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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김형오의 말말말

[김형오의 행복편지] 창덕궁에 있는 ‘세종대왕의 앵두나무’를 아시나요?

김형오의 행복편지


창덕궁에 있는

‘세종대왕의 앵두나무’를 아시나요?



안녕하세요? <행복이 가득한 집> 독자 여러분. 김형오입니다.


지난 4월, 아내와 함께 창덕궁 나들이를 할 기회가 있었답니다. 창덕궁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인 것은 다들 잘 아시죠?


잠시 일상을 접고 집밖으로 나서면 새롭게 만나게 되는 사람이나 예기치 못한 뜻밖의 상황으로 일상과는 다른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전 준비나 계획 없는 즉흥나들이가 더 묘미있다고도 하죠. 하지만 고궁같은 문화 유적이나 박물관을 갈 때는 미리 공부를 하고 가야 그 진면목을 볼 수 있을 뿐더러 더욱이 함께 간 아이들에게 설명도 해주고…, 그 정도는 되어야 앞서가는 부모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간단하게 준비할 수도 있다지만 저처럼 앞서 다녀온 사람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 답사 경험을 바탕으로 창덕궁에 대한 느낌과 몇 가지 정보를 전달해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간 날은 나들이하기에 참 좋은 날씨였습니다. ‘고향의 봄’이란 동요 가사처럼 4월 중순의 창덕궁은 ‘울긋불긋 꽃 대궐’을 차리고 있었지요. 신록이 한창 자태를 뽐내는 때라서 나뭇잎들 사이로 비스듬히 내려앉은 햇살이 아내의 이마에서 연두빛깔로 연하게 일렁이고 있었고, 제 마음도 연둣빛으로 물드는 기분이었습니다.


참, 언제부터인가 고궁에 들어서면 꼭 전각(殿閣)의 뒷면이나 옆면을 챙겨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대개 화려한 전각 앞면에서 받은 설렘 가득한 감흥이 뒷면이나 옆면을 보면서 차분한 감흥으로 정리되는 듯한 느낌 때문입니다. 저 혼자서 ‘다각적 감상’이라고 하는데 풍광을 제대로 감상하는데 만 필요한 게 아니라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효과가 있는 방법입니다. 독자여러분도 ‘다각적 감상’ 한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넓은 창덕궁을 좁은 지면에 일일이 다 소개할 순 없고, 우선 대조전(大造殿)으로 여러분을 안내하렵니다. 자 잘 따라오세요. 대조전은 한자 그대로 크게 만든다, 위대한 창조, 그런 의미를 갖고 있는 공간입니다. 성군의 자질을 갖춘 왕자가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긴 이름이지요. 왕비가 거주하며 왕실의 대를 이어가던 곳으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어 궁 밖에서 대조전 뜰까지 가려면 적어도 5개 이상의 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구중궁궐(九重宮闕)이란 말을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대조전은 중앙에 6칸 대청을 두고 그 좌우로 4칸씩의 온돌방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임금님 내외가 침실에서 사랑을 나눌 때면 그 양 옆 여덟 개의 방에서는 여덟 명의 상궁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군요. 자객의 침입을 막고,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나요? 역시 왕과 왕비는 보통사람이 아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조전 왼쪽으로 난 문을 통해 들어가면 수라간이 나옵니다. 창문 너머로 내부를 들여다보면 두 개의 일제 오븐과 타일을 바른 벽, 수도 시설 등이 보입니다. 국내 최초의 현대식 부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연료로는 숯을 사용했다더군요. 임금님이 드실 음식을 준비 할 때 뿐만아니라 온돌을 덥히는 데도 나무가 아닌 숯을 썼다고 하니, 하루에 필요한 숯이 만만치 않은 양이었을텐데 그 숯을 어떻게 준비했을까 하는 궁금증에 여러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답은 구하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과 후궁인 경빈 김씨의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깃든 낙선재(樂善齋)도 퍽 인상 깊었습니다.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헌종은 왕비를 맞았으나 그녀는 후사 없이 요절하고, 그래서 두 번째 왕비를 간택하는 행사를 열고 조선 8도에 13세부터 17세까지 사대부 집안 처녀들에게 금혼령을 내립니다.


원래 왕은 왕비후보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말아야 했지만, 호기심 많은 헌종은 왕실 어르신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최종 심사 때 몰래 신부감을 살폈다고 합니다. 헌종은 은근히 한 여인을 맘에 두고 그녀가 간택되길 바랐지만 왕실 어르신들은 다른 여인을 왕비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 왕비로부터도 3년이 지나도록 후손이 없자 대가 끊길까 걱정한 왕실에서는 후궁을 맞게 됩니다. 그 후궁이 바로 헌종이 첫눈에 반했던 그 여인, 경빈 김씨였지요.


헌종은 경빈 김씨를 낙선재에 살게 하면서 애틋한 사랑을 나눕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년 뒤 23살 나이로 헌종은 자식도 없이 승하하고 맙니다. 경빈 김씨와의 아름다운 사랑도 막을 내립니다. 경빈 김씨는 77세까지 살았다더군요.


낙선재의 정문은 장락문(長樂門). ‘오래도록 즐거운 문’이란 뜻인데 이 얼마나 아이러니합니까. 그런 바람과는 달리 행복은 너무나 짧았으니 말입니다. 낙선재의 꽃담에는 장수를 뜻하는 거북과 다산을 의미하는 포도 등의 문양이 아로새겨져 있지만, 그런 소망도 헛된 꿈이 되고 말았지요. 조선시대에 가장 큰 집이 궁궐이었지만 그곳이 가장<행복이 가득한 집>이었을까하는 상념에 잠기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 대답은 독자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창덕궁 정원에서는 앵두나무가 심심찮게 눈에 띕니다. 효자였던 문종이 앵두를 유난히 좋아했던 아버지 세종을 위해 손수 정원에 심었다고 합니다. 바로 효심 깊은 ‘세종대왕의 앵두나무’입니다.


여기서 잠깐, 정보 하나를 귀띔해 드릴까요? 올해 6월 중순쯤 창덕궁에서는 궁궐 과실 맛보기 행사가 열릴 예정이랍니다. 앵두와 오디가 익는 철에 맞추어 관람객들을 위해 마련하는 이벤트라는군요. 저도 시간만 허락된다면 외손자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참여하고 싶습니다. 입술과 손가락을 앵두와 오디 빛깔로 물들인 외손자에게 세종대왕의 얘기를 들려주며 함께 걷는 모습, 상상만으로도 흐뭇합니다.


600여년 이라는 세월의 길이와 역사의 깊이만큼이나 영욕이 명멸했던 공간 창덕궁. 아이들에게 전각과 풍경 뒤에 깃든 역사의 한 자락을 얘기해 준다면 생생한 산교육이 되지 않을까요? 꼭 창덕궁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6월에는 고궁이나 유적지를 자녀와 함께 찾아가 이 땅의 역사와 문화를 되새겨 보는 추억하나 만들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화창한 봄날, 창덕궁을 나서며 문득 역사 소설이라도 한 편 써 보고 싶다는 작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창덕궁에서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며 정원을 거닐었을 여러 임금님들, 그 분들이 했을 고민과 사색이 지금의 제 마음과 그리 다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김형오


1947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학원 졸업 후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92년 14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국회의원 직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장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1999년 수필가로 등단했으며, 얼마 전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생각의 나무)라는 에세이집을 냈다. 그밖에 <돌담집 파도 소리> 등 다수의 문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