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답을 찾던 ‘침대 머리맡의 책’
백범일지/ 김구/ 도진순 주해본/ 돌베개/ 2005
(그외 여러 판본 참고하여 글을 작성함)
‘Libre de Chevet’라는 프랑스어가 있다. ‘침대 머리맡의 책’이란 뜻으로,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는 애독서를 일컫는다. 내게 있어 『백범일지』는 그런 책이다. ‘무인도에 가져갈 두 권의 책’을 꼽으라면 성경과 함께 벗 삼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백범일지』가 우리말 한글본으로 처음 나오기 얼마 전(1947년), 나도 세상에 나왔다. 시대와 삶의 궤적은 달랐지만 어렵고 힘겨운 일에 부닥치면 나는 이 책을 펼치곤 했다. “이럴 때 김구 선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 삶의 자양분이 되고 지표가 된 『백범일지』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그 답 찾기는 오랜 세월을 두고 이어져 2018년 나는 그 연장선상에서 한 권의 책을 냈다. 문답식 『백범일지』 해설서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가 바로 그 책이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라 했는데, 이 책 또한 『백범일지』의 각주면서 존경의 마음을 가득 담아 김구 선생에게 바친 헌사요 오마주 같은 책이다.
『백범일지』는 김구 개인이 걸어온 길을 정리한 자서전이요, 사랑하는 가족에게 유서를 대신해 남긴 회고록이자 조국을 위해 희생한 동료를 기리며 피로 쓴 역사서, 나라와 겨레에 바친 보고서이다. ‘위대한 보통 사람’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이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온 한 사나이의 치열하고도 극적인 생애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솔직함 면에서 『백범일지』의 앞에 세울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이 “회고록의 신뢰성은 치부를 공개할 때 확보된다”고 말했지만 『백범일지』야말로 그 본보기가 아닐까. 이 책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드는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이야기들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성을 획득하고 진정성을 인정받는 이유는 바로 그런 솔직함에서 비롯된다. 『백범일지』를 읽고 나면 니체의 잠언집 제목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김구의 혁명가적 면모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에도 반하게 만드는 멋진 책이다. 쓴 사람의 숨결과 체온과 체취가 갈피갈피마다 녹아 있다. 백범의 비장하고도 처연한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듯 생생하다.
『백범일지』는 상하권으로 나뉘어 집필되었다. 한글본은 당연히 상하 합본된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상권에는 주로 개인적인 성장과 신변 활동을 담았고, 하권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주변 인물들로 범위를 넓혀 기술했다. 김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백범일지』 상권을 쓴 상해 시대가 ‘죽자꾸나 시대’였다면, 하권을 집필한 중경 시대는 ‘죽어가는 시대’였다.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유언장과 혈서를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던 것이 김구와 임시정부의 숙명이었다. 퇴고나 손질을 할 겨를조차 없었지만 그런데도 깊고 무겁고 또 유려하다. 문학적 향취가 돋보이는 표현들이 읽는 맛을 더해준다.
먹고 살기 힘들고 책이 귀하던 시절에도 『백범일지』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공공 도서관에서 가장 잘나간 책 중의 하나였다. 앞으로도 『백범일지』는 세대와 계층을 아울러 많은 이들이 꾸준히 찾는 스테디셀러, 국민 필독서로 영원히 생명력을 이어 나갈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국사원 출판사에서 처음 낸 이후 유족이 판권을 개방해 수많은 출판사에서 여러 종류의 책이 출간됐다. 위 작가(도진순)의 『정본 백범일지』(돌베개, 2016년)와 나남출판사(백범학술원판, 2002년) 판도 좋은 서적이며 영인본(집문당, 1994년) 등도 가치 있는 책이다. 또한 관련 연구서로는 손세일 선생의 『이승만과 김구』(전7권, 조선뉴스프레스, 2015년)가 단연 압권이다. 권당 800페이지 안팎의 대작으로, 당시 시대상이나 민족 지도자들의 사상과 행적 연구에 귀중한 서적이다. 이 책도 언젠가 소개할 계획이다. 내가 공들여 쓴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어 늘 감사한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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