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형오 우체국(서신)/보낸 편지함

‘기적’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기적’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어떤 소설, 어떤 영화나 드라마가 이보다 더 감동적이고 손에 땀을 쥐게 할까요? 칠레에서 생중계된 기적의 드라마, 희망의 시네마가 지구촌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21세기 가장 인간미 넘치는 한 편의 휴먼 다큐멘터리가 절망과 상심을 순식간에 기쁨 가득한 축제로 바꾸었습니다. 환희에 찬 샴페인을 터뜨리게 했습니다. 국정감사 때문에 남미를 순방하고 있는 나도 현지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시시각각 전해지는 뉴스를 접하며 박수를 치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구조용 캡슐 ‘피닉스’를 타고 33명의 ‘불사조’들이 무사 귀환할 때마다 달려가 손을 잡아 주고 싶었습니다.


칠레 국민을 비롯한 온 인류의 간절한 염원이 절망의 우물 속으로 두레박을 던져 희망의 생수를 길어 올렸습니다. 불굴의 의지로 극한 상황을 이겨낸 33명의 광부와 그 가족, 미증유의 재난을 국민 통합과 단결로 승화시킨 칠레 정부, 한 마음 한 뜻으로 무사 생환을 기원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전 세계인의 인류애가 아니었더라면 결코 일궈내지 못했을 고결한 인간 승리입니다. 비좁고 어두운 갱도 안은 지금까지 어떤 정부나 조직에서도 구성해 본 적이 없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사회 공동체’였습니다.

두 번째로 구조돼 나온 마리오 세풀베다가 던진 한 마디가 심금을 두드립니다. “신과 악마가 지하에서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공포와 싸우며 언제 올지 모를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그들의 심경을 그 이상 더 적절하게 표현할 말이 또 있을까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결국 그들은 악마를 물리치고 신의 손을 잡았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습니다.

햇살 아래로 나온 33명의 광부들, 그들의 검은 얼굴은 모두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캄캄한 지하에서 69일 동안 그들이 캐 올린 것은 희망과 신뢰, 용기와 도전,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이란 희망과 이음동의어입니다. 까마득한 지하, 캄캄한 갱도 안에 환한 등불을 밝혀 준 것은 다름 아닌 ‘희망’이었습니다.

참치 두 스푼, 우유 반 컵, 비스킷 몇 조각으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낳은 것은 나보다 남을 먼저 위하고 생각하는 따뜻한 ‘배려’였습니다.

역시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침몰하는 타이타닉에서도, 무너져 내린 삼풍백화점 콘크리트 더미 아래서도, 아이티 지진 참사 현장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아름답게 하고 존엄하게 하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보았습니다.

빛나는 리더십과 끈끈한 동료애, 아름다운 희생정신은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던 칠레에 화합과 소통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 주었습니다. 33명의 ‘나’가 ‘우리’로 뭉쳤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역과 이념 그리고 세대 간의 불협화음이 깊어지고 있는 우리도 이 사례를 귀감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 한 번 기적의 불사조들에게 뜨거운 박수와 찬사를 보냅니다. 당신들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