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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전학 다닌 가출청소년을 인기배우로 만든 비결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을 뒤바꾸기 어려운 것은 이미 많은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부담과 그 동안 달려온 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구 스타를 갈망하던 청소년이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 두고 가출을 일삼다가 일순간 촉망받는 신인배우가 되고, 나아가서 인정받는 중견연기자로 거듭나고 또한 교수가 되어 교단에 선다면 그 인생도 드라마틱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종영한 <지붕킥>의 연기자이자 지난 24일 <무릎팍도사>의 게스트였던 정보석의 이야기입니다.

'전환점' 혹은 '터닝포인트'라는 말 아시죠? 일정한 흐름으로 일이 진행되던 것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는 계기를 뜻합니다.

정보석은 고교를 7번씩 옮겨다닌 말썽꾸러기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대학생활을 장학생으로, 입지가 탄탄한 연기자로 급상승하게 된 전환점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정보석이 신인시절을 거치면서 자기 이미지를 굳힐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의 타고난 외모도 한 몫을 했습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1989)의 '진우'
젊은 날의 초상 (1990)의 '영훈'
걸어서 하늘까지 (1993)의 '물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1995)의 '기자 권순범'

어느 평론가는 이 배역들을 두고 각기 조금씩 성격이 다르지만 정보석이 가진 이지와 우수가 드러나는 공통점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정보석이 가진 예리한 얼굴선과 특유의 눈매는 시대가 지난 지금도 도시적이고 샤프한 인상을 줍니다만,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권기자 역을 선정하는데 있어서도 영화팬들 대부분이 이 배역은 정보석이 제격이다라고 했을 정도였죠.




그는 감각적인 끼를 발산하는 배우라기보다는 분석력을 지닌 노력하는 배우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정보석은 남들에 비해 대본을 비교적 빨리 외우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대본을 읽고 또 읽고 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배우로서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낀 탓에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전쟁 특집극에서 어느 장군의 '부관'역으로 데뷔했던 그는 사실 대학 졸업 직전까지 연기보다는 연출에 꿈꾸고 있었습니다. 연출에 소질이 있던 그가 졸업작품에서 선배에게 연출을 양보하고 자신이 주인공으로 연기하겠다고 한 것이 연기자 인생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보석이 신인급 연기자로서 드라마 <젊은 날의 초상>에서 주인공을 맡게 된 기쁨도 잠시, 배역을 받고 촬영한 지 하루만에 연기를 못한다는 이유로 자진 사퇴해야 했습니다. 그가 물러난 자리에 손창민이 대신했죠.


▲ 그가 대학 4학년 때 신입생 환영회에 나온 여학생을 점찍었는데 훗날 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냉정하고 이지적인 이미지를 가진 정보석의 마음에는 용광로 속과 같은 열정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되돌아보고 배역을 분석한 끝에 <젊은 날의 초상>의 조연을 맡으며 다시 꿈을 키워갔고, <사모곡>을 통해 재기에 성공한 것이었죠.

그의 연기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당시 촬영장에서 지켜보던 시민들이 정보석에게 욕설을 하고 멱살을 잡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드라마로 KBS 신인상을 거머쥔 정보석은 영화 <젊은 날의 초상>의 배역을 따내며, 드라마 <젊은 날의 초상>에서 받았던 설움을 만회했습니다.





그에겐 잘난 얼굴은 장점인 동시에 컴플렉스이기도 했습니다. 외모에서 풍기는 이지적이고 샤프한 이미지가 오히려 천의 얼굴이 되어야 하는 연기자에겐 마이너스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보석은 자신의 이지적인 이미지를 보다 잘 살려 악역을 멋지게 소화해낸 배우로 거듭났습니다.

예컨데 <걸어서 하늘까지>에서는 그의 리얼한 연기 덕택에 진짜 소매치기를 배우로 쓰는 것이냐라는 물음표가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여러 드라마에서 그는 지적이면서도 비열한 악역을 잘 소화해냈습니다. 최근에 방영되었던 <대조영>, <상도>와 같은 사극이나 오연수와 함께 했던 드라마 <달콤한 인생>에서도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잘 표현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보다 더 지독한 악역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 그는 <지붕킥>에서 코믹하고 무능한 배역을 통해 또 한 단계 진전된 연기를 선보이며 흥행몰이에 일조했습니다. 기존에 보여줬던 정보석과는 또 다른 이미지였기에 신선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연기자가 한 사람 나오기까지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있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야구 선수로 꿈을 키워가던 중 치명적인 허리 부상으로 절망에 빠져 가출을 일삼고 여러 차례 전학하며 방황하던 그를 바로 잡은 것은 바로 책과 선생님이었습니다. 그의 은사인 최낙구 선생님의 가르침과 방황기에 월부로 구입해서 읽게 된 세익스피어 전집은 그에게 폭발하지 못해 부글부글 끓고 있던 내면의 에너지를 성실한 연기자로 우뚝서게 만든 전환점이 되었죠.

그 바탕에는 중학교 도덕선생님의 말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효도는 부모님께서 돌아가실 때 웃으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보석은 부모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갈 길을 찾아 더욱 매진했습니다. 당장에는 부모님께서 반대할 지 모르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궁극적으로 효도를 하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적어도 부모님의 뜻대로 살아서 훗날 부모님께서 자식이 원하던 길을 막았던 것에 대한 마음의 짐을 남기지 않게 해드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효도의 참 길이라 생각햇습니다. 당시에는 엄한 꾸중을 하시던 아버지께서도 요즈음은 더욱 편하게 그를 대하신다고 하니 그의 판단이 결국 스스로에게는 옳았던 것이죠.




방황을 접고 마음을 고쳐먹은 학생 정보석은 신문배달, 야채장사, 독서실 총무 등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기자의 꿈을 키워갔습니다. 그리고 상대나 법대로 가라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당히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의 장학생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연기의 기초조차 닦지 못하던 그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 기적을 이뤄낸 것이죠.

이런 것을 보면, '현장성 있는 참교육은 위대하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치닫고 있는 요즈음 우리 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싶습니다. 당장의 지식보다는 인격 형성과 인생의 방향에 대해 접근하는 교육이 왜 필요한 지 느끼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어쨌든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악조건을 극복하여 꿈을 이룬 정보석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 TV가이드, TV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