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농 강영훈 국무총리님!
신록의 계절 5월에 이 땅에 오셨다가,
다시 또 5월에 우리 곁을 떠나신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습니다.
지금쯤 총리님께서는 사모님과 함께 환한 미소로 천상의 길을 거닐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모습을 떠올리면 그리움 속에서도 제 마음
한결 따뜻해집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조국의 5월 산하는 여전히 푸르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총리님께서 소망하시고 염원하셨던 나라와는
오히려 멀어지는
것만 같아, 오늘 이 자리에 선 저는 부끄럽고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총리님!
총리님은 저의 영원한 사표이시며 멘토이셨습니다. 제가 총리님을 두 차례나 모시고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일생의 큰 축복이자
행운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저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고
오늘의 제가 있도록 결정적 역할을 하셨습니다. 누가 제게 가장 존경하는 분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습니다.
바로 강영훈 총리님이십니다.
저는 오늘 이 특별한 자리에서 총리님과 저의 특별한 인연,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포함해서
말씀드리는 것으로 추도사를 갈음코자 합니다.
총리님과의 첫 인연은 외교안보연구원장 시절이었습니다. 동아일보 ‘신동아‘에 제가 쓴
긴 르포 기사를 눈여겨보시고, 생면부지의 저를 특별히 불러 주셨습니다. 그 뒤 연구원에서 함께한 3년은 지금도 제 가슴속에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연구원장 시절, 총리님께서는 한 번도 그 직위로 사람을 대하지도 평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특히 저에게는 싫은 말씀, 언짢은 표정 한 번 없이, 저를 아끼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바쁜 가운데서도 저와 단둘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연합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숨은 이야기, 총리님 자신의 삶과 철학, 6.25, 4.19, 5.16 같은 몸소 겪으신 민감하고 내밀한 일들까지도 흉금을 열고 들려주셨습니다.
총리님께서는 늘 제 의견을 먼저 물으셨습니다. 견해가 달라도 꾸짖지 않으셨고, 당신의 의견을 강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대화를 마치고 나면 어느새 제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총리님은 참된 설득의 대가이셨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진정한 지도자이셨습니다.
때로는 댁으로 불러 주셔서 사모님께서 손수 차리신 저녁을 함께하며 단 셋이서 정담을 나누던 일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평화로운 식탁, 사모님의 따뜻한 미소, 총리님의 온유한 말씀은 제 삶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총리님과 사모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셨던 2남 1녀의 자제분들은 물론, 손자손녀들에 이르기까지, 두분이 남기신 믿음과 사랑의 가풍이 후손들의 삶 속에 훌륭히 자랑스럽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80년대 후반, 국제무대에서 외교 활동을 마치고 귀국하신 뒤에는 “지나가다 생각나 들렀다” 하시며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총리실 제 방을 예고 없이 찾아오신 일도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근처 커피숍에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총리님께서 어느 날 국무총리로 부임하시고, 제가 정무비서관으로 다시 모시게 되었으니, 이보다 귀한 인연이 어디 있겠습니까.
총리 관저에서의 사적인 보고도 생각납니다.
오랜 외국 생활로 한국 사정을 알고 싶어 하시던 사모님의 요청으로 시작된 자리였지만, 어느덧 그것은 총리님께 드리는 보고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만나고 혼자 준비하였지만 총리님께서는 이미 아시는 내용도 사모님 앞에서 짐짓 처음 듣는 듯 반응하시며, 제가 소신껏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소야대 시절, 국회에 다녀오신 뒤면 마음이 상하셔서 저를 따로 불러 “그만두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전심을 다해 만류했습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
총리님께서 자리를 지켜 주시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벽창우(碧昌牛)라 하실만큼 강직한 총리님 고집을 감히 꺽어본 유일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품격과 절제가 사라진 오늘의 국회와 정치 현실을 볼수록, 총리님 같은 큰 어른이 더욱 그립습니다.
제가 현실 정치에 뛰어들겠다고 결심했을 때도 총리님께서는 “자네 같은 사람이 정치를 해야 이 나라 정치가 바뀐다”고 등을 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정치에 들떤 저를 청와대에서 함께 일하자며 강권하는 통에, 그렇다면 차라리 여기 남아 총리님 모시겠다고 제가 고집하자, 총리님께서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큰물로
가라”며 저를 놓아 주셨습니다.
제가 1992년 제14대 총선에 당선되었을 때도, 정치인으로 걸어갈 때도, 마침내 국회의장이 되었을 때도 누구보다 기뻐하시고 축하해 주셨습니다. 총리님은 언제나 제가 믿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자 든든한 버팀목 이셨습니다.
총리님께서 좌우명처럼 쓰시던 이신작측(以身作則), 곧 남보다 먼저 실천하여 모범을 보인다는 말씀은 총리님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총리님께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평생 솔선수범과 언행일치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격랑의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서 능력과 인품, 애국애민의 정신으로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으신 분, 갈등과 분열의 시대를 포용과 화합과 소통의 리더십으로 감싸 안으신 분, 맑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사람을 이끄신 큰 어른이셨습니다.
총리님!
그때는 미처 몰랐으나 이제는 알겠습니다. 총리님은 제 삶의 기준이셨습니다. 부하로서, 후배로서, 제자로서 총리님과 한 시대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더없는 영예이고 행복이었습니다.
청농 강영훈 국무총리님!
주님의 넓은 품에서 사모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저희는 총리님의 뜻과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총리님께서 평생 보여 주신 믿음, 절제, 품격, 나라 사랑의 길을 오래오래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주님의 평화 안에서 영원히 안식하소서.
2026년 5월 10일
김형오 삼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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