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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헤드라인

[신동아] 김형오-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불통’ 韓 정치 향한 분노

[특집 | 한국 정치, 어디로 가야 하나] “민주주의 1원칙은 ‘합의’, 최후 수단은 ‘다수결’” “협치 주장한 李, ‘야당은 국정 동반자’ 얘기해야”


● “여야 대표 ‘악수’가 관심 되는 자체가 정치 불행”
● “정청래, ‘사람하고 악수한다’…최악 발언 남을 것”
● “‘尹 대통령 만든 건 추미애’, 장동혁 대표 만든 건 정청래”
● “극한 대결 계속하면 국민이 與 신뢰 거둘 수도”
● “야당 얘기 들어준다고 여당 손해 볼 일 없어”
● “국회 의석수대로 야당 의견 3분의 1 포함해야”
● “與野 죽도록 싸워 선장 하면 뭐 하나. 배 가라앉으면 다 죽는데…”
● “DJ, ‘남 얘기 귀 기울일 줄 모르는 사람은 인생 실격자’”
● “몰아붙이는 與, 퇴장하는 野…전형적 후진국 정치”
● “국정과제 1번이 ‘개헌’…반드시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김형오·문희상 전직 국회의장들이 9월 9일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서 ‘한국 정치’를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4년 전, 우리 국민 10명 중 4명은 한국 정치가 ‘3류’ 수준이라고 답했다. 10명 중 3명은 ‘2류’, ‘4류 이하’라고 본 국민도 10명 중 2명이 넘었다. 한국 정치를 ‘1류’로 본 국민은 4%, 100명 중 4명뿐이었다. 이 같은 조사는 2021년 11월 한국정책과학원이 여론조사전문업체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였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만약 같은 조사를 2025년 9월에 다시 실시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9월 9일 ‘신동아’는 국회 수장을 지낸 김형오-문희상 두 원로 정치인으로부터 ‘취임 100일을 맞는 이재명 정부’와 ‘극한 대결로 치닫는 한국 정치’를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대담은 하루 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있었던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회동에 대한 평가로 시작했다.

문희상 “취임 100일 李 대통령 국정 운영 점수? A+”
어제(8일)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회동 때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만나 ‘악수’를 했다.

김형오(김)_ “악수를 하네 마네 하는 게 뉴스가 되는 것 자체가 정치 불행이다. 아주 블랙코미디 같은 일이다. 갈등을 조정하고 푸는 게 정치가 해야 할 일인데 오히려 요즘은 정치권이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11일은 이재명 정부 출범 100일이다.

문희상(문)_ “지금까지 이재명 대통령은 잘하고 있다. 처음에 큰 기대를 안했는데, 최근에는 ‘기대해도 되겠다’ ‘기대할 만하다’고 내 생각을 바꿨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문_ “기본적으로 (이 대통령이) 사물과 정황을 판단하는 자세가 굉장히 민주적 사고에 기반한다. ‘대통령 되기 전과 후가 이렇게 다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잘하고 있다.”

문 전 의장께서 이 대통령 지난 100일을 호평했는데, 김 의장도 동의하나.

김_ “예상했던 대로 국정을 빨리 안정시켰다. 만약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면 (계엄 이후 상황을 주도해 온) 민주당측 반발로 혼란이 계속됐을 것이다. 다수 국민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얼토당토않은 계엄을 선포한 게 작년 12월 3일이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고, 국무회의를 거쳐 정상적 절차로 계엄을 해제하기까지 6시간 정도 걸렸다. 그 6시간 해프닝 이후 12월 4일 새벽부터는 ‘윤석열의 시간’이 아니라, ‘이재명의 시간’이 시작됐다. 그날 이후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모든 것을 주도하지 않았나.”

9월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_ “문 전 의장이 ‘대통령 되기 전과 후가 이렇게 다를 줄 몰랐다’고 했는데, 그 얘기 속에 핵심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 사이에 이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결여돼 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말이 바뀌니 그렇다. 대표적인 게 ‘노란봉투법’이다. 경제인을 만났을 때는 그들을 격려하더니, 정작 경제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노란봉투법은 그냥 통과시키지 않았나.”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의 교섭권 보장을 위해 원청으로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책임을 완화한 게 특징이다. 재계는 노란봉투법 통과로 경영권 약화와 산업현장 혼란, 외국인 투자 감소 등 경제 전반에 부정적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문 전 의장은 “정치의 기본은 신뢰에 있다”며 공자 안현 편에 나오는 고사성어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유래를 설명했다.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군대를 풍부하게 하는 ‘족병’과 식량을 풍부하게 하는 ‘족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백성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는 얘기였다.

문_ “신뢰는 통합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취임 뒤 ‘통합’과 ‘협치’를 강조하고 있다. 또 일머리가 있고, 실용성도 겸비하고 있어 보인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서생적 문제의식’에 ‘상인의 현실감각’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씀했는데,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실용주의’가 꼭 DJ가 말한 상인의 현실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까지 100일 동안 이 대통령이 얘기한 내용만 놓고 보면 아주 좋다. A+다. 이 대통령 말이 국정의 시작이라면 앞으로 정책을 통해 실질적으로 마무리를 잘 지어야 한다.”

김형오 “대통령 국정 성과? 아직 ‘립 서비스’ 수준”
김_ “글쎄. 아직은 ‘립 서비스’ 수준이다.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뭘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보여준 게 없다. 또 장소와 때에 따라 말이 바뀌어 신뢰도가 떨어진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국회 다수당을 동원해서 힘없는 야당을 몰아 ‘족친 것’ 뿐이다. 이재명 정부는 전 정부 탓을 할 수 없다. 여소야대 상황에 집권한 윤석열 정부는 민주당이 반대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문_ “오히려 윤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민주당이 하려는 것을 못하게 했다. 그래서 지금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책임지고 하려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평가를 하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결과를 지켜보고 해야 한다.”

김_ “노란봉투법은 누가 원하는 건가. 노총 아닌가. 특검은 또 어떤가. 여당 핵심 지지층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 아닌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어떻게 헌신하겠다는 비전 제시는 없고, 오로지 특검 정국으로 야당을 꼼짝 못하게 하는 ‘힘을 앞세운 정치’만 하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선출 과정에 각 당 ‘강성 지지층’ 입김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다.

김_ “이러다 큰일 나게 생겼다. 여야 격돌 수준이 아니라 자칫하면 대한민국이 반으로 갈라질 가능성이 있다.”

문_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여야가 제 역할을 하려다 보면 시끄러운 게 당연하다. 때론 싸워야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말로 싸우는 것이다. 지금처럼 죽기 살기로 서로를 극단으로 몰아세우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사람하고만 악수한다’는 얘기는 최악의 발언으로 남을 거다.”

김_ “‘윤석열을 대통령 만들어준 게 추미애’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번에는 정청래 대표가 장동혁 대표를 만들었다. ‘내란당은 소멸시켜야 된다’ ‘사람하고만 악수한다’는 정 대표 말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민의힘 당원들이 가장 세게 얘기한 장동혁을 대표로 뽑은 거다.”

새 정부도 출범했고, 여야 새 대표도 선출됐다. 정치다운 정치를 복원하려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김_ “어제(8일)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만난 것을 시발점으로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지금 여당은 국회에 이어 행정부까지 장악했다. 사법부도 정부 여당 눈치를 보고 있다. 삼권을 정부 여당이 모두 주도하는 상황인데, 소수 야당 의견을 들어주는 게 뭐가 힘든 일인가. 야당 얘기 들어준다고 여당이 손해 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덕을 베푸는 모습을 보이는 게 더 많은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길이다. 지금처럼 극한 대결 정치를 계속하면 국민이 신뢰를 거두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나라를 위해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 ‘야당과 함께 의논해라’ ‘야당은 국정의 동반자다’라고.”

‘법의 지배’ 아닌 ‘법에 의한 지배’



문 의장은 어떻게 보나.

문_ “김 전 의장 말씀에 글자 하나 안 틀리게 똑같다. 정치 실종과 정치 붕괴를 바로잡는 유일한 해법이 여야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푸는 것이다. 다만 정치 복원을 얘기하기 전에 (12·3)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들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심판해야 한다.”

김_ “정치를 복원할 가장 큰 책임은 야당이 아니라 여당에 있다. 대통령중심제에서는 여당보다도 대통령에게 있다. 지금 여당이 보이는 모습은 제대로 된 정치가 아니다.”

문_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대통령 가운데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치를 정치답게 한 대통령이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다. 그래서 윤 대통령 취임 후 ‘노태우와 김대중의 길을 걸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랬는데 느닷없이 계엄을 선포해서 국정을 혼란에 빠뜨렸다.”

김_ “노태우 정부 때는 여소야대 상황이었어도 국회가 살아 있었다.”

문_ “그때 허주(虛舟·김윤환 전 의원)가 민정당 원내총무였는데, 그 양반이 ‘체크 앤드 밸런스’를 참 잘했다.”

김_ “지금은 견제도 전혀 안 되고, 여야 균형은 완전히 깨졌다. 민주주의 기본 운영 원리가 ‘법의 지배(rule of law)’다. 그런데 지금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처럼 돼가고 있다.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 독재국가, 멀리 갈 것도 없이 북한 김정은이 자기 맘대로 법을 만들어 지배하고 있지 않나. 일방적으로 법을 만들어 지배하는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는 없다. 이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가장 많이 주장한 게 뭔가. ‘협치’다. 이제 그 ‘협치’를 실현할 때다. 야당 의견을 전부 들어주라는 게 아니다. 주요 정치 쟁점은 반드시 야당과 협상하고, 야당 의견을 국회 의석수대로 최소한 3분의 1은 포함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회 모습은 어떤가. 여당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야당은 퇴장해 버린다. 전형적인 후진국 정치다.”

문_ “이 대통령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가 취임 후 ‘지지자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대표가 되겠다’고 약속하고, 그 말을 지키려 노력하는 데 있다. 대의민주주의는 곧 의회주의다. 대통령이 멋대로 법을 만들어 통치하는 게 아니다. 국민 대표인 의회가 만든 법을 대통령이 집행하는 게 기본이다. 앞으로 이 대통령이 어떻게 할지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까지 민주주의 기본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이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하는 것과 별개로, 민주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입법 독주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_ “그게 중요한 문제다. 국회가 지금껏 유지해 온 좋은 전통과 관행이 언제부턴가 모두 깨졌다. 민주당이 야당일 때 법사위원장이 야당 몫이라며 자기들이 차지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 모두를 민주당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여당이 된 후에도 법사위원장을 야당에 양보하지 않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회를 완전히 ‘표 대결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숫자를 앞세워 여당이 일방적으로 표결로 밀어붙이니, 수적 열세에 놓인 야당이 설 자리가 없다.”

문_ “민주주의 제1 원칙은 여야 합의다. 하지만 합의가 끝까지 안 되면 최후 수단으로 다수결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야가 의석수를 늘리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 아닌가.”

김_ “정치를 복원하려면 대통령이 먼저 나서 대화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중심제 국가 아닌가. 형식적으로는 삼권분립이 잘돼 있더라도 지금처럼 양보나 타협 없이 오로지 숫자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다수결을 무슨 철칙처럼 가장 먼저 앞세우니, 대화도 토론도 협상도 안 되는 것이다. 대화의 정치가 시작되려면 우선 더 많이 가진 쪽에서 양보해야 한다. 야당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대화가 되고 협상도 되고 타협에 이를 수 있다.”

문_ “지금처럼 정치가 완전히 실종된 책임은 어느 한쪽에만 있는 게 아니다. 양쪽 모두에 책임이 있다. 다만 정치를 복원하려면 국정 운영에 책임이 더 큰 여당이 먼저 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치 복원 위해 여당이 먼저 대화 나서야



‘김대중 정치학교’ 이사장을 맡고 있는 문 전 의장은 이 대목에서 정치학교 학생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뽑아놓은 어록이라며 DJ 어록 몇 가지를 소개했다.

“최고의 대화는 경청이다.”

“대화는 상대가 좋든 싫든 필요하면 하는 것이다.”

“대화가 단절된 사회는 마치 벨트가 끊긴 기계처럼 의사전달의 벨트가 끊겨버리고, 결국은 화해와 협력의 길이 막혀버린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사람은 대화의 실격자요, 인생의 실격자다.”

정치 실종, 대화 실종 시대에 ‘대화’를 중시한 DJ 어록은 지금 누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일까. 김 전 의장은 “대통령중심제에서는 대통령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_ “지금 여당이 추진하는 대법관 수를 늘리는 문제는 삼권분립에 영향을 주고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내가 만약 이 대통령이라면 ‘국민이 오해할 일은 하지 않겠다’고 먼저 선언하겠다.”

문_ “국회가 하는 일에 대통령이 나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삼권분립에서 대통령이 무슨 권한으로 그럴 수 있나. 아무리 대통령중심제라도 모든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김_ “우리 국회가 지금 법을 너무 졸속으로 만들고 있다. 예컨대 검찰청법만 해도 그렇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줄곧 존재해 온 검찰청을 없애면 앞으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그런 중요한 문제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그렇게 급하게 졸속으로 처리할 일인가. 검찰청을 폐지하자면서 중수청(중대범죄수사청)은 왜 행정안전부에 만들려는 것인가. 그 이유를 제대로 알고 있는 민주당 의원이 몇이나 되겠나. 그리고 그 과정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국민은 또 얼마나 될까. 이건 시간을 갖고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처리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도 ‘쇠뿔도 단김에 빼자’는 식으로 속도전으로 처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역대 대통령 사례를 보면 중요한 문제를 졸속으로 처리했다가 부메랑이 돼 자기 발등을 찍은 사례가 적지 않다. 집권한 지 얼마 안 되는 이 대통령이 그런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문_ “검찰개혁은 DJ 대통령 때부터 고민했던 문제다. 내가 김대중 정부에서 정무수석으로 일할 때, DJ가 신건 국정원장과 박상천 법무장관 두 사람을 두고 고민한 일이 있다. 처음에는 신건 원장이 유력했는데, 장관 발표 하루 전날 박 장관이 검찰개혁 추진 일정표를 차트로 만들어 DJ를 찾아 와 자세히 설명해 기류가 바뀌었다. 그런데 박 장관이 취임 몇 달 만에 검찰에 포위돼 개혁을 못 하더라. 박 장관도 공안검사 출신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취임하자마자 검찰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 때 검찰에 수모를 당해 돌아가셨다. 노 대통령 때 민정수석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문 전 대통령은 검찰 출신이 아닌 조국 서울대 교수를 민정수석에 앉혀 검찰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에까지 검찰개혁의 숙제가 넘어온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연구가 있었고, 수많은 토론과 숙의가 있었다. 여론 수렴 과정이 없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검찰에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왜 검찰개혁을 하자고 하는지 이해를 잘 못하는데, 한 번이라도 당해 본 사람들은 그 필요성을 다 인정한다.”

지나치면 안 한 것만 못할 수 있다


김_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서두르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충분히 시간을 갖고 검찰개혁을 추진하라는 거다. 국회의원 임기가 아직 2년 넘게 남았고, 대통령 임기는 4년도 더 남았다. 그런데도 올 추석 전에 처리해야 할 만큼 그렇게 서두를 일인가.”

문_ “나도 과유불급이란 얘기를 했다. 지나치면 오히려 안 한 것만 못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으니 시간을 갖고 천천히 추진하라고.”

양극단 정치를 해소하려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_ “이재명 정부가 5년 동안 추진할 국정과제를 간추려 123개를 발표했는데, 제1번이 ‘개헌’이다. 이 대통령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헌을 1번 국정과제로 올렸다는 것은 ‘반드시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아니겠나.”

김_ “내가 국회의장에 취임했을 때 첫 일성이 ‘개헌’이었다. 개헌특별자문위원회까지 구성해 개헌안까지 마련했다. 그런데 정권을 흔드는 것으로 오해하는 바람에 관계가 아주 미묘해졌다.”

문_ “그때 상황은 내가 잘 안다. 김형오 의장 때 내가 부의장을 해서 당시 상황을 옆에서 다 지켜봤다. 역경에도 김 의장은 당당하게 개헌을 추진했다.”

김_ “대통령제가 좋은 점도 있지만 지금은 나쁜 점이 더 많아져 국민 갈등의 온상이 되고 있다. 대통령에게 쏠려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분산하고, 국민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국회에 책임성을 어떻게 강화할 것이냐가 개헌의 핵심이 돼야 한다. 다당제나 선거구제는 그다음 문제다.”

문_ “개헌은 대통령이 추진하면 안 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국회가 개헌에 나서야 한다. 여야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7공화국을 함께 열자’고 합의해야 개헌이 가능하다. 난파선 위에서 여야가 죽도록 싸워 선장을 차지하면 뭐 하나. 배가 가라앉으면 다 죽을 텐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국민 다수 의견을 수렴해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 국민 뜻이 충실히 반영된 개헌안이라야 국민투표를 통과할 수 있다.”

김_ “나는 철저한 개헌론자이지만, 지금의 국회가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환영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김_ “지금 정치 지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유리한 쪽에서 먼저 평정심을 발휘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양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모르지만, 지금처럼 자기들 중심으로 개헌하려고 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

문_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수준만큼이라도 개헌을 하는 게 좋다고 본다.”

‘원포인트 개헌’을 하자는 것인가.

문_ “여야가 개헌안을 놓고 대화하고 합의하는 과정에 국민 통합을 위한 에너지가 만들어질 수 있다.”

김_ “대통령 권한을 어떻게 분산할 것이냐는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는 개헌이라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