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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우체국(서신)/보낸 편지함

‘청춘’의 이름으로 길이 빛날 것입니다

  트위스트 김을 추모하며


‘청춘’의 이름으로 길이 빛날 것입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 반짝, 전등이 켜지듯이 ‘청춘’이란 두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60년대와 70년대에 <맨발의 청춘> <맨주먹 청춘> <불타는 청춘> <즐거운 청춘> <아빠의 청춘> 등 ‘청춘’ 시리즈로 주연배우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셨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주인공을 빛내 주는 역할을 언제나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영화를 대중의 사랑으로 활활 타오르게 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훌륭히 해내셨습니다.


  선생님은 실제로도 당신이 출연했던 그 영화들의 제목처럼 한평생 빛나는 청춘을 살다 가셨습니다. 평소 청바지와 청재킷을 즐겨 입었으며, 89년과 92년에는 국제트라이애슬론연맹 주최로 열린 철인 3종 경기에서 두 차례나 우승하며 청년의 체력을 과시하셨습니다.

출처: 서울신문


  선생님은 또한 새로운 도전과 모험의 표상이셨습니다. 국내에 처음으로 트위스트 춤을 소개한 이도 선생님이셨습니다. 트위스트를 얼마나 좋아하고 잘 추셨는지 본명인 ‘김자 한자 섭자’ 대신 예명인 ‘트위스트 김’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셨습니다. 고향이 부산이시지요? 제가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낼 때 선생님은 젊은이들의 우상이셨습니다. 저는 몸치여서 춤을 출 줄 모르지만 제 친구들은 학교 뒷산, 동래 금정산, 영도 태종대, 아미동 천마산 가릴 것 없이 모였다 하면 트위스트로 끼를 발산했습니다.


  이제 막 가난에서 벗어나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던 전환기에 선생님은 소탈하고 서민적인 풍모로 우리 국민들의 애환을 달래 주셨습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발산하는 기폭제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남다른 개성과 특유의 애수 어린 눈빛으로 보통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으셨습니다.


  선생님은 전방위 연예인이셨습니다. 영화배우, 탤런트, 코미디언, 가수, 댄서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재치 있는 입담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셨습니다. 고된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 순간 일본의 하이쿠 시인이 쓴 시 한 줄이 생각납니다. “웃기 잘하던 그 청년이 죽었으니 세상도 조금은 쓸쓸해지겠지.” 그 시를 살짝 바꾸어 선생님 영전에 바치렵니다.
 
“웃기기 잘하던 트위스트 김이 떠났으니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세상은 조금 더 쓸쓸해지겠지.”


  낙엽 지는 모습도 오늘은 왠지 트위스트 춤처럼 보입니다. 낙엽이 쌓인 길은 조금 미끄럽지만 트위스트를 추기에는 제격입니다. 선생님 떠나가시는 길을 낙엽들이 행렬을 이루어 트위스트를 추며 따라갑니다. ‘낙엽과 함께 하는 트위스트 춤!’… 선생님은 끝까지 낭만을 선사하고 가시는군요. 삼가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