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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오가 만난 세상

지구 반대편에서 묵념과 헌화로 그대들을 추모하다

국정감사 여적(餘滴)=길 위에서의 이삭줍기③
지구 반대편에서 묵념과 헌화로 그대들을 추모하다
(콜롬비아)




“60년 전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알지도 못하는 작은 나라를 위한
 그대들의 고귀한 헌신을 대한민국 국민은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콜롬비아 군인들의 한국전쟁 참전을 기리기 위한 기념탑 앞에서 묵념과 헌화 등 추모식을 마친 다음 내가 대표로 방명록에 남긴 글입니다.

▲ 똑같은 복장,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는 군인들. 헬멧에 헌병대를 뜻하는 PM(la Policía Militar, 영어의 Military Police)이 새겨져 있으며, 손에는 소총이나 악기 등을 들고 있다. 잠시 후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

▲ 보고타 시내 중심부에 있는 국방대학교에 웬 석가탑? 양 옆에는 태극기와 콜롬비아 국기가 세워져 있고 그 앞으로 레드 카펫이 펼쳐져 있다. 마주보고 도열한 병사들과 그 오른쪽에 있는 군악대가 잠시 후 어떤 의식이 엄숙하게 진행될 것임을 예고해 준다.

▲ 하단부에 붙어 있는 현판, 거기 새겨진 한글이 이 석가탑을 닮은 조형물의 정체를 설명해 준다. 1973년 5월 19일, 대한민국 국민이 콜롬비아 군에 기증한 ‘한국전 참전 기념탑’인 것이다.


지난 10월 14일, 재외 공관 국정감사를 위해 콜롬비아에 간 우리 팀은 보고타 시내 심장부에 위치한 국방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탑에 참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원래 이 기념탑은 1973년 5월 19일 보고타 시내 중심부(Calle 100/Cra 15)에 설치되었지만, 도로 공사로 인해 1997년 3월 19일 국방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왔습니다.

▲ 우리는 묵념으로 한국전쟁 당시 세계 평화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숨진 콜롬비아 군인들을 추모했다. 콜롬비아 국방대학교 부총장인 알베르토 호세 노게라 장군이 내 옆에서 거수경례로 예를 갖추고 있다.


▲ 국기에 대한 경례. 왼쪽부터 김영우 의원, 최병국 의원, 알베르토 호세 노게라 장군, 나, 홍성화 콜롬비아 대사, 황진하 의원, 송민순 의원. 심장의 박동이 손바닥으로 전해져왔다.


콜롬비아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16개 국가로 구성된 국제연합(UN)군 가운데서 중남미에서는 유일하게 군대를 보낸 나라입니다. 파병 규모는 보병 1개 대대, 해군 구축함 1척, 연인원 4314명이었고, 그밖에 의류 500벌 등을 원조했습니다. 전사자는 214명, 부상자는 438명. 그러니까 예닐곱 명 중 한 명꼴로 죽거나 부상을 당한 셈입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이국의 하늘 아래에서 말입니다. 적도 가까운 콜롬비아에 살던 그들은 한국의 혹독한 겨울 추위와도 모진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 한국전 참전 기념탑 앞에서 찰칵! 앞줄 왼쪽부터 황진하 의원, 홍성화 콜롬비아 대사, 나, 알베르토 호세 노게라 장군, 최병국 의원, 김영우 의원. 뒷줄 왼쪽은 전홍조 외통위 국장, 오른쪽은 김근준 콜롬비아 대사관 국방무관.


▲ 묵념과 헌화 등 추모 행사를 마치고. 알베르토 호세 노게라 장군의 손은 여전히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우리도 숙연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고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그러나 뜨거운 태양의 나라 콜롬비아 군인들답게 남미인 특유의 열정과 용맹성으로 적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여 전사에 길이 남을 혁혁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들은 특히 화천·금화·연천 등 중부 전선에서 맹활약을 했습니다.

▲ 방명록에 글귀를 남기고 있는 내 손끝이 조금 떨렸다. “60년 전 지구의 반대편에 알지도 못하는 작은 나라를 위한….” 태극기와 콜롬비아 국기가 그런 내 손끝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슬프고 또 아름다운 수많은 이야기들이 탄생되었습니다. ‘전쟁고아 윤우철 스토리’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1953년 7월, 한국전쟁이 끝나고 콜롬비아로 귀환하는 한 병사의 군용 백 속에는 남자아이 하나가 숨을 죽이고 웅크린 채 숨어 있었습니다. 나중에 ‘인간 밀수’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희대의 고아 수송 작전, 일명 ‘더블 백 작전’의 시작입니다. 주인공은 콜롬비아 보병 대대 상사였던 아우렐리우노 가욘과 아홉 살 난 한국의 전쟁고아 윤우철.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로부터 2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 달 간의 긴 항해 끝에 한국에 도착해 중부 전선 최전방에 배치된 가욘 상사는 어느 날 막사 쓰레기장 근처에서 추위와 허기에 지친 어린 우철을 발견, 그 뒤로 가는 곳마다 데리고 다니며 보살핍니다. 그러는 사이 정이 깊이 들어 전쟁이 끝나면 콜롬비아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데려갈 방법이 없어 소년을 군용 백 속에 숨긴 채 미군 수송선에 올라타고 28일 만에 콜롬비아 땅에 닿았습니다. 그러고는 양아버지가 되어 우철에게 카를로스 아르트로 가욘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 뒤 우철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삼성 콜롬보재단의 후원으로 1999년 5월,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국에 와 극적으로 친누나를 만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11년 전 특집 다큐멘터리로 방영되어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 참전 기념탑 밑에는 우리가 바친 꽃다발이 숨진 군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꽃이 시들어도 그 향기는 오래오래 머물러 있으리라.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한국전에 참전한 콜롬비아 군인들. 그들은 전쟁이 끝나 고국으로 돌아간 뒤로도 영예롭게 그 이름을 빛냈습니다. 2명의 국방장관을 비롯해 참모총장 등 군의 요직에 대거 진출, 콜롬비아 국방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고 합니다.

출처: NEWSIS

▲ 거북선을 본떠 만든 한국전 참전 기념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에서 콜롬비아 군인들이 한국전 참전을 위해 출항했던 카르타헤나 항구에 2008년 11월 1일 건립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인천시 서구 가정동 콜롬비아 공원 안에는 콜롬비아 대대 참전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1974년 9월 24일에 건립된 이 기념비 주변은 꽃과 나무들로 단장돼 있어 시민들의 쉼터 역할도 해주고 있다.


또한 한국전 참전 군인과 그 후손들은 콜롬비안 안에서 대표적인 친한(親韓) 인사 그룹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정부 역시 북핵 문제 등 북한 관련 이슈가 대두될 때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우리 입장을 지지해온 든든한 우방국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 더욱더 우의와 신뢰 그리고 협력 관계를 돈독히 다져 나갈 것을 기대하고 다짐해 봅니다.

▲ 1955년 3월 23일 콜롬비아에서 발행된 한국전 참전 기념우표 세트. 광복 이후 우리나라를 소재로 만들어진 최초의 외국 우표이다. 우표 중앙에는 콜롬비아 군장을 넣고 왼쪽엔 콜롬비아 국기, 오른쪽엔 태극기를 그려 놓았다. 그 밑으로는 낙동강에서 주민들과 어울려 다리를 고쳐 주고 있는 콜롬비아 군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출처: 신문스크랩

▲ 콜롬비아 최대 일간지 ‘EL TIEMPO’가 11월 2일자 신문에 보도한 기사 스크랩. 국회 외통위 소속 남미 국정감사 팀의 한국전 참전 기념탑 추모 행사 내용을 싣고 있다. 이 소식은 콜롬비아 국영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서도 보도되었다.


※P.S. 지난 10월 13일 콜롬비아 대사관 국감을 통해 내가 요청했던 서면 자료가 도착했습니다. 다음은 내가 질의했던 ‘참전 용사 후손들의 취업 지원 대책’에 대한 대사관 측의 답변을 간추린 내용입니다.
  ▶ 한글 교육 연수 기회 확대.
  ▶ 한국에서의 학위 연수 및 장학생 프로그램 참여 기회 확대.
  ▶ 학위 과정이나 직업 훈련을 마친 참전 용사 후손들에게
     인센티브나 가산점을 주어 국내 기업 및 콜롬비아 현지 진출 한국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 및 알선.

  ▶ 참전 용사 후손을 채용하는 현지 기업에 세제 혜택 등 부여.
  ▶ 대사관과 KOTRA가 콜롬비아 직업훈련청(SENA) 등과 협조,
     주재국내 각 직업 훈련 기관의 교육 및 취업 정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