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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런게 사진기자의 프로정신일까?


프로란 무엇일까요.

프로 [←professional]
[명사]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하거나 그런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 또는 직업 선수. ‘전문가’, ‘직업’으로 순화. ≒프로페셔널.

얼마 전 어느 행사에 동행하게 되었는데 사진기자들의 경쟁이 매우 치열했습니다. 저는 전문 사진기자도 아니고, 기자분들에게 있는 이른바 '기자정신'이라는 것도 없어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좋은 장면을 얻으려는 사진기자분들의 자리다툼에선 되도록 자리를 양보하는 편입니다.

사진기자분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룰도 분명히 존재하겠지요. 누군가가 피사체에 너무 근접하여 촬영하게 되면 나는 좋은 장면을 얻을 수 있겠지만, 다른 기자들은 그 기자 때문에 촬영을 못 하게 되거나 하는 일 말입니다. (처음에 이런 실수를 해서 다른 기자분들께 무척이나 원성을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분위기를 잘 봐가면서 사진기자분들 틈에 섞여 사진을 찍는 방법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본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런데 일정 중에 조금 불쾌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진을 촬영하다가 "내가 먼저 자리 잡았잖아요!"라고 호통치는 어느 사진기자분께 그저 고개를 숙여 "죄송합니다." 하고 자리를 양보 해 드렸지요. 그래서 저도 피사체의 동선을 예측하여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예측이 적중하여 사진 찍기에 좋은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아까 제게 "자리 잡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논리를 폈던 기자분께서 과격한 몸짓으로 저를 밀어내며 "비켜요, 사진 좀 찍게!"라고 소리를 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이해할 수 없는 그 논리에 저도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뭐 사진을 찍은 이후에는 굳이 거기에 계속 서 있을 이유가 없어서 비켜 드렸지만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자신의 전문성을 입증해야 하는 프로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전문성 있는 사진을 촬영하는 게 아닌 저는 그런 행동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순간적으로 일에 몰입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 사진도 본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행사와 관련된 군부대에서 나온 촬영담당 병사(일병)가 이동하는 인물들의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모 방송국 카메라 기자 한 분이 카메라를 설치하고 자리를 잡아놓은 앞을 잠시 가로막았습니다.

그 촬영병사도 한 컷을 찍고 이동 중이었기 때문에 금방이었거든요.
잠시 기다리면 인물들은 사진기자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즈를 취해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카메라 기자가 촬영병사의 왼쪽 어깨를 확 뒤로 잡아당기며 소리쳤습니다.

"야! 나와! 뒤로 빠지라고! 너 뭐 하는 거야!"
애들이라도 이렇게 대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하물며 20살이 넘은 성인인데 군인이라도 기분이 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예? 촬영하고 있습니다."

기분이 좀 상한듯한 촬영병사는 다시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고 자리를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동선을 따라 이동하는 가운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너 이 새끼야, 너 이리 와봐."

저도 동선을 따라 뛰어가다 말고 상황을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병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 있는데, 군 관계자(장교) 분께서 다가왔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제가 이 녀석 중대장인데.."
"아니, 당신 말고..저 건방진 새끼, 너 이리 와보라고. 너 아까 뭐라고 그랬어?!"

아니, 저도 상황을 다 보고 있었는데.."촬영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그렇게 귀에 거슬렸던 것일까요?
장교의 명령에 병사는 죄송하다는 말을 했습니다만, 그 카메라 기자는 일정이 끝날 때까지 두고두고 그 병사에게 할 말, 못 할 말을 떠들어 댔습니다. 대견하게도 그 병사는 일체의 감정적 대응도 하지 않고, 맡은 임무(촬영)를 계속 했지요.
 


<이 사진도 본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물론 촬영을 하는 순간, 서로 기분이 상할 수도 있지만, 그 후에는 "아까는 미안했다. 그런데 그렇게 끼어드는 건 서로 조심해야 한다."라고 좋은 말로 알려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애초에 어깨를 잡아 젖힐 것이 아니라 존댓말로 "앞에 좀 비켜주세요. 뒤로 좀 나옵시다."라고 했다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은 없었겠지요. 단지 그렇게 상대를 얕잡아 보고, 하대하는 이유가 상대가 '군바리'이고 내가 '민간인'이라는 신분의 차이 때문이거나, '나이' 때문이 아니었길 바랍니다. 특히나 '기자'라는 특권의식 때문이라면...

글쎄요.
어느 분야에서건 프로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