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김형오의 말말말

‘희망버스’ 참가자 분들에게


‘희망버스’ 참가자 분들에게
“영도는 그대들을 거부합니다.”
“정치인들은 영도행이 아닌 여의도행 희망버스에 함께 탑시다.”

김형오(국회의원, 18대 전반기 국회의장)

요 며칠 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일말의 자책감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호소라 해도 좋고, 하소연이라 해도 괜찮습니다. 희망버스 출발을 하루 앞둔 오늘은 이런 편지로라도 제 간곡한 뜻을 그대들에게 전해야겠기에 펜을 들었습니다.

        * 기자간담회를 통해 수해를 입은 영도의 지리적 상황을 설명하는 김형오 의원

김진숙씨는 충분히 결기 있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이제 그만 크레인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희망버스를 원격조종하고 있다는 혐의를 벗어야 합니다. 그래야 장막 뒤에 숨은 조남호 회장에게도 노동자들 앞으로, 청문회장으로 나오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명분이 생깁니다.

혹시 희망버스가 김진숙씨를 내려오지 못하게끔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요? 소영웅주의의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건 아닐까요? 단언하건대 이건 사랑이 아닙니다. 참된 격려와 응원도 아닙니다. 그대들이 아무리 대의를 외치고 강변한다 해도 그것이 개인의 극단적 희생을 볼모로 한 거라면 저는 단연코 반대합니다. 언제까지 그녀를 이 불볕더위와 폭우 속에 내버려 둘 건가요?

2차 희망버스로 인해 영도는 이미 극심한 몸살을 앓았습니다. 그대들은 불청객이었습니다. 만약 그대들이 반갑고 고마운 손님이었더라면 영도 주민들은 집집마다 화장실을 개방하고 페트병에 찬물이라도 담아 건넸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희망’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두 번째는 ‘실망’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절망’일 것 같은 예감마저도 듭니다. 왜 절대다수가 원하지 않고 모두가 불행해지는 길로 가려는 겁니까? 미흡하지만 노사가 어렵사리 합의했고, 이제는 남은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가슴을 열어야 할 이때 말입니다.

‘국민의 이름으로’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산 시민의 이름으로, 영도 주민의 이름으로 희망버스를 단호히 반대하고 거부합니다. 영도는 그대들의 ‘해방구’가 아닙니다. 악몽과 재앙은 절대 사절합니다. 지금 당장 그대들이 희망버스를 몰고 달려가야 할 곳은 물 폭탄 세례로 고통 받고 있는 재난의 현장이 아닐까요?

이번 집중호우로 부산 지역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말 그대로 ‘섬’인 영도는 상황이 더욱 심각합니다. 길은 끊어지고 언덕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대들은 저 참상과 신음소리가 안 보이고 안 들리나요? 그대들과 공권력의 충돌도 염려스럽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분노한 민심이 어떤 식으로 폭발할는지 그게 정말로 두렵고 공포스럽습니다.
물론 그대들 대다수는 순수한 마음으로 희망버스에 탑승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어쩌면 오늘 밤 야근을 마치고 고단한 몸으로 버스에 오를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희망버스는 지금 그 진의를 의심받고 있습니다. 과연 희망버스에는 무엇이 타고 있으며 행선지는 어디인지, 진짜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는 고개를 내젓고 있습니다.


                                         *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2차 희망버스로 부산 시민과 영도 주민들은 엄청난 불편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장마 끝의 때 아닌 재앙으로 가뜩이나 도로며 도시 기능이 마비된 지금, 3차 희망버스가 들이닥친다면 어떤 불상사가 생길는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는 주민들을 위로는 못할망정 또 다시 폐를 끼친다면 그 분들 가슴에 치밀어오를 분노와 증오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게다가 수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경찰 병력 중 상당수를 그대들 때문에 부산으로 보내야 한다면 이 얼마나 안타깝고 소모적인 일입니까?

희망버스에 동승하려는 일부 정치인들에게도 간곡히 호소합니다. 희망은 영도다리 위의 대치로는 결코 찾아오지 않습니다. 정치를 할 만큼 한 사람으로서 제 양심과 인격을 걸고 제안합니다. 정치인 대 정치인,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 이 문제의 진정한 해법을 찾읍시다. 형식과 절차, 내용 모두 여러분 뜻에 따르겠습니다. 여러분 주장을 경청하고 최대한 수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해외를 떠돌고 있는 조남호 회장을 불러들여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그를 국회 청문회에 출석시키는 문제 등도 구체적으로 협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인들을 가득 태운 영도행 버스는 희망을 줄 수가 없습니다. 희망은 여의도행 버스에 함께 탈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3차 희망버스를 출발시킨다면 악몽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저도 분노한 주민들을 더 이상 만류하거나 자제시킬 자신이 없습니다. 그로 인해 생기는 모든 불상사는 전적으로 여러분이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런 집단 물리력을 그토록 반대해 왔던 저도 어느 순간 영도를 지키려는 시민들 편에 서서 여러분을 저지하기 위해 격돌의 현장, 그 한복판에 제 몸을 던지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설마 그런 슬프고도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요?

저는 지금껏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이 사태의 평화롭고 바람직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웃게 될 날을 애타게 기다리며, 김형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