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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의장이 국회의장을 퇴임한 후, 정리할 것들이 많았지만, 의장 임기 중에 받은 편지, 책, 선물은 물론이고 임기 중의 활동을 개인적으로 기록한 기록물의 양도 엄청나서 그것들을 정리하는데만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느 정도 큰 물건들의 정리를 마치고, 편지를 정리하는 가운데 한 통의 편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님께.

  햇빛이 좋아 포근하기 이를 데 없는 날씨입니다. 철창 밖에는 겨울 동안 움추려 있던 목련이 이제야 활짝 피었습니다.

  갑작스런 편지로 인해 많이 당황하셨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실례를 범한 점 넓으신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청송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소자입니다. 한순간의 실수로 이곳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올해 나이는 서른세살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한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국회의장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펴내신 <길 위에서 띄우는 희망편지>를 한권 받아보고 싶습니다. 여유가 된다면 부탁드립니다.


  낯선 지역의 새로운 문화를 아는데 여행이야 말로 단연 으뜸이라 생각합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듯 책 속 여행을 통해 낯선 곳이 주는 자극과 새로운 것들의 설레임을 느끼고 싶습니다. 각박하고 조금은 살벌한 이곳 생활에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아울러 국회의장님께서 자연에게 속삭임을 담은 편지도 음미하고 싶습니다. 자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더욱 새기고자 합니다.


  저를 미화시키거나 여건과 환경에 책임을 돌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생활고를 겪고 있어서 부탁한 책을 구입할 수가 없습니다. 이 점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안면부지의 국회의장님께 이런 부탁을 드리기가 송구스러워 편지를 보낼까 여러 번을 망설였습니다.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보내주시는 책은 한 줄씩 아껴가며 마지막까지 서캐 훑듯하며 읽겠습니다.


  비록 한순간의 어리석음 때문에 뜻하지 않은 삶 가운데 있지만 지난 날의 잘못을 회개하면서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거듭 태어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의 마음을 소중히 여겨주시길 바랍니다.

  하루에 삼십 분이 주어진 운동시간에 담장 밑에 떨어진 예쁜 꽃을 주어다 책갈피를 할려고 곱게 말려 놓았습니다. 이것을 편지지에 붙여서 보냅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이 이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두서 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다고 애쓰신 국회의장님의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국회의장님의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며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2009년 4월 15일
청송교도소에서 재소자가 드립니다.


저는 이 편지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할까요.
물론 지은 죄에 대해서는 응당 그 죄에 대한 댓가를 치뤄야 합니다.
그 댓가로 사회와 격리된 채 철창과 높은 담벼락으로 가로막힌 감옥 안에서 자유를 그리워하는 참회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생각하면..
어쩌다 흉악한 죄를 지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죄를 떠나 '사람'으로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공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갈매기 - 2010. 4.17. 독도


비교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군대에서 경계근무를 서면서 부대 밖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부러워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담장 밖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에,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죄책감까지 더해져 이 재소자의 마음은 얼마나 더 간절할까 헤아려보니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특히나 30분 주어진 운동시간에 담장 밑의 들꽃을 주워다 말려 편지지에 붙여 보내며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이 이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라는 부분을 보면서, 성경에 나오는 어느 과부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느 가난한 과부가 헌금을 하는데, 사람들이 그 액수가 적은 것을 비웃자 예수께서 "적은 액수일지 몰라도 이 과부에게는 전부"라는 말씀을 하시는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절 ~ 4절) 더보기

책갈피를 하려 곱게 말려놓은 들꽃 밖에는 가진 것이 없는 재소자에게 받은 그 들꽃이 어찌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편지의 책을 요청하는 부분이 형광펜으로 표시된 것으로 보아, 재소자가 요청한 '길 위에서 띄우는 희망편지'는 요청대로 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재소자의 표현대로 '각박하고 조금은 살벌한' 그곳의 생활 가운데에서 보내준 책을 통해 잠시나마 그토록 그리운 자유를 느낄 수 있고, 또한 자신이 저지른 범죄 - 타인의 자유를 침해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칠 수 있길 바라봅니다.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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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메시 2010.06.29 1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찡한 사연이군요....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것은 바로 이런 주고받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2. 쉘리 2010.06.29 18: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국회의장님께서 답장도 주시고 책도 보내주셨더라면 정말로 멋있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