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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김형오의 말말말

“네 잎 클로버 찾는답시고 화단 다 망친다”


“네 잎 클로버 찾는답시고 화단 다 망친다”



의장공관엔 야생화가 한창입니다. 비바람에 많이 다치고 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꿋꿋이 자태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잔디도 아주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1년 전 황폐했던 정원을 이제는 외국손님들 앞에서 자랑스레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성을 쏟으면 달라지는 것이지요. 저의 성의에 이렇게 보답해주는 야생화가 고맙기조차 합니다. 어느덧 잔디밭을 가볍게 걷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잔디밭에서 클로버들이 보이더군요. 얼마 전에 잔디도 깎고 정리했는데 또 나타났군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네 잎 클로버를 발견했습니다. 물기가 촉촉한 네 잎 클로버를 손바닥에 놓고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분 좋은 아침, 아직도 본회의장을 지키는 여야의원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거워집니다. 벌써 며칠째 이러고들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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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제헌절 행사는 숨 가쁘게 치렀습니다. 5회째의 어린이 국회, 작년에 이은 61명의 국민대표 선임, 금년 최초의 대학생 토론대회와 제헌절 기념음악회 그리고 국제학술대회를 비롯한 각종 정책세미나, 당연한 하이라이트인 제헌절 경축식....


행사를 치르는 가운데서도 본회의장 안은 여야의원들이 장기대치중에 있었지요. 며칠 전까지는 중앙홀(로턴다홀)의 본회의장 입구가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봉쇄되었습니다.


우리국회의 특별한 모습을 외국인들 특히 국회를 찾은 외국요인들이 이해하는데 매우 힘들어합니다. 국회의장실을 방문한 외국대사들은 저에게 '왜 저러느냐'면서, 본회의장을 구경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매우 아쉽다면서도 의미있는 웃음을 짓습니다. 심지어 어느 선진국 대사는 "의장의 말 한마디면 당연히 해산하는데 왜 의장께선 가만히 계십니까?" 라고 묻더군요.


저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대답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리고 이런 대답을 해야하는 저 자신이 부끄럽고 짜증스럽습니다. 그래서 국회의장에게 선진국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사일정에 관한 최소한의 권한을 주자고 하니 또 야당에선 '이제는 의장독재 하려는가?' 하고 억지를 부립니다.


저에게 "어서 국회를 정상화시키라"라는 말씀을 계속하는 야당 지도자가 있습니다. 때리는 사람이 '아프다'라고 하는 말과 같이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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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습니다.

아 · 태국회사무총장들이 국회본회의장의 전자투표장치를 보러왔을 적에 입구를 봉쇄했던 야당의원들이 잠시 자진철수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다시 어린이대표들이 중앙홀 맞은편 예결위에서 오후 내내 행사를 하니 또 비켜주었습니다. 덕분에 행사가 차질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예의가 있는 국회의원들이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농성을 계속했더라면 어린이들이 "아저씨 찬 바닥에 앉아서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하고 물었으면 어떻게 대답하려했습니까? 설마 어린이들이 배우고 따라할까 봐 자리를 비킨 건 아니겠지요? 제헌절날 전직국회의장들이 본회의장 둘러보실 때도 여야의원 여러분들은 또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습니다.


제헌절 경축식과 음악회 때에도 본회의장 안에서 얌전히 당직 서느라고 의원 여러분 고생 많았습니다. 대학생 토론대회는 상임위장에서 진행하였는데 문방위의 농성모습을 차마 보여드릴 수가 없어서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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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방송법입니다.

이렇게 죽고살기로 싸워야 하는 법입니까? 여야의원 여러분, 여러분의 자식이나 조카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신문 · 방송 · 인터넷 가운데 어느 것을 가장 많이 보거나 이용하느냐고.


이미 답이 나와 있습니다. 신문도 방송도 아닌 줄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인터넷이 지금은 기승을 부리지만, 10년 후 아니 수년 후 미디어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어느 것이 주도할 지 아무도 장담 못합니다. 문방위원 여러분은 더 잘 알 것입니다.


물론 문방위 입장에서 보면 방송법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럼 다른 위원회 법은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 법 보다 더 중요한 것 많습니다. 이 법은 민생과 직결되는 법도 아닙니다.


이 법은 이른바 '조 · 중 · 동' 보수언론을 어떻게 참여시키느냐 하는 게 관건입니다. 협상하고 타협하면 못할게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의장인 제가 아무리 종용해도 협상도 타협도 하지 않습니다. 아예 대화조차 않으려 합니다. 10년 후 아니 5년 후 사람들은 이 법으로 그때 이렇게 치고받고 싸웠다고 하면 '아마 참 할 일없는 국회다'라는 소리를 분명히 듣게 될 것입니다.


방송법으로 온통 국회가 마비되고 있습니다. 아니 쑥대밭으로 되어 갑니다. 네잎 클로버 찾기 위해 온 꽃밭을 헤집는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네 잎 클로버 때문에 성한 꽃, 귀한 풀들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


 
의원 여러분, 네 잎 클로버의 환상에서 벗어나고 미련을 버리십시오. 할 일 많은 국회입니다. 갈 길이 멉니다. 이런 후진적 국회모습으로 우리가 결코 존중받기는 커녕 인정도 받을 수 없습니다.


 
본회의장 농성중인 여야 의원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불편한 잠자리지만 편히 주무시고 내일은 깨끗이 철수해주십시오.


저도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2009. 7. 19 새벽에


김 형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