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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김형오의 말말말

공주대학교 명예교육학박사 학위수여식 특별강연문

관용과 긍정의 정치로 난국을 풀어야



  교육, 대한민국의 미래이자 희망


  오늘 6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국립 공주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게 되어 영광스럽고 또 자랑스러운 마음입니다.  특히, 대한민국 인재의 산실이자 요람인 공주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게 되어 더더욱 남다른 감회를 갖게 됩니다.


  예로부터 우리 국민들에게 교육은 곧 미래의 희망이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비록 끼니를 굶더라도, 자식들만큼은 제대로 교육시키기 위해서 정말 눈물겨운 노력을 다 하셨습니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성장하고, 나라도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지식기반의 사회인 21세기는 ‘인재’가 모든 것을 좌우하고 ‘인재 양성’이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시대입니다.  마침 레 만날 예정입니다만,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부의 원천은 교육과 지식에 있다”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  나라의 미래가 ‘사람’에 달려있고, 그 중심에 바로 ‘교육’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60년 동안 국가발전을 견인하고 경제성장을 뒷받침했던 교육이 이제 국가경쟁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조기유학으로 ‘기러기 아빠’를 양산하고, 아예 이민을 떠나기도 합니다.  날로 커져만 가는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우리 부모님들의 허리가 휘고 있습니다.


  재학생 여러분처럼 이미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등록금 부담이 제일 크겠지만, 우리 부모님들의 가장 큰 걱정은 사교육비 부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교육비 부담으로 교육 격차가 심화되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일은 막는 것, 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교육정책이자 복지정책인 것입니다.  여기에 정부는 물론이고 정치권이 든 관심과 노력을 쏟아야 하고, 우리 국회도 이와 관련한 논의와 대책 수립에 앞장설 수 있도록 국회의장으로서 더욱 관심을 갖고 살펴볼 생각입니다.


  우리 교육 현장의 문제도 지적해야 합니다.  그 동안 정부의 지원 속에서 학교들이 유지되고 발전되다보니 정부의 간섭이나 통제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학교가 국가와 관료의 지나친 관리와 통제에서 벗어나고, 자율과 책임을 한층 강화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율과 경쟁,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교육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창의적인 인재들을 길러내는 것, 그것이 대한국을 선진국으로 우뚝 서게 만드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인현장성(人賢長城)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장성보다 낫다는 말입니다.  당 태종이 철벽의 위용을 자랑하는 만리장성으로도 얻을 수 없었던 평화를 탁월한 기지와 지혜로 이뤄낸 이세적(李世勣)의 공을 치하하면서 써 준 글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역시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희망이고, 그 사람을 키우는 교육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인 것입니다.


  인재 양성을 위해 밤낮으로 애쓰시는 김재현 총장님과 교수님, 직원 여러분께 거듭 감사드리면서, 지금부터 우리 정치의 미래와 18대 국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60년의 회고와 반성


  2008년은 매우 뜻 깊은 해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지 꼭 60년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도 환갑을 맞았습니다.  사법부 탄생, 국군창설 6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곳 공주대학교도 지난 10월 30일 뜻 깊은 개교 60주년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60년, 환갑은 동양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역사의 한 고비를 지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때에 정권이 바뀌고 저도 또 국회의장이 되었다는 데서 깊은 사명감을 느낍니다.  우리 국회가 국민의 랑과 신뢰를 받는 ‘국민의 국회’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역사적인 다짐을 하게 됩니다.


  지난 60년간 대한민국은 역동적인 변화를 통해 위대한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첫째,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나라를 세웠습니다.    1948년 8월 15일은 2차 대전 이후로 신생 독립국으로 대한민국이 수립된 날입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채택했습니다.  이 체제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선택과 위대한 결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 동안에 민주화를 이룩했습니다.  선진국들은 민주주의를 쌓기 위해 수백 년간 수많은 피와 목숨, 또 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항쟁과 같은 민주주의를 위한 고귀한 희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계사에 있어서 이처럼 짧은 기간에 이만큼 공적으로, 또한 모범적으로 이룩한 민주주의의 역사는 일찍이 없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산업화입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 안에 어떤 나라보다 성공적으로 산업화를 일궈냈습니다.  1953년 63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를 넘었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습니다.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한국경제의 성공 신화는 중국, 인도, 동남아, 중남미 각국으로 이어져 역사적 선도 사례가 되었습니다.


  네 번째는 이와 같이 급격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조국은 전히 분단된 채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남과 북,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의 모습은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되새기게 합니다.  더구나 북핵 문제는 풀릴 기미가 없고, 남북관계도 경색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걱정과 고민이 많습니다.


  어쨌든 정리하자면, 건국, 산업화와 민주화, 분단 현실 ⋯ 이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현주소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계 속에서 한국만이 안고 있는 특수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입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이루다보니 여러 가지 부정적 현상들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유례없는 압축적 경제 성장, 급속한 현대화는 빈부차를 낳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차이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과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도 이때부터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부나 권력의 획득과정이 정당하지 않았다는 인식은 사회적인 불만을 키웠고,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가진 자, 배운 자에 대해 존경 보다는 질시가 앞서는 풍조가 생겼습니다.  이로 인해 승복을 하지 않은 풍토가 생겼고, 불신이 커졌습니다.  또한 이로 인해 선진 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사회적 자본인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가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주주의 발전에 걸 맞는 자율성과 책임성, 권리에 따르는 의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얼마 전 촛불시위에서 생생히 봤지만 법치의 문제, 즉 공권력의 정당하고 엄정한 집행에 대해 새로운 과제를 던져 주었습니다.


  이것이 산업화와 민주화의 그늘입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의 골은 지난 역사의 성장과 발전 과정에서 깊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21세기 우리 모두가 합심 협력해서 치유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우리 정치의 변화된 모습과 그 한계


  60년을 지나면서 우리 정치도 크게 변했고, 나름대로 뚜렷한 전을 이뤄냈습니다.  60년이 길다면 제가 첫 국회의원이 된 92년과 비교해도 그렇습니다.


  첫째, 정당이 민주화됐습니다.  무엇보다 보스 중심의 정당체제가 사라졌습니다.  과거와 같이 당 총재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권을 독점하고 공천권을 행사하면서 정당을 사유화하는 일 체가 불가능해 졌습니다.  ‘완전히’라고 말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정당의 구조와 운영이 민주적,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둘째, 돈 안 드는 선거, 돈 안 쓰는 정치가 됐습니다.  금권선거, 정경유착으로 얼룩졌던 과거와 비교한다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정도로 참 깨끗해졌습니다.


  셋째, 정책정당으로, 정책국회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18대 국회가 석 달 가까이 허송세월하면서 국민의 따가운 비판과 질책을 받기는 했지만, 그 동안에도 국회의원들은 엄청난 의욕과 열의를 갖고 일하느라 매우 바빴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주최한 토론회가 석 달 동안 300여회, 하루 세 번꼴로 열렸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제출된 법률 제⋅개정안도 700여 건이나 됐습니다.  국회가 열려 있는 지금도 의원회관의 방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습니다.


  지난 17대 국회 4년간 6,500여건의 법률안이 제출돼 그전 16대 국회에 비해 세배가 넘게 늘어났습니다.  의원 한 명당 21.4건의 법안을 제출한 것입니다.  가결 비율이 21.1%에 불과하다는 문제 등 질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도 많습니다.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게 릴지 모르겠지만, 국회의원들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당들도 정책 경쟁에서 이겨야 선거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국민 정서나 국민 만족도에는 문제가 있는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회 운영의 자율성이 엄청나게 커졌고, 이로 인해 국회의 독립성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더 이상 국회가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습니다.  제가 국회의장이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예전 같으면 청와대나 권력 핵심에 의해 선출되곤 했지만 이번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서 대단히 의미 있는 진전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가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고, 해야 할 일도 너무도 많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가장 먼저 개혁되어야 할 대상으로 정치권을 꼽는 데서 보듯이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도 큽니다.  무엇보다 여야가 싸우는 정치, 대결과 투쟁의 정치를 그만두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실천해야 합니다.


  다양한 이해가 충돌하는 정치의 현장은 시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여야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국익과 민생을 위해 생산적인 결실을 맺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이견과 갈등을 민주주의 발전의 위대한 엔진으로 만드는 것, 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인 것입니다.



  정치 선진화를 위한 새로운 화두 ‘관용의 정신’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힘을 ‘관용의 정신’, ‘관용의 리더십’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관용은 서로 다른 사고방식과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프랑스에서는 1598년 앙리 4세가 유럽 최초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낭트 칙령을 공포한 데서 유래된 똘레랑스(tolerance, 관용 또는 아량)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최근 역사상 초강대국들의 성장과 몰락 과정에서 배워야 할 교훈을 분석한 『제국의 미래』(에이미 추아)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초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지리, 인구, 자원, 지도력, 운(運) 등의 요소들이 필요하지만, 관용이야말로 초강대국이 되는데 없어선 안 될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로마, 당(唐), 몽골,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 다원적이고 관용적이었기에 제국으로 발전한 나라들을 분석했습니다.


  여기서 관용은 인종, 종교, 민족, 언어 등에서 이질적인 사람들이 그 사회에 참여하고 공존하고 번영할 수 있게 허용하는 자유를 말합니다.


  천년 이상을 지속한 로마 문명은 하나의 문화적인 용광로였습니다.  온갖 피부색과 배경, 다양한 문화적 전통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았습니다. 


  유용하다는 판단이 서기만 하면 서슴없이 다른 민족의 전통과 지식, 관습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보여줬습니다.  야만인이나 개한 민족 출신도 정치에 참여하며, 신분 상승을 허용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며 동화시키는 독특한 문화, 즉 로마의 ‘전략적 관용’이야말로 제국을 일궈낸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한 비결 역시 인적 자원을 잘 활용한 데 있었습니다.  종교적 자유와 개방적인 시장제도를 통해 다양한 집단들의 활력과 재능을 끊임없이 유인하고, 흡수하고, 보상하고, 활용함으로써 성장과 성공을 일궈냈습니다.  마이크로칩의 발견이라는 기술 혁명과 벤처 자본주의라는 금융 혁명을 일궈낸 사람들 역시 미국으로 이주한 과학자들입니다.  ‘다문화 사회의 아들’이라는 버락 오바마 후보의 대통령 당선도 미국의 개방적인 문화적 전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중심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전략적 용’과 ‘상대적 관용’의 실체를 접하면서 저는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관용의 정치’, ‘관용의 리더십’은 오늘의 우리 정치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관용은 화합과 상생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정치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가치와 신념을 인정하고 존중하는데서 출발합니다.


  관용의 사회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거나 강제하는 대신에 대화하고, 토론하고, 설득하고, 결국 합의를 이끌어 냅니다.  독단, 독주가 아닌 민주적 절차에 따른 화합과 상생의 리더십이야말로 진정한 리더십인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세계 금융위기가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입히며 불황의 깊고 어두운 터널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일수록 여야 정치권이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정치’를 실천해야 합니다.  ‘미국은 하나’임을 강조하며 ‘통합과 화합’을 통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내고 있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여당부터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당⋅정⋅청의 혼선, 소통의 부재, 당내 불협화 등 이런 지적이 계속된다면 국민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양하고 복잡해진 국민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정운영 모습을 보여 줘야 할 것입니다.


  야당 역시 비상시국에 걸 맞는 변화된 자세를 보여줘야 합니다.  국정이라는 수레는 여와 야라는 두 바퀴가 삐거덕대면 제대로 러갈 수 없습니다.  지적은 매섭게, 비판은 최대한 날카롭게 하되 국익과 민생을 위한 일에는 적극 협조하는 모습을 국민은 보고 싶어 할 것입니다.


  다수당과 소수당이 적절하게 역할을 분담하고 책임을 나누면서 대화와 타협을 실천하는 것, 이것이 대한민국 국회가 사는 길입니다.


  둘째, 관용은 나눔과 배려입니다.


  우리가 갈 길은 ‘더불어 잘 사는 대한민국’입니다.  일부 계층만 잘 살고, 일부 사람들만 특권을 누려서는 안 됩니다.  인권 신장과 복지 향상을 통해 모든 국민이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내실화를 통해 성장의 과실이 복지로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장애인, 빈곤층, 노동자와 농민, 노인, 여성, 아동 등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과 편견,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이 사라져야 합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 빈곤층과 소외계층들을 위한 관심과 배려를 담은 정책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것, 이것이 우리 정치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당장 1천만 도시 서민의 내 집 마련의 꿈이 이뤄지는 따뜻한 사회 건설을 위한 집중적 SOC 투자가 필요합니다.


  셋째, 관용은 개방, 즉 열린 사회를 지향합니다.


  이번에 다녀온 유럽 3개국에도 어김없이 우리 동포들이 힘차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700만 재외동포는 엄청난 국가적인 자산입니다.  7천만 한민족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동포들의 협조와 협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재외동포 참정권 문제를 조속히 법제화해 우리 동포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중국적 허용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한편 눈을 국내로 돌리면, 이미 외국인 100만 시대를 넘어 ‘국경 없는 대한민국’이 되었습니다.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 사회는 제 시대적, 국제적 대세입니다.  그럼에도 국내 거주 외국인들은 제노포비아(xenophobia, 외국인 혐오증)에 바탕을 둔 크고 작은 폭력과 따돌림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지난 역사에서 보았듯이 이를 잘 수용하고, 활용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한층 높이는 것은 물론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디딤돌을 놓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랜 폐쇄적 단일국가 관념에서 열린 세계로 나가기 위한 인종적, 문화적 관용을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느냐의 시험대이기도 합니다.


  한⋅미 FTA나 한⋅EU FTA 체결의 필요성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몽골 제국을 세운 징기스칸은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여는 자는 흥한다.”고 했습니다.



  헌법 개정과 국회 운영제도 개선


  제헌 60주년이라는 뜻 깊은 해에 시작한 18대 국회는 반드시 수행해야 할 두 가지 소명이 있습니다.  헌법 개정과 국회의 운영제도 개선이 그것입니다.


  먼저, 헌법 개정, 개헌 문제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현행 헌법은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1987년에 국민적 뜻을 받들어 여야 합의로 개정된 민주 헌법입니다.  그 이전의 개헌이 권력자에 의해 자의적으로 개정되곤 했다는 점과 비교한다면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87년 헌법은 우리 헌정사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직선제와 단임제로 장기집권을 막았고, 권위주의 해체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정권 교체가 이룩되고 여야가 바뀌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두루 겪는, 훌륭한 민주주의 전통을 쌓아 왔습니다.



  하지만, 87년 체제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세 가지가 나타났습니다.  지방화, 정보화, 세계화가 그것입니다.  90년 이후 시작된 지방화를 87년 헌법은 담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보화 강국 대한민국은 90년부터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세계화 역시 90년대 이후에 등장한 그야말로 세계적 현상입니다.


  국가의 기본 틀이자 최고 규범이고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있는 법 중의 법이 헌법입니다.  그런 만큼 지방화, 정보화, 세계화를 온전히 담아내는 21세기의 새로운 헌법이 필요합니다.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개헌’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권력구조지만, 권력구조에 대해선 앞으로 논의 과정을 통해 국민의 뜻이 모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권력의 분립이 보다 확고히 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에 유럽 3개국을 돌아보며 새삼 느끼기도 했지만, 미국의 통령제, 영국과 독일의 내각제,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 모두 력의 분권화, 견제와 균형의 논리에 충실해 있다는 점을 참고해야 합니다.


  물론 당장 개헌을 추진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개헌이 되기 위해서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연구를 저히 해놔야 합니다.  그래야 졸속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고, 정파적인 이해관계에도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학계와 전문가,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고 논의하는 가운데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나갈 것입니다.


  다음으로, 국회 운영제도 개선에 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국회가 정치의 중심으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시 국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18대 국회가 석 달 허송세월한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국회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고 국정의 균형을 잡으려면 항상 문을 열고 있어야 합니다.


  60년 전 헌법을 만들고 나라를 세운 우리 제헌의원들은 1년 365일 중에서 320일을 일했습니다.  문만 연 것이 아니라 퇴근시간이 보통 밤 10시 가까웠고, 회의에는 전원 출석을 여러 차례 기록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세비라야 한 달 하숙비 또는 식사대와 담배값 정도에 불과했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했지만 애국심과 성실함, 개인의 이해를 떠난 선공후사의 봉사정신으로 헌신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제헌국회는 역대 국회 중 국민들로부터 가장 사랑과 신뢰를 받은 국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비해, 17대 국회에선 문을 연 날이 1년에 240여일에 불과합니다.  실질적으로 일 한 시간을 따지면 그보다 훨씬 못 미칩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제헌의원들의 정신과 자세를 본받아야 합니다.


  대정부 질문 제도는 유신체제가 전제정부, 독재정부라는 소리를 피하기 위해서, 숨통을 터놓기 위해서 내각제 형식의 것을 받아들여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한때는 장광설을 늘어놓는 연설이었는데 지금은 일문일답 형식으로 바뀌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국회의원들도 참석하지 않고 안 듣는데 어떤 국민들이 듣겠습니까.


  국정감사도 바뀌어야 합니다.  국정감사 20일 동안은 행정 마비, 좀더 심하게 말하면 국정 마비입니다.  20일간 500여개 정부 가기관들을 상대로 하는 국감은 실효성이 떨어집니다.  자료만 해도 산더미 같아 종이로 따지면 수십만 페이지, 수백만 페이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언론에 보도되기 위해 애를 씁니다.  폭로 위주, 한건주의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일부 피감기관의 장관들이나 국영기업체 기관장들은 입에 발린 말로 그 순간만 모면하려 합니다.  사후에 점검하고 통제하는 스템이 없기 때문에 국감이 끝나고 나면 다 끝나 버리는 겁니다.

이제는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검토, 개선해야겠습니다.



  긍정과 희망,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힘


  앞서 지난 60년의 역사, 헌정사를 돌이켜 봤습니다만, 우리의 현대사는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성취와 보람의 역사였습니다.  2차 대전 후 새로 정부를 수립한 국가 중에 우리만이 유일하게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내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민족은 국난에 처할 때마다 단합된 힘과 슬기로운 지혜로 이겨낸 저력을 지녔습니다.  지금 경제적 어려움으로 많이 힘들지만, 긍정의 힘, 진취적 사고로 힘과 지혜를 모은다면 능히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특히 저는 오늘, 관용의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관용이 없는 사회는 신뢰가 없고, 소통이 되지 않는 사회입니다.


  관용의 핵심은 정직과 능력입니다.  부정직과 무능은 관용의 상이 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오류도 무능의 일종이지만, 역사적 진실과 흐름을 깨닫지 못한 채 다만 두려움에서, 이기심에서, 간교한 술책으로 사용되는 관용은 재앙(災殃)임을 충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임기 2년 동안 제가 좌우명으로 삼는 상선약수(上善若水, 노자 『道德經』)의 자세로 정치를 하고자 합니다.  물 흐르듯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야를 넘어 국민만을 바라보며 정책국회, 생국회, 소통국회를 실현함으로써 생산적 효율적인 ‘일하는 국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짧은 임기에 과다한 욕심도, 과분한 평가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 국회를 고치려고 노력했던, 애썼던 그런 국회의장으로 기억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겠습니다.   사심 없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치는 국민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나무와 같다고 합니다.  러분께서 뜨거운 관심과 애정으로, 또 지적하실 것은 따갑게 지적해 주시면서 대한민국 국회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총장님과 교직원 여러분, 경청해 주신 학생 여러분! 
  건강과 행운이 언제나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