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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의 유머펀치

뒤집어라, 그러면 겉과 속이 바뀐다

김형오의 유머 펀치 ⑩ =반전의 미학
뒤집어라, 그러면 겉과 속이 바뀐다

추리소설과 유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묘미는 뭘까요? 아마도 ‘반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전 유머는 인간의 가장 고등한 지적 활동 중 하나”라고 『과학 콘서트』의 저자 정재승 교수도 말했습니다만, 예측을 불허하는 기발한 반전이야말로 뇌에 짜릿한 쾌감을 선사합니다. ‘두뇌 체조’에도 더없이 좋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억지스런 설정으로 반전 아닌 반전을 거듭하는 ‘막장 드라마’는 빼고 말입니다.

반전에도 고전(古典)이 있다면 나는 ‘새옹지마(塞翁之馬)’를 꼽고 싶습니다.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간략하게 옮겨볼까요?


북쪽 국경 근방에 점 잘 치는 노인이 살았다. 하루는 그가 기르던 말이 까닭 없이 도망쳐 국경 너머 오랑캐 나라로 가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했지만 노인은 “이게 또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하며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다. 몇 달 뒤 뜻밖에도 도망쳤던 말이 오랑캐의 명마 한 필을 끌고 오자 모두가 축하했지만 노인은 “이게 또 화가 될지 누가 알겠소.” 하며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어느 날 노인의 아들이 명마를 타고 달리다 낙마해 다리가 부러지자 이웃들은 혀를 찼지만 이번에도 노인은 태연했다. 1년 뒤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장정들은 모두 전장에 나가 죽거나 다쳤지만 다리병신인 노인의 아들만은 화를 면했다.


 

이 얼마나 절묘한 반전입니까. 전화위복(轉禍爲福)과 전복위화(轉福爲禍)의 엎치락뒤치락, 그것이 어쩌면 우리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최근에 듣거나 인터넷에서 본 ‘반전 유머’로는 이런 것들이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군요.

변호사 집 개가 동네 정육점에서 쇠고기 한 덩어리를 물고 달아났다. 정육점 주인은 변호사를 찾아갔다.

“변호사님, 만약 어떤 개가 정육점에서 고기를 훔쳐갔다면 그 개 주인에게 변상을 요구할 수 있는 거죠?”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10만 원 내시죠. 변호사님 댁 개가 우리 고기를 훔쳐갔거든요.”

변호사는 말없이 돈을 내주었다. 며칠 후 정육점 주인에게 변호사로부터 청구서 한 장이 날아왔다.

“변호사 상담료 100만 원.”

 

집을 보러 온 손님에게 부동산 중개사가 열심히 주거 환경을 자랑했다.

“이 동네는 물 좋고 공기가 맑아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없답니다.”

그때 마침 장례 행렬이 그 앞을 지나갔다. 그러자 중개인이 혀를 끌끌 차며 하는 말.

“저런, 환자가 없어서 의사가 굶어 죽었구먼.”

 

입대한 아들에게 엄마가 편지를 보냈다.

“아들아, 아직도 네 방에선 너의 온기가 느껴진단다.”

한 달 뒤 아들로부터 답장이 왔다. 엄마는 반가워 눈물 흘리며 봉투를 뜯었다. 편지 첫 줄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죄송해요, 엄마. 군에 오는 날 그만 깜빡 잊고 전기담요 코드를 안 뽑은 것 같아요.”

 

레지던트 두 사람이 자기 능력을 자랑하고 있는데 한 환자가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런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 사람 틀림없는 디스크 환자군.”

“무슨 소리, 보나마나 관절염 환자야.”

두 레지던트는 서로 자기가 옳다고 다투다가 내기를 걸었는데, 환자가 다가와 배를 움켜잡고 하는 말.

“저기요, 선생님, 화장실이 어디 있죠?”



체홉 그리고 모파상과 함께 세계 3대 단편 작가로 불리는 오헨리의 소설은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 등에서 보듯이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반전이 그 특징입니다. 약제사․카우보이․은행원․가게 점원․공장 직공 등 다채로운 직업은 물론 공금 횡렴 혐의로 수감 생활까지 한 작가의 인생은 그 자체가 멋진 반전 드라마입니다. 「경찰과 찬송가」 역시 인간에 대한 연민이 가득 담긴 명작 단편입니다. 이런 줄거리지요.


노숙자 소피는 추운 겨울이 다가오자 가벼운 범죄를 저질러 따뜻한 교도소에서 겨울을 나려 하지만 그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를 거듭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시켜 먹고 ‘배 째라’고 하려 했으나 남루한 옷차림 때문에 문전박대 당하고, 다른 식당에서 무전취식을 했는데도 주인은 경찰을 부르기는커녕 식당 밖으로 내팽개쳐 버린다. 건물 유리창을 깨뜨린 뒤 경찰에게 자기가 한 짓이라고 주장해도 경찰은 믿어 주질 않는다. 경찰서 앞에서 지나가는 여인을 희롱했으나 그녀는 오히려 그에게 반했다며 소피에게 달라붙는다. 길에서 고성방가하며 행패를 부려도 경찰은 승리감에 도취된 열성 축구 팬 정도로 보아 넘길 뿐이다. 어떤 신사의 우산을 빼앗아 자기 우산이라고 우겼지만 신사는 사실은 자기가 주운 우산이라고 미안해하며 도망쳐 버린다. 결국 단념한 소피는 어느 교회 앞에서 찬송가를 듣다가 문득 잘못을 뉘우치며 떳떳한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경찰이 나타나 수상한 놈이 밤중에 교회 앞을 서성거린다며 수갑을 채워 끌고 간다. 판사는 소피에게 징역 3개월을 선고한다.


소피는 소원을 성취한 걸까요? 참으로 아이러니한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범죄소설 작가인 브라이언 이니스가 쓴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란 법의학 서적에는 ‘자살’이 ‘살자’로 반전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강 이런 내용입니다.

한 남자가 자살을 결심했다. 완벽한 성공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수면제를 양껏 삼키고 몸엔 시너를 잔뜩 뿌린 다음 바다 위로 길게 가지 뻗은 벼랑 끝 굵은 소나무에 밧줄로 목을 매달았다. 라이터로 몸에 불을 붙이고는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쏘았다. 하지만 아뿔싸, 총알이 빗나가 밧줄을 끊었다. 풍덩! 그 바람에 불은 꺼지고 수면제는 토해내고 권총은 바다 깊숙이 가라앉고 말았다. 죽기는 살기보다 훨씬 더 힘들구나. 본능적으로 바다를 헤엄쳐 나온 그는 그 뒤로는 다시 태어난 듯 치열하게 살았다.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생각이 벽에 부딪쳤을 때는 역발상과 반전의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상황이 바뀝니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되듯이, 반전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뒤집어 보십시오. 겉이 속이 되고, 속이 겉이 되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