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선진국 코리아’를 세계에 알리다
-G20 정상회의의 문화 외교적 성과
올해 4월에 펴낸 내 책(『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옮겨온 내용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11월에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그 제안은 이루어졌다. 11월 11일, G20 정상회의의 첫 공식 행사인 환영 리셉션과 업무 만찬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것이다. 이 자리에는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의 수장, 재무장관 등 140여 명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각 나라의 귀빈들이 공식 환영식장인 으뜸 홀을 지나 리셉션 장소로 들어서는 동안 ‘역사의 길’이라 불리는 이동 통로에선 빗살무늬토기·백제금동대향로 등 10여 점의 찬란한 문화유산들이 자태를 뽐내며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발길을 머물게 했다.
'역사의 길'에 배치된 문화재 일부
세계 최고의 프리미엄 포럼인 G20 정상회의가 거둔 성과는 가치로 환산하기가 벅찰 정도이다. 대한민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첫 의장국으로서 새로운 트렌드와 리더십을 제시했고, 국가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켰다. ‘서울 액션 플랜’이 담긴 선언문 채택으로 경제 문제 대응에 국제적인 공조를 이루게 되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특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저개발국과 개발도상국가들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논의를 주도했다. ‘위기 극복’에서 ‘지속 가능한 균형 성장’으로 컨셉트가 진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즈니스 서밋’을 출범시킨 것 또한 한국의 창의성이 빛을 발한 사례였다. 무엇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행사를 원활하게 치러냄으로써 향후 코리아 디스카운트 대신 코리아 프리미엄을 누리게 될 발판을 마련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한국의 기적’이란 타이틀로 코리아의 저력에 찬사를 보냈다.
나는 여기서 특별히 문화 외교적 측면에서 거둔 성과에 주목하려고 한다. ‘한국문화의 재발견’이란 평가가 나올 만큼 G20 정상회의는 ‘문화 선진국 코리아’의 위상을 한껏 드높인 행사였다. 한글·한옥·한식·한복의 우수성이 집중 홍보되었다. 우선 그 첫 테이프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끊지 않았는가.
국립중앙박물관 만찬장
같은 시각, 각국의 퍼스트레이디들은 서울 용산에 있는 리움미술관에 모여 있었다. 이들은 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그려진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세 가지 메뉴 중 한 가지를 선택해 만찬을 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자리를 옮겨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의 연주로 쇼팽과 리스트 등을 만났다. 콘서트홀에는 고(故) 백남준 선생의 걸작 <나의 파우스트-자서전>을 비롯한 미술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영부인 김윤옥 여사는 참석자들에게 자신이 직접 연구해 쓴 요리책 『한식 이야기』를 선물했다. 보쌈·김치찌개 등 갖가지 한국 음식이 레시피와 함께 소개된 책이다.
배우자 환영리셉션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11일 오후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서울 G20 정상회의 배우자 환영리셉션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2010.11.11 seephoto@yna.co.kr
다음 날인 11월 12일에도 각 나라의 정상들이 코엑스에서 회의를 하는 동안 퍼스트레이디들은 ‘대한민국 공부’에 나섰다. 창덕궁과 한국가구박물관 등에서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며 ‘아시아 3대 정원’ 중 하나인 창덕궁을 찾은 영부인들은 후원(비원)과 부용지·규장각을 거쳐 옛 왕실의 쉼터였던 영화당에서 가야금·해금·대금 합주로 <영산회상>을 감상했다. 사대부 집을 본떠 지은 연경당에서는 한복 패션쇼를 관람하며 우리 옷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서울 창덕궁 한복패션쇼. 안중열 기자(정경뉴스)
서울 성북동에 자리한 한국가구박물관에서는 우리 전통가구의 매력과 실용성에 빠져들었다. 10여 채로 이루어진 박물관에 전시된 2000여 점의 전통가구들을 둘러본 다음 한식으로 오찬을 즐겼다. 비무장 지대에서 생산된 철원 쌀로 밥을 짓고 횡성 한우, 완도 전복, 고흥 유자, 공주 밤, 가평 잣, 남해 멸치, 영덕 대게 등 8도 특산품으로 정성껏 차린 식탁이었다. 구절판과 신선로 등 궁중 음식이 눈·코·입을 즐겁게 만들었다. 물론 김치도 빠지지 않았다. 그릇에도 신경을 써 중요무형문화재인 이봉주·김선익 선생에게 제작을 맡긴 방짜 유기 등을 사용했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이처럼 효과적인 홍보 기회도 다시 오지 않으리라.
캐나다 총리 부인 로린 하퍼 여사는 오후의 ‘자유 시간’을 이용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난타>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G20 서울 정상회의 참가국 정상 부인들이 12일 창덕궁에서 한복 패션쇼 모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인도네시아 대통령 부인 크리스티아니 헤라와티 여사, OECD 사무총장 부인 룰루 구리아 여사, 터키 총리 부인 에미네 에르도안 여사, 김윤옥 여사, 인도 총리 부인 구르샤란 카우르 여사, 유엔 사무총장 부인 유순택 여사, 에티오피아 총리 부인 아제브 메스핀 여사. 뒷줄 왼쪽부터 베트남 총리 부인 쩐타인끼엠 여사, 캐나다 총리 부인 로린 하퍼 여사, 싱가포르 총리 부인 허징 여사, EU 상임의장 부인 헤이르트라위반롬푀위 여사, 남아공 대통령 약혼녀 글로리아 본기 은게마, 멕시코 대통령 부인 마르가리타 사발라 고메스 델 캄포 여사, 말라위 대통령 부인 칼리스타 무타리카 여사. [연합뉴스]
창덕궁과 리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은 연작으로 펴낸 내 책(『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이 아름다운 나라』)에도 상세하게 소개해 놓은 곳들이라서 더욱 반가웠다. 마치 내가 각국의 퍼스트레이디들과 함께 고궁과 미술관 등을 둘러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런 세련되고 품격 높은 문화 마케팅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무엇보다 나를 가장 기쁘게 한 것은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 때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 297권을 사실상 우리나라에 돌려주기로 양국 정상 간에 극적인 합의를 했다는 뉴스였다.
외규장각 도서(SBS 자료화면)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 책들에는 한국인의 영혼과 역사가 담겨 있으므로 조건 없이 돌려주어야 한다”는 철학적 견해를 펼쳐가며 반대 의견을 잠재웠다고 한다. 프랑스 국내법상 ‘영구’란 표현이 배제되고 5년마다 한 번씩 갱신해야 하는 대여 형식이지만, 그래도 내용적으로는 반환으로 이해해도 큰 무리가 없는 진전된 결정이다. 이 문제는 특별히 내가 2년 전 국회의장으로서 프랑스 상원의장을 만나 강력하게 협조를 부탁했던 내용이라서 감회가 남달랐다. 미흡한 감이 없지 않지만 프랑스 국내 사정과 우리의 실리를 적절한 선에서 절충해 얻어 낸 외교적 성과로 평가하고 싶다.
G20 정상회의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 거대한 국제 행사를 계기로 대한민국은 세계무대의 주역으로서 새로운 2막, 3막, 4막…을 올려야 한다. ‘경제’와 함께 ‘문화’라는 키워드가 쌍두마차를 이루어 이끌어가는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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