸에 배어 있는 위인이다. 솔선수범과 희생과 헌신, 21세기 한국 정치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닐까.”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데, 그 역사적 의미는?

국내적으로 근현대사를 이등분하라면 3·1운동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중요한 사건이다. 국민·민중 같은 의식이 발현된 상징적 사건이다. 전 국민·전 계층이, 종파를 초월한 전 종교인들이, 전 지역 주민들이 장기간에 걸쳐 독립이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총궐기하고 단결하고 단합한 사건이다. 백범은 1946년 귀국 후 처음 맞은 3·1전날 경축사를 통해 ‘3·1절의 본질은 통일성에 있다고 규정했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를 바탕으로 3.1운동과 관련한 비화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풍부한 지식과 탁견이 예사롭지 않았다


-3·1절의 교훈은?

우리는 아직도 일제의 잔학하고 가혹한 통치를 들먹이면서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 대해 애석해 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대승적 견지에서 바라봐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말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무장하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게 3·1절이 주는 교훈일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일로인데?

그 부분이 안타깝다. 그런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존립하고 번영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외교안보이다. 이거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외교안보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하고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가 외교안보의 중요성을 등한시하고 있지 않나 싶어 걱정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이 다 돼 간다.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박근혜정부 시절 보여주지 못한 대국민 접근성과 접촉, 친화력은 아주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남북 긴장완화에도 상당한 역할과 기여를 했다. 반면 경제 분야에 있어선 확고한 방침이 안 보이는 것 같다. 정치를 너무 청와대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대국민 친화력은 있지만 정책을 유연하게 집행하는 능력은 떨어지는 것 같다. 자기들 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성공 가능성이 없고 피해 보는 사람도 많고 나라 경제나 위상이 구겨지는 정책이라도 끝까지 밀고 가는, 상당히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가지 꼭 첨부하고 싶은 것은 지금은 증오의 정치가 돼선 안 되고 편협한 정의가 작동돼서도 안 된다. 적이냐 아군이냐, 선이냐 악이냐 식의 단칼로 자르는 정치는 더 이상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 대통령은 같은 부산 사람이고 고교 후배이다. 나는 10년을 정부에서 공무원을 하면서 역대 정권의 명멸을 너무 많이 봤다. 대통령이 웃으며 청와대를 나가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게 개헌이라고 생각한다. 5년 단임제를 하다 보니, 정치적 단절을 초래하고 초반엔 제왕적 대통령에서 후반엔 식물형 대통령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정권의 충견이었던 검찰·경찰·국세청이 후반이 되면 싹 등을 돌려 대통령에 칼끝을 겨누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권력기관의 독립을 위한 개헌을 말하나?

그렇다. 검찰·경찰·국세청뿐만 아니라 국정원과 방송통신 등 5대 권력기관을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는 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이다.”


-이 정부 들어서도 개헌은 물 건너간 것 아닌가?

그럴 것 같다. 개헌의 참뜻을 최고 지도자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개헌하자는 것은 대통령께 집중된 권력을 합리적으로 배분하자는 것이 원취지다. 개헌의 핵심은 권력구조의 재편이다. 그런데 결국 대통령에 집중된 과도한 권한을 가져올 기관이 국회밖에 더 있나. 그래서 국회 개혁을 강조하는 거다. 대통령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국회에 일부 가져오고, 일부는 독립된 기관을 둬 분산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런 핵심 사항을 놓치고 다른 것을 자꾸 얘기하니까 개헌의 뜻이 없다고 봐야지.

개헌과 관련해 한 마디만 더 하자. 이 나라가 언제부터 미래 비전을 잃어버린 나라가 됐어. 5년 단임제 하다 보니 중장기 정책이 없는 거야. 5년 단임제의 약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하는 생각들을 안 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5년 단임제가 가지고 있는 권한을 그대로 두고 중임제를 택하면 8년 단임제가 되는 거야. 이건 더 나쁜 개헌이다. 그래서 나는 순수 대통령제로 하든지, 그렇잖으면 이원집정부제로 가든지 해야지 중임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 핵심은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돼야지.”


-국회 정치개혁특위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월 국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선거제도 개혁이 지지부진한데.

현 소선거구제에 문제가 많다. 당연히 개선돼야 하지만 국민들이 국회의원 정수 늘리는 데는 고개를 갸웃한다. 국회 정수 늘려도 되겠다고 국민들이 인정해줄 만큼 국회 개혁부터 먼저 하라는 게 내 입장이다. 국회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럴려면 2가지가 국회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하나는 선거제도개혁위원회이고 또 하나는 윤리위원회이다. 이 두 가지가 국회의원 입김과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국회의원들의 명줄을 딱 쥐면 국회는 확 달라지게 돼 있다.”

김 전 의장은 이런 게 진짜 개혁인데, 보수건 진보건 들으려 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 했다.


-국회가 제대로 일하게 할 방법이 없을까?

철학을 가진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 상대방 설득보다 우리 편에게 양보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이 이 시대 리더의 조건이다. 항상 진영 내에는 강경파와 원칙주의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게 진정한 용기고 능력이다. 지금 힘 있는 대통령이 참모들을 설득해 양보를 받아 내야지. 그걸 보여준 사람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노무현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내부 양보 받아내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아마 부산일보도 그렇지 않나. (웃음). 2019년 대한민국 정치의 첫 번째 과제는 내부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 리더십 확보다.” 


2009년 제18대 국회의장 당시 모습


-1야당인 자유 한국당을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 정부가 참 만만한 야당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는 취임 초기에는 여론이 안 좋으면 장관으로 지명했다가 취소도 시키고 했는데, 야당이 워낙 제 역할을 못하니까 이후에는 여론이 안 좋은 사람도 장관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국민들은 정부 여당은 독선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야당에 대해선 희망이 없다고 말하고 있어. 그러니 국민들이 정치에 점점 더 거리를 두고 있지 않나.

야당이 건강하고 제대로 견제하면 여당도 함부로 못한다. 이런 점에서 야당은 참으로 반성해야 한다는 게 내 기본 전제이다. 돈 들여가며 전당대회를 하면서 왜 스스로 인기를 까먹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극기부대는 대한민국 국민의 극히 일부이고 이것이 자유한국당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비록 상처가 나긴 했지만, 한국당이 전당대회 이후에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길 희망하지만, 그 희망의 강도가 점점 약해지고 있어. 그래서 걱정스러워.” 


-한국당이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이려면 무엇을 보완해야 하나?

한국당의 상황이 굉장히 안 좋아. 구체적인 것보다 기본적인 자세를 고쳐야 한다. 당의 최고 책임을 맡은 사람은 당을 위해 불쏘시개가 돼야 한다. ‘내가 죽어야 당이 산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데 노력의 결실을 차지하겠다는 욕심을 속에 가지고 있는 한 한국당은 안 된다. 죽었다가 사는 게 정치거든. 죽겠다는 사람은 없고 살겠다는 사람밖에 없으니 결국 다 죽는 거지. 거듭 말하지만 (당 지도부는) 자기를 던져버려야 해.” 


-김경수 경남지사 판결에 대한 민주당의 판결 불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 마디로 여당답지 못하다. 김경수 개인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당과 정권의 안위와 직결되는 문제로 스스로 몰고 가는 것 같다. 전략적으로도 잘못하고 있다. 만약 항소심 재판이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됐다고 치자. 집권당이 저렇게 떠드니 사법부가 겁먹고 눈치보고 저렇게 판결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겠나. 이건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서도 정말 잘못하는 거다.” 


-내년 총선을 어떻게 전망하나?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 시시각각 변한다. 예측하기가 어렵다. 다만 현재 상태로 본다면 자유한국당은 원하는 의석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은 과반을 얻을지 모르겠어. 워낙 야당이 취약해서 지지율은 높지 않겠지만 (의석을) 휩쓸지 않을까. ”


2006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당시 모습

 

-좀 언짢은 질문 하나 하겠다. 당신은 화려한 정치 이력에도 불구하고 소위 '김형오 계()'를 만들지 못했다. 너무 깨끗한 물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개인주의자여서 그런가?

다 해당이 될 거야. 그땐 부산에서 YS(고 김영삼 대통령)계가 아니면 힘을 쓸 수 없었으니까. 내가 아무리 YS계라 해도 민주계는 나를 YS계 취급을 안 해주고 민정계라 하고, 민정당에서는 내가 YS에게서 공천을 받았다는 이유로 민주계라 하고, 민주 민정 양 계파로부터 버림을 받은 거지. (웃음) 그렇다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아니고, 노래나 춤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시장 바닥에 가서 막 어울리는 체질도 아니고. 돈과 조직과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내 혼자 갈 길을 간 거야. 나를 살린 건 언론이었어. 그때 국정감사 스타로 자주 신문 1면을 장식했으니까.

나는 딱 한 번 빼고 공천을 쉽게 받아 본 적이 없어. 당선도 마찬가지고. 줄서기 할 줄을 모르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후회는 안 해. 계파·계보 이런 것과 거리가 있으니 부정·부패 스캔들에 한 번도 연루되지 않았잖아. 원내대표, 국회의장 다 원내 경선을 했는데, 압승했어. 그 비결이 무계보·무계파 덕분이었지. 이제 정치판에서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는 계보·계파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김 전 의장은 인터뷰 말미에 정치인들의 자질과 품성과 시민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정치 아카데미를 여는 게 남은 소망이라고 밝혔다. 재정적 뒷받침을 할 독지가나 자선가가 나타나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작가가 된 김형오 >


         2012년 역저 출판기념회를 여는 김 전 의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14대부터 18대까지 내리 5선의 국회의원을 지내고 정계를 은퇴한 후 작가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2012년 비잔티움 제국의 최후와 리더십을 다룬 황제와 술탄을 출간해 스테디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2016년엔 황제와 술탄의 발행을 돌연 중단한 뒤 전면 개정판인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를 펴내는 결단을 내렸다


김 전 의장은 지난해에 백범일지의 해설서격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출간, 다시 한 번 출판업계의 이목을 받았다


길 위에서 띄운 희망 편지, 이 아름다운 나라, 돌담집 파도소리등 에세이와 칼럼집도 다수이다. 20년간의 정치 경험과 폭넓은 독서로 인한 박람강기, 그리고 뛰어난 집중력이 그의 글쓰기 자산이다. “책을 쓸 때는 15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은 적도 있다는 그는 현재 중앙아시아의 한 영웅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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