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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김형오의 말말말

“누구를 위한 ‘희망버스’인가”

“누구를 위한 ‘희망버스’인가”

김형오


오늘 나는 조남호 회장, 김진숙 지도위원을 비롯한 여타 당사자들에게 고언을 하고자 합니다. 나는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편들거나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어느 한 쪽이 전적으로 옳고 그르진 않습니다. 다만 잘잘못의 크기, 그 차이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이 나라 노동문제의 본질이 왜곡되어선 안 됩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대거 현장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노동문제가 정치·사회문제로 비화되기에 앞서 더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오늘 그것을 여러분에게 호소하려고 합니다.

(※ 어제(7월 13일) 나는 한나라당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부산발 정권 위기가 오고 있는데도 수수방관과 속수무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당과 정부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음. 블로그 참고= http://www.hyongo.com/1887 ) 

먼저 김진숙씨에게 말씀드립니다.
이제 내려오십시오. 그 높은 곳에서 외롭고 오랜 투쟁을 한 그대의 용기는 많은 국민에게 노동 현실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흡족하진 않을지 몰라도 일정 부분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이제 그만하면 충분히 의사 표시를 했습니다.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의로운 마음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곳은 일하는 작업장이지 농성장은 아닙니다. 합법적인 투쟁공간도 아닙니다. 불법 점거를 계속 고집한다면 사태는 더욱 악화될 뿐입니다. 설마 격렬한 투쟁으로 지역이 아수라장되고 무치안·무정부 상태가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겠지요. 어떤 정부라도 결코 그런 사태를 방치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은 문제는 조직에 맡기고 타워크레인에서 내려와 심신의 휴식을 취하기를 진심으로 권유합니다.

출처: 뉴시스


야당 정치인들과 노동 운동가들에게도 호소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미 한진중공업 문제는 정치 문제화돼 버렸습니다. 야당으로서 국회의원으로서 노동 운동가로서 관심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이 아니라 확대 재생산하고 갈등을 부추긴다면 시대에 걸맞은 야당도 진정한 노동 운동가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서 말하는 야권 연대의 고리나, 정권교체의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면 좀 더 진지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강경한 일부 집단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받고 있는 더 많은 말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헤아려 달라는 것입니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장기화되고 강경대치가 이어진다면 지역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은 물론이고 국가 신인도도 타격을 받습니다. 원하는 바가 이것이 아니라면 대화와 타협을 주선해 주십시오.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어 정권을 잡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길거리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구호와 선동만 일삼는 모습으로 비춰져선 안 됩니다. 현장에 가신다니 오늘 당장 김진숙씨가 내려올 수 있도록 권유하십시오. 여러분 말이라면 들을 것입니다. 산업현장에 평화가 오게 하고 여야 간에도 노사 간에도 그리고 노노 간에도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지게 하는 선도적 역할을 기대합니다.

출처: 뉴데일리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도 말합니다.
그대들의 순수함을 이해하기엔 내가 부족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들이 진정 바라는 ‘희망’이란 무엇인가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희망인가요? 오히려 희망버스로 인해 김진숙씨가 타워크레인 위에서 내려오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대의를 외치고 강변해도 그것이 한 사람의 극단적인 희생을 볼모로 하는 거라면 나는 결단코 반대합니다. 여러분이 남기고 간 뒷자리로 인해 수많은 영도구민들이 악취 속에서 뒤치다꺼리하느라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대들의 순수한 열정, 진정성을 자꾸만 의심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조남호 회장은 국민 앞에 나서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건대 열쇠는 조 회장이 쥐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두려워서 장막 뒤에 숨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나는 기업인을 국회가 함부로 부르는 일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가장 큰 책임이 조회장에게 있다는 것은 모든 이의 공통 인식입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떳떳하다면 노사 협상장이든 청문회장이든 당당히 나타나야 합니다. 고락을 같이 해온 노동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진솔하게 대화해야 합니다. 또 이 사태를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 앞에서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전쟁 같은 주말과 휴일이 지나갔습니다. 영도를 떠나면서 그대들은 3차 희망버스를 결의했습니다. 결국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절망버스’라고, ‘불청객’이라고 부르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더불어 희망’이 아닌 ‘그대들만의 희망’을 태운 버스가 다시 올 날이 두려워지는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요. ‘희망버스’가 ‘희망’으로 남으려면 이제 더는 출발하지 않아야 합니다. 영도는, 한진중공업은 다시 예전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해방구의 함성이 아닌 쇳소리, 망치소리가 울려 퍼지는 희망의 영도를 염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