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이렇게 저렴한 방이 다 있구만."
학생시절 일이었습니다. 자취하던 원룸을 떠나 돈을 절약해볼까 하고 이사한 곳은 오래된 2층집이었습니다.
방값도 생각보다 쌌던데다 이전에 살던 사람이 급히 나가는 바람에 냉장고, 장롱, 세탁기가 남아있어서 별도로 구매하지 않고 옵션을 갖춘 원룸처럼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죠. 도배도 깨끗하게 되어 있었고 말이죠.
그러나 이 집은 저에게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아래의 자료사진은 제가 살던 집과 연관이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이사하는 날부터 저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습니다. 짐을 안고 2층을 오르내리는데 대문 위쪽 복도에 난간이 없었던 것이죠. 원룸에서 살아온 것에 익숙해왔던 저로서는 그 점을 미처 생각치 못했습니다. 실제로 눈 온 뒤 복도가 얼거나 술 취한 상태에서 걸을 경우, 굉장히 위험합니다.
중학생시절 사귄 한 친구는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 다녀오던 중 자신의 집 2층에서 떨어졌는데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버렸습니다. 만일 그 당시에 난간이 있었다면 그런 참담한 변은 당하지 않았겠죠. 그러니 사소한 안전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이사한 뒤 한파가 몰아칠 무렵, 보일러를 가동했는데도 기대했던 것만큼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집안 곳곳을 살피던 중 다른 건물들과 벽의 두께가 차이가 있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집이 너무 오래되어서 지을 때 단열재를 제대로 쓰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맙소사~!
그러니 보일러를 웬만큼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서 있으면 냉방이었고 누워야 난방이 됐습니다. 입김을 불면 그게 보일 정도였죠. 단열재가 없어서 괴로운 건 여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건 집에 아니라 찜통이더군요.
이사한 뒤, 다음 집에서는 겨울 내내 보일러를 중간 이상 맞춰놓고 생활해 본 적 없었고 여름 내내 에어콘 한 번 안 틀고 살았으니 실로 '비교체험 극과 극'이었죠. 난방비도 이 집(구옥)과 이후의 집은 배나 차이가 났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냉난방시에 집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달았습니다.
(세탁실도 추위에 취약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겨울에 빨래하려면 얼어있는 세탁기 배수구를 녹이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탁기 크기와 세탁실 구조도 중요합니다. 세탁기가 작으면 이불 빨래가 아니더라도 불편함이 있습니다. 요즈음 원룸에는 드럼세탁기가 많은데 일반세탁기보다 헹굴 때 신경을 더 써야 합니다.)
단열재 없는 집이 가져다주는 문제는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집 안팎의 온도 차이를 견디지 못한 벽지에 습기가 차서 곰팡이 올림픽이 열린 것이었죠. 현관문 주변부터 시작된 곰팡이의 습격 때문에 원래 도배지가 검정색이었나 싶을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장농, 책상 등이 놓인 뒷쪽이나 방의 구석진 곳 역시 어김없이 곰팡이 천국이 됐죠. 알레르기 질환이나 호흡기가 안 좋은 분들에겐 곰팡이가 특히 안 좋다는 것. 다들 아시죠?
이런 집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서 집에 있는 구멍 곳곳을 틀어막아야 했습니다. 낡은 나무 문틈 사이로 시원한(?) 겨울 바람이 방문해주신 덕택에 문풍지를 사서 발랐죠. 큰 도움은 안 됐지만요.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해 여름 무렵에 바로 아랫 집에 강도 미수사건이 일어났던 것이죠. 도둑이 이웃집에 침입하려고 방범창 사이로 손을 집어넣은 순간, 자고 있던 아가씨가 이를 발견하고 놀라서 소리 지르는자 곧바로 도망가버렸던 겁니다. 그래도 방범창이 있어서 범행이 미수에 그칠 수 있었던 케이스입니다.
이 일이 있은 뒤, 비상연락망을 구축하는 것마냥 이웃집 아가씨와 통성명도 하고 전화번호도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저희 집 창문을 살펴봤습니다. 이 창문은 2층 복도에 통창의 형태로 있었는데, 1층방처럼 방범창이 있기는 커녕 그냥 뜯고 들어올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허술했습니다. 훔쳐갈 물건도 없긴 했지만, 씁쓸했죠.
이 문제들을 집주인에게 알리는 것도 참 힘들었습니다. 집주인은 멀리 지방에 살고 있었는데다 전화 통화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죠. 집주인은 재개발을 위해 집을 소유하고 있었던 터라 인근 부동산과 이웃집 아주머니가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었거든요.
어느 날 운 좋게 집주인과 간신히 통화하면서 현재 집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집주인은 정색을 하며 말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방범창은 되어 있고, 난방과 단열제는 문제 없으며, 도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곰팡이가 생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우기더군요.
이웃 사람들을 통해 집주인은 이전의 세입자에게도 이런 식으로 대했으며, 오래 전부터 집에 한 번도 와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재개발 기간도 꽤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재개발을 구실로 집을 고쳐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까지 접했습니다. 제 경험을 미뤄봤을 때 집주인이 직접 살피는 집들은 아무래도 다르더군요.
계약기간 한 달 전에 재계약하지 않고 이사할 거라고 전하자, 집주인은 사람이 빨리 나가고 빨리 들어오면 좋다고 하더니, 제가 부동산에 방을 내놓으면 복비(부동산 중개수수료)는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방을 내놓은 지 3일만에 새로운 계약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연락하기 힘든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집주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계약이 됐다며 불만을 터뜨린 것이었죠. 그리고는 돌연 복비 부담을 세입자인 제가 부담해야 한다며 말을 바꿨습니다. 계약기간이 1년이 완전히 채워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죠. 법적으론 그렇지만, 복비에 대해 구두로 합의를 본 상황을 이렇게 뒤집으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못하겠다고 하니 집주인은 보증금에서 복비를 떼고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며칠 후, 새로운 세입자가 이 집과 계약을 파기하고 다른 집과 계약해버리는 바람에 집주인이 위약금을 챙기게 된 겁니다. 그러자 집주인은 또 다시 말을 바꿨습니다. 이제 다른 새로운 계약자가 나타나면 계약기간을 못 채워도 복비를 감면해주겠다고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휴~
이사 날짜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3대 고장이 몰아쳤습니다. 우선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았죠. 다행히 사소한 고장이어서 돈 들이지 않고 고칠 수 있었지만, 다음 날 수리 완료 전까지 냉동실 같은 방에서 잠들어야 했습니다. 보일러를 고치고 나자 이제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누전차단기를 다시 달았지만 이틀을 못 가서 또 고장이 났죠. 두 번째 누전차단기를 달고 나서야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죠. 화장실 변기가 막힌 겁니다. 뚫어뻥이나 하수구 뚫는 용액을 사서 해결해봐도 안 되는 것이었죠. 오히려 2층에 있는 두 집의 화장실은 모두 오물이 역류되어 엉망이 되어버렸으니, 난민이 따로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사 때문에 방에는 짐을 잔뜩 쌓아두고 있었으니 참으로 가관이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변기가 막힌 게 아니라 변기로 이어지는 관이 막힌 것이었습니다. 결국 거액(?)을 들여 하수구청소업체를 부르고 나서야 해결이 됐습니다. 더 많은 세입자를 받기 위해 2층 한 집을 둘로 나누기 위해 무리하게 화장실 공사를 한 것이 문제였죠. 변기와 연결된 관이 기형이었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하수구청소업체측에서는 이런 일이 또 다시 발생할 수 있으니 집주인과 상의해서 변기와 연결된 관을 고쳐라고 권하더군요.
그저 싸게 살고자 했던 욕심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이 희생되어서 가슴 아팠습니다. 이사 가는 그 날까지.
지금 생각해도 이런 집에 어떻게 살았는가 싶을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당장의 돈을 아끼고자 택한 집이었건만, 도리어 추가 비용을 치르게 됐던 것은 아쉽더군요. 문득 '소탐대실'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집에 살지 않으리라 맹세한 뒤에는 더 이상 집 때문에 고생하는 일을 겪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고생 끝에 얻은 경험들이 저에겐 소중한 재산이 된 것 같습니다. 그만큼 집을 보는 눈도 나아졌구요.
대부분 사람들이 적은 돈을 가지고 좋은 집을 골라야 하는 고민 때문에 집을 고를 때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살피게 됩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절약에 몰두한 나머지 혹시 모를 비용들을 간과할 수 있으니 이런 점을 꼼꼼히 체크하셨으면 합니다. 특히 자취 경험이 부족한 분들에겐 이런 점들이 좋은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집을 고르는 중요한 기준은 그 무엇보다도 살기 편한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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