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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속으로/신문/방송기사

[아파트 대책]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백전백패한다

몰아치는 추위와 미세먼지 속에 코로나가 맹위를 떨친다. 집값은 계속 오른다. 전국의 땅값이 들썩인다. 대통령 지지도는 40%에서 턱걸이하고 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쪽이 훨씬 높아진 지는 오래됐다. 정책 실패의 주요인으로 누구나 부동산 문제·아파트 대책을 꼽는다. 이 정권 들어 24번이나 대책을 발표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다. 24전 24패, 전패다. 이순신 장군은 23전 23승이라는 찬연한 기록으로 세계사에 빛나지만, 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대표적인 정책 실패기로 역사에 남지 않을까 싶다. 뒤늦게 장관을 바꾼다고 했지만 집값·땅값은 계속 오른다. 장관 교체가 해답이 아니라는 반향이 이미 나왔다. 자질과 품성에 문제가 드러나 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할지 의문이다. 이쪽을 틀어막으니 저쪽이 튀고, 저쪽을 봉쇄하니 또 다른 곳에서 문제가 불거진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고3 때 비염 수술을 잘못 받아 얼굴 일곱 구멍에서 피를 쏟은 적이 있다. 한쪽 코에 아기 주먹만 한 솜뭉치를 쑤셔 박으니 다른 쪽으로 피가 쏟아졌다. 양쪽 코를 다 막으니 입으로 쏟아지고 두 눈과 두 귀로까지 흘러나왔다. 좀비나 저승사자 모습이 따로 없었다. 그때 당황하던 의사와 간호사 모습이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아련하다. 몸무게가 20kg이나 빠지고 학교를 4달간 못 갔다. 죽음의 계곡을 건너며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겼다.

 

지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죽음의 골짜기에 들어섰다. 내 비염 수술처럼 잘못 건드린 결과다. 비염 수술은 요즘으로 치면 수술 급에도 들지 않을 만큼 간단하지만, 아차 실수하면 동맥을 건드리거나 코뼈를 망가뜨릴 수 있다. 두 가지를 다 겪은 나는 만성 비염으로 평생 시달리고 있다. 부동산 정책, 곧 아파트 문제는 삶의 기본이고 중심이다. 사람으로 치면 얼굴이고 그 중에서도 코에 해당한다고 할까. 소중할수록 기본을 잘 지켜 가꾸어야지 억지로 무리수를 두면 탈이 나거나 망가진다. 의식주(衣食住)는 인간의 기본욕구이다. 수십 년간의 눈부신 성장 발전으로 외형상·수치상으론 이 세 가지가 해결되거나 해소됐다. 누구 말대로 오천 년간의 가난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생활 수준이 나아질수록 욕구는 더 커진다. 그러므로 의·식·주 이 세 가지는 결코 완전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며 영원히 인류와 함께 가야 할 문명(文明) 혹은 운명(運命) 그 자체다. 맞는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정부가 일일이 간섭하고 다스리려고 하면 스텝은 꼬이고 망가진다. 특히 주거 문제는 더하다. ‘내집 마련’은 슬로건이 아니라 이룰 수 있는 현실이 돼야 한다. 이것이 허망한 꿈이 돼버린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정책 탓이다. 실수요자의 다양한 욕구는 뒷전인 채 오직 공공·공익성·관주도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발연대 시절 노상 듣던 레퍼토리의 반복이다. 입은 요란한데 머리는 비었고 가슴은 식었다. 20-30대, 1-2인 세대, 신혼부부, 40-50대 가정, 노인세대의 주거문제를 이들의 입장에서 다양하고 특별하게 접근해야 한다. 청와대나 국토부, 주택공사의 탁상공론이 답이 될 수 없다. 내 입맛에 맞으니 너희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는 주입식 공급 대책은 이미 실패했고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다.

 

서울 아파트 전경 (출처:조선일보)

 

도대체 아파트 값은 왜 오르는가. 누가 올려달라고 했는가. 정부가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가격이 뛰지 않는가. 세금으로 부동산 정책을 바로 잡겠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왔는가. 재산세는 기본이고 종부세 폭탄에 건강보험료까지 인상되니 살던 집을 팔아 세금을 내야 하는가. 그러면 또 양도세를 중과하지 않는가. 서민은 집을 가지면 안 되는가. 춘향전의 변학도는 남원골에서만 수탈하였지만 지금은 정부가 앞장서 총체적 세금징수를 하니 백성의 눈물이 땅을 적시고 원망소리가 하늘까지 다다를 지경이다(민루낙 원성고 民淚落 怨聲高). 춘향전의 작가가 나타난다면 전국적 가렴주구(苛斂誅求) 현상이라며 새로운 이몽룡의 등장을 노래하지 않겠는가.

 

중산층의 척도는 ‘내집’에서 출발한다. 자가(自家)냐 아니냐가 아니라 ‘내집’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중산층이 강해야 민주주의는 성숙한다. 민주주의 정부일수록 중산층 육성에 힘을 기울인다. 우리만 그 반대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정부가 ‘내집 마련’의 꿈을 짓밟는 이면에 중산층 해체라는 무서운 이념이 도사리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민주주의의 기반인 중산층이 맥을 못 추고 젊은이는 꿈을 잃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인간의 욕구를 다스리겠다는 정부가 세상에 어디 있나. 그것도 규제 일변도와 세금 징수책으로 밀어붙이니 반발하고 실패하는 것이다. 열린 마음과 따뜻한 가슴 대신에 경직된 사고와 오기(傲氣) 정책 때문이다.

 

 

정부의 아파트 정책은 처음부터 잘못됐다. 무엇이, 어떻게, 왜 잘못된 걸까. 문제는 아직도 이 정권 들어 아파트값이 폭등하는 이유를 모르니(아니 모른 체하니) 답답하다. 전 정권, 전전 정권 탓을 하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아파트값은 이 정권이 올렸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가면 계속 오른다. 경제는 더욱 왜곡되고 서민 대중은 몰락의 길로 몰리게 된다. 비염 수술처럼 가장 편하게 하면서 고통을 근절시킬 수 있는 정책이건만 가장 어렵게 하면서 엉망으로 만들었다. 잘못된 수술로 평생을 고생하는 나처럼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전 국민이 고통과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 더는 이 불행이 후대로 전가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한마디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아파트 정책, 부동산 대책은 실패한다. 정책이 왜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지를 아래에 나열해 본다.

 

 

【때문에 실패한다】

 

아파트·부동산 문제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전국의 집값·땅값을 계속 끌어올려 서민 대중은 물론 온 국민을 불안케 하고 경제를 망쳐가는 이유는?

 

- 투기자본과 산업자본을 구분하지 못한 채 가진 자를 ‘죄악시’하기 때문

  * 집값 안정에 기여하는 주택 공급자,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몰아 공급이 위축되고 집값이 오른다는 사실을 모른 체하기 때문

* 진짜 투기자본은 손대지 않고 오히려 조장하는 듯한 것은 능력 부족인지 다른 속사정 때문인지...

 

- 집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정부가 마음대로 조절·관리할 수 있다는 사회주의·전체주의적 망상 때문

   * 시장의 자율 조정기능을 ‘몰각(沒却)’함으로써 정부가 부추기는 풍선 효과와 반시장적 두더지 잡기식의 규제가 반복되기 때문

 

- 민간과 기업의 자본 투자와 창의성을 유도하는 대신 획일적·경직적 지시와 명령을 일삼기 때문

  * 관 주도, 공공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주거 정책은 실패하기 때문

 

- 내집 마련의 꿈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실수요자를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확실한 비전과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

  * 내집 마련용이나 더 나은 집으로 가겠다는 사람에게도 자금줄(전세자금 대출, 주택담보대출 등)을 틀어막고 있기 때문

 

- 도심 공동화(空洞化)와 환경 위생을 위협하는 재개발·재건축 대상을 전 정부 정책이란 이유로 기피하기  때문

  * 지하주차장, 헬스센터, 보육시설을 갖추고 바퀴벌레, 쥐새끼 소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적 욕구마저 투기와 집값 상승요인으로 몰아붙여 시장의 불확실성만 가중시키기 때문

 

- 강북을 강남 같은 곳으로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어설프게 강남을 억제하려 들다 집값만 부추겼기 때문

  * 마찬가지로 지방을 서울처럼 만들겠다는 균형감 있는 종합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

 

- 좁은 국토를 잘 관리하여 후손에게 물려줄 생각은 않고 개발연대식 사고로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어 신도시 개발을 한답시고 국토를 파헤치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기 때문

   * 실수요와 동떨어진 조악한 인조 도시를 급조하겠다면 책임질 사람은 없고 정권으로부터 칭찬만 받기 때문

 

-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등 신조어 신개념을 속출시켜 전세 품귀현상을 빚고, 내집 마련이라는 꿈의 징검다리를 붕괴시켰기 때문 

 * 분양가 상한제 같은 땜질 처방으로 소수 당첨자는 횡재요, 다수 낙첨자는 박탈감이라, 전 재산이 걸린 아파트를 로또 복권처럼 다루기 때문

 

- 단속, 세금 징수 등 징벌적 수단으로 부동산 정책이 변질되었기 때문

  * 보유세 부과기준(공시지가)은 지역별로 들쭉날쭉 재량권을 남용하고, 종부세를 연 300% 까지 과잉 적용하는 등 "내 사랑하는 국민"이라 하면서 쥐어짜는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

 

- 1가구 1주택 등 건강한 주택 보유자에게까지 혜택이나 긍지 대신 사회적 열등감을 조장하기 때문

 

- 핵심 측근들의 부동산 투기·보유는 묵인·방조함으로써 정책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

 

- 돈은 마구 풀면서, 기업과 산업에는 규제를 강화해 돈이 갈 곳을 잃었기 때문

 

- 능력과 소신 있는 정책 전문가 대신 ‘충성심’을 잣대로 기용하기 때문

 

- 임대/임차, 전/월세, 자가/비자가, 아파트/연립/단독/다가구/주상복합/빌라/오피스텔..., 평수/위치/학군..., 강남/강북, 서울/수도권/지방 등 나누고 쪼개고 분열하고 대립시켜 갈등과 불안감을 조성하기 때문 

 

-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이 믿을 만한 중장기 대책이 전혀 없기 때문

 

 

대충 짚어봐도 이런데 전문가들이 보면 얼마나 할 말이 많겠는가. 거듭 말하지만 부동산 정책은 선(善)한 마음으로 임하면 길이 보인다. 인간의 본능을 증오와 질투심으로 다루려 하지 않기 바란다. 열 명 중 여덟아홉 명은 선한 사람이다. 나쁜 사람에게 적용할 제재를 대다수 선한 사람에게 적용하니 정책이 뒤죽박죽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바꿔라. 국민은 개돼지도 아니지만 야수도 아니다…

 

끝으로 나의 바보 같은 아파트 이야기를 한 토막 전하고자 한다. 넋두리로 들릴 수 있기에 읽지 않아도 된다.

 

결혼하면서 아파트 생활을 했다. 40여 년 전 아담한 아파트를 구입해 신혼살림을 한 사람은 당시로선 드물었다. 뭇 친구들의 부러움 속에 다시 얼마 후 강남으로 평수를 늘려 이사갔다. 얄팍한 봉급으론 감당이 안 돼 부모님께 한번 더 손을 벌렸다. 유산 미리 주는 셈 치시라며 뻔뻔스럽게 말이다. 강남에 한창 개발 붐이 일던 40년 전 일이다. 그 뒤로도 아파트 생활은 계속됐다. 이른바 서울서도 살기 좋다는 강남·강동·서초구와 국회가 있는 여의도를 오갔다. 물론 지역구인 부산 영도에서도 20여 년간 전세로 아파트 생활을 했다. 지역의 수많은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며 자신에게 다짐했다. 정치하는 동안 집 한 칸, 땅 한 평 사지 않겠다고. 그 약속을 지켰고, 정치인 치고는 비교적 깨끗한 삶을 살았다는 평을 들었다. 평생을 집 한 채로 살고, 40년 전 아파트나 지금이나 면적도 그대로다. 시세 차이를 노려 팔거나 산적은 없다. 다른 건물이나 부동산도 없다. 결혼 후 한번도 집 없이 살아보지 않았고, 집으로 치부(致富)하지도 않았다. 훌륭한 선배 정치인의 뒤를 따른다는 은근한 자부심도 배었다. 나와 비슷한 월급쟁이나 공직자 중에 집도 없이 살다가 몇십 년 만에 대단한 부동산 소유자가 된 걸 보면 겉으론 부럽다고 했지만 속으론 결코 존경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들어 나는 바보 같은 공인이며 가장(家長)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자식들에게 재산은 물려주지 못해도 명예만큼은 간직시키겠다며 살아왔다. 이 정권 들어 치솟는 부동산으로 서민들의 꿈을 앗아가는 정책에 실망하지만, 반면에 정권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눈부신 부동산 투자(?) 능력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젊은 사람들이 어쩌면 이렇게 이재에 밝을까. 참 머리가 잘 돌아가는구나. 정책 관련자, 권력 주변 인사가 돈을 벌거나 정책이나 정보로 이득을 챙기는 것은 소인배들의 짓이라고 폄하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그들의 뻔뻔스런 태도는 올곧고 정직하게 살고 있는 수많은 공직자들을 바보 멍청이로 취급한다. 오랫동안 불문율처럼 이어왔던 공직의 도덕적 규범이 깨지고 있다. 대통령부터 노후 거처를 챙기는 마당에 어떤 공직자인들 흔들리지 않겠는가. 40여 년간 지녀왔던 자부심도 명예도 흔들린다. 그러나 몰라서 그렇지 수많은 공직자·공무원들이 금도를 지키며 안분자족하는 삶을 산다고 믿고 싶다. 일부 철새 무리들이 물을 흐리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나의 거소에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공인으로서 공직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이 추위에 불편한 거처에서 꿈을 잃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겸손하고 미안해하고 배려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자고 거듭 다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