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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0 파이낸셜 뉴스] 공직시절 자료·선물 모두 기증… "처음부터 국민의 것"

사회환원 실천 김형오 前국회의장
책 2000권·기록물 5000점 등
재임시절 자료 국회도서관에 기증
외국정상에 받은 귀중품도 상당수
"국민들 위해 상시 전시됐으면"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중앙홀에서 열린 기증자료 특별전 개막식 직후 자신이 직접 쓴 '술탄과 황제'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서동일기자

"국회의원 시절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를 방문했다가 탄식했던 적이 있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와 200년 역사를 가진 미국인데 오히려 미국이 더 유서깊게 느껴졌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왔나 생각했다. 바로 남기는 문화에 있었다."

 

영원한 의회주의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최근 국회도서관에 자신의 책 2074권과 기록물 5000여점, 국회의장 재임 시절 세계 각국으로 받은 선물 178점을 기증했다. 정치인이 국회에 책과 자료를 기증한 사례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처음은 아니다. 고 이종찬 전 의원과 현경대 전 의원이 이미 자신의 의정활동 기록과 책을 국회에 기증했고, 지난 6월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비공개 의정활동 기록물과 책, 문서, 사진 수천점이 국회도서관에 기증돼 분류 작업이 진행중이다. 현직 국회의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해 6월부터 자신의 의정활동 자료를 매달 국회 도서관에 보내고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기록물을 도서관에 보내는 경우는 그간 있었지만 국회의장 재임시절 자신이 받은 선물까지 모두를 기증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를 기념해 국회도서관은 17일까지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기증한 자료와 도서, 선물 등을 전시하는 기증자료 특별전을 진행한다. 전시 개막일인 지난 5일 만난 김형오 전 의장은 "처음부터 저에게 준 선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공인의 삶과 신분으로 받은 것은 국민의 것이기에 당연히 내놓아야 한다고 예전부터 쭉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회도서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1층 중앙홀의 한켠에서 진행중인 이번 전시에는 각국 정상과 국회의장 등 귀빈으로부터 받은 선물 120여점이 전시대 칸칸을 채웠다. 각국의 특색에 따라 선물도 제각각이다. 주한 인도대사로부터 받은 인도코끼리 모형을 비롯해 터키 에르도안 총리에게 받은 금속 보석함,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전통공예 다기세트 등 다채롭다.

 

김 전 국회의장은 "미국의 경우 국회의장에게 들어온 선물은 임기중 기록으로 남겼다가 임기를 마친 후 정부가 다 가져가는데 우리나라는 전 국회의장들이 의도적으로 내지 않았다기 보단 아직 그러한 시스템이 없었기에 이번을 계기로 정립되길 바랬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에 상시적으로 외국으로부터 받은 귀한 선물들이 전시된다면 국민들이 국회를 찾을 이유가 생긴다"며 "외국처럼 우리 국회도 볼거리가 많아지고 국민들이 국회를 더욱 친근하게 생각할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시장의 절반이 그가 내놓은 반짝이는 선물로 가득찼다면 다른 절반은 그의 저서와 그의 삶에서 감명받았던 책들로 채워졌다. 가장 핵심은 김 전 의장의 역저인 '술탄과 황제'였다. '술탄과 황제'는 김 전 의장이 정계를 은퇴한 후 처음으로 내놓은 책이다. 이 책은 비잔티움 제국과 오스만 제국이 치열한 전쟁을 벌였던 1453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당시 두 지도자의 리더십을 탐구하며 마치 종군기자가 된 것처럼 설정해 쓴 책으로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술탄과 황제는 의원직을 그만둔 후에 시작해서 의정활동과 큰 관계는 없지만 사실 구상은 국회의장실에서부터 시작됐다"며 "제가 학자였으면 오히려 쓰지 못했을 책"이라고 밝혔다. 요즘같은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중앙아시아를 연구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농담을 던진 그는 "요즘 시대에 재미가 없으면 책에 보배가 들어있어도 보지 않기에 이왕 책을 쓸거면 어떻게 재밌게 쓸까에 온 궁리를 했다"고 말했다. "4년을 꼬박들여 연구하다시피 쓴 책이다보니 이 책의 흔적이 내 몸에 남아있다"며 "집필 마지막 1년은 아마 하루에 4시간을 자는 게 많이 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시절 몸을 혹사시키는 바람에 요즘도 몸이 성하지 않다"고 밝혔다.

 

책을 쓰면서 그는 큰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다만 주위의 정치 선후배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두가지 생각이 있었다"며 운을 뗀 그는 "먼저 국회의장 지낸 사람이 이 따위 책을 썼냐는 소리 들으면 동료 선 후배 의원에게 화가 미칠 것 같아 없는 재주를 썼다"고 겸양을 비쳤다. 그는 "국회 오니 많은 국회의원들이 출중한 재주가 있었다"며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길 바랬다.

 

유한한 정치 인생보다 더 긴 자기의 인생이 있음을 알고 가면 우리 정치가 투박해지지는 않지 않을까 생각했다. 위만 쳐다보는 정치보다 국민을 보는 정치를 하려면 국회의원들에게도 이후의 삶이 있다는 메시지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생각보다 까다롭고 피곤한 일들이 많았지만 다시금 지난 날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공직자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늘 생각했다"며 "제 작은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 느낌표를 하나 찍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전시를 열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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