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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의 유머펀치

영어는 만국 공통어?


김형오의 유머 펀치 ③=소통과 불통
영어는 만국 공통어?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왔데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 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먼데이!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버스데이!
오늘이 할머니의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 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

오탁번 시인의 「해피 버스데이」란 시입니다. 말끝마다 ‘~데이’를 쓰면서 ‘기념일’을 탄생시키는 경상도 할머니가 통역도 없이 서양 아저씨와 대화를 나눕니다. 그것도 영어로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소통입니까. 부산 말로 하면 ‘억수로 웃긴데이’입니다. 갑자기 이 ‘행복한 버스(Happy Bus)’를 타고 싶어지지 않습니까.

부산 사람으로서 서울의 택시 기사 분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드린다면, 부산 할머니가 서울에서 택시를 타면 절대로 “어디 가시나요?”라고 묻지 말기 바랍니다. “부산 가시나다, 이 머스마야!”라는 호통이 날아올 테니까요.

그런가 하면 조금은 씁쓸하고 민망한 이런 유머도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거만한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건달에게 한 외국인이 다가와 길을 물었다.

“Where is the National Assembly?”(국회가 어디죠?)

당황한 건달은 한마디 툭 내뱉고는 자리를 피했다. 그런데 웬걸, 외국인이 자꾸만 따라오는 거다. 건달이 뛰자 외국인도 따라 뛰고, 건달이 버스를 타자 외국인도 따라 탔다. 도대체 건달이 뭐라 그랬기에 외국인이 졸졸 따라다닌 걸까? 건달이 내뱉은 한마디는 바로 이것.

“아이씨팔로우미!”

그 말이 외국인 귀에는 이렇게 들렸던 거다.

“I see, Follow me.”(날 따라오세요.)


이건 참 소통이 아니라 불통입니다. 같은 유머라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습니다. ‘언해피 버스(Unhappy Bus)’입니다. 

인터넷엔 이런 유머도 떠돌아다니더군요.

일본의 전 총리 후지 모리는 와세다대를 나온 수재지만 영어는 아주 깜깜했다. 그가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게 됐다. 모리 총리 비서는 그에게 간단한 인사말을 알려주었다.

“클린턴을 처음 만나시면 ‘하우 아 유?’라고 하십시오. 그가 ‘파인 땡큐, 앤드 유?’라고 할 겁니다. 그럼 ‘미 투’라고 하시면 됩니다. 그 후의 대화는 통역이 옮길 겁니다.”

모리는 수없이 외우고 또 외웠다. 그러나 정작 클린턴을 만났을 때 악수를 청하며 모리가 한 말은 “후 아 유?”였다. 모리의 인사를 조크로 받아들인 클린턴, 유머감각을 발휘해 이렇게 받았다.

“아임 힐러리스 허즈번드, 앤드 유?”

그러자 모리의 결정타.

“미 투!”

항간에는 이 유머의 진짜 주인공이 모리 총리가 아닌 한국의 전 대통령이라는 설이 있습니다만, 글쎄요…. 아무튼 모리 총리와 클린턴 대통령도 소통이 아닌 불통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영어가 타국에 와서 참 고생이 많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우리들 서울의 빵과 사랑」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목마를 때 언제나 소금을 주고
배부를 때 언제나 빵을 주는
우리들 서울의 빵과 사랑
우리들 서울의 꿈과 눈물

이 또한 얼마나 슬프고 끔찍한 불통입니까. 정치인들이 이 시를 읽는다면 아마도 가슴이 뜨끔할 것 같습니다. ‘목마른 자에게 소금을 주고 배부른 자에게 빵을 주는 빈익빈 부익부의 정치’를 통렬하게 비판한 시로도 읽히기 때문입니다.

소통과 불통, 그 차이는 귀와 입의 문제에서 빚어지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가슴을 열고 닫는 것, 거기에 소통과 불통의 갈림길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