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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김형오의 말말말

신공항 문제, 왜 나는 ‘퍼스트 펭귄’이 되려 하는가

신공항 문제, 왜 나는 ‘퍼스트 펭귄’이 되려 하는가


우리는 세종시와 새만금은 물론 전국 15개 시‧도에 골고루 혁신 도시를 건설해야 한다. 100조가 넘는 예산을 땅 속에 쏟아 부어야 한다. 불가피한 일, 꼭 해야 할 일이 돼 버렸다.

해줄 것은 빨리 해주고, 그렇지 않은 것은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정부에 대한 지방의 불신을 키웠다. 신공항 문제 역시 우유부단하게 시간만 끌면서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여타 사업처럼 신공항도 세게 밀어붙이면 내 지역에 오게 된다는 집단 심리를 조장하고 촉발시켰다.

신공항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조원, 막상 첫 삽을 뜨면 그 두 배 이상의 혈세가 들 수도 있는 초대형 프로젝트이다. 이 돈은 누가 대는 것인가.

비용은 그렇다 치고, 과연 입지 타당성은 있는 사업인가. 부산에선 “국제공항을 산 속에 지을 셈이냐. 논밭 수백만 평을 갈아엎고 십여 개의 산을 깎아야만 가능한데 민원‧소음‧환경 문제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현재의 김해공항보다 못한 국제공항이 웬 말이냐”며 밀양 불가설을 내세운다.

대구 쪽은 어떤가. “가덕도는 위치상 동남권 중심 공항이 될 수 없다. 대구와 경북 사람들은 아예 인천으로 가는 편이 낫다. 그 깊은 바다를 매립하는 데 드는 비용과 기술도 감당 못한다. 거기는 또 태풍에 취약한데다가 낙동강 환경 보호 구역과 밀접해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양쪽 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보완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동안 정부는 무얼 했느냐는 것이다. 중앙정부 예산으로 집행할 공사인데도 정부가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지자체가 정해 놓은 두 지역 중 택일을 강요받고 있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지자체의 힘이 세진 게 아니다. 중앙정부가 유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 정부의 약점인 소통 부재와 책임의식 실종, 그리고 시스템에 의한 일처리가 아닌 대통령과 청와대의 눈치 보기가 이런 결과를 자초했다.

새만금은 법정 다툼 끝에, 세종시는 국회 표결로 겨우 수습되었다. 싸움은 격렬했고,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뿐인가. 토지주택공사(LH공사) 본사 이전은 전주냐 진주냐로 지역 간 갈등을 빚고 있고, 남강댐 물은 부산에 주느냐 마느냐로 그 사이 좋던 부산과 경남이 티격태격하고 있다. 지역의 이익에 반하는 딴 목소리를 냈다가는 곧바로 비난의 화살이 날아온다.

이래서는 안 된다.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하지만 걱정스럽다. 그처럼 혹독하고 비싼 대가를 치렀는데도 이전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지혜롭게 풀어나갈 기미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신공항 문제는 이미 조정 기능과 여과 장치, 대화와 토론 자체가 상실된 지 오래다. 국회도 정부도 사법부도 종교계도 시민단체도 권위와 신뢰를 잃었다. 그 결과 집단과 지역의 편익에만 매달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는다. 표를 의식하고 인기를 얻어야 하는 정치인도 이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솔선수범과 살신성인, 이제는 누군가 희생을 각오해야 할 때가 왔다. 우리 사회는 지금 한 단계 전진하느냐 후퇴하느냐, 그 문턱에 서 있다.

누군가 몸을 던지지 않으면 점점 깊어만 가는 이 불신과 지역 이기주의의 늪을 벗어날 수 없다. 한두 사람의 희생으로 쉽게 이루어지리라 생각했다면 나는 애초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나타날 수많은 자기희생적 대열에 다만 ‘퍼스트 펭귄’이 되겠다는 각오와 신념으로 이 일에 나섰다. 빙산의 벼랑 끝에 다다랐을 때 맨 먼저 바다로 몸을 던짐으로써 나머지 펭귄들도 꼬리를 물고 바다로 뛰어들게 만드는 그 ‘첫 번째 펭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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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6일 김형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