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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후반에 도심 번화가를 거닐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리어카 테이프 상인'에 관한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로 틀어주는 음악은 곧 당대의 최고 유행가였지요.
원하든 원치 않든 귀에 못이 박힐 만큼 그들이 선곡한 노래를 길가던 사람들은 들어야만 했으니까
'리어카 테이프 상인'들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했습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미국의 빌보드 차트를 패러디해 '길보드 차트'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길보드 차트의 중심에 섰던 가수들은 대부분 김창환 사단이었습니다.
김건모, 신승훈, 박진영, 클론, 노이즈 등이 전성기를 구가했었죠.

(훗날 이 명맥은 이정, 채연 등으로도 이어집니다.
참고로 김창환은 '산울림'의 김창완과 다른 사람입니다.)

물론 김건모, 신승훈, 박진영은 싱어송라이터였기 때문에 조금 성격이 다르긴 했지만
1990년대에 빼놓을 수 없는 가수였죠.

그런데 1990년대 중후반의 최고 여가수는 누구냐라고 이야기했을 때
이 사람을 빼놓고는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박미경'입니다.




1985년 강변가요제에서 <민들레 홀씨되어>라는 곡으로 장려상을 받은 그녀는
1986년 드라마 <풀잎마다 이슬>의 주제가와 1988년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을 발표했지만
크게 인기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992년에 잠시 박진영, 강원래(클론)와 팀을 만들어 음악활동을 했었다고 합니다.
이 역시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빅3급 가수가 한 팀이었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 가수들로 흥행이 안 되었다는 것도 재밌네요.




(그녀는 음악적으로 잘 맞는 사람으로 박진영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당시 한국 가요계는 이전에 비해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보다 빠르고 강하면서 독특한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의 이러한 변화는 한국 대중음악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죠.

1994년에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을 일들이 벌어집니다.
김창환과 인연을 맺게 되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발표하게 된 것이죠.

1집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는 새로움을 갈망하던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그녀가 가진 파워 넘치는 흑인창법과 빠르고 강렬한 댄스음악이 합쳐진 부분은
그 동안의 음악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습니다.

1집을 통해 초석을 다지고 나니 <이브의 유혹>으로 히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를 드디어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한 노래였죠.
<넌 그렇게 살지마>도 만만찮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마치 시리즈물로 이어지듯 <아담의 심리>까지 좋은 반응을 받으며 
당시에 여자가수라고 하면 박미경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롭게 느껴졌던 부분은 여권신장의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이 노래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다는 것이죠.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곡들의 특징은 여성의 주체적이고 이미지를 담았다는 겁니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 <이브의 경고>, <넌 그렇게 살지마>, <아담의 심리>




이만큼 파워풀하고 시원시원하게 댄스음악을 소화하는 여자가수가
지금까지 얼마나 있었나 싶을 정도로 박미경은 보기 드문 매력을 가진 가수였습니다.
현재 아이돌 가수들조차 박미경만큼 화끈한 느낌을 선사하지 못합니다.

그는 미국인 트로이 아마도씨와 결혼한 뒤 가수로서의 박미경은 대중들과 멀어진 느낌입니다.
결혼 이후의 활동도 크게 활발하지 못했죠.
예전같이 화끈하게 부르는 그녀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는 그 날이 올까요?



<사진 : 포토뮤직, 뮤직라이프, GWV, TV가이드>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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