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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오가 만난 세상/김형오가 만난 사람

안중근 의사 - 동상은 한국에, 유해는 공사장에?

# 영화

몇년전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데 실패한 후, 일제가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고, 우리는 그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가정으로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제목에 나타났듯이 영화는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당한 1909년의 100년 뒤인 200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바로 그 2009년입니다.

2009년 10월 어느 오후, 국회에 조성된 연못의 평화로운 모습


# 민증까봐.

보통 우리는 친구들끼리 서로의 나이를 확인할 때,

"몇년생이야?" 라고 물으면 흔히들 "75년생", "86년생", "93년생" 같이 뒤의 두자리 연도를 말하곤 하죠.

100년 전의 사람들도 그랬을까요?
안중근 의사도 의거 후 뤼순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일제의 간수들에게 "79년 생이오" 라고 대답하지 않았을까요?

주민등록제도나 지문날인제도가 만주국의 사회제도를 답습한 것이라는 문제는 차치하고,
만약 100년 전에도 지금 우리의 주민등록제도가 있었다면 안중근 의사의 주민등록증은 어땠을까요?

너무 정교하게 만들면 공문서위조가 될까봐 조잡하게 만들어 봤습니다.
(인터넷에서 구한 아기공룡 둘리의 주민등록증을 사용하여 만들었습니다.
이것도 공문서 위조일까요? 아니라고 해주세요..;;;)

안중근 의사가 그저 역사 속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을까요?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제가
'79년생 안중근'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그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때..

자신있게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중근 의사의 용기있는 의거 앞에 더욱 숙연해 질 수 밖에 없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 동상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2006년 1월, 중국 하얼빈시에 세워졌다가 11일 만에 중국정부의 요청으로 철거되었습니다.
동상을 세운 사업가 이진학씨의 사무실에 3년간 보관하다가 2009년 9월 1일, 의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국내로 옮겨져 임시로 국회 헌정기념관 앞에 자리잡았습니다.

50일 간의 임시 거처인 국회 헌정기념관 앞, 안중근 동상

국가보훈처에서 동상의 얼굴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다르다며 '학술·예술적 가치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공전시를 반대했기 때문에 국회내 헌정기념관 앞에 50일간 임시로 설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의 얼굴이 궁금해지네요..)

동상 뒷편에 펼쳐진 현수막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네요.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뤼순감옥 터의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유해발굴 작업을 벌였던 곳에는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있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 클릭 )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죠..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도 한참이 지났지만, 유해조차 찾지 못해 유언을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후손으로서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나마 안중근 의사를 기릴 수 있는 동상을 세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동상의 위치를 결정하는 부분에서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부천시에서 부천시청 옆 중동공원에 영구설치하고, 공원명칭도 안중근 공원으로 변경한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국회에서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부천 시민들께는 참 기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2009년 10월, 조용한 오후


1909년 10월 26일,
그리고 100년이 흐른 뒤의 2009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를 잊는 영화와 같은 일영화에서만 접할 수 있는 소재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