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만다라>, 시작도 순서도 없는 무한 세계 이상향
이영미술관에서 전혁림을 만나다 1
김형오
좋아하는 작가의 혼이 깃든 작품을 보고 좋은 친구를 만나고 맛있는 음식과 멋진 풍경 속에서 사람 이야기, 인생살이 같은 담소를 나눈다면 이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운 일이겠는가. 이영미술관에서 이 모든 즐거움을 한꺼번에 채울 수 있었다. 행복한 날이었다. 가까이에서 본 만다라 (화보집에서 재촬영)
이영미술관을 찾았다. 근 3년만이다. 다소 쌀쌀한 날씬데도 김이환 관장님 내외가 직접 맞으셨다. 마침 내가 오는 시각에 맞춰 통영에서 반가운 손님 한 분도 막 도착했다. 전혁림 선생의 아들이자 고인 이름의 미술관을 씩씩하게 운영하고 있는 서양화가 전영근 관장이다. 너무 반가웠다. 새벽시장 가서 내게 맛보이려고 통영 갯내음이 싱싱한 생굴도 한 박스 사 들고 왔단다. 그 살갑고 섬세한 마음에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공원처럼 잘 가꾸어진 넓은 정원을 뒤로 하고 미술관 내부로 직행했다.
전혁림 1주기 기념전(‘나는 전혁림이다’)에서 나를 처음 맞이한 것은 거대한(?) 만다라였다.(<뉴 만다라>, 목기에 유화, 2007년) 가로 세로 각 20cm 정도의 나무판 1050개가 하나의 작품으로 진열되어 있다. 물론 목기 하나하나가 작품이니 1050개의 작품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
<뉴 만다라>의 탄생 배경을 알고 나니 작품 앞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이영미술관의 또 다른 주인 신영숙 여사의 노고가 보통이 아니었다.(이영미술관은 김이환의 ‘이’, 부인 신영숙의 ‘영’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시골에선 아직도 손님에게 떡이나 과자 또는 찻잔을 올릴 때 쓰는 나무 그릇이랄까, 나무 받침 같은 것(목기)을 수십 개씩 들고 가 전혁림 화백에게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냥 가정집에서 쓰는 나무 그릇이 아니라 시골집 오랜 대들보(120년 이상 된 조선 소나무)를 구해 자르고 깎고 다듬어 깨끗이 마름질하고 못질 하나 없이 똑같은 규격의 물건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 내라 했으니 목수의 노고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 같다. 신 여사 말이, 질 좋고 두꺼운 오래된 대들보라야 목기를 만들어도 뒤틀리지 않고 그림도 잘 그려지기에 구하느라 참 고생도 많았고 까다로운 주문에 목수들 또한 구슬땀을 쏟았다고 한다. 어렵게 만든 목기를 통영의 선생님께 들고 가 여기에다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한 이가 신 여사니 어찌 보면 두 사람의 공동작, 신영숙 기획․제작에 전혁림 주연․감독이랄까. “나무를 캔버스로 삼은 그림은 덧칠해선 안 되고 붓 잡으면 단 한 번에 그려야 제대로 되는데 선생님의 천재가 아니면 불가능했다”는 게 신 여사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한 300점 정도 그릴까 했는데 목재 구하는 어려움이 즐거움으로 바뀐 건 전 화백께서 목기에 그림 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좋아하셨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점차 숫자가 늘어나 5백 점, 8백 점, 드디어 1천 점을 넘게 되었다고 한다. 생전에 좀 더 많이 그려서 남겨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전관장의 목소리에 묻어있다.통영에는 얼마나 있느냐고 물었더니 60점 있다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 <만다라>와 <충무항> 두 점을 청와대에 비치하고 싶어 했으나, 일반 그림은 다시 그릴 수 있어도 이 작품은 다시 만들 수 없어 거절했다 한다.
마침 미술관은 잠시 어린이들이 왁자지껄 지나갔고 드문드문 관람객이 다녀갔을 뿐 넓은 공간에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아 설명도, 감상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김 관장님은 관람 통제선 안으로 우리를 데려가 콧김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작품을 한 점 한 점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촬영 금지인데도 특별히 나한테는 사진 찍어도 좋다고 했지만 기념사진 외에는 감히 찍을 수가 없었다. 고인에게 누가 될 것 같아서.
왼쪽부터 김이환 관장, 신영숙 여사, 나와 아내, 전영근 관장
비슷하긴 해도 똑같은 것이 단 한 점도 없다. 검정을 비롯해 파랑 빨강 노랑 등 원색에 선 원 면 점 세모 네모 타원 곡선 직선과 무늬를 적당히 배열해 놓은 것 같다. 김이환 관장 말씀을 듣고 나니 골무 비녀 반짇고리 베개보 같은 우리 어머니․할머니가 즐겨 사용했던 물품과 물고기 바다 새 나비 하늘 구름 같은 통영 이미지, 우리나라의 독특한 형상을 연상시키는 빛깔과 모양도 나타난다. 한국 전통에 기반하면서도 색다른 느낌, 언젠가 꿈꾸어 왔던 이상향, 인류가 지향하는 그 무엇과 연결되어 세계성을 띠고 있다. 소박하고 순순한 이 통영 향토 작가의 꿈과 연륜, 천재성이 나무판에 대담하게 펼쳐진다.
화보집에서 재촬영
단순한 나무 평면이라도 그리기가 만만찮을 텐데 45도(?) 각도로 비스듬한 네 모서리를 일필휘지로 그려낸 대담성과 입체 구조물에 평면 그림의 대조가 신비로우면서도 그 자체로 입체미를 이룬다. 한글 ㄷ자 모양으로 세 벽면을 가득 채워 관람객을 만다라의 그림 세계로 빨아들이고 있다. 왜 1050점인가 하는 의문에 대해선 1천 점 이상이면 무한대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ㄷ자 구조물을 특별히 만들었지만 언젠가 뉴욕 대형 미술관에 전시할 때는 한 벽면 전체를 가득 메우고 싶다고 했다.
기독교도인 전혁림 화백에 의해 불교의 사상이 한국의 전통과 통영의 빛깔로 버무려졌다. 수많은 대들보가 사용되었는데 대들보 질감에 따라 바탕색이 다르고 순서도, 시작도 따로 없단다. 리움미술관에 전시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죽음의 춤>이 떠올랐다. 캡슐에 든 2만 3000여 개의 모형 알약을 작가의 배열 순서대로 배치하느라 큐레이터들이 진땀을 뺐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적어도 그런 수고는 필요 없다. 그러나 1050개의 작품이 빚어내는 무한 세계 이상향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 내가 바라보는 1/1050의 만다라가 바로 시작이고 또 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4년 8개월 걸렸다는 이 작품을 떠나기가 못내 아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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