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최대 격전지 중 하나인 진주성 안에 1984년 문을 연 국립진주박물관은 지역 박물관 중 경주박물관 다음으로 관람객들이 많이 찾는 역사와 문화예술의 보고입니다. 경남 지역 역사문화실과 임진왜란실, 그리고 기증 문화재를 전시한 두암실을 비롯해 기획 전시실, 야외 전시실, 3D 입체 영화관, 체험 학습실, 정보 자료실, 강당 등을 적극 활용해 다채로운 특별전과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친절한 안내와 재치 있는 해설로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게 해준 진화수 국립진주박물관장, 장일영 진주문화예술재단 부이사장께 감사드립니다. 내 아이폰이 찍은 사진으로는 질감이 안 살아나는 유물은 박물관에서 펴낸 도록을 캡처해 올렸습니다.
국립진주박물관 전경.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우리나라 현대건축의 거목 김수근 선생(1931~1986)의 설계로 지어졌다. 사람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건축에 반영했던 김수근 선생은 우리나라 목탑을 형상화해 이 건물을 구상하고 설계했다고 한다.
보물 제168호 청자매화대나무학무늬 매병. 활짝 핀 매화와 푸른 대나무 이파리 위로 두 마리 학이 날갯짓을 하며 날고 있다. 경남 하동에서 출토되었으며 12세기 후반 고려 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백자대나무무늬병. 17~18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긴 원통형 병은 조선 시대 후기에 많이 만들어졌지만 이 작품처럼 몸체를 다시 대나무 마디 형으로 깎은 것은 희귀한 예다. 여기에 다시 대나무를 그려 넣어 운치를 더했다. ‘대나무 속의 대나무’ 병이다.
가야 유물인 수레바퀴모양토기. 이 토기에 부착된 수레바퀴는 무덤에 함께 묻혔던 사람의 영혼을 저승 세계로 무사히 운반하는 염원을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토기 위로 삐죽 솟은 시계태엽 모양의 장식은 손잡이였을까. 표면에 고사리 문양이 새겨져 있다.
선조가 내린 한글 교서. 임금이 친필로 쓴 한글 교서로는 유일한 예가 아닐까 싶다. 임진왜란 당시 의주에 피난 가 있던 선조는 포로가 되어 일본군에 협조하던 백성들을 회유하기 위해 읽기 쉬운 한글로 교서를 내렸다. 그 중 한 구절, “왜를 잡아서 나오거나 왜가 하는 일을 자세히 알아서 나오거나 잡힌 사람을 많이 더불어 나오거나, 이러한 공이 있으면 양인과 천민을 막론하고 벼슬도 줄 것이니, 너희는 조금도 전에 먹던 마음을 먹지 말고 빨리 나오너라.”
바닷가 마을의 저녁노을을 그린 어촌석조(漁村夕照). 중국 호남성 동정호 아래 소수와 상강이 합쳐지는 곳의 여덟 군데 절경을 그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중 한 폭이다. 경남 사천 출신 두암 김용두 선생(1922~2033)이 일본에서 사재를 털어 수집한 우리 문화재를 기증해 만든 두암실에 전시돼 있는 작품 중 하나로 거금을 주고 구입했다고 한다.
소상팔경도 중 한 폭인 원포귀범(遠浦歸帆). 먼 포구로 돌아오는 돛배를 그린 작품이다. 이밖에도 소상팔경도는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산마을(산시청람, 山市晴嵐), 안개 낀 절의 저녁 종소리(연사모종, 燃寺暮鐘), 소수와 상강에 내리는 봄비(소상야우, 瀟湘夜雨), 동정호수에 비친 가을 달(동정추월, 洞庭秋月), 모래펄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평사낙안, 平沙落雁), 저녁 눈 내리는 강과 하늘(강천모설, 江天暮雪) 등을 화폭에 담고 있다.
국립진주박물관 방명록에 내가 쓴 글귀. “역사의 古都(고도), 경남의 자존심, 글로벌 世界(세계)의 礎石(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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