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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우체국(서신)/보낸 편지함

농 득 마잉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님에게

지난 12일, 김형오 前의장은 한국으로 시집온 지 일주일만에 무참히 살해당한 베트남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습니다.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스무 살 베트남 신부에게)


...민망하고 수치스런 일입니다. 낯이 뜨거워집니다. 일말의 자책감이 밀물져 옵니다. 그건 제가 지난봄에 펴낸 책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란 책에 썼던 이런 구절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11월 베트남을 공식 방문해 국회의장과 공산당 서기장을 만났을 때 그분들이 특별히 당부하더군요. 한국에 가 있는 베트남 여성들을 딸처럼, 며느리처럼 여기고 주의 깊게 지켜봐 달라고….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중략) 이제 우리나라에 온 베트남 여성들은 한국인이고 우리 가족입니다. (후략)”(261쪽)


  다시 베트남을 방문한다면 공산당 서기장과 국회의장을 무슨 면목으로 볼 수 있을까요? 베트남 국민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당장 제가 일자리를 주선해 국회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베트남 여성 쩐티 뭐이씨를 만나면 뭐라 말할 수 있을까요? 그녀의 맑고 선한 눈망울을 마주칠 일이 조금은 두려워집니다...




그리고 농 득 마잉(Nong Duc Manh)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에게 다시 한번 사과의 뜻을 전달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는 다짐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지난 11월, 베트남 농 득 마잉 당서기장과 김형오 국회의장



 친애하는 농 득 마잉(Nong Duc Manh)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님에게

 안녕하십니까, 농 득 마잉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님.

 어떤 인사말로 편지를 시작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기만 합니다. 우선 할 수 있는 모든 예를 갖추어 깊은 조의와 함께 진정 어린 사과를 드립니다. 숨진 신부의 가족과 베트남 국민들에게도 용서를 빕니다.

 작년 11월 귀국을 방문한 제가 서기장님을 만나 한국과 베트남은 사돈 관계라면서 뜨겁게 손을 맞잡은 게 엊그제 같은데 그만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서기장님은 특별히 저에게 한국에 가 있는 베트남 여성들을 딸처럼, 며느리처럼 여기고 주의 깊게 지켜봐 달라는 당부까지 했는데 말입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겠습니까. 귀국의 귀한 따님을 지켜드리지 못해 정말로 죄송합니다.

 저도 그 슬픈 소식을 신문에서 읽고는 며칠 동안 밤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숨진 신부를 애도하는 글을 써서 제 블로그에 올렸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이렇게 서기장님에게 편지를 씁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가능한 모든 방법들을 동원해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하겠습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국제결혼 중개업체의 설립을 허가하고, 국제결혼 신청자의 자격 요건도 강화하겠습니다. 외국에 맞선 보러 가는 남성들에 대한 소양 교육도 보다 철저히 하겠습니다.

 바라건대 이번 일로 인해 두 나라 사이의 우의와 신뢰에 금이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절대 다수의 우리 국민들은 베트남을 친구의 나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여성들과의 국제결혼이 보편화된 뒤로는 더욱더 큰 친밀감과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녀들 모두 소중한 우리 국민이고 글로벌 시대를 선도해 나갈 값진 인적 자산이니까요. 두 나라 언어를 쓰고 두 나라 문화를 알고 두 나라 모두를 사랑하는 아주 특별한 존재들이니까요.

 거듭 사죄의 말씀과 함께 다시는 이런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이제는 우리 딸, 우리 며느리이기도 한 귀국의 여성들을 배려와 존중과 사랑으로 따뜻이 감싸 안겠습니다.

 다음번에는 반갑고 기쁜 소식들로 가득 찬 편지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친애하는 농 득 마잉 서기장님, 그리고 베트남 국민들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2010년 7월 13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김형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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