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이종범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습니다.
양준혁 선수, 허구연 해설자에 이어 야구인으로서는 3번째 출연이군요.
▲ 2009시즌 우승 후, 이종범
올 시즌 우승한 뒤,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이종범.
타이거즈도, 타이거즈 선수로서의 이종범도
12년 만에 든 트로피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감개무량하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 하는 것이겠죠?
'바람의 아들', '야구 천재'라는 별명을 가진 이종범
그를 말해주는 명장면 베스트 5를 꼽아봤습니다.
1988년 청룡기 우승
▲조선일보 1988년 7월 5일자 - 광주일고 청룡기 우승
이종범은 학생야구시절부터 '영웅'의 면모를 갖고 있었나 봅니다.
고교 3학년이던 1988년 청룡기 결승전.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와 호남 최고 명문 광주일고가 맞붙었습니다.
막상막하의 승부가 벌어진 가운데 군산상고가 11회말 2사까지 4-3으로 앞서고 있었죠.
앞선 타자의 안타성 타구가 아웃이 되며 2아웃까 1,3루로 패색이 짙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하나.
여기에 양팀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희비가 걸려있었습니다.
타석에 이종범이 등장했죠.
그런데 그는 야구천재라는 별명에 걸맞는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극적인 끝내기 2루타로 벼랑 끝에 몰린 팀을 구하고 우승 트로피를 껴안았습니다.
1994년 타격왕 등극
1993년 데뷔 첫 해에 양준혁, 이종범은 각각 신인왕과 한국시리즈 MVP를 나눠가졌습니다.
이종범은 1993년 한국시리즈 MVP가 되면서
신인왕을 타지 못한 아쉬움을 해소했다고 이야기했죠.
야구에서는 신인 2년차 징크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인 때 맹활약한 선수가 데뷔 후 2년째가 되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데뷔 2년차 이종범은 오히려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른 활약을 펼쳤습니다.
일명 '종범신'이라 일컫게 된 시즌입니다.
▲ 역대 통산 기록에서 이종범을 능가할 선수가 거의 없죠. 특히 공수주를 모두 포함하면.
(어떤 포지션이든 소화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선수)
역대 통산 기록도 놀랍지만, 1994년은 한국야구에서 보기 힘든 기록들이 쏟아졌습니다.
대표적인 것만 꼽아봐도 이렇습니다.
▷ 단일 시즌 역대 최다안타 - 196안타
▷ 단일 시즌 역대 최다도루 - 84도루
▷ 단일 시즌 2번째 높은 타율 - 0.393 (1982년 백인천 이후 최고 타율)
(이종범은 그 외에도 숱한 기록들을 갖고 있습니다.)
1997년 한국시리즈 맹활약
1993년 한국시리즈 MVP
1994년 시즌 MVP
1997년 30-30 클럽 (30홈런-30도루)
그리고 1993, 1996, 1997년 우승
여기서 무엇을 더 이루겠습니까?
▲ 조선일보 1997년 10월 23일 - 한국시리즈 3차전
이미 모든 걸 누린 다 누려본 이종범에게 당시의 한국야구는 좁은 무대였다고 할까요?
1997년 한국시리즈는 일본 진출 직전에 유종의 미를 거둔 자리였습니다.
그의 신들린 플레이에 해태는 9번째 우승을 차지했죠.
상대팀 LG 트윈스가 자랑하는 선발-중간-마무리 투수를 상대로
모두 홈런을 쏘아올렸습니다.
에이스인 김용수, 최고의 중간계투 차명석, 구원왕 이상훈.
당시에는 하나같이 자기 분야에서 정상급 투수들이었죠.
특히 3차전 이상훈에게 친 홈런은 그야말로 백미였습니다.
그 장면 하나가 해태의 우승과 LG의 눈물을 말해주는 단적인 부분이었죠.
(전 타석에선 차명석을 상대로 홈런을 쳐서 연타석 홈런)
2001년 복귀전 출전
일본 주니치에서 뜻하는 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한국야구는 여전히 그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프로야구는 흥행 면에서 침체 국면에 있었는데
그가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야구판이 살아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 뉴스위크 한국판 2001년 8월 21일 - 이종범 복귀 효과
비록 복귀전에서는 5타수 1안타에 불과했지만,
그가 다니는 곳에는 관중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그를 향한 야구팬들의 관심이 높음을 증명했죠.
그의 복귀는 호남 야구팬 뿐만 아니라 전국 야구팬으로 하여금 관심을 이끌어냈습니다.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2002년 08월 석사학위 논문 (김찬권)
그의 복귀에 대해 이렇게 논문까지 나오는 걸 보면
그는 결코 평범한 선수는 아니었나 봅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그는 예전과 같은 폭발적인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보다 성숙한 플레이로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2006년 WBC 한일전 맹활약
대한민국 야구의 자랑스러움을 한껏 뽐냈던 WBC대회.
김태균, 이범호, 봉중근 등이 빛난 제 2회 대회(준우승)도 대단했지만,
그 바탕에는 제 1회 대회 때 4강에 오르며 얻은 자신감에 힘입은 바가 컸습니다.
당시 1회 대회를 이끌어간 선수는 박찬호, 이승엽, 그리고 이종범이었습니다.
역시 해 줄 선수가 해줬죠.
실제로 이 선수들은 제 1회 WBC 올스타에 선정되어
메이저리거, 일본야구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 2006 WBC에서 결승 2타점 2루타를 치고 좋아하는 이종범
일본에서 열린 WBC 1차 예선 한일전은 흔히 '도쿄대첩'이라 불립니다.
일본야구의 심장부인 도쿄돔에서
이승엽의 역전홈런과 구대성-박찬호의 역투로 3-2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역전 홈런의 바탕에는 이종범의 출루가 전제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으로 자리를 옮겨서 2차 예선 한일전에서 이종범은
일본 최고 마무리 후지카와를 상대로 통쾌한 좌중간 2루타를 작렬하며
또 한 번의 승리를 대한민국에 바쳤습니다.
일본 진출 실패에서의 설움을 떨쳐내는 감격스러운 장면이었죠.
▲ 이종범의 두 팔 든 포효를 보면 타이거즈의 기상이 느껴지네요
얼마 전 기아의 우승으로 이제 이종범은 선수로서 여한이 없을 겁니다.
얼마 남지 않은 선수생활 잘 마무리하고
지도자가 되어서도 한국야구를 위해 계속 힘써주길 바랍니다.
< 지난 한국시리즈에서 이종범의 활약상을 보시고 싶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 1993년 한국시리즈의 이종범
☞ 1996년 한국시리즈의 이종범
☞ 1997년 한국시리즈의 이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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