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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김형오의 말말말

국회의장 김형오가 젊은 네티즌에게 보내는 편지 (2)


[주] 김형오 국회의장이 젊은 네티즌에게 보내는 편지를 1편( http://www.hyongo.com/1447
)과 2편으로 나누어 블로그 <형오닷컴 www.hyongo.com>에 게재합니다. 아래 내용은 (2)편 입니다.



 

앞서 직권상정을 폭설로 막힌 길을 뚫는 제설차, 얼어붙은 바다에 물길을 내는 쇄빙선 같은 것일 수 있다고 비유했습니다. 과연 막힌 길을 뚫은 건지 물길을 냈는지 따져봐주시기 바랍니다. 1편에서는 미디어법 이야기를 했으니 2편에서는 예산관련 이야기로 시작하죠. 작년 12월 31일 극적으로 처리된 금년도 예산안 말입니다.


(1) 지금까지 예산안이 연내 처리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요?

(2) 그럼 예산안이 연내 처리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1)의 답은 ‘No’이고,  따라서 (2)의 답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가 정답일 것 같습니다. 예산안이 연내처리 되지 않았다면 얼마나 큰 후폭풍에 휩싸였을까요? 정부의 기능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만 빼고 사실상 ‘올스톱’되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선배 국회의원들은 예산안만큼은 어김없이 연내에 통과시켜왔습니다. 그 힘들게 지켜온 전통이 내가 의장인 제18대 국회에서 깨지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우리 국회가 또 얼마나 국민들을 힘들게 했을 것이며, 우리 60여년 헌정사에는 얼마나 큰 오점이 남겨졌을까요? 또한 세계는 얼마나 한국을 비웃고 조롱했을까요? 나는 힘들고 어렵게 예산안이 통과되는 순간 유난히 힘껏 의사봉을 두드리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선배님들이 국회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위해 몸부림쳤던 그 전통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 나는 과연 약속을 어긴 국회의장이었는가?


노동조합 전임자와 복수노조 문제를 다루는 <노동관계법>의 작년말 직권상정을 두고 “의장이 애초의 약속을 어겼다” 라고 야당 등 일부에서는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우선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나는 작년 12월 17일 “새해예산안과 노동관계법은 해당 상임위에서 처리되어야 본회의에 상정할 것” 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해당 상임위에서 처리하기 전까지는 ‘직권상정’으로 본회의에 올리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 약속에 따라 나는 예산안과 노동관계법의 해당 상임위인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가 충분히 논의할 수 있도록 기다렸습니다. 특히 민주당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에게 “책임지고 환노위에서 결론을 내라. 그 때까지는 직권상정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했습니다. 즉, 해법도출의 전권을 추위원장과 환노위에 맡기고, 나는 약속대로 기다려 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산안이 <예결위>를 거치고 노동법 수정안이 <환노위>를 통과했으면, 당연히 예산부수법안과 노동법 수정안은 <법사위>의 자구체계심사를 거쳐 즉각 <본회의>에 올라왔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국회법 절차입니다. 예컨대, 금년 1월 이른바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어 여야가 합의처리한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 즉 ICL 관련법안은 상임위 통과 후 법사위에서 불과 10분도 채 지나지 않고 처리되어 본회의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해를 넘기지 않으려면 날짜는 12월 31일 단 하루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야당 소속인 법사위원장이 예산부수법안과 노동법수정안을 본회의로 올려주지 않으려고, 또 의장의 직권상정권한 행사를 막으려고 고의적으로 법사위를 열자마자 산회(散會)해 버렸습니다. 산회를 선포하면 그날은 더 이상 회의를 열 수 없는 것이 국회의 관례입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예산안과 노동법은 앞서 말했듯이 12월 31일은 결론을 내려야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자구와 체계심사만 하고 문제가 없으면 즉각 법을 본회의로 넘겨줘야할 법사위가 ‘파업’을 해버렸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국회의장으로서 권한을 동원해 그 법안을 본회의로 가져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지난 연말 있었던 ‘직권상정’의 과정이었습니다.


 


 

나는 분명히 해당상임위에서 심의중인 사안을 직권상정 않겠다고 했지, 해당 상임위도 아닌 법사위가 발목잡는 상태를 그냥 방치하겠다는 말은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야당의원들은 다짜고짜 “직권상정 안한다더니 또 했다”, “거짓말 했다”고 몰아칩니다. 이것이야말로 사실왜곡이요 거짓태도라 하겠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한나라당이 야당이었던 시절에도 법사위원장은 지금처럼 야당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예산관련 부수법안을 붙잡아 예산안 처리의 발목을 잡은 적은 없었습니다. 다른 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6대,17대 당시의 국회의장님들은 예산관련 법안이나 기타 어떤 법안들을 법사위 때문에 직권상정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바로 이 덕분에(?) 유난히 직권상정을 많이 한 국회의장 김형오가 되었습니다. 직권상정으로 말이 많은 이번 18대 국회도 상임위를 통과하지 않은 법안을 직권상정한 것은 미디어관련법 뿐입니다. 18대국회 들어 법사위가 ‘맹활약’을 한 때문입니다. 여야를 떠나서 주무상임위가 처리한 법을 법사위가 정치적 이유로 발목잡는 구태는 이제는 사라져야할 것입니다.


물론, 네티즌 여러분들은 이런 국회법 절차와 의사진행 과정에 대해 익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직권상정에 대해 전후과정은 다 생략해 버리고  “어떻든 직권상정은 힘 센 쪽이 힘없는 편을 찍어누르는 나쁜 일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감성적 이해일 뿐입니다. 직권상정을 선악(善惡)의 시각으로 구분하더라도, 왜 그것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과 원인제공자에 대해 약간이라도 돌아본 뒤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이것이야말로 토론과 논리에 강하다고 모두가 인정하는 한국의 네티즌다운 자세가 아닐까요?


따라서, 앞서 (1)편에서 말했듯이 직권상정은 ‘무조건 나쁜것’ 혹은 ‘절대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직권상정을 하는 것 또한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피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피하고 싶은 일임은 나뿐만 아니라 역대 어느 국회의장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 남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자


길어지는 글을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몇 가지 정리하고 또 당부하며 맺을까합니다.


첫째, 정치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복잡 다양한 현대 사회에서 선택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결정하고 선택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정치인은 최선을 추구하되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 그것도 아니라면 차차선이라도 선택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정치인의 직무입니다.


둘째, 성난 얼굴로 남 탓을 하기 전에 자신부터 성찰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이 가장 중요한 책무인 예산안 심사를 포기하고, 다른 의원들의 심사활동까지 방해해도 되는 것인가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항상 비난하면서도 정작 국회의장의 권위는 인정하지 않고 직권상정을 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간 것은 누구인가요?


또 국회의장에게 ‘사기꾼’, ‘무당’ 이란 말을 내뱉으며 국회를 모독하는 것도 모자라 국회의장을 윤리위에 제소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이런 것을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절대과반수의 의석을 갖고도 ‘통 큰 정치’를 못해 매번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권에 매달리는 여당의 리더십도 깊게 반성해야만 합니다.


셋째, 공멸이 아닌 공생의 정치를 펼쳐나가자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 이념, 현실적 이해 때문에 대화와 타협 대신 강경노선만 고집한다면 의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소수자의 보호와 다수결의 원리 이 두 바퀴가 조화롭게 굴러가는 곳이 국회입니다. 어느 하나만을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대화와 타협이 중요한 것입니다. 비싼 대가를 치른 국회, 이제부터 제대로 합시다. 의회주의의 기본으로 돌아갑시다.




 

네티즌 여러분 그리고 20대 청춘 여러분,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이 와 있는 법이겠지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던 올 겨울이 지나면, 다가올 봄에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듭니다. 골이 깊고 가파른 산을 넘듯 힘들었던 국회와 정치권에도 희망품은 봄꽃들이 머지않아 만개하리라 믿어봅니다.


나는 18대 국회의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마땅히 할 것이며, 하지 않아야 할 것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을 두려워하되 위선과 폭력에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의회민주주의를 구현해나가고자 하는 사람과는 언제나 손잡고 가겠습니다. 차기국회의장은 나처럼 욕먹지 않고 나보다 훨씬 편하게 집무하도록 정치환경을 조성하겠습니다.


네티즌 여러분들도 좋은 일, 보람 있는 일 많이 만드시길 기원합니다.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고맙습니다.


                                                           2010년 2월 7일 국회의장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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