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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의 유머펀치

돌을 든 성모 마리아, 그 불편한 진실

김형오의 유머 펀치 ⑥=해학인가, 해악인가?
돌을 든 성모 마리아, 그 불편한 진실


예수가 한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광장에서 한 여인을 둘러싸고 욕하며 돌을 던지고 있었다. 간음한 여인이라고 했다. 예수가 나서서 말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이 여인을 돌로 쳐라.”

사람들이 찔끔해서 돌을 놓고 슬금슬금 물러서는데 웬 중년 아줌마만 줄기차게 여인에게 계속 돌을 던졌다. 남이 버린 돌까지 주워 던졌다. 예수가 한동안 난감한 표정으로 지켜보다 말했다.

“엄마, 이제 그만 좀 하세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원죄(原罪)조차 없는 순결한 성모(聖母)로 보는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 전해지는 우스갯소리다.



9월 2일자 J일보에 실린 칼럼 중 일부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아연실색했습니다. 일류 신문에 실린 예화치고는 내용이 저속하고 비유가 황당해서입니다. 정말로 저런 농담(?)이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떠도는 걸까? 연조가 깊은 가톨릭 신자면서 평소 유머를 즐기는 지인한테 물어 보았더니 금시초문이랍니다. 그러면서 천주교인들이 듣는다면 굉장히 불쾌해 할 저급한 블랙 유머라며 그 출처를 의심했습니다. 내용 자체도 아귀가 맞지 않고 모순투성이입니다. 내가 그 이틀 전 국회에서 인용한 성경 구절(“죄 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을 비꼬고 비난하기 위해 등장시킨 예화가 너무 오버해 그만 사고를 친 것 같습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예수, 마리아, 돌, 아줌마, 성모, 천주교’ 등을 조합해 키워드로 입력해 보았지만 유사한 유머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내 실력이 부족해서일까요?

발상부터가 파격입니다. 성모 마리아가 돌을 던진다? 종교에 대한 조크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으련만, 어떻게 이런 반(反)기독교적인 설정이 가능했을까요? 특히 원죄조차 없는 순결하신 성모님을 두고 말입니다. 이는 마리아에 대한 모욕이고 성경 모독입니다. 필자의 양식이 의심스럽습니다.

한순간 이런 의혹도 들었습니다. 혹시 지어낸 유머? 설마 그럴 리야 없겠습니다만, 나는 불현듯 그 유명한 ‘지미의 세계(Jimmy’s World)’가 떠올랐답니다.


‘지미의 세계’는 세계 언론사에 씻지 못할 오명을 남긴 허위 날조 보도의 대명사입니다. 1980년 워싱턴포스트지 1면에 초년생 흑인 여기자 재닛 쿠크의 이름으로 특종 보도된 ‘지미의 세계’는 3대에 걸친 빈민 가정의 마약 중독사를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리며 ‘탐사 보도의 극치’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기사로 이듬해 재닛 쿠크는 ‘언론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까지 받았지만, 결국 기자가 창작한 ‘가공의 스토리’로 밝혀져 상을 반납하고 신문 3쪽 반에 걸쳐 사과문을 싫어야 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 폭로로 한껏 주가를 드높인 워싱턴포스트의 명성은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J일보의 칼럼에서 ‘지미의 세계’를 연상한 것은 지나친 비약이겠지만, 나는 적어도 앞서의 ‘돌 던진 성모 마리아’ 이야기가 유수 신문 칼럼에 실리기엔 부적절한 비유라고 봅니다. 그런 유머는 ‘해학(諧謔)이 아닌 해악(害惡)’에 가깝다고 한다면 편협한 생각일까요?

나는 따뜻한 농담, 품격 있는 유머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칼럼에 등장한 에피소드를 각색해 보려 했습니다. 가령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1) 많은 사람들이 돌을 놓고 떠났지만 몇몇은 남아 여인에게 돌팔매질을 했다. 그런 여인을 온몸으로 막으며 대신 돌을 맞는 아줌마가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죄가 많은 여자이기에? 어느 순간 예수가 울면서 나섰다. “어머니, 이제 그만 비키세요. 제가 맞아야 할 돌입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뉘우치고 눈물 흘리며 그 자리를 떠났다.

2) 아줌마는 여인에게 줄기차게 돌을 던졌다. 남이 버린 돌까지 주워 던졌다. 여인은 기도하는 자세로 몸을 웅크린 채 그 돌들을 고스란히 맞았다. 그런데 참 신기하기도 하지, 그 돌들은 모두 여인의 몸에 닿자마자 꽃으로 변해 버리는 게 아닌가. 여인은 순식간에 꽃으로 둘러싸였다. 예수가 행한 오병이어의 기적이 성모 마리아에 의해 또 다른 모습으로 재현된 순간이었다.


각색해 놓고 보니 유머가 아닌 동화처럼 돼 버렸군요. 하지만 내 재주로는 저 소재를 갖고 재미난 유머를 창작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여러분 중 누구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신 분은 귀띔 바랍니다.

글을 적다 보니 문득 이런 일화가 생각납니다. 2009년 12월 뉴질랜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2009년 12월 18일자 서울신문 참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 진보주의 교회가 대형 프레스코 화를 교회 앞에 세웠습니다. 의기소침한 표정의 요셉과 불만스러워 보이는 마리아가 침대에 누워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교회 측에서는 “이 그림이 화제가 되어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다 싶어 기획한 유머”라고 해명했지만, 가톨릭계에서는 무례하고 불쾌한 신앙 모독이라고 강력 비판했습니다. 결국 그림은 세워진 지 5시간 만에 분노한 군중에 의해 페인트칠로 덮여 버렸습니다. 유머를 표방한 몰상식한 발상은 혼쭐이 나고 말았습니다.

나는 J일보가 우스갯소리라고 소개한 이야기를 만약 개신교 목회자들이나 가톨릭 사제들이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합니다. 아마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까요?

종교를 소재로 한 유머는 사실 흔치 않습니다. 그만큼 조심스럽기 때문일 겁니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을 등장시킨 유머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런 이야기가 눈에 띄더군요. 내가 조금 각색했는데, 제목은 ‘성모 마리아 인질 사건’입니다.


 

장난꾸러기, 말썽대장 한 꼬마가 있었다. 그 꼬마의 소원은 예수님이 주는 선물을 받아 보는 거였다. 궁리 끝에 꼬마는 예수님에게 편지를 썼다.

“예수님, 저는 착하고 얌전한 아이예요. 저 같은 애들에게는 선물을 주신다고 들었는데, 저한테도 하나 주실 거죠?”

편지를 읽어 본 꼬마는 양심이 찔려 편지지를 찢고 다시 썼다.

“예수님, 남들이 그러는데 전 정말 착한 애래요. 그런 아이한테는 선물을 주신다면서요?”

그래도 마음이 거북해서 꼬마는 편지를 고쳐 썼다.

“예수님, 저 장난 잘 치고 말썽쟁이란 거 잘 알아요. 그래도 착한 애들한테 선물 다 주고 남은 거 있으면 하나 주실 수 있죠?”

그래 놓고도 꼬마는 마음이 안 놓였다. 잠시 후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꼬마는 성당으로 달려가 성모 마리아 상을 몰래 가져 와 품에 꼭 끌어안고는 예수님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예수님 엄마 지금 저한테 있어요. 선물 안 주시면 안 풀어드릴 거예요.”


어쩌면 이 유머도 일부 크리스천들은 불쾌하게 받아들일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 속의 꼬마가 굉장히 천진난만하고 애교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예수님 그리고 성모 마리아님도 이 정도 농담쯤은 유쾌하게 웃어넘기시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