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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김형오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

 

공천은 잘해도 욕먹고, 못하면 더 욕먹는 자리. 인간적으로는 쉽지 않지만 칼을 쥔 자가 많이 아플수록 공동체가 나아지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은 6일 “눈 딱 감으면 다 똑같은 사람들”이라며 인정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절박함이 없어….” 2018년 6월 어느 날, 김형오 당시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회장은 옆에 있던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안상수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준비위원장과의 통화를 막 끝낸 후였다. 당시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한국당은 국회의장을 지낸 그를 비대위원장 1순위로 접촉 중이었다. 2016년 총선 참패 이후 당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그는 비대위원장 요청을 받았지만 모두 고사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심정으로 독배(毒杯)를 든 걸까.》

 

―비대위원장 요청은 그간 모두 고사하지 않았나.

“수차례 요청이 왔는데… 모두 절박함, 비장함이 부족한 것 같았다. 비대위가 구성된다는 건 비상시국이라는 뜻 아닌가. 구성원 모두가 비상한 각오를 가져야 하는…. 내 혼자 가지면 뭐 하노. 근데 함께 죽을 테니 맡아달라는 게 아니라, 비대위원장만 임명하면 자기들은 그냥 살아날 걸로 여기는 것 같았다. 물론 말은 그렇게 안 하지만… 우리가 다 선수인데 알잖아? 그런 자세라면 맡아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 그는 2016년 총선 참패 직후에, 탄핵 시위가 한창이던 같은 해 12월에, 2018년 지방선거 참패 후에 비대위원장 요청을 받았으나 고사했다.

 

―황교안 대표가 직접 연락했나.

“내가 호흡기 계통이 안 좋아 겨울에 많이 힘들다. 미세먼지에도 민감하고, 추우면 못 살고…. 그래서 2월까지 있을 생각으로 베트남에 갔는데 황 대표 전화가 왔다.” (작년부터 물망에는 올랐는데….) “그때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미 공관위원들이 다 정해져 있고 위원장만 찾는다고 들었거든. 그런 자리에 가면 뭐 하겠노. 그래서 황 대표 전화가 왔을 때 ‘이미 위원들이 다 정해져 있다던데’라고 물으니, 아니라는 거야. 자기들이 생각한 안은 있지만 참고용이지 알아서 인선하라고…. 목소리에 진지함이 묻어 있더라고.” (황 대표 목소리는 메뉴판을 읽어도 진지하게 들리는데….) “목소리 때문은 아니고…. 그런 타고난 목소리가 남 속이라고 주어졌을까? 신뢰가 갔다.” (절박감도 느껴지던가.) “절박감까진 아니고 진지함은 느꼈다.” (목소리 때문은 아니고?) “또 목소리…. 아니라고.”

 

김형오 공관위원장이 지난달 23일 위원장 임명식에서 서민의 삶을 그린 그림을 선물하고 있다.

 

―위원장 임명식에서 황 대표에게 그림을 선물했다.

“박지오라고 그림 그리는 내 친구가 있는데… 부산 내 지역구(영도)에 좀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늘 보면서 생각하려고 서민 냄새가 나는, 시장 풍경 같은 거 하나 그려 달라고 해 받은 거다. 과일 장사 아주머니가 아이들에게 포도를 주는 모습인데…. 자신도 넉넉하지 않지만 베푸는 마음이 그림에서 묻어나 내가 참 좋아한다. 정치권이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해서 선물했다.” (황 대표는 그 마음이 있던가.) “아직까지는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고….” (비싼 그림인가?) “싸지는 않을걸. 그 친구가 무슨 한국화 심사위원장도 오래했는데….”

※박지오 화백은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과 위원장을 역임했다.

 

―공관위원 선임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정치권에 발을 디디지 않겠다는 분들이 예상외로 많았다. 자신이 노출되는 걸 꺼리는 분들도 상당히 있었고…. 그간의 한국당 이미지가 상당히 작용했겠지…. 정치인 출신들은 아예 접촉하지 않았다. 김세연 의원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고.” (당에서 자료를 주겠다고 했는데 거절했는데….) “나도 사람이니 보면 선입견이 생길 것 같아서….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내 소신껏, 내 책임 아래 구성하고 싶었다.”

 

―공관위원 명단을 발표하면서 “어제까지는 참았는데 오늘부터는 각오하라”고 했다. 많이 찾아오던가.

“엄청 찾아오더라고, 밤늦게까지…. ‘인사드리러 왔다’, ‘집 앞에 있다’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면서…. 일절 대응을 안 했다.” (무시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었을 텐데….) “눈감으면 다 똑같다. 일절 안 만났다. 근데 공관위가 본격적으로 출범하면 더 많이 찾아올 것 같아서 그 말을 한 거다. 엄청난 불이익을 당할 것이고, 명단도 공개하겠다고. 그랬더니 좀 줄었다. 문자는 계속 오지만….” (뭐라고 하던가.)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어제오늘 아는 사이가 아닌데…. 내가 공천 부탁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뭐 이렇게….” (공천 부탁이 아니면 뭔가.) “그냥 하는 소리지.”

※인터뷰하는 3시간 동안 그의 휴대전화는 5분 간격으로 울렸다.

 

―그들만의 잘못이라고 하기 그런 게… 공천은 그런 연줄이 더 많이 작용하지 않나.

“그래서 딱 끊은 것도 이런 기회에 좀 바꿔보려고…. 전 원내대표들에게 의정활동 평가서를 받은 것도 같은 이유다.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정작 공천에 의정활동은 전혀 반영하지 않는 게 세상에 어디 있나.” (평가 자체를 안 하지 않나.) “없어, 없어. 내가 원내대표 할 때 나름대로 만들었는데 그 다음 공천 때 보니까 그 서류조차 본 사람이 없는 거야. 의정활동은 평가하지 않고, 여당은 청와대, 야당은 실세 줄 잡으면 공천되니 어느 놈이 의정활동을 ‘쎄빠지게’ 하겠노. 이제는 고쳐야지. 언론도 국정감사에서 뱀 흔드는 거 그만 쓰고… 쓰려거든 아직도 이런 질 떨어지는 의원이 있다고 썼으면 한다.”

 

―위원장은 어떻게 공천을 받았나.

“하하하, 빽 안 썼냐는 뜻인가? 내가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에 있다가 1992년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당선됐는데… 적임자가 없었는지 3차에서야 공천을 받았다. 당시 부산 공천은 YS(김영삼)가 했는데… 정치가 묘한 게, YS는 청와대 배려 차원으로 나를 넣었는데 정작 노태우 대통령은 나를 몰랐다. 그 때문에 민정계에서는 내가 상도동이랑 뒷거래한 거 아니냐고 봤다. 그래서 보통 청와대 떠날 때는 대통령과 커피타임을 갖는데 그것도 안 해 주더라.” (민주계에서는?) “부산에서 선거를 해야 하니까 민주계에서 좀 끼워주길 바랐지. 근데 또 여기서는 노 대통령 비서라고 안 끼워 주더라고. 선거운동을 하려면 YS랑 함께 찍은 사진이 필요했는데 아무리 노크를 해도 답이 없었다. 친한 선배에게 부탁해 어찌어찌해서 찾아갔는데 YS가 눈길도 안 줬다. 결국 사진 찍는 것도 실패하고…. 계보 정치할 성격도 아니고 끼워주지도 않고… 그렇게 살아왔다.”

 

―1차 후보 모집이 마감됐는데 인재가 많이 들어왔나.

“정치인, 특히 리더라면 국민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마음이 필요한데 한국당은 그러지 못했다. 그러니 공천도 힘들지. 당 이미지가 좋았으면 밀려들어 왔을 텐데. 물론 보수 통합 문제도 함께 걸려 있다. 통합신당을 거쳐 오려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어느 쪽이든 결국 여기 큰 강물로 모일 거라 본다. 개인적으로 열심히 찾고 있고. 추가 모집도 할 예정이다.”

 

―청년, 신인의 진입장벽을 확 낮추겠다고 했는데 아직 룰이 안 나오고 있다.

“기존의 가산점제는 효과가 없기 때문에 기본점수제를 줄 생각이다. 신인 여성 청년 장애인 국가유공자 당 사무처와 보좌관 출신 등 모두. 그 안에서 차등은 있지만 획기적일 거다.” (현역을 컷오프해도 신인은 지역 경선에서 쉽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럴 수 있는데 완벽한 제도는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 추린 뒤에 붙이니까 동네 마당발에게 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어떤 방식이길래?) “오늘은 거기까지만.”

 

―신인은 경선을 통과해도 본선 경쟁력이 낮은 경우가 많다. 낙선하면 공천 잘못이라는 지적이 나올 텐데….

“컷오프된 현역 의원들이 무리한 공천을 했다고 주장하겠지. 개인적으로는 억울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의 뜻은 대구경북(TK)에서부터 새바람을 불어넣어 달라는 것 아닌가. 부산경남(PK)도 마찬가지다. 대승적 결단을 해줬으면 한다.” (‘사랑하는 사람, 아끼는 사람한테도 칼날이 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사람도 김 위원장이 사랑한다는 걸 아나?) “알지.” (굉장히 떨고 있겠구먼.) “하하하, 그럴 수도.”

 

―홍준표 전 대표, 김태호 전 경남지사는 고향 출마를 고수하고 있다.

“한마디만 하자면… 홍 전 대표는 이 당의 대선후보까지 한 사람이지 않나. 희생할 만큼 했다고 하지 말고, 당에 대한 고마움도 있어야 한다. 대선 때 그를 위해 당원들이 얼마나 수고를 많이 했겠나.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올바른 처신인지 알 텐데….” (맡겨 주면 PK 40석을 책임지겠다는데….)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노. 그런 몸 사리는 모습으로 달성이 되겠나.” (그가 무소속으로 나와 표가 갈려 패하면 어떻게 하나.) “나야 각오했으니까… 피하지 않을 거다.”

 

―어찌됐든 앞으로의 보수 정치는 위원장 손으로 거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바라는 점이 있나.

“국회의원도 마찬가지고 고위직을 지낸 사람들은 다 자기가 잘나서 된 걸로 착각한다. 국가와 사회가 없었다면 가질 수 없는 것인데도…. 우리 지도층의 공동체에 대한 애정결핍증이 너무 심하다. 눈 덮인 밤길을 함부로 걷지 말라는 시도 있지 않나. 오늘의 내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고…. 그런데 오히려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이정표를 만들고 있으니….”

※그가 말한 시는 백범 김구 선생이 애송하던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日我行蹟(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이다. 청와대 여민관에도 이 시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선정했다. 말속에 뼈가 있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2020-02-11 동아일보] 기사원문 ☞ 바로가기 ☜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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