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9 희망탐방

어느 타짜(?)의 스물 세번 연속 이긴 비결

우리는 종종 동전의 앞뒤면을 맞추는 놀이를 하곤 합니다.
50%의 승률이 보장된 게임이라는 거죠.

이 게임에서 6연속 같은 면이 나올 확률은 불과 1%대입니다.
하물며 승률 5할의 게임을 가지고 23번 연속 승리한다면
그 확률은 희박하다 못해 불가능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아니면 아주 주도면밀하게 사기를 친 경우이던가요.

지난 번 찬 바다에 잠긴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에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 싶었는데,
공교롭게도 머지 않아 김형오 의장과 함께 하는 '우리 땅 희망탐방'을 통해 기회가 생겼습니다.
해군사관학교를 방문하며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23전 23전승의 신화를 떠올릴수록 불가능을 뚫어냈다는 그 묘한 느낌에 취했습니다.
충무공 신화의 비결을 정리해 보고자 하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해사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 충무공의 영정입니다. 의복에서 광해군 때 영의정으로 추증된 걸 반영하여 그려진 것이 보이네요.
(즉,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려진 그림입니다.)


[ 충무공 이순신의 조선 수군의 무적 신화 비법 정리 ]

1. 뛰어난 조선술

조선 수군의 대표 함선은 판옥선이고
일본 수군의 대표 함선은 아다케였죠.

조선의 남해와 서해는 물살이 거칠고 조석 간만의 차이가 커서 평저형 배가 어울렸죠.
먼 바다까지 나갈 이유가 없으니 더욱 평저형인 판옥선은 지극히 조선에 걸맞는 배였고.
노략질 등 먼 바다로 나가야 했던 일본으로선 첨저형 배가 필요했을 겁니다.

▲ 조선 수군의 주력 함선인 판옥선은 평저선의 이점을 살려 함포술에 이용했습니다.

여기에서 전술적인 면을 좀 더 가미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래 전 해군 전술은 크게 3가지였습니다.

(1) 배와 배를 충돌시켜서 적선에 피해를 입힌다.
(2) 도선을 해서 백병전을 치른다
(3) 화살 등을 이용해서 적군에 위해를 가한다.

배를 만드는 재료에서도 판옥선은 참나무나 소나무를 이용했고
아다케는 삼나무, 편백나무 등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내구성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못도 조선 해군은 나무못을 사용한 반면에 왜군은 쇠못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판옥선의 나무못은 한 번 박힌 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숙히 박혀서
부품들 간의 이음새를 더욱 단단하게 조여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다케의 쇠못은 나무와 쇠의 내구성 차이로 인해
충격이 갈수록 오히려 틈을 만들어서 나무를 갈라지게 한다고 하네요.

그러니 (1)의 전술에서는 왜군이 이길 방법이 없었습니다.
왜선이 조선의 판옥선을 들이받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으니까요.

훗날 원균이 패하고 조선의 화포 중 상당 부분이 왜군으로 넘어간 뒤
왜군도 아다케에 화포를 장착하려 했으나 내구성이 약해서 실효성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나마 장착한 것 역시 얼마 안 되는 수의 화포였죠.

▲ 왜군의 주력 함선인 아다케는 첨저선이어서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내구성이 약했습니다.

또 (2)의 전술에서도 왜군은 수월치 않았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판옥선은 2층으로 되어 있어서 아다케에 비해 높이가 좀 더 높았습니다.
때문에 왜군이 도선하는데 있어 더 높은 위치로 올라야 했던 어려움이 있었죠.

이런 것만 봐도 조선 수군은 조선술에서부터 왜군에 앞서 있었습니다.
지금도 선현들의 대를 이어 조선강국을 유지하고 있죠.


2. 우수한 화력

임진왜란이 일어날 당시, 조선 수군은 판옥선에 화포를 장착했습니다.
그런데 왜군은 발사형 무기라고는 조총이나 활이 전부였습니다.
포와 총-화살이 싸우는 것부터가 이미 게임이 안 되는 것이었죠.

일본군이 도선을 하든 조총 공격을 하든 비교적 근접하기까지
큰 희생이 따랐습니다.

▲ 현자총통입니다. 총통은 크기에 따라 천자문 순으로 천, 지, 현, 황으로 이어집니다.

더구나 평저선은 제자리에서 돌 수 있었기 때문에
화포를 쏘고 장전하는 동안 반대편의 화포를 발사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이렇듯 화력의 집중도를 높이는데 평저선의 기능은 화포와 찰떡 궁합이었죠.

▲ 미사일 같이 생긴 이것은 대장군전입니다. 약 300m 정도 날아갔다고 하더군요.

또한 당시 테크놀로지의 결정체인 거북선은
돌격선으로서 철갑이란 신개념을 장착했는데요.
도선이 주특기인 왜군에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드는 괴물이었을 겁니다.

거북선의 함장은 지금으로 치면 소령급이었다고 하더군요.
훗날 정조 때 거북선은 45척까지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3. 철저한 훈련

이미 종영한 '불멸의 이순신'이란 드라마에서도 언급됐었지만
학익진, 일자진, 장사진과 더불어서 한 번씩 선보였던 것이 바로 '첨자진'입니다.

▲ 이것이 첨자진입니다. 큰 大 형상의 가운데에 있는 큰 배가 제독이 타는 배라고 합니다.

위가 작을 小, 아래가 큰 大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 두 글자를 합치면 뾰족할 尖(첨)이 됩니다.

이 첨자진은 당시 해군의 진법 중 구사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충무공 휘하의 조선 함대는 이 진법을 능수능란하게 펼쳤다고 하니
얼마만큼 철저한 준비와 훈련이 뒷받침 됐는지 짐작케 합니다.

또한 조선의 궁수들은 수년 혹은 10년 이상의 숙련도를 갖췄는데 비해
일본의 조총수들 중에는 급조된 병사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정확성 면에서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죠.

옛 말에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地利)는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충무공이 구심점이 되어 일치단결한 것.
바로 그것이 23전 전승의 비결 아니겠습니까?


4. 완벽한 전술

23전 전승 모두 완벽한 전술의 승리였고 한산대첩이 가장 빛났지만
당시 전세나 아군의 규모를 봐서 역전승의 짜릿함은 명량대첩에 비할 바는 아니죠.

충무공하면 늘 등장하는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란 말은
원래 오자병법에 나온다고 하네요.
어쨌건 명량해전에 임하는 충무공의 의지를 알 수 있는 어구죠
.

▲ 장검명(長劍銘)입니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충무공께서 장계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내용인 즉,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이도다.")

그런데 충무공께선 12척의 배로 133척의 배와 싸워서 물리칠 계책을 갖고 계셨습니다.

흔히 필사즉생, 필생즉사 뒤에 무슨 어구가 뒤따르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바로 일부당경 족구천부(一夫當逕 足懼千夫)이죠.
즉, 죽기로 싸우고자 한다면, 한 사람이 지켜도 천 사람을 당해낸다는 뜻입니다.

삼국지에서 장비가 조조의 100만 대군에 맞서 다리 하나를 두고 홀로 장판파를 지키며
호통으로 물리쳤다고 하는데 명랑해전이 딱 그 격이죠

불과 12척 밖에 안 되는 쇠해진 전함으로 10배가 넘는 왜군과 맞상대하는 것은
실로 무모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선을 울돌목까지 유인을 한 뒤
강강술래를 통해 기만전술을 펼쳤습니다.

이후 병목현상이 일어날 울돌목에 이르자 불규칙하고 거친 물살에
아다케가 주력인 왜선들은 자중지란에 빠지게 되죠.
더구나 첨저형인 아다케는 이런 거친 물살에 중심을 잡기 힘든 단점이 있었죠.
그래서 조선 수군의 공격 못지 않게 왜군 배들 간의 충돌도 상당했다고 합니다.

이 때를 놓치지 않은 조선 함대는 쇠사슬을 쳐서 왜선을 교란시키고
곧바로 화포 등을 통해 반격을 가해서 대승을 일궈냅니다.
이런 만화 같은 형국이 벌어진 건 그만큼 완벽한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죠.


이상 정리를 마칩니다.

그리고 한 가지 퀴즈를 내보겠습니다.
이런 천재적인 제독 이순신의 과거 급제 성적은어땠을까요?

정답은 아래 그림이 대신 답해줄 겁니다.



▲ 충무공의 과거 합격 성적입니다. 합격자 27명 중에 14등 정도였다고 하네요.

 Posted by 칸타타~
     (국회의장 비서실에 근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