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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쯤 <술탄과 황제>를 꼼꼼하게 읽고 서평을 써 준 블로거 bookworm님은 작가와 독자로서 인연을 맺은 소중한 분입니다. 그 때에도 받은 편지를 블로그에 실었습니다. 제가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출간한 사실을 알고 책을 읽은 후 편지를 다시 보내왔습니다.

너무 반갑고, 정치인이 아닌 작가 김형오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제 책을 기다려 주었다는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bookworm님의 양해를 얻어 받은 편지 전문을 아래에 싣습니다.

 

안녕하세요. ^^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2년전 <술탄과 황제>를 읽고 감동해 글을 올렸던 bookworm입니다. 의장님께서 그 글을 보시고 저에게 친필 사인하신 책을 보내주셨었지요.

 

그 책은 저의 책장에 항상 소중히 꽂혀 있습니다. ^^

 

얼마전 혹시 새책을 쓰셨을까 궁금해 검색해보니 작년에 책을 내셨네요! 제목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습니다. 인물의 내면 깊이깊이 들어가 철저히 탐구한 후 스스로 술탄이 되어, 그리고 황제가 되어 쓰신 <술탄과 황제>처럼 스스로 완전한 김구가 되어 글을 쓰셨으리라는 것을요. 또 어떤 진정성으로 저에게 크나큰 감동을 주실까, 기대가 됐지요.

 

부끄럽지만 저는 <백범일지>를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여러 판본이 있고, 후대의 사람들이 수정을 많이 가했다는 것을 알기에 원전에 집착(?)하는 저로서는 내키지가 않았지요. 원저자의 뜻에서 혹시나 토씨 하나라도 어긋날까봐 신경이 쓰였으면 다른 평전을 읽었으면 될텐데 그마저도 하지 않았으니... 그래서 지금까지 백범에 대한 책은 어릴 때 읽은 위인전이 전부였었네요.

 

이번에 처음으로 읽은, 백범에 대한 제대로 된 책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책날개에 쓰신,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이럴 때 김구 선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가늠하며 답을 찾았다고 하신 내용을 처음에는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몇번이나 눈물을 쏟을 것 같았고, 의장님께서 하신 말씀을 감히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다 가능했을까요? 아무리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백범은 어떻게 평생을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감히 따라할 엄두도 못 냈을 위대한 삶과 행적...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에 묘사된 백범의 어린 시절은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의 일은 일본인을 죽인 것 말고는 희미하고, 나머지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백범에 대해 읽고 들어서 당연히 알고 있는 내용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백범은 제 기억에 박제화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독립투사들을 뒤에서 조용히 지휘했던, 인자하게 웃는 검은 두루마기의 노인, 정도로요. 보지는 않았지만 작년인가 개봉했던 영화 <대장 김창수>가 누구에 관련된 내용인지 알고서야 개명전 백범의 이름을 떠올렸고, 위인전에서 읽었던 투쟁적인 면모가 얼핏 떠올랐었지요.

 

저는 1974년생입니다. 저에게는 뇌리에 남는 기억이 있는데, 중고등학교 때인 80년대 말 혹은 90년대 초쯤 읽은 명랑소설이 있어요. 제 세대의 책은 아니었는데 조흔파의 명랑소설 부류 비슷한 학원물이었지요. 아마 60년대나 70년대에 출판된 오래된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중학생인 주인공들이 길거리에서 자기네들끼리 사요나라~하고 장난삼아 인사했는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 아이들의 따귀를 때립니다. 그 아저씨는 자신이 독립운동가였다며, 한국어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고 고초를 겪었는지 아냐고 호통을 치면서 옷을 벗어 고문흉터를 보여주지요.

 

그 장면이 약간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저에게 독립운동가란, 위인전에 나오는 머나먼 인물이었습니다. 내 옆에 살아 숨 쉬는 누군가가 아닌,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이미지 같은 존재였죠. 그런데 6, 70년대에 출간된 그 책에서 독립운동가가 나이든 노인도 아닌,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장년의 아저씨로 묘사가 됐네요. 그때 처음으로 시간의 흐름에 필수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는 관념의 차이... 같은 걸 인식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나이가 들면서 수 십 년의 세월을 경험하며, 백범이 그리 먼 세대의 인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게 됐지요.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과연 백범은 어떤 의미일지... 2, 30년 전의 시대가 아득하게 느껴졌던 저의 어린 시절을 돌아봤을 때, 지금 젊은이들은 제가 생각했던 간극보다도 훨씬 더 멀어졌겠지요.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수 십 년의 세월을 살면 살수록 더 멀어지겠지요. 우리 조상들이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흘렸던 기억들이 지금 젊은이들이나 후세 사람들에게는 한산대첩이나 행주대첩 정도의 막연한 느낌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제가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읽으면서 더 감격했던 것은 위인전에 박제된 인물이 아닌, 가까운 시대의 살아 숨쉬는 영웅을 직접 접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영웅이 사라지고 없는 요즘 시대 최후의 영웅을 만나는 것 같았지요. 이런 위대한 인물이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이렇게 생생한 저작을 또 내놓으시다니, 감사하고 또 감사해서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상해 임시정부 건물에 갔을 때 그분들이 어떻게 지냈을지 눈에 보여 처연해지고 숙연해졌는데 굳이 상해까지 가지 않아도 이 책 한권으로 그 이상의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인간 역사와 함께 해온 펜의 크나큰 힘인 것 같습니다.

 

의장님께서 하시듯 '이럴 때 김구 선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저를 포함한 우리 국민의 백분의 일이라도 고민해본다면, 많은 문제들이 저절로 풀리고 사라질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국민들이 아닌 정치인들만이라도 그렇게 고민한다면 지금같이 편이 갈려 증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텐데요. 우리 시대의 영웅이 너무나 간절합니다.

 

사람들의 뇌리에 불러들여 충격과 감동을 주신 술탄, 황제, 그리고 김구... 앞으로는 어떤 깨달음과 감동을 주실까요? 기대와 함께 기다립니다.

 

늘 사회의 추상같은 원로로 남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존경을 담아

 

bookworm 드림

 

 

 

"bookworm의 서재"

: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서평 ☞ 바로가기 ☜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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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은책방 2019.04.10 0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와 독자의 아름다운 만남, 소중한 인연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

    Bookworm님의 서재를 방문하렵니다.

  2. BlogIcon bookworm 2019.04.26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
    친히 사인해서 보내주신 귀한 책 감사히 잘 받았다고 인사드리려 했으나 어찌어찌 시기를 놓쳤습니다. 이제야 늦게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얼마전 엄마들과의 독서모임에서 이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책을 추천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뀐 일정때문에 참석을 못해 다른 참석자가 정리한 내용을 일부 올려드립니다.

    "이 책은 이제까지의 백범일지와는 전혀 다른 형식의 책입니다.
    백범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를 다년간 연구한 작가가 문답형식으로 백범의 일대기를 조명할 수 있게 써 내려간 책입니다.

    혈기가 넘치고 거칠것 없었던 젊은날의 백범, 그를 변화시켰던 사상들과 사건들, 그리고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 임시정부 기간동안의 외롭고 고단했던 여정과 나라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그를 거쳐간 젊은 영웅들, 독립 후 열강들에 의해 국치가 좌지우지 되던 현실을 슬퍼하며 진정한 독립을 외쳤던 그의 마지막까지...

    읽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으면서도 꼭 읽어야 하는 책 임에 모두들 공감했습니다.

    독립투사들..그들은 어떻게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었을까요?
    현재의 우리의 여러 현실과 교육 아래에서는 백범과 같은 위정자는 더이상 나오지 못하는 것인가요?
    여러 씁쓸한 질문들을 던지며 대화는 이어져 갔습니다.

    백범의 위대함은 그가 가진 능력보다는 항상 민초들을 위한 마음에서 왔던게 아닌가 합니다. 문화와 교육을 통해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따뜻한 마음에서..."

    한 권의 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늘 감사드립니다.

특강 | 우리가 몰랐던 백범 김구

치하포 의거로 발현된 청년 김구의 피 끓는 애국심

 

 

227일 오전 8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청년 김구에 대해 특강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227일 오전 8시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에서는 시민 250명이 대회의실을 가득 메운 가운데 특강이 진행됐다. 주제는 우리가 몰랐던 백범 김구, 그 두 번째 이야기로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강사로 나섰다.

 

100년 전 나라를 되찾고자 온 국민이 떨쳐 일어섰던 3·1운동이 일어났다.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날 특강에서 김 전 의장은 평생을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살아온 백범의 우국지사로서 면모를 생생하게 되짚어 설명했다. 지난해 6월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를 문답식으로 정리한 책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펴냈다. 특강과 책에 담긴 내용을 통해 3·1운동 이전까지 청년 김구의 뜨겁고도 치열했던 애국적 삶을 되돌아본다.

 

 

백범 인생의 터닝 포인트

 


18962월 제2차 청국 기행에 나선 김구는 평안도 안주에서 다시 발길을 돌린다. 을미사변에 분개해 1월부터 전국 곳곳에서 을미의병이 봉기한 데다 아관파천, 단발령 정지(2) 같은 소식을 듣고 국내에서 할 일을 찾아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그를 일약 전국적인 유명 인사로 만든 치하포 의거는 이때 일어났다. 189639, 21세의 김구는 18958월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의 원수를 갚고자 황해도 치하포에서 일본 육군 중위 스치다 조스케를 처단한다. 이른바 치하포 의거다. 김구는 나루터 여관 주인 이화보에게 왜놈의 시체는 바다에 던져 물고기 밥으로 주라고 이른 뒤 다음의 포고문을 써 벽에 붙였다.

 

국모(민비)를 시해한 원수를 갚기 위해(國母報讐) 이 왜놈을 죽였노라. 해주 백운방 텃골 김창수.’ 

 

그러고는 이화보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네가 이 동네 동장이라 하니 안악군수에게 사건 전말을 알려라. 나는 집으로 돌아가 연락을 기다리겠다. 왜놈의 칼은 내가 가져간다.”

 

김 전 의장은 치하포 의거는 을미사변에 따른 순간적 의분으로 벌어진 돌발 행동이었지만 김구의 일생에서 훈장과도 같은 상징적 사건이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 김구는 백범일지에도 어떤 장면보다 치하포 의거를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사람의 일은 모름지기 밝고 떳떳해야 하오. 세상을 속이고 구차히 사는 것은 사나이 대장부가 할 일이 못 됩니다.’

 

스치다를 죽인 김구는 본가로 가지 말고 다른 곳으로 피신하라는 동학당 동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또한 그는 집으로 돌아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부모에게 낱낱이 전했고, 부모 역시 피신을 권하지만 듣지 않았다.

 

이 한 몸 희생해 만인에게 교훈을 줄 수 있다면 죽더라도 영광된 일입니다

 

치하포 의거는 피 끓는 애국 청년의 처절한 절규였다. 조선인이 살아 있음을 내외에 과시한 의거였다. 나라의 왕비(명성황후)를 무참히 시해한 일본인에게 복수하지 않으면 이는 국가적 수치이고 민족 자존심에 먹칠을 하는 일이었다. 유교의 윤리관, 동학혁명의 영향, 조선인으로 태어난 자의 의무와 사명감이 백범을 행동하게 했다.-‘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중에서치하포 의거 이후 김구는 해주 감옥에 갇혔다. 죄목은 세 가지. 첫째는 동학농민 봉기 때 동산평의 일본인 미곡 탈취 사건, 둘째는 장연에서의 산포수 거사 사건, 셋째는 치하포 사건이었다. 김구는 18967월 초 인천 감옥으로 이감됐다. 갑오개혁 이후 외국인 관련 사건을 다루는 특별 재판소가 인천에 생겼기 때문이다. 8월 마지막 날 인천 감옥에서 첫 신문이 있었다. 경무관 김윤정이 물었다.

 

치하포에서 39일 일본인을 살해했느냐.”

 

김구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날 내가 그곳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고자 왜구 한 명을 때려죽인 사실은 있소.”

 

법정 안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자 옆 의자에 앉아 신문 과정을 지켜보던 일본 순사 와타나베가 통역에게 까닭을 물었다. 김구는 죽을힘을 다해 이렇게 외쳤다.

 

지금 이른바 만국공법이나 국제공법 어디에 국가 간 통상 화친조약을 맺어놓고 그 나라 임금을 시해하라는 조문이 있더냐. 이 개 같은 왜놈아, 너희는 어찌하여 우리 국모를 시해했느냐. 내가 죽으면 귀신이 되어, 또 살면 온몸으로 네 임금을 죽이고 왜놈을 씨도 안 남기고 모조리 죽여버려 우리나라의 치욕을 씻으리라.”

 

와타나베는 치쿠쇼, 치쿠쇼”(본뜻은 짐승이지만 주로 욕으로 쓰는 일본어) 하며 대청 뒤쪽으로 도망쳤다.

 

김구는 재판소 관리들에게 따지듯 물었다.

 

나는 시골의 일개 천민이지만 백성의 의리로 국가가 치욕스러운 일을 당한 것이 부끄러워 왜구 한 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동포가 왜인들의 왕을 죽여 복수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당신들은 몽백(국상을 당해 소복을 입고 백립을 쓰는 것)을 하고 있는데, 춘추대의에서 나라님의 원수를 갚기 전까지는 몽백을 아니한다는 구절도 읽어보지 못했습니까. 한갓 헛된 부귀영화와 국록을 도적질하는 더러운 마음으로 어찌 임금을 섬긴단 말입니까.”

 

김구의 당찬 꾸짖음에 관리 수십 명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창수 말을 들으니 충의와 용기가 실로 놀라워 당혹스럽고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날 이후 김구는 감옥에서 대장이 됐다. 수백 명의 관원이 만나는 사람마다 제물포가 개항하고 감리서가 문을 연 이래 처음 보는 희귀한 사건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벌렸기 때문이다. 김구를 보려고 면회를 청하는 이들도 날이 갈수록 늘었다. 952차 신문일에는 경무청 주변이 인파로 뒤덮였다. 담장과 지붕 위까지, 경무청 뜰이 보이는 곳 어디든 구경꾼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올라가 있었다.

 

육신은 가두어도 정신은, 영혼은 가둘 수 없었다. 일제의 국권 침탈로 이미 속국이나 마찬가지가 된 나라에서 감옥은 백범에게 감옥 안의 감옥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아니, 오히려 김구는 감옥 안에서 나름대로 독립을 쟁취했다. 목숨에 연연하지 않았다. 죄수뿐 아니라 간수, 뭇 백성들에게까지 공감대를 넓혀갔다. 어느 순간 백범은 감옥 안에서 대장이 돼 있었고, 그의 명성은 감옥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 바깥세상 멀리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육신보다 정신이 먼저 탈옥해 있었다. (중략) 국난에 임해 영웅이 등장하고 위기에 지도자가 나온다. 이 한 몸 나라 위해 던지기로 한 청년 지사 김창수(백범)(치하포 의거를 계기로) 어엿한 지도자로 영글어간다. -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중에서

 

 

사형 직전 일어난 두 번의 기적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 [박해윤 기자]


1896117일자 독립신문에는 중죄인 5명과 함께 살인강도 김창수(김구)를 교수형에 처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신문이 배포된 뒤 김구가 갇혀 있는 감리서가 들썩였다. 죽기 전 그를 보려는 면회객 행렬이 옥문 밖까지 길게 이어졌던 것. 그러나 두 번의 행운이 겹치면서 김구에 대한 사형 집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첫 번째 행운은 고종이 사형을 중지하라는 어명을 내린 것이었다. 당시 사형은 임금의 재가를 받은 뒤 집행됐는데, 임금이 교수형 집행을 재가한 상태에서 뒤늦게 대궐 안에 있던 승지 가운데 하나가 명부에 적힌 김구의 죄명 국모보수를 우연히 보고 임금에게 안건을 다시 올렸고, “이 사안은 국제관계와도 맞닿아 있으니 일단 사형 집행을 중지시키라는 어명이 내려온 것이다. 두 번째 행운은 시간과 결부됐다. 사형 집행 중지 어명은 내려졌지만 인천 감리서까지 어명이 전달되기에 시간이 촉박했던 것.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사형 집행을 사흘 앞두고 서울과 인천 사이에 장거리 전화가 개설돼 임금의 지시가 감리사 이재정에게 극적으로 하달됐다. 김구는 만약 서울-인천의 전화 개통이 사흘만 지체됐어도 나는 스물한 살 나이로 형장의 이슬이 돼 사라지고 말았을 운명이었다백범일지에서 회고했다.

 

이와 관련해 학계 일각에서는 이견을 내놓고 있다. ‘고종이 직접 걸어온 구명 전화이야기는 서울과 인천 사이에 장거리 전화가 놓이기 전이므로 고종의 구명은 전화가 아닌 전보로 전달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죽음을 각오하고 결행한 치하포 의거를 계기로 청년 김구는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일평생을 나라를 되찾는 데 앞장서게 됐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백범 김구에 대한 이야기는 독립과 자유를 향한 그의 혁명가의 삶을 되짚어보는 두 번의 특강을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남북관계 잘되려면 주변국 지지 필수적


우리가 몰랐던 백범 김구, 그 두 번째 이야기특강 이후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따로 만났다. 김 전 의장은 “100년 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선조의 치열한 몸부림이었다면, 2019년을 사는 우리에게는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각성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대한제국 망국의 교훈은 지도자와 국민이 국제정세에 어둡고 투철한 애국심으로 무장돼 있지 않으면 나라를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00년 역사를 교훈 삼아 앞으로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각성의 계기로 삼아야겠죠.”

 

대한민국 미래 100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세계 정세 흐름을 분석하고, 우리를 지켜낼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남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러자면 내부적으로 화합하고 단결해야죠. 김구 선생은 세계 평화의 중심이 되는 나라를 만들자고 말씀하셨어요. 최근 남북을 포함한 동북아가 세계 평화의 중심축으로 작동할 기회를 잡고 있습니다.”

남북평화와 남북공존공영을 위한 방법론을 두고 우리 내부에서 이견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가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남북이 손잡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우리 민족이 자존감을 갖고 국제정세에 대응하는 것은 옳지만, 세계적 흐름 속에서 작동하도록 하려면 폭넓은 외교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의 국제정세 기본 축은 한미관계입니다. 한미안보동맹이 흔들리면 나라의 중심축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일관계도 지금처럼 어긋나 있게 방치해선 안 됩니다. 남북평화와 남북공존공영을 위해서는 한 나라라도 더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도록 당겨 와야 합니다.”

 

한일 간에는 위안부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한일 외교관계가 파탄 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국익을 위한 외교는 냉혹하면서도 고차원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한중관계도 기로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대한민국이 그들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되느냐가 중요합니다. 한국이 미국에게 중요한 존재인가, 중국에게 필요한 존재인가에 양국관계가 달려 있습니다. 국제관계는 투자 대비 효율이 떨어지면 언제든 포기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국이 북한 눈치를 보면서 한국을 우습게 여기도록 방치해선 안 됩니다. 중국이 남북한을 균형 있게 대하도록 하는 게 1단계이고, 남북이 뜻을 모아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것이 중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득하는 게 2단계 목표입니다. 남북관계가 잘되려면 무엇보다 주변국의 지지가 필수입니다.”

 

 

  

주간동아 2019.03.01 1178(p24~27)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19-03-04 주간동아]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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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주의 맛있는 인터뷰] 백범 사상 선양에 앞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백범의 솔선수범·희생·헌신, 한국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덕목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백범 좌상 앞에서 백범은 솔선수범, 희생, 헌신을 체화한 분이라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kimjh@


대한민국 정치 풍토에서 무계파·무계보이면서 큰돈도 없이 국회의장 자리에 오른 사람은 흔치 않다. 김형오(71) 전 의장은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합리적 보수주의자, ‘여의도의 신사등으로 불릴 만큼 정치인 중에서 비교적 괜찮은 이미지를 남겼다.

 

그는 정계 은퇴 후 왕성한 저작 활동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3년 전부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회장을 맡아 백범 사상을 선양하는 데 앞장서 오고 있기도 하다.

 

3·1운동 100주년과 백범 서거 70주기를 맞아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서울 용산구 임정로 26 백범기념관 안의 회장실에서 이뤄졌다. 그는 예의 논리정연함으로 기자의 질문에 막힘 없이 답했으며, 대한민국 정치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 국가 비전 등을 풍부한 경험과 식견으로 풀어냈다.


  •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맡아

  • 상하이~충칭 임시정부 역정 펴낼 예정

  • 백범일지풀어 쓴 백범 묻다인기

  • 정치 지도자들이 배워야 할 덕목 강조

  • 일제 잔재 청산 대승적 견지에서 봐야

  • 현 정부 외교안보 중요성 등한시 염려

  • 국민 친화력 탁월, 정책 유연성 떨어져

  • 개헌의 참뜻, 핵심은 권력구조의 재편

  •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 분산시켜야

  • 한국당, 돈 들여 연 전당대회 자승자박

  • 여당, 경남지사 판결 불복 전략적 실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기념사업회회장은 어떻게 맡게 됐나?

“2015년 김구 선생 아들인 김신(작고) 장군께서 강권해 맡게 됐다. 마지막 봉사라는 소명의식으로 임하고 있다.” 


-올해가 백범 서거 70주기인데, 기념사업회 차원의 특별한 계획은?

올해는 백범 서거 70주기일 뿐만 아니라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이다. 서거일인 626일에 뜻깊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상하이~충칭까지 임시정부 역정을 담은 답사기가 곧 나온다. 지난해 한·중 학자 11명으로 전문가 팀을 꾸려 답사하고 당시의 모습과 현재 변화된 모습, 임시정부와 김구 선생의 역할, 임정 요인들의 고난의 삶을 엮은 책이다. 역사에 남을 역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


-지난해 출간한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가 화제인데, 어떤 책인가?

백범과 관련해서는 수많은 책들이 나와 있다. 백범일지는 우리 국민들의 교양서 아닌가. 하지만 백범일지를 제대로 읽고 백범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백범 묻다…〉백범일지를 쉽게 풀어 쓴 책이다. 60개 항목의 문답을 싣고 항목마다 나 자신의 해설을 달았다.”


- 백범 묻다…〉는 곧 6쇄가 나올 정도로 많이 읽히고 있다. 백범의 리더십에서 오늘날 정치 지도자들이 배워야 할 덕목은 뭔가?

백범은 말과 생각과 행동이 초지일관된 삶을 산 보기 드문 분이다. 그리고 솔선수범과 희생과 헌신이 몸에 배어 있는 위인이다. 솔선수범과 희생과 헌신, 21세기 한국 정치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닐까.”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데, 그 역사적 의미는?

국내적으로 근현대사를 이등분하라면 3·1운동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중요한 사건이다. 국민·민중 같은 의식이 발현된 상징적 사건이다. 전 국민·전 계층이, 종파를 초월한 전 종교인들이, 전 지역 주민들이 장기간에 걸쳐 독립이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총궐기하고 단결하고 단합한 사건이다. 백범은 1946년 귀국 후 처음 맞은 3·1전날 경축사를 통해 ‘3·1절의 본질은 통일성에 있다고 규정했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를 바탕으로 3.1운동과 관련한 비화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풍부한 지식과 탁견이 예사롭지 않았다


-3·1절의 교훈은?

우리는 아직도 일제의 잔학하고 가혹한 통치를 들먹이면서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 대해 애석해 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대승적 견지에서 바라봐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말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무장하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게 3·1절이 주는 교훈일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일로인데?

그 부분이 안타깝다. 그런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존립하고 번영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외교안보이다. 이거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외교안보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하고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가 외교안보의 중요성을 등한시하고 있지 않나 싶어 걱정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이 다 돼 간다.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박근혜정부 시절 보여주지 못한 대국민 접근성과 접촉, 친화력은 아주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남북 긴장완화에도 상당한 역할과 기여를 했다. 반면 경제 분야에 있어선 확고한 방침이 안 보이는 것 같다. 정치를 너무 청와대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대국민 친화력은 있지만 정책을 유연하게 집행하는 능력은 떨어지는 것 같다. 자기들 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성공 가능성이 없고 피해 보는 사람도 많고 나라 경제나 위상이 구겨지는 정책이라도 끝까지 밀고 가는, 상당히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가지 꼭 첨부하고 싶은 것은 지금은 증오의 정치가 돼선 안 되고 편협한 정의가 작동돼서도 안 된다. 적이냐 아군이냐, 선이냐 악이냐 식의 단칼로 자르는 정치는 더 이상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 대통령은 같은 부산 사람이고 고교 후배이다. 나는 10년을 정부에서 공무원을 하면서 역대 정권의 명멸을 너무 많이 봤다. 대통령이 웃으며 청와대를 나가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게 개헌이라고 생각한다. 5년 단임제를 하다 보니, 정치적 단절을 초래하고 초반엔 제왕적 대통령에서 후반엔 식물형 대통령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정권의 충견이었던 검찰·경찰·국세청이 후반이 되면 싹 등을 돌려 대통령에 칼끝을 겨누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권력기관의 독립을 위한 개헌을 말하나?

그렇다. 검찰·경찰·국세청뿐만 아니라 국정원과 방송통신 등 5대 권력기관을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는 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이다.”


-이 정부 들어서도 개헌은 물 건너간 것 아닌가?

그럴 것 같다. 개헌의 참뜻을 최고 지도자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개헌하자는 것은 대통령께 집중된 권력을 합리적으로 배분하자는 것이 원취지다. 개헌의 핵심은 권력구조의 재편이다. 그런데 결국 대통령에 집중된 과도한 권한을 가져올 기관이 국회밖에 더 있나. 그래서 국회 개혁을 강조하는 거다. 대통령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국회에 일부 가져오고, 일부는 독립된 기관을 둬 분산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런 핵심 사항을 놓치고 다른 것을 자꾸 얘기하니까 개헌의 뜻이 없다고 봐야지.

개헌과 관련해 한 마디만 더 하자. 이 나라가 언제부터 미래 비전을 잃어버린 나라가 됐어. 5년 단임제 하다 보니 중장기 정책이 없는 거야. 5년 단임제의 약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하는 생각들을 안 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5년 단임제가 가지고 있는 권한을 그대로 두고 중임제를 택하면 8년 단임제가 되는 거야. 이건 더 나쁜 개헌이다. 그래서 나는 순수 대통령제로 하든지, 그렇잖으면 이원집정부제로 가든지 해야지 중임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 핵심은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돼야지.”


-국회 정치개혁특위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월 국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선거제도 개혁이 지지부진한데.

현 소선거구제에 문제가 많다. 당연히 개선돼야 하지만 국민들이 국회의원 정수 늘리는 데는 고개를 갸웃한다. 국회 정수 늘려도 되겠다고 국민들이 인정해줄 만큼 국회 개혁부터 먼저 하라는 게 내 입장이다. 국회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럴려면 2가지가 국회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하나는 선거제도개혁위원회이고 또 하나는 윤리위원회이다. 이 두 가지가 국회의원 입김과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국회의원들의 명줄을 딱 쥐면 국회는 확 달라지게 돼 있다.”

김 전 의장은 이런 게 진짜 개혁인데, 보수건 진보건 들으려 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 했다.


-국회가 제대로 일하게 할 방법이 없을까?

철학을 가진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 상대방 설득보다 우리 편에게 양보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이 이 시대 리더의 조건이다. 항상 진영 내에는 강경파와 원칙주의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게 진정한 용기고 능력이다. 지금 힘 있는 대통령이 참모들을 설득해 양보를 받아 내야지. 그걸 보여준 사람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노무현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내부 양보 받아내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아마 부산일보도 그렇지 않나. (웃음). 2019년 대한민국 정치의 첫 번째 과제는 내부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 리더십 확보다.” 


2009년 제18대 국회의장 당시 모습


-1야당인 자유 한국당을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 정부가 참 만만한 야당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는 취임 초기에는 여론이 안 좋으면 장관으로 지명했다가 취소도 시키고 했는데, 야당이 워낙 제 역할을 못하니까 이후에는 여론이 안 좋은 사람도 장관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국민들은 정부 여당은 독선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야당에 대해선 희망이 없다고 말하고 있어. 그러니 국민들이 정치에 점점 더 거리를 두고 있지 않나.

야당이 건강하고 제대로 견제하면 여당도 함부로 못한다. 이런 점에서 야당은 참으로 반성해야 한다는 게 내 기본 전제이다. 돈 들여가며 전당대회를 하면서 왜 스스로 인기를 까먹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극기부대는 대한민국 국민의 극히 일부이고 이것이 자유한국당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비록 상처가 나긴 했지만, 한국당이 전당대회 이후에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길 희망하지만, 그 희망의 강도가 점점 약해지고 있어. 그래서 걱정스러워.” 


-한국당이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이려면 무엇을 보완해야 하나?

한국당의 상황이 굉장히 안 좋아. 구체적인 것보다 기본적인 자세를 고쳐야 한다. 당의 최고 책임을 맡은 사람은 당을 위해 불쏘시개가 돼야 한다. ‘내가 죽어야 당이 산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데 노력의 결실을 차지하겠다는 욕심을 속에 가지고 있는 한 한국당은 안 된다. 죽었다가 사는 게 정치거든. 죽겠다는 사람은 없고 살겠다는 사람밖에 없으니 결국 다 죽는 거지. 거듭 말하지만 (당 지도부는) 자기를 던져버려야 해.” 


-김경수 경남지사 판결에 대한 민주당의 판결 불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 마디로 여당답지 못하다. 김경수 개인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당과 정권의 안위와 직결되는 문제로 스스로 몰고 가는 것 같다. 전략적으로도 잘못하고 있다. 만약 항소심 재판이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됐다고 치자. 집권당이 저렇게 떠드니 사법부가 겁먹고 눈치보고 저렇게 판결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겠나. 이건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서도 정말 잘못하는 거다.” 


-내년 총선을 어떻게 전망하나?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 시시각각 변한다. 예측하기가 어렵다. 다만 현재 상태로 본다면 자유한국당은 원하는 의석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은 과반을 얻을지 모르겠어. 워낙 야당이 취약해서 지지율은 높지 않겠지만 (의석을) 휩쓸지 않을까. ”


2006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당시 모습

 

-좀 언짢은 질문 하나 하겠다. 당신은 화려한 정치 이력에도 불구하고 소위 '김형오 계()'를 만들지 못했다. 너무 깨끗한 물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개인주의자여서 그런가?

다 해당이 될 거야. 그땐 부산에서 YS(고 김영삼 대통령)계가 아니면 힘을 쓸 수 없었으니까. 내가 아무리 YS계라 해도 민주계는 나를 YS계 취급을 안 해주고 민정계라 하고, 민정당에서는 내가 YS에게서 공천을 받았다는 이유로 민주계라 하고, 민주 민정 양 계파로부터 버림을 받은 거지. (웃음) 그렇다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아니고, 노래나 춤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시장 바닥에 가서 막 어울리는 체질도 아니고. 돈과 조직과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내 혼자 갈 길을 간 거야. 나를 살린 건 언론이었어. 그때 국정감사 스타로 자주 신문 1면을 장식했으니까.

나는 딱 한 번 빼고 공천을 쉽게 받아 본 적이 없어. 당선도 마찬가지고. 줄서기 할 줄을 모르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후회는 안 해. 계파·계보 이런 것과 거리가 있으니 부정·부패 스캔들에 한 번도 연루되지 않았잖아. 원내대표, 국회의장 다 원내 경선을 했는데, 압승했어. 그 비결이 무계보·무계파 덕분이었지. 이제 정치판에서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는 계보·계파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김 전 의장은 인터뷰 말미에 정치인들의 자질과 품성과 시민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정치 아카데미를 여는 게 남은 소망이라고 밝혔다. 재정적 뒷받침을 할 독지가나 자선가가 나타나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작가가 된 김형오 >


         2012년 역저 출판기념회를 여는 김 전 의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14대부터 18대까지 내리 5선의 국회의원을 지내고 정계를 은퇴한 후 작가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2012년 비잔티움 제국의 최후와 리더십을 다룬 황제와 술탄을 출간해 스테디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2016년엔 황제와 술탄의 발행을 돌연 중단한 뒤 전면 개정판인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를 펴내는 결단을 내렸다


김 전 의장은 지난해에 백범일지의 해설서격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출간, 다시 한 번 출판업계의 이목을 받았다


길 위에서 띄운 희망 편지, 이 아름다운 나라, 돌담집 파도소리등 에세이와 칼럼집도 다수이다. 20년간의 정치 경험과 폭넓은 독서로 인한 박람강기, 그리고 뛰어난 집중력이 그의 글쓰기 자산이다. “책을 쓸 때는 15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은 적도 있다는 그는 현재 중앙아시아의 한 영웅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2019-02-27 부산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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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중앙> 2019 신년 인터뷰 기사를 올립니다. 기사 원문은 아래 URL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제가 보낸 원고와 실제 기사 내용이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어 제 원고도 아래 추가로 실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월간 중앙> 신년인터뷰 기사 원문 바로가기  클릭




월간중앙 신년 인터뷰

(김형오 전 국회의장) 2019. 1.

 

 

 

미래 비전국정 운영 방향부터 바로 제시해야

 

 

 

거침이 없었다막힘도 없었다그는 시간으로는 고금을 가로지르고 공간으로는 동서를 종횡무진하며 해박한 지식과 정연한 논리로 현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국민을 향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쓴소리로 들리겠지만 바른 소리였다김형오 전 국회의장. 20년 동안 몸담았던 정치라는 숲의 한복판에서 홀연히 걸어 나와 인문학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그에게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는 통찰력이 느껴졌다. 억양은 높지 않고 표현은 절제됐으나 결기와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바로 이 점에서 역설적으로 그가 정치 일선을 완전히 떠났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책 이야기로 시작됐다.

 

■ 백범에게 길을 묻고 길을 찾다

 

—『(다시 쓰는술탄과 황제로 독서계는 물론 학계와 문단까지 놀라게 하며 정계 은퇴 이후 작가로 진로를 틀었다. 2년여 전엔 정치 시사 칼럼집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로 우리 사회에 진단서와 처방전을 내밀기도 했다. 2018 6, 백범 묻다김구 답하다란 신간을 펴냈는데어떤 책인가?

  “보통 사람(백범-白凡백정과 범부일반 국민)의 물음에 김구 선생이 답변하고내가 해설과 의미를 덧붙여 쉽고 간결하게 풀어쓴 새로운 형태의 문답식 백범일지그러나 내용은 깊고 풍부하다백범을 비롯한 수많은 선열이 피와 땀과 눈물과 목숨을 바친 끝에 탄생시킨 이 나라의 소중함을 알고공동체의 일원인 국민 특히 젊은이들이 공동체를 지켜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느끼고 생각하게 하려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

 

지금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백범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김구 선생은 국민 모두가 존경하는 인물이다나 역시 백범을 존경하고 관심이 많았는데 김신 장군께서 당신이 맡아왔던 자리를 감당해 달라고 요청하더라김구 선생의 아들인 분이 간곡히 청하기에 운명인가 보다 하고 수락했다정치는 더 이상 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선생의 삶과 자세를 선양하는 데 힘을 보태는 일도 뜻이 깊겠다 싶어 협회장을 맡았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새해 2019년을 맞는 소감은?

  “임시정부 100년은 한 세기에서 다른 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이다지난 100년 우리는 선열들의 피땀과 목숨으로 나라를 되찾았고또 그 나라를 지키고 건설했다앞으로의 100년은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을 제대로 정립하는 시기한국이 세계 평화와 인류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100년이 돼야 할 것이다.

협회 차원에서도 2019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그리고 백범 서거 70주기를 기념해 책을 펴낸다. 2018 6월에 낸 백범의 길 국내 편에 이은 중국 편이다·중 합작으로 11명의 학자들이 상하이임시정부에서부터 충칭임시정부까지 김구 선생을 필두로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6년의 기간을 거치면서 임시정부는 여러 곳에 둥지를 틀었다그 현장을 직접 방문해 행적을 탐문하고 사료를 찾아 기록하는 인문학 에세이 형식의 답사기다임정 수립일인 4 11일에 즈음해 책을 낼 예정이다.”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의 가장 큰 맹점문제점은 무엇인가?

  “출범한 지 1년 반 정도 됐는데 몇 년 지난 것만 같다왜 이런 느낌이 들까한마디로 정부·여권이 모든 곳을 압도적으로 장악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비전을 뚜렷이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도대체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건지 국정 운영의 기본 방향과 철학을 가늠하기 힘들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업적인 남북 관계도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 DMZ 초소 철거철도 연결 같은 가시적현상적인 실적 말고는 기본 방향, 근본 노선이 무엇인지 모른다.

남북 평화 체제 구축이나 통일은 말로써 달성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정교한 이론적철학적 토대와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데 이 점을 소홀히 하기에 국민들은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정부가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인지또 자주 인용하는 정의평화란 무엇을 말하며 어떻게 구현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문재인 정부의 지난 2년은 박근혜 시대와는 완전히 달랐고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국민들이 지루함을 넘어 지겨움을 느낄 가능성도 상존한다지난 시대는 모두 적폐인가또 적폐 청산으로 5년 내내 허송할 것인가이 정부는 이제라도 미래 비전과 국정 운영 방향부터 바로 세우고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 정부가 타산지석이나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사례를 든다면?

  “문재인 정부는 1960년대 중국의 문화혁명을 참고했으면 한다문화혁명 당시 험악한 대치 구도를 대변하는 용어로 이른바 ‘홍전(紅專대결을 들 수 있다.  ‘은 이념을, ‘은 전문 지식을 이른다공산당 이념에 충실한 그룹과 전문가 그룹 사이의 논쟁과 갈등이 문화혁명 내내 불을 질렀고당시의 홍위병들이 전문가 탄압에 나섬으로써 중국 역사를 20년 뒷걸음질 치게 했다는 얘기가 있다지금의 문재인 정부도 전문가 그룹이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 나라도정권도 위험해질 것만 같은 생각을 갖게 한다.”

 

현 정부엔 전문가가 없다는 의미인가?

  “문재인 정부의 주축을 이루는 이른바 진보진영에 속한 사람들은 전문가 그룹이라고 볼 수 없다그런데도 전문가를 발탁하려 하지 않는다진영이나 캠프 출신이 아닌 정말 괜찮은 적임자를 발탁 등용해 일을 맡겼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했다사회는 복잡하다열정과 충성심은 있으나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감당하기엔 힘든 것이 국가 경영이다최고의 리더십이 오픈 마인드(열린 생각)를 갖지 않는다면 낭패다. 2019년 새해부터는 청와대와 정부가 진영 논리자기중심적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얻고 정권도 안정된다안 그러면 시간이 지날수록 지지율은 더 떨어지고 나라 경영도 위태로워질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소주성’)에 치중하는 정부의 모습을 볼 때 그런 변화가 쉬 일어날 것 같지 않다는 반론도 나온다.

  “많은 이들이 소득주도 성장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소주성기획 추진자들은 이 정책이 국민과 국가 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소득주도 성장은 그 어떤 국가에서도 검증된 바 없고우리 정부가 임기 내 해보겠다고 실험적으로 서두르다 보니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52시간 근로 시간 제한 등도 목표 중심으로 경제 산업 구조를 몰아가려는 식이다. 박정희 시대 개발경제 연간에는 통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국가 주도의 경제사회 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다민간과 기업이 창의와 자율활력을 잃으면 경제는 성장을 멈추고 국민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국민을 잘 먹고 잘살게 하겠다는 게 경제 정책의 근간임에도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세계 경제가 비교적 호황이고 미국과 일본 경제도 좋은데 우리만 나쁘면 책임자를 바꾸고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대선 공약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이번 겨울 한파보다 더 혹독한 경제 한파가 몰아칠까, 우리 서민들의 삶은 얼마나 더 피폐해질까 걱정스럽다.”

 

분노만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다

 

어떤 이는 정치는 적()을 적절히 만들어 가는 게임이라 했다. 정치권은 여전히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다타개책은 무엇인가?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를 ‘()와 비아(非我투쟁의 기록이라고 규정했다신채호 당시에는 가혹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국권을 회복하고 역사 왜곡도 바로 잡으려면 나와 남을 제대로 구분하는 것이 중요했다그게 바로  민족주의 사관이었다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났건만 우리는 여전히 민족주의로 포장된 폐쇄성과 적이냐 동지냐 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정치는 가치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다이 말은 60년대 정외과 학생이라면 다 안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 현실에는 분노와 적개심이 가득하다끊임없이 증오의 대상을 만들고 분열과 반목을 거듭한다내가 현역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때도 그랬다선배 정치인에게 정치 잘하는 법을 물었더니 ‘하루에 김대중 욕 한 마디씩 하라고 하더라적을 만들면 정치하기가 쉬워진다는 이유에서였다하지만 나는 내 지역구에서 김대중 씨 욕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그런 정치인으로 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분열적이고 증오 가득한 정치가 포퓰리즘이나 선동과 맞물리면 파시즘나치즘전체주의로 흐른다급기야 정치 혐오증을 부추겨 정치는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이런 정치를 파기하는 게 이 시대 정치인의 바른 자세이자 책무다이것이야말로 청산돼야 할 적폐다. 정치인과 국민 모두 대오각성할 때다.”

 

증오와 갈등의 정치를 종식할 해법은?

  “분노만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다현 여권 인사 중에는 분노를 정의로 잘못 아는 사람도 있다. 이런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시원하고 성공하는 것처럼 보여도 얼마 못 가 더 큰 분열과 불만분노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적폐 청산은 사람을 표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제도와 관행, 의식에 대한 일대 혁명적 개혁이 돼야 하는데 이 점을 현 정권은 등한히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헌법을 비롯한 선거법정치관계법 등 정치 제도의 일대 개혁, 그리고 정치인과 국민 모두에게 민주시민 의식을 부추기는 의식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사랑의 마음과 애국심이 부족한 사람이 정치인이나 책임 있는 자리에 가서는 안 된다증오갈등대립을 부추기는 사람들에 대해 국민 여론이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지역감정을 조장하거나 선동과 분열을 획책하는 사람은 신문방송 등 언론부터 나서서 단죄해야 할 것이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자살했다. 이 또한 증오와 보복의 정치가 낳은 것인가?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다. 명예를 먹고살아야 할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군인은 국토방위와 조국수호라는 특별한 사명으로 남다르게 사는 사람이다. 일단 유사시에 이들은 목숨을 걸고 국토와 국민을 지킬 숭고한 의무가 있다. 그래서 군인은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 굳건한 정신력과 높은 사기가 요구된다. 이들이 강할수록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되고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들이 약하면 나라는 위기에 빠지고 국민은 불안하다. 군인은 군인의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정치화돼서도, 사회화돼서도 안 되는 것이다. 최근 이런 군인에 대해 정치적사회적 잣대를 들이댄다. 검찰이 정치의 하수인처럼 이들을 대한다. 군인의 세계를 검찰의 세계로 재단하면 국방은 무너진다. 여러 가치를 균형감을 가지고 조율해야 할 정치가 한편으로 치우치고 있다. 한평생을 조국수호국토방위에 몸담은 사람에게 이런 불명예가 없다. 극단적 선택으로 정치권과 검찰에 마지막 항명을 한 것이다. 군의 사기가 걱정된다. () 정권의 국방장관안보실장을 구속시키고 법정에 세우려 한다. 이들은 북한군 훈련소 사격대의 표적이 된 인물이다. 북한의 과녁이 되어 매일같이 수백 발의 총알 세례를 받는 제거 대상 1호를 우리 권력은 법의 이름으로 손발을 묶으려 한다. 북한이 얼마나 고소하게 생각하겠는가. 이런 환경에서 국방을 안심해도 되겠으며, 군의 기강과 사기가 제대로 서겠는가. 누가 몸 던져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하겠나. 정치가 바르지 못하면 국방이 부실하고 나라가 기운다.”

 

포퓰리즘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조선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인습은 아닐까?

  “조선 시대 당시로 보면 500년 이상 유지된 왕조는 세계사적으로 드물다그만큼 조선은 왕조왕권을 지키는 데 아주 철저했다고 볼 수 있다조선을 제도사적으로 분석한 책(정병석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등에 의하면 사농공상의 질서 속에서 상업과 공업을 천대시한 조선에서는 산업이 일어날 수 없었고 백성들은 가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올곧은 선비정신을 강조할 뿐 경제는 관심권 밖이었다성리학 중심의 사회 질서 속에서 유학의 한 구절을 놓고 피 튀기는 싸움에 몰입한 것이다.

또 임진왜란 당시 수십만 명이 포로가 되어 끌려갔는데 나중에 선비들은 다 돌아왔지만 유독 귀국을 거부한 이들이 있었다바로 전문 기술자들이다제지공도공직조공들은 일본 상류층에서 제대로 대접을 해주니까 현지에 정착하기로 했다요즘으로 말하면 연구개발 즉 R&D까지 전폭적인 지원한 것이다그래서 허구한 날 양반의 수탈을 당하던 조선보다 일본 잔류를 선택했다당시 우리는 일본을 얕잡아 봤지만 일본은 이런 기술 우대를 통해 일어섰고 우리는 그러지 못한 것이다전문가를 대우하지 않고중상주의를 배격한 게 과거의 우리 모습이었다그래서 나라가 가난했다이 틀을 깬 사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조선 왕조는 일본의 봉건제와는 달리 중앙집권 국가로서 죽기살기 식의 경쟁이 없었기 때문에 권력 다툼은 강했지만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강했다는 지적도 있더라.

  “우리는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지방분권의 경험이 없는 나라다. 중앙에서 모든 관리를 지방으로 파견했다그렇게 내려간 감사나 부사현감 등은 호령만 하다 떠날 뿐, 일반 백성은 물론 아전이나 지방 토호들과도 물과 기름 같은 관계랄까, 서로 따로 노는 구조였다관과 민이 하나 되어 자치자활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비가 많이 와 홍수가 져도 임금 탓, 비가 안 와 가뭄이 심해도 나라 탓이었다. 이는 지금도 그대로다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정부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민심은 폭발했다. 정권 위기로까지 몰고 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당시 사망자와 실종자가 2만 명을 오갔지만 지자체장을 비롯해 누구 하나 바뀌었다는 얘기를 못 들었다그들은 차분히 수습했다. 단합해야 할 때 단합했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은 세월호 때 시작된 것이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도 교훈을 새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정신 차렸더라면 촛불도, 탄핵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지방자치도 투표만 있는 자치를 넘어 실질적 자치’, ‘건전한 자치’, ‘내실 있는 자치를 해야 할 때다.”

 

성장이 소득을 주도하는 것

 

경제 정책 주도 세력의 면면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들던가?

  “지난번에 장하성 정책실장을 교체하고 후임으로 그 사람과 노선이 똑같은 사람을 앉히더라그럴 바에야 왜 바꿨냐고 묻고 싶었다정책이 잘 안 돌아가서 바꿨는데 그런 색채가 더 강한 사람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소득주도 성장이란 말은 잘못된 거다소득이 성장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성장해야 소득이 증가하고 복지 혜택도 커지는 것이다.”

 

기존의 경제 정책을 수정해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더라도 자신들에게는 칭찬이나 인정을 안 해주리라는 조바심이 작동한 건 아닐까?

  “만약 그런 속 좁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경제 정책을 담당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문제다국민을 볼모로 잡고 정책을 실험하겠다는 것이니까정권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생각하지 않는 다음에야 어떻게.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설령 자기들이 정책을 바꾸어서 그 공()이 비판 세력에게 넘어간다 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게 국가 정책 결정자의 자세다그런 경우에도 결국 공()은 마지막엔 자신들한테 돌아가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로드맵을 갖고 있는 걸까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려 본다면?

  “청와대와 연줄이 없는 내가 대통령 본인의 생각을 어떻게 알겠나하지만 청와대엔 많은 참모가 있고문 대통령도 깊은 생각이 있을 것이다.  이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돌아서야지나라와 국민을 생각해서라도나는 청와대(1982~86,90), 총리실(1986~90), 국회(1992~2012), 다 있어 봤는데 대통령의 자리라는 건 잠시 왔다 가는 자리일 뿐이다이 엄연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불행이 왔다. 특히 청와대와 권력 핵심의 충성스러운건의에서 벗어나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 역대 대통령의 비운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정말 드리고 싶은 고언이다해주면 인기 오르고 지지율 높아진다고 밀어부치는 포퓰리즘 정책은 나라를 10년도 못 가 거덜 내고욕먹는 게 두려워 잘못된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임기 내에 거덜 난다.”

 

여권 내지는 청와대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장악력은 어느 정도일까눈과 귀를 가리는 586 참모들이 주변에 포진해 있다는 관측도 있는데.

  “586이 누군가? 그들도 이미 50대 장년 아닌가?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80년대의 이념을 아직도 못 버리고 있다면 그들은 운동권 낡은세대일 뿐이다. 그런 자세로 청와대에 복무하고 대통령을 모신다면 그들도 대통령도 나라도 불행해진다. 그들 중에 혹시라도 선민(選民)의식, 우월주의, 운동권 연대감 같은 것이 있다면 주막에서 막걸리 마시며 할 얘기지, 그런 자세로 국가 경영을 맡겠다는 생각은 아예 버려야 한다.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 있다.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참모에 둘러싸여 있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그런 말이 세간에 떠돈다는 사실 자체에 대통령은 유의해야 할 것이다. 참모는 참모일 뿐이다. 모든 궁극적인 책임은 대통령이 지는 것이다.”

 

한국노총 집회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문 대통령이 여야와 합의한 탄력근로제 확대에 반대 의사를 밝히고이재명 경기지사는 문 대통령 아들 취업 관련 사항을 언급하는 등 여권의 잠재적 차기 주자들이 독자 행보에 나섰다는 지적이다일각에서는 대통령의 권력 누수가 시작됐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집권 3년차인 올해부터는 권력 내부에서 서서히 고개를 쳐드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포스트 문을 노리는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이겠는가. 더구나 야당이 맥을 못추는 상태니 여권 내부에서 차기를 노린 경쟁이 더욱 정교하면서도 치밀하게 펼쳐질 것이다. 당분간은 물밑에서 열심히 움직이겠지만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이럴 때일수록 국정 어젠다를 재정립하고, 국정 최고최후 책임자이며 봉사자로서의 자세를 확고히 보여줘야 할 것이다. 대통령 하기에 따라 3년차 증후군을 잘 극복할 수도 있고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잘된 것은 계속 잘하고안 된 것은 수정하고잘못된 것은 폐기하는 게 바른 수순이다그것이 집권자의 역할이며이 모든 것의 최종 결정권자는 대통령이다.

레임덕그건 필연적이다. 5년 단임제 정부에서 레임덕은 올 수밖에 없다받아들일 건 담담하게 받아들이되국리민복과 민주주의를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봉사한다는 자세를 흩뜨리지 않는 것이 레임덕 현상을 최소화하는 비결 아닌 비결이다.”

 

외교 관계의 핵심 축은 한미 관계

 

북한 관련 이슈가 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을 떠받쳐주는 형국이다.

  “과거 박정희 정권 당시 북한 이슈를 정치에 이용하곤 했다또 북한이 실제로 간첩이나 무장공비를 남파해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도 했다현 정부는 어떤가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이벤트가 지금까지는 긍정적이고 고무적으로 작용했다하지만 앞으로는 큰 효과가 없을 것이다김정은과 북한의 태도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대북(對北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다북핵 문제가 알파요오메가인데 이걸 제쳐두고 김정은과 일시적으로 잘 지낸다 해서 기대한 효과를 내기는 힘들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 무드 정착에 기여한 것은 어떻게 보나?

  “처음에는 문 정부도 잘했다늘 전쟁의 불안과 충돌의 두려움이 감돌던 한반도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미 정상 회담이 열리는 등 평화 기조가 다져진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지금까지의 성공은 보수 정부와 차별화되는 치적임에 분명하지만 완전하고 정상적인 평화는 아직 요원하다북한이 북핵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에 대한 정리가 안 되고진도도 안 나간다이 문제에 미칠 우리의 영향력은 극히 제한적이다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경협을 하거나 철도를 연결하는 정도에 그친다그나마 우리가 주는 입장이니까 지원을 약속하더라도 (완전한북핵 해결을 요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미 관계는 불안해 보인다찰스 브라운 미국 태평양공군사령관이 2018년 미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출격 중단과 연합 공군 훈련 비질런트 에이스 취소가 모두 한국 정부 요청 때문이었다고 밝혔다또 미국 재무부는 지난 9월 산업은행기업은행 등 국내 7개 은행에 대북 제재 준수를 요구했다고 알려졌다한미 동맹은 탄탄한가?

  “21세기 대한민국 국가 전략에서 정말 중요한 게 외교이며 그 핵심 축은 한미 관계다한중 관계도 한미 관계의 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추진해야 한다그런데 걱정이다신뢰 관계가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냉철하게 봐야 한다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을 한국이 만드는가아니면 미국이 만드는 것인가미국에게 중요한 국가는 꼭 한국만이 아니다영국일본EU중국러시아프랑스독일 등 다양하게 존재한다하지만 한국에겐 단연코 미국이 중요하다. 미국을 대체할 나라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 담당자들은국익에 대한 신념과 전문성을 갖춘 외교관이 맞는가라는 의문이 때때로 든다지금이라도 미국이 신뢰할 수 있고 미국과 머리를 맞대고 당당하게 외교 전략을 펼칠 수 있는 사람들로 포진해야 한다한미 관계가 신뢰에 기반하고 안정된 틀 안에서 대()대러대일본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축이 흔들린다는 인상을 주면 곤란하다미국 조야(朝野)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중 관계에 불안한 시선을 던진다는 점이 좋지 않다. 국가 간 신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외교의 핵심 요소다.”

 

국민은 왜 세금을 내는가

 

노동계 등에서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일이 잇따른다고 국무총리마저 우려하는 상황이다.

  “법치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민노총 같은 일부 폭력적인 집단에 의해 공권력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지극히 우려할 사안이다이런 식으로 해서 나라가 제대로 유지될 것이며운영될 것인가 걱정이다민노총의 폭력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이들의 힘이 약하고 주장이 정의로웠을 때는 오죽 답답하면 저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지금은 국가 공권력에 대항하고 법치국가의 근간을 해치는 지경이다청와대도국회도경찰과 검찰도 눈치를 볼 정도다폭력이 자행되는데 공권력은 작동하지 않고 언론도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다어느덧 우리 사회에 공포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2차 세계대전 중 연두교서(19411)에서 4가지 자유를 말하면서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때는 군사적 위협을 공포로 간주했지만 지금은 폭력과 심리적정신적 위협까지 공포의 대상이다공포가 엄습하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전체주의로 가는 길이다파시즘나치즘이 이런 식으로 발호하면서 기존 정부를 넘어뜨렸다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정부가 존재 의의를 갖기 어렵다.”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민간 기업 임원이 노조원에 의해 감금집단 폭행을 당했는데도 공영방송에서 진실 보도를 안 한다경찰검찰도 수사에 미온적이다.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과 기업이 나라를 위해 세금을 내야 할 이유가 있을까정부의 가장 원초적인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다. 나를 보호해주니까적으로부터 지켜주니까 국민도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이번 사태는 국가와 정부의 존재 이유가 근본적으로 도전받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언론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면 안 된다.”

 

송호근 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은 얼마 전 <중앙일보칼럼에서 현 여권 세력을 ‘부패의 척후로 칭하면서정의를 표방하지만 사람만 바뀔 뿐 정··공신단체의 이익동맹이라며 날선 비판을 가했다.

  “정의가 무엇인가. 유럽의 정의의 여신(유스티티아)은 눈을 가린 채 검을 휘두른다. 불의를 저지른 자는 가리지 않고 처단하겠다는 상징성이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당위성 중 하나가 적폐 청산이었다낡고 잘못된 제도와 관행이 쌓인 것이 적폐다이것들은 당연히 청산돼야 한다그런데 그런 제도와 관행을 청산하는 게 아니라 사람 청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그것도 전() 정부, 전 정권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한국에서는 정의의 여신이 눈을 뜨고 사람을 골라가며 처단하는 것 같다. 그 도()가 지나치니 야당에선 정치 보복이라고 하지 않는가반면에 현 정부가 청산한 제도와 관행은 무엇인지 모르겠다정작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칼끝이 사람만 쫓아다닌다면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민주주의에 완성체란 없다더 나은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일 뿐인데그러자면 제도와 관행을 다듬고 발전시키는 데 더욱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잘 돌아가고 있는가?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물갈이를 하라 했는데 물은 안 갈고 물고기만 가는 격이다그대로인 물에 새 인물을 데려와도 계속 오염될 뿐이다국회정부사회에 고착된 잘못된 관행들을 다 뜯어고쳐야 한다야당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야당이 오히려 적폐 청산에 앞장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대한민국은 규제의 천국이라 할 정도로 규제제한금지등록심사감사신고허가·시간 지체 따위가 차고 넘친다이런 상황에서 어떤 창의와 자율이 나오겠나사물인터넷빅데이터AI자율주행차드론 등등 4차 산업혁명은 자유와 창의가 보장되지 않는 풍토에서는 살아날 수 없다규제는 기득권 보호 수단일 따름이다적폐의 대상들이 적폐를 지키고 있다.”

 

자유한국당존재할 이유는 무엇인가

 

6·13 지방선거 직후 열린 한 토론회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을 향해 7가지 개혁안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몸담았던 정당으로애정을 가지고 있으니까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는데도 자유한국당은 그 지지율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여전히 대안 정당대체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주지 못하는 탓이다수권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못 갖췄을 뿐 아니라 노력해서 국민의 신뢰를 얻겠다는 열의도 안 보인다. 자기들 선거(총선)가 많이 남았기 때문인가오랜 기간 현실에 안주해온 때문인지 무능하고 나태하다자신들이 모시던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됐는데도 누구 하나 정계 은퇴나 의원직을 내던진 이가 없고, 차기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이도 한두 명에 불과하다임팩트도 없다. 정치인의 기본자세인 책임의식이 결여된 것이다서정주의 시 <푸르른 날>이 문득 생각난다.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한때 보수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 정도는 줘야 하지 않을까정치 철학의 부재가 지금의 상황을 자초했다고 하겠다.”

 

지금도 자유한국당에 몸담고 있나?

  “탈당한 지 오래다국회의장은 국회법에 따라 당적을 가질 수 없다18대 국회 전반기 의장(2008 7~ 2010 5)이 되면서 당적이 자동으로 사라졌다가 임기를 마치면서 원래 속했던 당으로 복귀했다그런데 2016 4월에 있을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 과정을 보니 싹수가 노랗더라그래서 조용히 탈당계를 제출했다얼마 뒤 ‘옥새 들고 나르샤’(새누리당 대표가 공천장 날인을 거부한 사건)가 나오고 난리가 아니었다이런 것들을 보면서 실망했고 가슴 아팠고 또 부끄러웠다정치와 거리를 두겠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야권 일각에서는 ‘박근혜 신당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12월 중순 당협위원장 교체 이후 전당대회에서 비박이 당권을 장악하면 친박계가 대구 경북 중심의 신당으로 딴 살림을 차린다는 얘기다.

  “국민들 눈에는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박근혜를 이용하려는 것으로 비치지 않을까명분이 확실해야 하고신당을 만들 용기가 있어야 한다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존재 이유와 가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자유한국당도 마찬가지다자유한국당 중심의 보수 통합론이 나오는데 왜 보수 통합을 해야 하는가, 왜 자유한국당이 구심점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통합을 한다고 할 때 중도 정당으로 갈 것인지보수주의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것인지, 어디까지 싸안고 무엇을 배제해야 하는지를 가름할 철학이 안 보인다이처럼 모든 게 어정쩡한 자유한국당이 중심이 돼야 할 이유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만 고민하지 말고, 차라리 젊은 세대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뒤로 물러나겠다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번 원내대표에 이어 내년 봄 새로운 대표가 선출되면 좀 달라질까.”

 

이 말을 들으면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힘을 얻을 것 같은데.

  “보수 통합에 반대하자는 말이 아니다여당이 워낙 막강하니까 견제할 세력은 필요하다자유한국당이 중심이 되든다른 당들이 세를 규합하든 하기는 해야 한다야당이 제대로 하면 여당도 목소리를 키워 청와대에 옳다그르다 할 말을 하게 된다이렇게 여당과 야당은 상생 보완 관계인데, 눈치만 보고 서로 으르렁대기만 하고 제대로 못하니까 청와대가 정치를 주도하게 된 것이다다시 말하면 청와대 중심으로 행정도 정치도 이루어지고 있다. 국회는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정국 주도권도 청와대에 넘어가 정치가 불완전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이 점 여야 현역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파산을 각오하라죽어야 산다

 

보수 통합과 박근혜 탄핵 평가는 동전의 양면 같다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보수 통합과 박근혜 탄핵 평가는 동전의 양면이 아니다버릴 건 빨리 버려야 한다보수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너무 집착하거나 집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1700만 명이 촛불을 들었고촛불을 안 들었다 해도 많은 이들이 ‘이게 나라냐고 항의한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문제는 그 다음이다새누리당이 웰빙 정당이다 보니 촛불의 서슬에 일부는 겁을 먹었고, 일부는 맹목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았다그렇게 동상이몽으로 우물쭈물하다가 탄핵에 이르고 정권을 고스란히 내준 것이다(여권은 국민 요구와 여망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지혜가 부족했다

내가 <한국경제신문 1,3면에 걸쳐 당시 박 대통령에게 하야하라는 칼럼을 썼었다그때 만약 스스로 하야했더라면 대통령도 온전하고 야당도 지금같이 지리멸렬하진 않았을 터이다현 여권이 집권해도 지금처럼 함부로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박근혜 탄핵 평가 운운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는 얘기다그 문제는 야당이 살아남은 이후의 숙제다야당이 새로운 모습으로 새 비전을 실천하며 국민의 밑바닥을 파고들어 신뢰를 회복한 연후에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해야 한다지금 중요한 건 국민에게 어떤 정당으로 새롭게 출범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여당과 청와대를 향해 할 말은 하면서 투쟁과 협상을 병행하는 정치적 노련미를 보여주는 일이다무엇보다 파산을 각오한 채 ‘죽어야 산다는 절대 명제를 뼛속까지 새겨 실천해야 한다그래야 당도 살고 대한민국이 산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한국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의 마음가짐을 짚어본다면?

  “지난 100년을 뒤돌아보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고 피 흘렸던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추구하지 않았다김구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독립된 나라 청사의 문지기나 청소부가 되기를 청했다피 끓는 애국심으로 나라에 헌신했던 사람들이다.

앞으로의 100새로운 세기는 당시 선조들과는 다른 차원의 헌신이 요구된다더 복잡하게 얽힌 갈등분열을 극복해야 하는 숙제가 가로놓여 있다.  국제사회는 국제사회대로 치열한 경쟁과 다국적다차원의 협력협조가 전개될 것이다. 국가 관계도 변할 것이다. 힘이 없는 나라는 소멸하거나 주권국 행세를 못하게 될 것이다. 힘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평화가 유지된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

 

평화를 지키는 힘은 국가 안보와 외교력

 

그 힘은 무엇인가?

  “첫째는 국가 안보다외국으로 쳐들어가서는 안 되지만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튼튼한 국방력이 있어야 한다. 국방력은 군사력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민의 국가 수호 의지도 중요하다. 그 다음은 외교력이다대한민국같이 열강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곳일수록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해야 존립할 수 있다유감스럽게도 현재 그런 사람이 안 보이는 것 같다무엇보다도 국가 안보와 외교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정부와 국회를 이끄는 것 같아 걱정이다.”

 

적폐 청산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려면 정치 참여자들이 어떤 자세로 정치에 임해야 할까?

  “중국 춘추전국 시대 공자(孔子)의 제자 자공(子貢)이 평생토록 가슴에 지녀야 할 한 마디가 뭐냐고 물었다공자는 ‘그것은 용서할 서()’라고 했다이 글자는 같을 여(밑에 마음 심()이 붙어 있는 모양새다.  ‘마음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내가 상대방의 마음으로 이해할 때 진정한 용서를 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기독교에서 중시하는 ‘긍휼(矜恤)’Compassion이라는 영어 단어로 표기된다. ‘com’ ‘같이라는 뜻이고, ‘passion’ ‘아픔을 일컫는다상대방과 아픔을 함께 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불교의 자비(慈悲)도 무한히 사랑하는 마음()과 무한히 슬퍼하는 마음()의 하나 됨이다. 2019년 새해 정치인들이 지향해야 할 마음가짐이 용서고 화해다그런데 우리 정치와 사회는 지금 용서할 서() 대신에 분노할 노()가 판을 치는 형국이다.”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꼽는다면?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이끈 페리클레스는 지도자의 자질로 지혜설득력애국심도덕성 네 가지를 들었다. 2500년 전 한낱 도시 국가에 불과한 아테네의 지도자가 이 네 가지 가치를 받들었는데 5000, 6000만 명의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라면 응당 이런 덕목은 갖춰야 마땅하다그런데 국민들은 이 네 가지 기본 자질을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구비했다고 생각할까?”

 

해외의 어떤 지도자는 내우외환(內憂外患내부에서 일어나는 근심과 외부로부터 받는 근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 적이 있다눈에 보이는 외환보다 안 보이는 내우가 더 무섭고 치명적이라고그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기에 국가와 국민을 파멸 속에 빠뜨린다는 취지다대한민국에는 이런 치명적인 ‘내우가 없을까?

  “갈등지향적이고 분열과 대립이 격렬한 가운데 새해를 맞이했다. 맹자는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를 업신여긴 후에 남들이 업신여기며나라는 반드시 그 나라를 스스로 친 뒤에야 남들이 친다(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 國必自伐  而後人伐之)’고 통찰했다국가의 생명은 유한하고 영속적이지 않다. 20세기 들어 100개 이상의 나라가 생기고 50개 넘는 나라가 소멸했다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봐도 고구려백제신라고려조선 등이 탄생하고 망했다대한민국도 이제 정부 수립 70년인데 앞으로 30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이 나라를 우리가 소중하게 가꾸지 않고 스스로 관리를 못하면 남들이 업신여기고 해친다는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

새해는 나라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한 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나라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내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지 먼저 고민하라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를 유념할 때다.”

 

끝으로 <월간중앙독자들에게 새해를 맞는 소감 한 말씀.

덕담이라기보다는 고언이 되겠다. 기원전 7세기 부자와 빈자의 갈등이 심각한 아테네에 현인 솔론이 등장하여 개혁을 단행했다. 처음엔 열렬히 환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자와 빈자는 자기에게 불리한 정책에 대해 반대하고 솔론을 비방했다. 결국 솔론은 그리스를 떠나 10년간 유랑했고 개혁도 중단됐다. 모든 사람이 우러러 받드는 그리스의 현인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개혁의 답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나 솔론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그리스와 아테네는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개혁의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 진영논리와 기득권,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개혁은 부자빈자의 갈등 이상으로 힘들고 어렵다. 자기를 버리고 지지자들로부터 서운한 소리를 듣더라도 옳은 길, 미래를 위한 길에 자기를 헌신하는 사람이 참 지도자다. 2019년 새해엔 이런 사람이 도처에서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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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9일 청주에 있는 공군사관학교에 다녀왔습니다.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대회의 입상자들에게 시상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조국의 하늘을 지키는 늠름한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을 마주하고 있노라니, 김신 장군님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김구 선생의 아드님으로 험한 세월을 견디셨고, 또 대한민국 공군을 창설하는 데 큰 역할을 하신 분으로 이런 후배들을 보셨으면 얼마나 가슴 뿌듯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 시상식 인사말과 사진을 같이 올립니다.




[공군사관학교 시상식 인사말]

  조국의 하늘을 지키며 공군의 미래를 이끌어갈 자랑스러운 공군사관학교 생도 및 장병과 군무원 여러분!


  먼저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신 황성진 학교장님을 비롯한 교직원 여러분과 대회에 참가한 생도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는 지난 2005년도에 시작, 이번 대회까지 총 481회에 걸쳐 국군 장병과 국내외 중‧고‧대학생 65만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김구 선생의 삶과 사상이 진솔하게 기록된 이 책을 읽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나라 사랑 정신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선열들의 땀과 피로 되찾아 다시 세운 대한민국이 얼마나 소중하며, 우리가 몸과 마음을 바쳐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조국인가를 『백범일지』는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백범일지』는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 유서를 대신해 남긴 회고록입니다. 그 두 아들 중 차남은 바로 여러분도 잘 아는 김신 장군님이십니다. 6‧25 전쟁 당시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의 주역으로 제6대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우리 공군의 살아 있는 전설이지요. 아드님(김양)과 손자(김용만)는 물론 사위(김호연)와 외손자(김동만)까지 3대가 공군 장교로 복무한 병역 명문가, 여러분의 대선배이기도 합니다.



  김신 장군께서 쓰신 회고록 『조국의 하늘을 날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내가 중국 공군에서 훈련받다가 광복을 맞이해 귀국하려 했을 때, 아버지는 계속 훈련받을 것을 명하셨다. 그 결과 나는 당시로서는 미 공군에서 정식 비행 훈련을 마친 사실상 유일한 한국인이 될 수 있었다. 항공 전력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항공 분야의 가능성을 이해하신 아버지의 혜안 덕분이었다.”

  다시 찾은 조국의 진정한 독립과 굳건한 안보를 위해서는 공군력이 필수불가결함을 백범 선생께서는 예견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입상자들에게는 내가 쓴 졸저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부상으로 드립니다. “어떻게 하면 김구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쉽고 깊게 전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밤잠을 줄여가며 쓴 책입니다. 『백범일지』와 나란히 여러분 서가에, 또 머리맡에 놓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시 한 번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와 오늘 이 시상식 자리를 마련해주신 황성진 학교장님과 수고하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영광의 입상자뿐만 아니라 대회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어린 축하와 격려를 드립니다.



  공군사관학교의 교훈은 “배우고 익혀서 몸과 마음을 조국과 하늘에 바친다.”입니다. 이 교훈의 깊은 뜻을 가슴에 새기고 조국의 하늘을 지켜나갈 여러분의 건승과 공군사관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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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빨간마후라 2018.11.16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만 보아도 정말 늠름한 보라매의 기상이 느껴집니다. 백범 가문과 공군이 이런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줄 처음 알았네요.

[월요인터뷰] 김형오 前 국회의장 


"동포에 대한 헌신·희생이 白凡정신… 정치인들에게 이게 안 보여요"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펴낸 김형오 前 국회의장

만난 사람=홍영식 논설위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인터뷰 장소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을 선택했다. 그는 “정치지도자들은 생각과 말, 행동이 일치하는 백범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백범 김구 선생은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 솔선수범, 희생의 리더십을 실천한 위대한 혁명가입니다. 평생 생각과 말,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산 백범의 정신을 오늘날 우리 정치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합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백범의 차남 김신 전 교통부 장관(1922~2016)의 요청으로 2015년 7월부터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후 3년간 오롯이 백범의 일생을 좇아 그 정신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주력했다. 그는 “애국 열정의 휴머니스트를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든 날들”이라고 했다. 김 전 의장이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白凡逸志)’를 재구성해 펴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그 결과물이다. 김 전 의장이 ‘백범(白凡·평범한 사람)’을 대표해 물으면 김구 선생이 답하고, 김 전 의장이 추가 설명을 붙였다. 김 전 의장을 만나 엄혹한 시대에 맞서 몸을 던진 독립투쟁가의 정신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들어봤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출판사에서 백범에 관한 책을 펴내자고 제안했을 때는 좀 언짢게 생각했어요. 《술탄과 황제》(김 전 의장이 2012년 쓴 책)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니 나를 이용해 책 장사를 하려나 생각했습니다. 나는 봉사로 여기고 이 자리(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에 왔어요.(김 전 의장은 월급과 판공비 등을 일절 받지 않고 있다) 출판사 관계자를 야단쳤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가면서 혼잣말로 ‘요즘 젊은이들이 백범을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이후 이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고민이 컸습니다. 내가 책을 쓸 능력이 있는지, 이미 수많은 연구자가 백범 연구 결과물을 내놨는데 어떻게 차별화할지 고뇌의 시간을 보냈죠. 결국 ‘이 시대에 백범의 정신이 필요하겠구나, 한 번 해보자’고 결심하고 3년간 매달렸습니다.”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이 책이 제 마지막 작품이 될지 모릅니다. 탈고한 뒤 긴장이 풀렸는지 한 달 반을 편도선·기관지염으로 고생했어요. ‘제발 더 이상 책상에 앉아서 고생하지 말라’는 아내의 잔소리를 견뎌내고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책 제목이 독특합니다.

“백범일지를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제대로 읽어본 사람도 드물 겁니다. 백범이 살던 시대와 환경은 다르지만, 어느 시대나 젊은이들은 고뇌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죠.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와 투지가 필요합니다. 백범일지를 제대로 읽으면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성세대도 백범일지를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봉건적 세계관을 가졌던 백범이 혁명가로 변신한 정신적 배경은 무엇입니까.

“백범은 ‘상놈’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과거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면서까지 입신양명을 꾀하기도 했습니다. 시대와 환경이 보통사람을 위대한 인생, 위대한 혁명가로 만들었어요. 백범의 올곧은 자세가 사상과 지향점을 키운 원동력입니다. 19세에 동학 접주가 돼 수천 명을 이끌기도 했지요. 그러나 준비 안 된 리더가 얼마나 무참하게 끝나는지 깨달았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전후로 교육계몽운동을 하다가 나라를 빼앗기자 감옥에 가고, 온갖 고초를 겪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더 영글어지고 단단해졌습니다.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라고 외치면서 통합과 개화를 강조했습니다. ‘상놈 콤플렉스’에만 머물지 않고 성숙한 평등주의자로, 독립투쟁가로 나아갔습니다.”


▶백범 리더십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솔선수범입니다. 책임정신과 헌신, 이게 아주 남달랐던 거죠. 역경에 좌절하거나 온전히 타협해 주저앉는 스타일이 아니고, 극복하고 돌파해 나가면서 바르게 끌고 가려는 정신과 자세를 지녔습니다.”


▶백범은 치부조차 솔직하게 드러냈습니다.

“성공하면 자기를 미화하는 게 보통인데, 백범은 그러지 않았어요. 감옥에서 고초를 당할 때 ‘젊은 아내가 몸이라도 팔아서 맛있는 사식을 넣어주면 좋겠다는 더러운 생각까지 했다’는 내용까지 일지에 썼어요. 일지는 아들들이 보라고 쓴 일종의 유서입니다. 이런 것까지 글로 남긴다는 것은 그만큼 순수하다는 것이지요. 험난한 도망자 생활을 할 때 도와준 처녀 뱃사공과의 러브 스토리를 일지에 남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백범은 분열된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백범 리더십 중 가장 위대한 것은 투철한 애국심입니다. 동포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바탕에 흐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게 임정을 끝까지 지킨 힘입니다.”


▶백범이 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의거를 주도했습니다. 두 의거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국내외 동포의 독립 투쟁을 가열시킨 촉매가 됐습니다. 중국 장제스(蔣介石)도 ‘한국과 합작해 대(對)일본 공동전선을 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백범은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광복군이 참전하기 직전에 일본이 항복하면서 우리 스스로 광복에 힘을 보태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죠. 광복군이 참전했다면 광복 후 우리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갈 힘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체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참전 여부는 곧 광복 후 외세 의존이냐, 탈피냐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걸 안 거죠.” 


▶백범 리더십이 오늘날 우리 정치권과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백범은 생각과 말, 행동이 일치된 삶을 살았습니다. 공인으로서 깨끗했습니다. 돌아가실 때 돈 한푼 남기지 않았습니다. 어떤 자리도 노린 적이 없습니다. 나라를 위한다면 서슴지 않고 몸을 던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자유한국당은 희생과 헌신의 자세가 보이지 않고, 백범이 가지고 있던 애국심 같은 것도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여당도 문재인 대통령 개인 인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정을 주도하고 여당은 심부름하는 역할만 했습니다.”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지지율은 뜬구름 같은 겁니다. 높은 지지율이 계속 유지될지는 장담 못 합니다. 걱정되는 것은 경제입니다. 경제 정책이 즉흥적으로 나오는 게 문제입니다. 근로시간 단축도, 최저임금 인상도 우리가 처한 경제상황과 따로 놉니다. 기업 및 노동자와 우리 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연구한 끝에 나온 것이 아닌 것 같아요.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규제 문제입니다. 정부 자체가 규제 덩어리입니다. 규제 권한이 강화되면 관료는 옷 벗은 뒤 갈 수 있는 자리가 생기죠. 국회의 규제 입법도 심각합니다. 규제 입법하는 의원 이름을 공개해야 합니다. 세계에서 공공 규제가 가장 강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이래서 어떻게 기업이 투자를 하고 고용을 하겠습니까.” 


▶국회의원 20년 경력 중 10년 이상을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관련 상임위에서 활동해 원자력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쟁력이 있는 이유 중 하나가 값싼 전기료로 생산성을 보장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원자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탈(脫)원전 정책으로 전기료가 오르면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바보 같은 짓입니다.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1등 산업을 밟아버리는 겁니다. 신재생에너지로 감당하기는 아직 어림없습니다. 국가재앙 시대를 자초하고 있어요. 국가의 미래가 망가지고 있는 것 같아 처연한 심정이 듭니다.”



김형오 前 국회의장은…

 

언론인 출신 14~18대 국회의원… 정계 은퇴 뒤 '역사 소설' 작가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언론인 출신으로 14~18대 국회의원(5선)과 국회의장(18대)을 지낸 정계 원로다.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다 1978년 외교안보연구원에 들어가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으로 부산 영도구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2012년 정계에서 은퇴한 뒤 작가로 변신해 《술탄과 황제》라는 역사 소설을 펴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정치인 시절부터 통찰력 있는 식견과 균형된 시각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시쓰는 술탄과 황제》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등도 펴내며 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1947년 경남 고성 출생 △1966년 경남고 졸업 △1971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1975년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1975~1978년 동아일보 기자 △1992~2012년 14~18대 국회의원 △2006~2007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2007~2008년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2008~2010년 국회의장 △2013년~ 부산대 석좌교수 △2015년~ 한국경제신문 객원대기자 △2015년~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 


정리=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



[2018-07-16 한국경제]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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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의 위기는 爭頭때문…백범 爭足에서 답 찾아야”






자신을 버리면 어떤 연정도 가능

상대를 품는 백범 리더십 배워야

 

정치판 개혁을 넘어 근본틀 바꿔야
정치문화도 시민의식도 혁신대상 


“백범 김구 선생은 우파인가, 좌파인가. 보수 정치 위기의 상황에서 백범 선생에게 무얼 배워야 하나.”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란 책을 쓴 김형오 전 국회의장에게 두 가지를 물었다. 첫 질문에 ‘둘 다 틀렸다’고 말했고, 두 번째 질문에는 ‘쟁족(爭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진 것 모두 버렸다면 해답 냈을것  


“온존(溫存)하고 쟁두(爭頭)하니까” 위기다. 자리를 지키고 모두 머리가 되려고만 하니 위기가 시작된다는 설명이다.  


김 전 의장은 “앉자마자 비대위원장 진짜 안 하느냐고 물었잖느냐. 왜 그런 질문이 나왔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정치인들은 다 ‘미 퍼스트(Me first)’한다. 그걸 기자도 알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백범 선생은 임시정부 처음 들어가서 문지기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도산 안창호 선생이 더 높은 자리를 줬다. 그러자 화를 냈다”며 “평생을 발이 되고자 했다. 쟁족의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내 후배들 다 똑똑하다. 가진 것 모두 다 버렸다면 왜 위기에 대한 해답이 안 나왔겠느냐”고 설명했다. 


쟁족 정신이 없으니 생긴 폐단이 계파다. 계파가 없으면 힘이 없고 흔들린다. 쟁두하려 하니 날 받쳐줄 계파를 만든다. 이걸 바꿔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백범 선생은 상해에서 공산주의적 사고에 물든 사람과 대립각을 세웠으면서도 이후 과감하게 그들과 연정을 했다”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포용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 많은 파벌과 계파를 엮어 연합했다. 그릇이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대의를 위한 일을 한 것”이라고 되짚었다. 


“그래서 백범 선생에게 그때 다들 ‘낭만적’이라고 비판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근데 백범 선생은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를 따지지 않았다. 30여년간 일제와 투쟁할 때 많은 사람이 전향했다. 계파주의가 판을 쳤다. 공산파, 민족파가 다퉜다. 그래도 백범은 끝까지 임시정부를 품었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책에서 백범 선생을 ‘우익세력’에 가깝게 표현했다. 그럼에도, 백범 선생이 공산계와 연정한 이유를 김 전 의장은 ‘독립’이란 대의를 위해서라고 했다. 보수가 계파다툼으로 위기에 빠졌기에, 대의를 생각한다면 상대를 품고 가는 백범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는 소리다. 


김 전 의장은 “말은 쉽지만, 쟁족이 힘들다는 것은 나도 안다. ‘희생하겠다, 헌신하겠다’ 말하지만 속으론 챙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를 버리면 길은 생긴다. 일본강점기 때 백범 선생도 버렸다”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지금은 천당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복당ㆍ잔류파든, 새누리당에서 분화됐던 한국당ㆍ바른정당이든 야권의 차이점이 일본강점기 좌ㆍ우익의 그것보다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계파로 말미암아 머리 되려는 사심을 접으면 포용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그는 “되풀이되는 온존이고 쟁두다. 비대위원장 안 한다 했으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 이유기도 하다”며 “어떤 후배든 혁신하고자 할 때에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인 ‘법안·제도’에 대한 숙고 없어 


정치판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으로 끝나는 개혁이 아니라, 근본을 바꿔야 한다는 소신이다.  


김 전 의장은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물갈이하라고 했더니, 다 물고기만 갈아버려선 안 된다. 물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인물이 들어와도 정치판이 그대로면 결국 과거의 문제만 되풀이한다는 교훈이다.  


바꿔야 할 세가지 판도 제시했다. 헌법으로 상징되는 제도와 정치문화, 시민의식이다.

정치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개헌을 필수이자 시작점으로 꼽았다. 김 전 의장은 “지금 헌법에는 권위주의적 장치가 있다. 민주헌법아니다”며 “제왕적 대통령제 같은 유신의 잔재가 있다. 이하 국회법, 정당법 모두 이를 따랐다”고 정치 제도와 시스템의 개선을 촉구했다.


이를 따라줄 문화도 정착돼야 한다. 정치인들의 사고방식 개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전 의장은 “엉뚱한 것으로 의사진행발언을 이어가는 형식논리가 계속된다. 그러니 연말만 되면 의장은 방망이 치느라 바쁘다”며 “정치권엔 지금 심의란 기능이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 후배 의원이 법안을 찬성했기에 왜 찬성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기권이나 반대하면 기자들이 물어볼까 봐 그랬다고 했더라”며 정치 본연의 역활에 충실할 수 있는 문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단순한 법안 통과율, 또 각 정파간 기싸움이 전부인 지금의 정치 문화를, 법안과 제도에 대한 숙고와 심사 기능이라는 정치와 국회의 원 뜻으로 바꾸자는 조언이다. 


마지막으로 국민, 즉 유권자들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좋은 정치도 표가 오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왼쪽 아니면 오른쪽’이라는 오래된 폐단에 대해 김 전의장은 “역사로 말미암은 교육체계 때문에 그렇다”고 해석했다. 그는 “성리학 전통이 이어졌다. 이념은 목숨을 내놓고 지킬 신념이었다”며 “이후 한세기도 안 되는 기간에 가장 빈곤했던 나라가 잘사는 나라가 됐고, 장기집권 시대에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지만, 그 사이 시민교육이 안 이뤄졌다. 급성장과 민주적 제도라는 양면이 순식간에 공존하니 중간이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민주정치의 필수인 타협 없이, 정반(正反)만 있고, 이는 결국 유권자와 국민들의 낡은 인식과 관습이 만든 결과라는 비판이다. 그는 “목표 중심, 성향 중심이다. 지금 입시제도도 그렇지 않느냐”며 “나도 후배들에게 이를 가르치거나 바꾸지 못했다. 우리 세대도 다 잘못”이라고 반성했다.  


백범 ‘사상적 관점’서만 봐선 안돼 


계파가 없다고 하면 선명성을 의심받는다. 그래서 일부는 우파로 일부는 좌파로 파악한다. 내년 서거 70주년이 되는 백범 김구 선생과 관련된 지금의 논쟁이 그렇다.

 

김 전 의장은 “백범 선생을 사상적으로 보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한국정치의 병폐인 계파, 진영논리가 작동하는 것이다”며 “백범 선생은 정확히 말하면 우익도 좌익도 아니다. 우에선 좌로, 좌에선 우로 본다. 어느 쪽에서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이는 백범 선생의 그릇을 한쪽 면에서만 보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백범의 민족 ‘우리끼리 민족’ 아니다 


“오로지 독립이란 대의였다. 그 아래에서 파벌이나 계파는 없었다. 대한민국 정치도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백범 선생은 희생을 각오했기에 대통령이 될 생각도 없었다”고 전했다. 우두머리가 되려 하지 않으니, 계파에 묻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전 의장은 “백범 선생의 민족주의를 서양의 내셔널리즘과 비교해선 안 된다”며 “선생이 말한 ‘민족’은 변질한 ‘우리 민족끼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미군 철수는 외치는 것과는 개념이 다르다. 그것은 민족에 사상을 붙인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의 소원’에서 가닥이 잡힌 민족주의는 개방형 민족주의였다”며 “민족만 뭉치자는 것이 아니라 민족으로 세계평화에 이바지하자는 것이다. 소위 ‘우리 민족끼리’와는 다른 것”이라고 오해를 바로잡았다.


“그때도 계파싸움이 잦았다. 밥 굶기를 밥 먹는 것처럼 했다. 그래서 싸웠던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한데 10만원 떨어졌다면 다투는 건 당연했다”며 “그러나 잘 먹게 되면 10만원을 ‘네 것이다. 아니다, 네 것이다’로 해야 한다. 그때는 힘들어서 싸웠지만, 지금 그럴 필요는 없다”며 정치 문화의 바로잡기를 다시한 번 강조했다.  


최정호ㆍ홍태화 기자/th5@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2018-07-13 한국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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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상상력ㆍ패기로 무장한 젊은 피가 보수야당 부활의 관건”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출간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


“내년 백범 70주기, 일지 72주년

책임ㆍ헌신으로 살아온 그의 정신

여야 정치인 모두가 되새겨봤으면”

“자기 세력만 옳다는 논리로 갈등

지금의 진영정치로는 희망 없어

진영보다 가치 중시하는 정치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11일 오후 마포 사무실에서 가진 한국일보 이유식 고문과의 대담에서 "우리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백범의 희생과 헌신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며 “상상력과 패기로 무장한 젊은 피가 보수 야당 부활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2018-07-11(한국일보)


김형오 전 국회의장에게 요즘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다. 지난 달 백범 서거 69주년에 즈음해 펴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에 대한 세간이 관심이 높은데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백방으로 수소문하는 비상대책위원장 물망에 끊임없이 오르내려서다.


그는 2010년 6월 18대 국회 전반기 의장 임기를 마친 후 야인으로 돌아와 정치보다는 저술에 몰두해 왔다. 그동안 내놓은 책만 해도 '술탄과 황제' 등 여러 권이지만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다. 이런 와중에 그는 틈틈이 정치원로서 후배 정치인들에게, 또 청와대를 향해 쓴소리(그는 바른소리라고 했다)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김 전 의장에게 저술가와 정치인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조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은 백범의 삶과 사상을 새롭게 해석한 그의 책이 나온 시점에, 새 리더십을 찾아 헤매는 한국당의 러브콜이 이어진 것이 참 묘하다. '벼랑에서 잡은 나뭇가지마저 놓아버리는' 백범의 결기가 지금 한국당에 꼭 필요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제의를 거절했다고 했다. 바닥에 떨어져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명망가를 얼굴 마담 삼아 이 궁지만 넘겨보자는 잔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3년째 백범선생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는 그를 지난 11일 오후 마포 사무실에서 만나 왜 지금 백범을 다시 불러냈는지, 길을 잃고 방황하는 한국당의 살 길은 뭔지 묻고 답했다.


-한문체로 된 백범일지를 한글로 풀어쓴 책이 1947년 처음 나온 뒤 지금까지 300종이 넘는 해석본이 다양한 내용과 형태로 출판됐다. 우리나라에선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 백범일지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백범이 묻고 김구가 답하는 새로운 접근과 내용이라고 하지만 이 시점에서 왜 하필 백범인가. 


“책 서문에 자세히 썼지만 이 나라가 거저 생긴 게 아니라는 것,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눈물과 아픔으로 일군 나라라는 것을 동시대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백범일지는 일기(日記)가 아니라 일지(逸志), 즉 소소한 이야기다. 아들에게 전하는 유서 형식으로 ‘못난 아비의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아비 대신 훌륭한 사람을 찾아 스승으로 섬기라’는 뜻과 함께 그의 지고지순한 국가관과 민족애, 헌신적인 삶이 잘 나타나 있다. 세상의 어떤 회고록이나 자서전도 이 책의 솔직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울림이 더 크다. 2015년 기념사업회장을 맡은 이후 효창원의 백범 묘소와 동상 앞에서 수없이 그와 대화한 결과물이다.”


-최근 정치상황이나 정치리더십, 특히 지방선거 참패 이후 혼란과 갈등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유한국당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내년이면 백범 70주기이자 백범일지 출판 72주년이다. 평생을 책임과 헌신으로 살아온 백범의 정신과 자세를 오늘날 여야 정치인 모두가 되새겨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2500년 전 그리스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페리클레스는 정치리더의 4대 덕목으로 지식과 소통, 애국심과 도덕성을 강조했다. 백범이야말로 이런 덕목을 몸으로 실천했다. 특히 솔선수범에 근거한 애국심과 도덕성은 지금 우리 정치와 보수야당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는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제목을 단 이유 등 책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했지만 이미 많은 언론이 다룬 내용이어서 화제를 돌렸다. 김구의 책임과 헌신 리더십을 이 시대가 요구한다면 그 자신도 그런 요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판단에서다. 더구나 대혼란에 빠진 한국당은 그가 한때 몸담았고 국회의장의 명예까지 안겨줬던 정당의 후신 아닌가.


-한국당이 쇄신의 깃발을 들고 개과천선하겠다며 강호의 명의들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디어 차원의 비대위원장 후보를 마구잡이로 언급해 그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망신을 자초했다. 유력 후보로 계속 거론되고 구체적 제안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입장에서 이런 방만한 방식을 꼬집는다면.


“난 정계를 은퇴한 사람이고, 백범선생기념사업회를 마지막 봉사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후배들이 나를 찾아 역할을 해달라고 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했다. 누가 지휘봉을 잡느냐 혹은 메스를 쥐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의원들의 일치된 각오와 자세, 즉 나를 버려서라도 변화를 수용하고 보수의 새 미래를 여는 밀알이 되겠다는 폭넓은 공감대를 먼저 만들어야한다고. 또 말로만 반성을 외치며 이회창이니 이국종이니 명망있는 얼굴마담을 쫓아다니는 것은 ‘낚싯대로 사자를 사냥하겠다’는 심보이니 그만두라고. 솔직히 말해 내가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아니다. 지금 날보고 비대위원장 맡으라고? 한마디로 턱없는 소리다.”


-한국당은 궤멸 수준의 패배를 당하고도 왜 감동을 주는 정치를 못하나. 시대착오적인 친박-비박 싸움을 거듭하며 네탓 타령만 하는 한국당에게 희망이 있겠는가. 최근 한 토론회에서 한국당 중진들을 향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의 심정으로 깨끗이 던져라”고 했던데 어떤 맥락과 의도를 담은 충고인가.


“요술방망이를 가진 누군가 와서 금나와라 뚝딱 식으로 해주길 기대하지 말고 중진들이 앞장서 대의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자리를 비켜달라는 것이다. 국민의 엄중한 심판은 복도에서 무릎 꿇는 참회 코스프레로 해소될 사안이 아니다. 혁신비대위가 필요한 위기상황이라면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반성과 살을 내주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한국당이 지금 그런가. 다음 총선까지 아직 2년 가까이 남았으니 이번 국면만 잘 모면하면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는 기회주의적 현실도피적 행태가 더 판을 치는 형국 아닌가. 기득권을 누려온 중진들이 한국당의 존폐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 정치의 앞날을 내다보는 큰 눈을 가져야 답이 보인다. 불출마든 퇴진이든 죽을 각오로 임하면 반드시 살 길이 보이는 법이다.”


-같은 자리에서 초ㆍ재선들의 무사안일을 책망하며 “더 이상 위아래 눈치보지 말고 어떻게 몸을 던질 것인지 고민하고 실천해달라”고 주문했다. 당부하고 싶은 실천의 내용이 뭔가.


“2016년 4ㆍ13 총선에서 200석 운운하던 새누리당이 민주당에 밀려 2당으로 몰락한 직후 초선 대상 연찬회에서 ‘무능하고 무기력한 당지도부와 국민을 우습게 보는 청와대의 공천 전횡으로 보수정당 사상 최악의 패배를 맛보는 동안 누구 하나 쓴소리한 적이 있느냐’고 질책하며 초선들이 앞장서 사나흘 철야토론하며 뼛속까지 반성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후 어떻게 됐는가. 뭐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초선들부터 무리지어 친박 행세를 일삼고 취미삼아 정치를 하지 않았나. 낡고 늙은 이념에 물든 당 대표가 막말과 기행으로 당을 말아먹어도 차기 공천을 좇아 각자도생하지 않았는가. 박근혜 정부의 불행은 나이먹은 늙은이든, 애 늙은이든 잿밥에만 눈이 어두워 한국당을 농단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상력과 패기로 무장한 젊은 피가 보수야당 부활의 관건이다.”


-보수야당의 몰락을 초래한 배경에는 보수정당이 안보와 성장의 이데올로기에 의존해 너무 쉽게 정치를 해온 것도 있다고 본다. 보수세력이 시대와 세대가 바뀌고 사회의 의제와 가치가 변하는 것에 유연하고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우리 세상이 계속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문제를 외면했다는 뜻이다. 선배 정치인들도 반성해야 하지 않나.


“3김 시대 때부터 이어져온 우리 정치의 패턴은 보수 정치체제와 계보정치다. 그 계보정치가 지금은 진영정치로 퇴화했다. 자기세력만 옳다는 진영논리가 지배하는 갈등의 정치로는 희망이 없다. 나를 포함한 선배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못한 결과지만, 이런 타성에 젖으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결국은 공멸이다. 보수정치 차원이 아니다. 이제야 말로 진영보다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 같은 보수가, 진보 같은 진보가 나와 한국 정치가 가야할 길을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보수나 진보가 보다 분명한 개념을 세워야 한다. 완전히 바꿔야 할 계기를 국민들이 6ㆍ13에 메시지를 준 거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에도 동시에 준 메시지라 본다."


-보수진영이 사람과 자원을 키우기보다 수십 년 동안 곳간에 있는 것만 빼먹으며 기득권만 누리다가 고립무원의 거지꼴 신세가 됐다. 1960년대 월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쇠락하던 미국 보수를 다시 세우고 레이건 시대에 꽃피운 ‘헤리티지 재단’ 같은 싱크탱크나 보수 아카데미를 통한 지속적인 인력충원의 필요성이 제기되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당장 새 기구를 만들기 어렵다면 당 산하의 여의도연구소를 활용할 수도 있다. 나는 정당이 국민 혈세인 국고보조금으로 운영되는 것을 오래 전부터 반대해왔다. 민간 후원금이나 당비로 운영되는 게 옳다. 다만 정책을 연구하는 조직이나 싱크탱크에는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을 찬성한다. 당 외곽이나 대학 등에 보수의 이념과 전통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재단이나 아카데미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독지가 그룹도 중요하다."


-영국 보수당이나 미국 공화당, 일본 자민당의 사례에서 한국당이 벤치마킹할 부분이 있겠는가.


"보수물결이 유럽을 휩쓸던 80년대 초 영국 보수당 등의 역사와 사례를 분석한 소책자를 낸 적 있다. '시대정신에 민감한 개혁과 끊임없는 자기 수혈'을 결론으로 적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흔히 보수라고 하면 퇴행과 정체, 기득권을 연상하는데, 안정적 개혁과 인재 존중이야말로 보수의 참모습이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한국당은 보수가 아니라 남은 몇 푼에 집착하는 수구적 집단이다. 그라운드 제로까지 내려가 고민하고 공부하며 집을 다시 지어야 한다. 2020년 21대 총선까지 남은 1년 반 남짓한 기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찬란한 부활도 가능하고 참혹한 폭망도 가능하다."


-다시 한번 묻자. 한국당 비대위원장 맡는 것도 책임과 헌신인데.


"소를 물가까지 끌고갈 수는 있어도 강제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 먼저 내 몫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이익집단엔 관심이 없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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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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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김형오 국회의장 


한국당, 물갈이 하랬더니 물은 안 갈고 고기만 바꾸려 해



 


백범 김구 선생의 살신성인의 자세와 희생·책임의 정신이 아쉽습니다.”

 

김형오(71) 전 국회의장은 지난 9자유한국당이 정말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했다는 각오로 임할 때 필사즉생의 여지도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전 의장은 이날 서울 마포구 개인연구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백범이 평생 마음에 새긴 경구 중 하나가 벼랑에서 나뭇가지를 잡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며 그 잡은 손마저 놓아버려야 장부라는 말이라며 지금 선거하면 한국당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하는 처절한 각오와 심정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9일 서울 마포구 개인연구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자유한국당의 수습 움직임과 관련해 한국 정치사는 물갈이를 하라는 민심의 심판에 물은 안 갈고 고기만 바꾼 사례가 허다하다제도와 정치문화(행태), 행위자 모두 바꿔야 정치판을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서상배 선임기자

 

김 전 의장은 6·13 지방선거 직후 한 토론회에서 한국당 참패 이유로 새로운 인물을 키우지 못한 죄 권력의 사유화에 침묵한 죄 계파 이익 챙기느라 국민 전체의 이익을 돌보지 않은 죄 집권여당에 제대로 싸우지도, 대안 제시도 못한 죄 교만과 오만, 막말과 품격 없는 행동으로 국민을 짜증 나게 한 죄 반성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죄 희망과 비전을 등한시한 죄 7가지를 꼽았다. 촌철살인 같은 정리에 지방선거에서 한국당 후보를 찍은 지지자는 물론 등을 돌린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당 한국당의 혁신을 바라는 많은 이들이 김 전 의장을 찾아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만큼의 식견과 경륜, 리더십, 무엇보다 망해가는 보수정당에 대한 애정을 갖춘 인사가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매번 나는 아니다며 에둘러 고사의 뜻을 나타냈다고 했다. 왜일까. ‘정치 현안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싶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는 김 전 의장을 백범(18791949) 서거 69주기에 맞춰 펴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아르테)를 핑계로 만났다.

 

김 전 의장은 백범 선생의 차남 김신 장군(19222016)의 요청으로 20157월부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의 부제는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백범 김구의 생애와 사상이다. 백범이 1947년 펴낸 회고록·자서전 백범일지를 토대로 백범(白凡·평범한 사람)이 질문(Q)하면 김구 선생이 답(A)하고 김 전 의장이 추가 설명을 보태는(+) 형식이다. 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은 직후 요즘 같은 세상이야말로 백범 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대 아닌가요?”라는 출판사 대표 말에 용기를 내 내리 3년을 집필에 매달렸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가 피로 쓰여진 책이라고 부를 만큼 김구 선생의 삶이 여느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라고 강조했다. 김구 선생이 엄혹한 시대상황에 맞서 온몸을 던지며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한 초지일관된 삶을 산 분이라고 소개했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의 사상에 대해선 투철한 국가관과 불타는 동포애, 민족 중심의 평화주의라며 백범만큼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관된 분은 없다고 단언했다.

 

20세기 독립투사의 삶과 정신, 자세가 21세기 한국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김 전 의장은 혼돈·혼미의 시대, 그 어느 때보다 영웅을 그리워하지만 더 이상의 영웅은 나올 수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개개인 모두가 스스로 영웅이 돼야 하는 시대, 특정 지도자가 끌어가는 게 아닌 우리 모두가 영웅적 자질과 품성을 갖고 영웅적 행동을 해야 하는 시대라며 김구 선생의 책임감과 희생, 헌신이 21세기 현대사회 영웅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전 의장과의 일문일답.

 

대개 보수진영은 해방 이후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진보진영은 김구 선생을 꼽는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전신) 출신 국회의장으로서 백범기념사업협회장을 맡고 이번에 책까지 낸 까닭은.

 

김구 선생 같은 분을 보수, 진보와 같은 이분법적인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은 좀 시정이 돼야 할 것 같다. 백범이라는 사람의 일생일대 올곧은 삶을 당시와 오늘날 상황에 비춰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지가 기본이 돼야 한다. 내가 김구 선생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 엄혹한 상황 속에서 당신은 어떻게 온몸을 던져가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초지일관된 삶을 사셨을까 하는 점이다. 김구 선생의 삶과 정신을 무슨 이념이나 사상에 따라 세분화하는 것은 조금 사치스럽고 한가하다는 느낌이 든다.”

  



기자 출신으로 그간 술탄과 황제’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등 많은 책을 냈다. 이번 책도 술술 쓰셨겠다.

 

기념사업협회장 직을 맡고 난 뒤 얼마 안 있어 술탄과 황제를 펴낸 출판사 대표가 김구 선생에 관한 기획안을 갖고 찾아왔다. 그런데 내가 백범 전문가도 아니고, 명색이 백범기념사업협회장인데 당신에게 누를 끼치는 것 같아 단칼에 거절했다. 그런데 대표가 요즘 같은 시대에 김구 선생을 제대로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더라. 마음이 흔들려 틈만 나면 선생 묘소를 찾아가고 백범일지를 들춰가며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되물었다. 결국 선생의 민족사랑이나 리더십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 책을 쓰게 됐다.”

 

예비독자들, 특히 젊은세대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면.

 

안중근 의사 집안과의 극적인 만남, 김구 선생의 멘토고능선과의 교유, 애절한 가족사 등 많고 많다. 그중 백미는 백범과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관계를 묘사한 부분이다. 이 나라가 거저 생긴 나라가 아니라 우리 선열들의 피로 이뤄진 나라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당신들의 뜨거운 애국혼에 나 스스로 글을 쓰면서 울기도 했다. 오늘날 고뇌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자세, 힘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자유한국당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그래도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를 이끌어온 한 축인데 요즘 보면 비판을 넘어 조롱거리로 전락한 느낌이다. 의장도 한국당의 7가지 죄로 알려진 강연도 하시고 한국당 비대위원장 제안도 받으신 걸로 알고 있다.

 

그날 강연의 핵심은 한국당 비판이라기보다는 이 나라 정치판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사실 더 (세게) 이야기하려다가 그래도 전에 몸담았던 곳인데, 너무 짓밟으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차마 더 하지 못했다. 이번에 기념사업협회장 맡으면서 다시는 정치에 복귀하지 않는다고 다짐을 했다. 이런 전제하에 한국당을 중심으로 보자면 요즘은 정치가 사라진 것 같다. 정치라는 게 없다. 가만히 보면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자기들 선거(총선)까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선 안 된다. 물갈이를 하랬더니 물은 안 갈고 고기만 바꾸려는 꼴이다.”



 

정치판을 갈아야 한다고 했는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나 다른 야당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여야 하나씩만 지적하자면 여당한테서는 국정주도 정당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민주당이 지금까지 앞장서 문제를 제기하고 (정책을) 이끌어나간 게 뭐가 있으며 청와대의 무리한 정책추진에 대해 제동을 걸어본 적이 있는지를 묻고 싶다. 야당은 제발 국회 보이콧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슨 틈만 나면 (요즘은 국회 본청 앞 계단인 것 같지만) 국회 바깥으로 뛰쳐나가는데 가관이다. 국회에서 36개월 치열하게 싸우고 토론한 적 있는가. ‘일하는 국회 좀 만들어달라는 대통령·정부 비판에 일하는 국회는 정부 입맛대로 법률안을 통과시켜주는 게 아니다고 자신있게 반박할 수 있는 야당 모습을 봤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에 몸담은 지 30년이 넘었다. 나이로는 종심(從心·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이다. 정치권이나 인생 후배들에게 건네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조선 세종대왕이 재위 7년 어전회의에서 했던 말을 소개하고 싶다. ‘위국지도(爲國之道) 막여시신(莫如示信)’.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국민의 신뢰를 얻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들께 우리를 믿어달라고 호소하기에 앞서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나이 얘긴데, 일흔이 되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건 공자 같은 성인군자뿐이다. 나 같은 사람은 70이 아니라 80이 되어도 법도에 어긋날지, 괜찮을지 항상 경계하고 삼가며 살아가야 한다. 됐제?”

 

대담=송민섭 정치부 차장

 

정리=이우중 기자 stsong@segye.com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경남 고성(71) 부산 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서울대 정치학 석사, 경남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기자 국회의원 5(14~18) 한나라당 사무총장, 원내대표 18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부산대 석좌교수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2018-07-11 세계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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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답식으로 서술한 김구의 삶·사상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 김형오 엮음 / 아르테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백범일지를 문답식 구성으로 풀어냈다. 저자는 지난 3년간 매일 효창원 백범 묘소와 백범 좌상을 마주하며 김구의 삶과 사상, 시대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책은 그 결과물로 전문 연구가가 아닌 보통사람의 마음으로 김구의 생애와 생각을 진솔하게 바라본다. ‘보통사람을 가리키는 김구의 호 백범(白凡)처럼, ‘보통사람들의 질문에 김구가 직접 답하는 Q & A 형식을 취한다. 여기에 저자가 시대 상황 등에 대한 추가 설명을 더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김구의 인간적인 모습도 조명한다. 김 전 의장은 세월이 흐를수록 백범은 더욱 그리운 이름, 절실해지는 얼굴이다. 늘 푸르게 깨어 있고 서늘하게 살아 숨 쉬는 얼과 혼이라며 이 책은 그런 선생과 백범일지에 바치는 헌사라고 밝혔다.

 

저자는 김구를 무작정 존경하거나 따르기보다는 배워야 할 점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을 구분해 삶의 귀감으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412, 19800.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2018-06-29 문화일보] 기사 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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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현식 2018.06.30 0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 입장엔 테러리스트 맞구만....
    안중근도 테러리스트고
    따질려면 전주이씨 종친회를 욕해야지.....
    나라 팔아 먹고 그렇게 됐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