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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오가 만난 세상/김형오의 문화 카페

새싹들의 꿈과 희망은 누가 키우는가 -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새싹들의 꿈과 희망은 누가 키우는가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PD 박명성 / 번역 이경후 / 제작·기술감독 유석용 /

연출 Stephen Daldry / 음악 Elton John / 극작·작사 Lee Hall

  


 

<모든 어른은 어린이들을 위한 조연>

설 연휴를 틈타 뮤지컬을 보러 갔다. 한마디로 아무것도 모르고 갔다. 그리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아내가 박정자 선생이 초대했으니 함께 가자 해서 무조건 따라 나섰다. 공연장은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디큐브아트센터, 작품은 <빌리 엘리어트>였다.

  

뮤지컬 이전에 저예산 영화(2000년 제작, 2017년 국내 재개봉)로 만들어져 대박을 터뜨렸다는 것도, 실제 모델(필립 말스덴, 탄광촌 출신 영국 로열발레단 발레리노)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영화를 보고 반한 세계적인 뮤지션 엘튼 존이 원작의 감독인 스티븐 달드리, 시나리오 작가인 리 홀과 의기투합해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란 사실은 더더구나 까마득히 몰랐다. 그저 박정자 선생이 지난해 비운의 왕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 역을 뭉클하게 연기한 <영영이별 영이별>을 보고 교감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그런 유의 연극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도 선생님이 초대해주셨다. 그만큼 무심했고 또 무지했다. 그래서 더욱 전율이고 감동이었다.(정순왕후에 대해선 몇 해 전 수필을 쓴 적도 있고 단종의 묘가 있는 영월의 장릉과 세조의 광릉, 정순왕후의 사릉 등도 둘러본 적이 있어 꽤 아는 척을 했던 처지였다.)

 

박정자 선생은 주연이 아닌 조연(빌리의 할머니 역)이었다. 주인공은 놀랍게도 12세 소년이었다. 아니, 출연한 모든 어른은 어린이들을 위한 조연이었다.

 



무대는 마거릿 대처 집권 초기에 발생한 영국 탄광 노동자들의 파업과 경찰과의 극렬한 대립으로 시작된다. 생존권을 외치는 선량한 노동자들의 처절한 몸부림과 이를 무참히 짓밟는 공권력, 그것을 때 묻지 않은 소년의 눈으로 보는 그렇고 그런 드라마겠구나 지레짐작했다. 그러나 예상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그런 판에 박힌 내용이 아니었다. 발레에 천부적 재능을 가진 탄광촌 소년이 가족과 이웃의 도움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을 딛고 왕립 발레단에 입단한다는 줄거리였다. 탄광촌은 무너지고 파업은 실패해 절망뿐인 현실에서 소년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였다.

 

<킬링 타임에서 힐링 타임으로>

러닝 타임 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템포가 빠르고 변화가 다양했다. 어린 소년들의 연기는 해맑고 신선했다.

인터미션 20분 후 다시 시작된 2부는 속도감이 더해 한 시간 넘는 극이 30분 만에 끝난 느낌이었다. 객석을 떠나기가 아쉬웠다. 모든 관객과 함께 일어서서 내려진 커튼 뒤를 향해 계속 박수를 보냈다.

 

공연을 마친 박정자 선생을 잠깐 만났다. 70대 후반 원로 배우의 놀라운 열정과 연기력 그리고 건강을 늘 존경하고 선망했지만, 역시나, 다시 한번 실감했다. 주연이냐 조연이냐는 이분에게 중요하지 않다. 어떤 작품인가, 어떤 연기로 관객과 호흡할 것인가를 배역 선택의 핵심 기준으로 삼는 노배우의 얼굴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인공 빌리 역을 맡은 소년의 빼어난 연기를 거듭 칭찬하자 연출을 맡은 박명성 선생이 데려와 인사를 시켰다. 총명이 넘쳐나는 인상이다. 배역에 몰입한 자세가 온몸에서 느껴진다. 이런 아이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빌리 역을 맡은 소년 배우만도 다섯 명이라고 한다. 6개월 장기 공연이니 싱글 캐스팅은 아닐 거라 짐작했지만, 같은 배역이 다섯 명이나 된다니 놀랍다. 쑥쑥 자라고 있는 미래의 꿈나무들이 여간 대견스럽지 않다. 우리 공연계의 용틀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노래연기, 세 박자를 모두 갖춰야 하는 것이 뮤지컬 배우다. 발레를 배운 적도 없는 아이들(그것도 소녀가 아닌 소년), 게다가 다섯 명씩이나 혹독한 트레이닝으로 세 시간짜리 무대의 주역으로 키워낸 신시컴퍼니’(대표 박명성)의 안목과 역량에 감탄과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대에게 추천하는 이유>

요즘 나라 형편이 편하지 않다. 미래가 걱정스럽다. 모든 것이 정치에서 시작해 정치로 귀결된다. 사회 전체가 다양성을 잃고, 정치에 기대거나 눈치를 보는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눈에 불을 밝힌 정의가 거리를 지배하고 새판 짜기가 시대 조류로 겉치장을 하게 되면 쏠림 현상이 심화된다. 내실은 약해지고 성찰은 부실해진다.

그래서일까? 거기에 휩쓸리거나 구애받지 않고 새싹들이 새 희망으로 자라고 있는 공연 예술계의 모습이 반갑고 또 고마웠다. 보기 참 좋았다.

 

온전한 민주주의와 건강한 나라의 미래는 다양성, 바꿔 말하면 자유와 창의에 있다. <빌리 엘리어트>는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대한민국, 희망을 접기엔 아직 이르고, 걱정과 불안은 기우였음을 이 한 편의 뮤지컬이 일깨워주기를 간절히 염원해본다.

! 이 아이들이 희망찬 창공을 향해 나래를 활짝 펼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날개를 꺽지 말아야 할 텐데, 차라리 내버려둘지언정 잘못 인도하지는 말아야 할 터인데... 또다시 걱정이 밀려온다. 그러나 믿어보자. 빌리가 그 완고하고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형과 아버지 그리고 이웃들을 설득시키고 동조자·지지세력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지금 한국의 빌리들도 이 어둠을 자양분 삼아 무럭무럭 크고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한국의 미래를 염려하며 나처럼 잠 못 드는 이가 있다면, 우울한 노인 세대가 있다면, 웃으며 또 울며 카타르시스를 하고 싶다면, 서먹했던 사람의 손을 다시 한번 잡고 싶다면, 무언가 이 사회와 공동체를 위하여 도움이 되고자 한다면 이 뮤지컬 관람을 권유하고 싶다. 가족끼리 보기에도 매우 좋은 드라마다. 그날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 중 대다수는 아이들과 그 어머니, 그리고 청년들이었다. 어쩌면 내가 가장 나이 많은 손님이었는지도 모른다.

발레는 영혼의 빨래인가. 꿈과 희망에는 생년월일이 없다는, 당연하지만 잊고 살았던 진실을 <빌리 엘리어트>의 아이들은, 그리고 어른들은 신나고 상쾌하게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온 마음으로 깨닫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