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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김형오의 말말말

2009 제61회 제헌절 경축사


선진·분권·국민통합 헌법으로
새 역사의 지평을 여는 대장정에 나섭시다.

- 제61주년 제헌절 경축사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제헌 6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 하신
역대 국회의장님, 각 당의 대표를 비롯한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이용훈 대법원장,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한승수 국무총리, 양승태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그리고 각계에서 선출되신 자랑스러운 국민대표와 내외 귀빈 여러분,

61년 전 오늘, 제헌국회는 건국의 이념과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을 담은 민족의 장전을 선포했습니다. 자유롭고 부강한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목표 아래 대한민국의 기틀을 닦고 주춧돌을 놓았습니다. 우리는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세계사에 유례없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파란과 질곡의 고비 고비를 슬기롭게 헤치고 건국, 산업화, 민주화의 위업을 차례로 이뤄냈습니다.

제헌의회가 희생과 열정을 바쳐 탄생시킨 대한민국 헌법에 대해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며, 헌법정신을 면면히 이어 발전시켜 온 애국선열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세기의 위대한 성취를 이어받아 전진과 도약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던 대한민국이 지금은 선진국 문턱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특히, 제헌 60주년을 맞아 뜻 깊은 역사적 시기에 출범한 18대 국회는 출발부터 난항을 겪으면서 대치와 공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1년 365일 중 320일 이상을 밤낮으로 일하며 새 조국을 위해 열정을 바치신 제헌의원들께 참으로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18대 국회처럼 문을 열기도, 법안을 상정하기도 어려운 국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여야 모두 제헌의 정신을 이어받아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제헌 61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는 헌법의 소중함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새기며 국민의 국회로 거듭 태어나야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지금, 반드시 완수해야 할 역사적 과제 앞에 서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도약과 선진국 진입을 위해 22년 전 개정된 헌법을 새롭게 바꾸는 일입니다. 건국 이래 우리 헌법은 아홉 차례 개정됐지만, 그 대부분은 집권세력의 정권연장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87년 제9차 개헌으로 만들어진 현행 헌법은 온 국민의 분출하는 민주화 열망과 수많은 시민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탄생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권위주의를 해체하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냈습니다. 인권 신장과 지방자치 등 민주화의 값진 성과도 거뒀습니다.

그러나 현행 헌법은 급변하는 환경과 시대조류에 대처하는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87년 체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 위에서 이를 창조적으로 극복하는 헌법 개정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개헌의 여건은 무르익고 있습니다. 최근 헌법 학자들을 비롯한 학계, 시민단체는 물론 대다수 국민이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18대 국회의원의 3분의2 이상이 개헌에 긍정적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머지않아 닥쳐올 초고령사회 이전에 선진국 진입을 위해 국가의 체계를 다시 짜야 합니다.

저는 오늘, 여야 정치권과 국민 여러분께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와 공론화를 정식으로 제안합니다. 87년 헌법의 기본 정신을 계승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새 지평을 여는 21세기 헌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세 가지 개헌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시대의 변화를 최대한 반영하여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선진헌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급격한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파생된 노선과 이념의 차이를 사회적 합의와 개헌을 통해 극복해야 합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선진화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선진헌법은 자유, 인권, 다양성, 관용과 배려 등

개인과 공동체의 가치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합니다.

세계화, 정보화, 지방화라는 거대한 시대적 조류도 포괄해야 합니다. 미래지향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아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선진국으로 가는 대장전인 것입니다.

둘째, 권력의 분산을 실현하고, 견제와 균형에 충실한 ‘분권헌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5년마다 판박이처럼 되풀이되는 불행한 역사를 겪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비극은 국민의 불행이자 국가의 불운입니다. 현행 헌법은 권력 간의 견제 장치가 모호하여 3권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통한 합리적인 국가 시스템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향상시키고 국가 운영의 효율성과 의회의 민주성을 제고해야 합니다. 권력의 집중 문제는 현실 정치에서 전부 아니면 전무식 투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야 정치권은 차기 정권을 잡기 위해서 5년 내내 대선 전초전인양 대치와 충돌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야 극한투쟁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선진국으로의 도약은 불가능합니다. 분권헌법은 또 지방의 자율과 다양성을 보장하고 중앙과 지방의 역할과 기능을 명확히 함으로써 동반성장과 균형발전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셋째,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중심이 되어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통합 헌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역, 이념, 세대를 뛰어 넘어 국민 각계각층의 다양한 여론과 염원을 한데 모으는 헌법이어야 합니다.

국민헌법은 국민적 합의와 통합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당파적 이해나 국론분열적 주장은 배제되어야 합니다. 자유롭고 활발한 개헌 논의는 보장하되 제헌헌법 이래 지켜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 가치가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국회의장으로서 개헌 논의가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여야 정치권에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헌법 개정을 위한 국회 개헌특별위원회를 가급적 빨리 구성하여 이번 정기국회에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헌의 최적기는 18대 국회 전반기입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새로운 헌법안을 마련해서 국회 의결과 국민투표까지 마무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몇 년 내에 개헌의 적기를 다시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 국회는 1년 전부터 개헌에 대비하여 충분한 준비를 해 왔습니다.

국회의장 산하의 헌법연구자문위원회와 국회의원 연구모임인 미래한국헌법연구회는 물론 학계, 시민단체에서도 자료 수집과 연구, 토론회 등을 활발히 전개해 왔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파란과 곡절로 점철된 우리 헌정사에서 보듯이 개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개헌의 필요성,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과연 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주장을 조정하고 반영하여 개헌 작업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헌은 나라의 미래와 번영이 걸린 대역사입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자 역사적 소명입니다. 절차와 과정이 어렵다고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갈등과 분열의 험한 파고를 넘어 화해와 통합의 길로 가야 합니다.

우리 국민은 고비 때마다 그 어떤 장애나 난관도 극복해 내는 저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1948년의 제헌, 87년 개헌 때의 순수한 열정과 올곧은 자세, 경험과 지혜를 발휘한다면 2010년의 개헌은 반드시 달성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더구나 이번의 개헌 작업은 정치적 격변 속에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 정상적인 절차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국민적 자부심과 함께 역사적 의미가 더욱 빛날 것입니다. 또한 권력의 개입 없이 국민의 여망을 받들어 국회에서 준비하고 국회가 중심이 되는 상향식 논의라는 점에서 종전의 개헌 작업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제도보다 운영의 묘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을 합니다. 그러나 기초가 부실한 터 위에 어떻게 튼실한 집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기초와 골격이 제대로 갖춰져야 어떤 위기나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의 성숙한 민주의식을 바탕으로 지난 60여 년간 쌓인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선진국 도약의 기틀을 마련합시다. 세계 각국에서 열심히 일하는 해외동포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헌법, 온 국민의 대화해, 대통합, 대전진을 약속하는 선진화의 대장전을 만듭시다.

자유와 민주, 평화와 번영을 희원하는 헌법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며, 우리의 지혜와 열정을 하나로 모아 민족사의 새 장을 열어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2009년 7월 17일

국회의장 김형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