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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3 국민일보] 한국의 길을 묻는다 - 김형오 前 국회의장·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대담



국민일보와 국민일보목회자포럼은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희망을 얘기하자, 한국의 길을 묻는다’를 주제로 좌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1일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이영훈 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를 초청해 두 번째 좌담회를 열었다. 김 전 의장은 국가 시스템의 틀을 바꾸고 사회 갈등을 중재하는 데 정치권이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목사는 기독교의 화해와 일치 정신, 섬김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사회=이인선 열림교회 목사>

 

 

김형오 “정치권, 사회 갈등 중재에 더 많은 힘 쏟아야”

이영훈 “기독교의 화해·일치 정신과 섬김 리더십 필요”

 

우리는 촛불과 태극기의 물결,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사회적 혼돈 속에 있다. 500년 전 종교개혁 정신은 무엇이고 우리는 이 종교개혁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이영훈 목사=종교개혁은 본질을 잃어 타락한 교회를 바로잡고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데서 출발했다. 교회개혁이라는 것은 시대마다 교회에 던져지는 질문이다. 한국교회도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환골탈태해 방향을 잃은 사회에 꿈과 희망을 주는 종교로 거듭나야 한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부연하자면 종교개혁은 교회 내부의 부정부패와 부도덕, 권위주의, 바깥으로는 패권주의에 대한 분노가 저항이 됐다. 500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 사회와 정치, 한국교회도 여전히 이 문제들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등이 주요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국가가 추구할 새로운 비전과 가치, 사회 시스템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김 전 의장=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100만명 이상의 촛불이 모였다는 것은 기네스북에 오를 세계적인 기록이다. 결국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촛불로 일어난 것이다. 조금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이 목사=공감한다. 결국 절망과 자괴감이 쌓인 국민들의 분노가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현재 권력의 정점에 있는 분과 그 주변 사람들의 잘못이라고도 보지만 그런 제도를 만들어놓고 지금까지 유지해 온 데 대한 책임이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대한민국 대통령제와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있는 나라는 없다. 구조상으로 보면 이런 문제는 또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정치 지도자들이 이런 부분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분노가 계속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요즘 촛불에 맞선 태극기 민심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박사모’ 등 극단적인 보수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반면 다른 가치와 정신을 지켜 내려는 움직임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 전 의장=대한민국이나 서구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방식은 간접 민주주의, 대의제 민주주의다. 하지만 국민들의 대표, 다시 말해 국회가 역할을 못하니까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촛불’이냐 ‘태극기’냐로 나누기 전에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이 목사=작은 땅덩어리에서 좌우로 나뉘어 싸울 필요가 없다. 국정 역사 교과서 문제만 보더라도 지금까지 좌편향된 교과서만 나왔다는 지적도 있고 국정 교과서는 무조건 안 된다고 반대만 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렇게 극단으로 가는 것은 바뀌어야 한다. 진보도 필요하고 보수도 필요하다. 진보는 개혁하는 데 필요하고 보수는 지키는 데 필요하다. 지켜야 될 건 꼭 지켜야 하고 고칠 건 꼭 고쳐야 하는데 지금은 다 섞여버렸다. 진보는 안 고칠 것까지 다 고치자고 하고, 보수는 지키지 않아야 할 것까지 지키자고 하니 문제가 된다.

 

-한국사회는 서로 의심하고 어디까지 진실이냐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정치적 해법과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 목사=우리가 구세주로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화해와 일치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다. 갈등과 대립을 기독교인들이 중재하는 게 중요하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위로하고 다투는 사람을 서로 배려하고 화해시켜야 한다. 화해와 일치가 한국사회의 방향을 바로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말이다.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김 전 의장=정치적 해법은 우선 권력구조의 틀을 바꿔야 한다. 경찰, 검찰, 국정원, 국세청 등 4개 권력기관이 대통령의 손발처럼 움직이는 나라는 결코 선진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된 나라가 아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국가 리더십을 세워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을 이끌 리더십은 어떤 것이며 상처받은 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김 전 의장=2500년 전 아테네 민주주의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페리클레스는 지도자의 자격으로 식견과 설득력, 애국심, 도덕성을 제시했다. 우리나라의 차기 대통령이 필요한 조건을 두 가지만 꼽으라면 도덕성과 정치력이다. 특히 지금이야말로 화해와 일치의 기독교적 정신에 입각한 리더십이 나와야 한다. ‘벚꽃 대선’ 등 조기 대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재 후보 중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사회적 견제 기능이 과거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사회적 견제 기능 중 제일 중요한 게 언론의 역할이다. 언론은 사회적 견제 장치의 유일한 보루다.

 

△이 목사=기독교적 신앙의 가치로 볼 때 21세기는 섬김의 리더십이 필요할 때다. 20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사대회 개최 100주년을 맞아 열린 선교대회 때 21세기의 선교는 섬김의 선교, 겸손의 선교라는 주제가 대두됐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너무 많이 갖고 있다. 낮은 자세로 섬김의 리더십을 보이면 좋지 않을까. 선동이 아니라 섬김과 화해, 상생의 리더가 필요하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공개돼 큰 충격을 줬다. 국가가 배제와 차별을 앞세워 정책을 운영했다는 점은 사랑의 윤리를 강조하는 기독교 정신과도 맞지 않는다. 배제와 차별로 흔들린 헌법 질서와 국민들의 상처를 사회와 교회가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가.

 

△김 전 의장=빅데이터 시대인데 블랙리스트와 같은 아날로그적 발상을 하는 정부가 부끄럽다. 유신시대 사고방식에 빗댈 만하다. 신념이 좌파인지 우파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표현에 대한 판단은 국민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화예술의 힘은 창조에서 오고, 창조는 자유에서 비롯된다.

 

△이 목사=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차별과 편견이 없는 나라다. 블랙리스트로 인한 차별만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 와 있는 200만 다문화 가족들과 탈북자 등 이 땅에 살면서도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 이들은 정유라 이화여대 입시 비리로 ‘금수저 흙수저’의 벽을 체감하며 큰 박탈감과 좌절감을 겪고 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김 전 의장=지금 대권 후보들이 선심성 공약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게 ‘시혜적 복지’다. 노골적으로 금전을 살포하겠다는 얘기다. 이런 공약은 젊은이들에게 중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거나 국가적 부의 증가로 연결되기 어렵다. 실업이 일상화되는 시기에 어떻게 일자리를 나눠야 하느냐에 대해 염려하고 대책을 세우는 사람이 제대로 된 지도자다.

 

△이 목사=가진 자가 내놓기 전에는 방법이 없다. 재벌개혁이 청년 일자리 창출의 유일한 돌파구라고 본다. 부가 편중된 재벌과 정치권이 결탁을 통해 기금을 모으는 문제가 발생했다. 과감하게 청년 일자리 창출에 투자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나라의 국운이 달린 젊은 세대를 위한 일자리를 마련하려면 재벌들이 과감하게 가진 것을 내놓고 투자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좋은 지도자가 요구되는 만큼 영적으로 훌륭한 리더들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의 ‘좋은 성직자’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이 목사=예수님을 닮은 온유와 겸손, 섬김, 낮아짐, 희생, 배려의 코드를 가진 지도자가 돼야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더 가지려고 하고 더 높아지려고만 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성직자부터 먼저 낮아지고 섬기는 모습으로 성도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김 전 의장=‘성직자는 상수도요, 정치인은 하수도’라는 말을 하고 싶다. 성직자는 어떻게 하면 좋은 물을 국민과 성도들에게 공급하느냐 하는 수질 관리의 역할을 해야 한다. 수로 관리를 하는 정치인은 그 손을 구정물 속에 집어넣고 거기에 직접 뛰어들어 온 몸을 적셔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은 자기가 성직자인 줄 착각한다. 일부 성직자는 정치인 흉내를 낸다. 부패나 권위주의, 패권주의가 교회나 정치권에서 사라져야 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과 세계 무역질서의 재편 시도, 사드 배치 문제로 인한 중국의 압박, 일본의 역사왜곡과 소녀상을 핑계로 한 외교적 공격 등이 우리의 앞날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김 전 의장=이런 능력 없는 정부를 뒀다는 데 크게 실망했다. 야당도 국가 안보에 한목소리를 내지 못할망정 분열을 조장했다. 안보나 외교 문제는 투철한 국가관이 확립돼 있어야 풀어나갈 수 있다. 70년간 유지됐던 한·미동맹 관계가 중요하다.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중국과는 경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일본과는 불필요한 마찰을 피해야 한다. 외교적 시련기에 담대하게 대응할 수 있는 외교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제1종교가 된 개신교가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과 역할은 무엇인가.

 

△이 목사=개화기 이후 130년의 기독교 역사는 한국의 역사와 같다. 구한말부터 각 지도층에 기독교인이 있었고 3·1운동도 기독교계에 의해 주도됐다. 하지만 한국사회에 스며들어 공동운명체라는 기독교적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데 문제가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서 교회부터 먼저 철저히 회개하고 반성하면서 이 사회의 낮은 곳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 전 의장=초대교회의 정신이 한국교회에 필요하다. 탈북자나 다문화가정, 장애인, 극빈층에 교회의 손길이 미치고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질 수 있어야 한다.

 

-김 전 의장은 최근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라는 책을 쓰셨는데.

 

△김 전 의장=2012년에 냈던 ‘술탄과 황제’라는 책은 38쇄까지 나왔는데 내가 절판을 시키고 개정판을 냈다. 초판의 뼈다귀와 정신은 살리고 완전히 뜯어고쳤다. 술탄의 리더십, 황제의 리더십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술탄은 고전적 리더십의 전형이다. 솔선수범, 진두지휘, 신상필벌 등 고전적 리더십의 모든 것을 다 갖췄다. 황제의 리더십은 눈물의 리더십이라고 설명하겠다. 멸망이 눈앞에 보였지만, 비잔틴 제국 마지막 황제가 보여준 눈물의 리더십 앞에 선 장병들은 성벽에서 장렬한 최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황제의 눈물은 기독교적 용어로 긍휼이라 할 수 있다. 술탄과 황제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이영훈 목사는 얼마 전 한기총 대표회장 연임됐다. 이번에 세 번째로 맡게 됐는데 한교총이라는 새로운 조직이 생기는 와중에 맡게 돼서 더욱 역할이 중요하고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기총 대표회장으로서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에 대해 말씀을 해 달라.

 

△이 목사=세계선교 역사상 한국처럼 기독교가 짧은 시간 내 급성장해 기독교인이 인구의 20%를 차지한 예가 없다. 그 급성장의 배경에는 분열이라는 아픔이 항상 함께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엔 300개 교파가 있다. 이번에 한국교회 총회장들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뜻을 같이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하나가 돼서 국가의 중요한 이슈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하고 한 목소리를 내자고 했다. 일단 먼저 화합한 후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가겠다. 어려운 시대에 한국교회의 빛을 발하고 사회를 보듬고 약자를 돌보는 기독교로 거듭 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리=김경택 기자, 사진=이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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