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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이런 면도 있었네!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이런 면도 있었네!
[책] 김형오의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
 


국회의장 김형오라고 하면 괜히 엄숙한 얼굴이 떠오른다. 복잡한 의정 활동의 중심축에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평소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는 김형오 의장이 쓴 책을 읽고는 그를 이전과는 달리 바라보게 되었다.

김 의장이 이곳저곳 국토순례를 하며 느낀 점을 글로 옮긴 책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는 수려한 문체가 특징이다. 다른 사람을 대필로 내세워 썼나 하고 의구심이 들 정도인데, 원래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었다는 이력을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글 솜씨로 다져진 직업을 가졌으니 당연히 책의 내용이 알차고 글이 구성질 수밖에... 별 기대를 안 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나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에 쉽게 빠져드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소설가인 김훈도 과거 기자였던 걸 보면 이 직업이 타고난 글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책은 '우리 땅 생생 탐험기'라는 부제답게 전남 고흥의 우주센터부터 시작하여 경상북도 안동까지 우리 땅의 구석구석을 소개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각 장의 내용이 모두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형태라는 점이다.



각 지역의 문화를 안내하는 해설사들과 역사의 질곡 속에 사라진 단종, 이황과 같은 위인들, 길에서 만난 국민들에게 직접 이야기하듯 편지를 쓰는 게 국회의장이라는 직분과는 영 안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해박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 감수성 여린 마음이 여느 문학가 못지않다.
 

"물은 백성이요, 배는 임금이다. 물은 평탄할 때도 있고 격랑을 일으킬 때도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배는 물 위에서의 배이지, 배의 물일 수 없다. 그러므로 배는 물의 이치를 알아야 하고, 물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듯이 임금은 모름지기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


남명 조식 선생이 지은 <만암부>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김 의장은 민심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남명 선생의 자취가 남아 있는 경남 산청군의 덕천 서원을 방문한 글에서 그는 남명 선생의 꼿꼿함에 계속 감탄을 퍼붓는다. 감탄만 할 게 아니라 평소 의정 활동을 할 때에도 그 정신을 가슴에 간직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남명 선생은 벼슬길을 마다했지만 그렇다고 현실로부터 고개를 돌리거나 팔짱만 끼고 있지는 않았다. 냉정하게 세상 돌아감을 지켜보다가 기강이 무너진 조정을 가차 없이 비판했고, 도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백성들을 위해 위민정치를 강력히 요구한다. 



그의 이런 정신을 후세 정치가들이 마음에 새긴다면 요즘 같이 엉망진창인 세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남명 선생은 '경의검'이라는 칼과 '성성자'라는 방울을 늘 품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안으로 마음을 밝게 하며 밖으로 의로운 일을 결단한다'는 뜻의 칼, '쇠방울이 부딪힐 때마다 스스로를 깨닫고 경계한다'는 방울을 늘 몸에 지녔다니, 그 꿋꿋한 정신에 감동하게 된다.



독자인 나와 마찬가지로 저자인 김 의장도 남명의 정신에 깊은 감동을 받았던 듯싶다. 그는 남명 선생에 관한 글의 마지막에서 그에 관한 일화를 하나 소개하며,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다.

"재주는 뛰어나나 성격이 급한 제자에게 선생님은 소 한 마리를 내주며 이렇게 말했다지요? '이 소를 타고 가거라. 공은 언변이 좋고 타고난 기백이 날렵하나, 너무 지나치다. 지나친 건 더디고 굼뜸만 못하니라.' 덕천서원을 나오면서 보니 저는 말안장에 앉아 있었습니다. 선생님, 저도 이제 황소 등에 앉아 가렵니다."

단종의 유배지였던 강원도 영월에서도 저자는 내내 감동어린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단종의 묘인 장릉을 방문하고는 그 슬픈 역사에 목이 메었다는 저자의 마음이 조선 시대 충신 못지않다.



저자는 장릉의 방명록에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역사 앞에서'라는 글귀를 남겼다고 한다. 그러자 저자의 아내는 왜 '아름답다'고 했느냐며 묻는다. 이에 그는 '가장 슬픈 이유는 단종 임금의 한과 혼이 서려 있기 때문이고, 가장 아름다운 까닭은 주군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진 여러 충신들의 피와 얼이 스며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긴 역사의 흐름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후대 사람들이 평가할 몫이지만 윤동주의 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면 그 사람은 올바르게 세상을 살았다고 평가받지 않을까? 

우리 국회의원 중에 과연 이렇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의문이다. 그나마 국회의장이라도 바른 길을 맹세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책의 마지막 장은 '미래와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의 선진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여러 연구원과 직원들에게 쓰는 편지다. 조선업, 제철 산업, 우주 산업, 해양 산업 등 우리나라의 중심 산업을 시찰하고 거기서 얻은 여러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글에 막힘이 없으며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책을 읽으며 특히 김 의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된 이유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직원들에게 쓰는 편지 덕분이다. ETRI와 미국의 벤처 기업 퀼컴이 공동 연구 개발한 핸드폰의 CDMA 기술은 전 세계를 강타한 독자적 기술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로열티를 전혀 받지 못한 채 국제적 소송까지 들어갔다고 하니 약소국의 서러움이 그대로 느껴진다.

다행히도 김 의장이 변호인단을 구성해 국제중재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고 3년의 소송 끝에 로열티 비용을 지불 받았다고 한다. 평소 엄숙하고 권위적으로만 보였던 김 의장의 모습이 그래도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구나'라는 신뢰를 갖게 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국회라는 복잡다단한 곳에서 의장이라는 최고직을 수행하려면 여러 가지 힘든 일도 많을 것이다. 저자가 국토 순례를 하며 나라와 국민에 대한 애정을 품었듯이 국정 수행의 과정에서도 무엇보다 민심을 두루 살피며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국회의장이 되길 소망해 본다.


기사: 강지이 기자(thecure8)
사진: 국회 미디어담당관실
출처 ☞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이런 면도 있었네!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