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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지금

"한국은 '지진 불감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군대 제대후 한국남자들은 일정기간 동안 예비군 훈련과 민방위교육을 받는다. 법이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예비군훈련은 아마도 제대후 8년 동안일 것이다.  
                                            
그곳에서 교육용으로 짜낸 교육시간표에 단골로 들어가 있는 교육내용이 있다. 놀라지 마시라~.


그건 바로 '지진 교육'이다.



                             ▲ 지진발생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아이티. (사진 -국회 미디어자료실)


예비군훈련과 민방위교육시간에 등장하는 '지진교육' 내용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한반도는 결코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 "한국은 지진불감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필자의 경우, 예비군 또는 민방위 교육을 받고 온 하루 이틀간은 마음 한 구석에 시시때때로 지진에 대한 공포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는게 느껴질 정도다. 실제, 교육현장에서 틀어주는 비디오를 보면 지진은 정말 자연으로부터 인류에게 전해지는 가장 끔찍한 '재앙'처럼 느껴진다.

며칠전, 수도권 정확하게는 경기도 시흥에서 진도 3의 지진이 발생했다. 당시 필자는 지하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중이어서 별다른 지진의 징후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나 식사후 사무실로 올라와서 동료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접할 수 있었다.

"지진났대요, 한국에..."



                            ▲ 무너진 집터에 서있는 아이티 사람의 모습. (사진- 국회 미디어자료실)


솔직히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면서 지진 때문에 어떻게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6.25때는 어쨌다더라", "보리고개는 그랬다더라" 등의 전설같은 이야기야 할아버지,할머니로부터 또는 부모님으로부터 전해들은 바 있지만, "지진으로 어쨌다"란 이야기는 도통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요즘 부쩍 지진 이야기로 사람들이 예민해졌다.

앞서 말한 경기도 시흥의 지진 때문이겠지만, 바로 한 달 쯤 전에 미국 바로 아래 <아이티 공화국>에서 발생한 지진참사도 많은 사람들에게 지진의 공포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주로 하는 이야기를 종합,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질문 아래에 신문,방송,지진연구소,소방방재청 등의 사이트에서 발췌한 자료를 종합해서 덧붙여본다.



1. 한국에서도 대규모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까?

☞  그렇다. 수도권을 비롯한 한국땅에서는 언제든 규모 5.0 의 지진 발생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언제 어 디서 어느 정도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다고 딱 꼬집어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 한국의 지진 발생 현황은?

  
(두렵게도) 지난해부터 지진발생이 늘고 있다. 1978년 이후 1996년까지는 연평균 18회 발생했다. 이후 1997년부터 2009년까지는 연평균 42회 발생. 그러나 2009년 한해만 놓고 보면 총 60회 지진이 발생했다. 그 원인은 전문가들마다 각각 달라서, 정확하게 말하기는 힘들다.


3.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한국은 대규모 지진에 대비하고 있나?

소방방재청은 2010년초 지진방재과를 신설해 대책마련 중이다. 그리고 건축법 시행령을 개정해 현재 3층 이상 건축물로 한정된 내진설계 대상 시설물을 모든 건축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또한 지진 재해 대응시스템을 통해 진앙,규모 등을 시뮬레이션하며 보다 정밀한 대책을 마련중이기도 하다. 

  


며칠 전 경기도 시흥에서 발생한 지진은 한국사람들 특히 그중에서도 언론을 긴장하게 만들었나보다.
많은 신문들이 한국의 지진발생 가능성과 지진 대비책에 지면을 할애하는 모습들이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도 있는 한국 도심에서의 지진을 상상해보면, 바람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진불감증에서 벗어나자'라는 말이 결코 허튼 소리는 아니라는 게 이 글의 결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1980년 6월 한 신문에 실린 지진 경고 기사를 소개하면서 이만 마친다.


                                                       ▲ 1980년 6월 동아일보 기사



                                                                                                                        posted by 백가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