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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동창회보 인터뷰] 콘스탄티노플,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근대의 시작

정치 중앙무대서 물러나 터키 다녀온 김형오(외교67) 전 국회의장 인터뷰

콘스탄티노플,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근대의 시작

 

제18대 국회 전반기 2년간 국회의장을 지냈던 김형오 전 의장은 작년 8월,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불출마 선언 이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4월 16일 터키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스탄불로 떠난 지 47일 만인 6월 2일, 한국에 돌아왔다. 성공한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그를 불현듯 이스탄불로 떠나게 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6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팔래스 호텔에서 김 동문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가 작년 8월,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오래전부터 결심이 서있었던 일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주된 이유는 바로 ‘터키’였다. 구체적인 관심 분야는 바로 1453년 콘스탄티노플 전쟁이었다. 콘스탄티노플 전쟁은 1453년 이슬람 세력(오스만튀르크)이 기독교 세력(비잔틴 제국)을 포위한 채 총공격을 감행한 세계 전쟁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이 전쟁으로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콘스탄티노플 전쟁의 본격적인 전투는 1453년 4월 6일 시작되어 5월 29일 비잔틴 제국 멸망으로 끝난다.

김 전 의장은 지금으로부터 559년 전 4월 6일부터 5월 29일까지의 전쟁의 현장에서 역사를 보고 느끼고 기술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러나 4월에 총선이 끝나면 뒷마무리하는 동안 정신이 없는 사이에 5월 29일이 다가올 터. 60대 중반이 넘어가는 시점에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하면, 체력이나 기억력이 자신의 지적 욕구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이 김 동문이 19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진짜 이유였다.

그럼에도 그는 터키로 떠나기 전 정치권 후배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20년간 현역 의원으로 지낸 공인으로서의 마지막 자세를 보였다. 특히 지난 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의 명예 선거대책위원장 및 명예후원회장으로서 손 후보를 아낌없이 지원해줬다. 공인으로서의 마지막 자세를 다한 후 총선 직후인 4월 16일, 그는 터키 이스탄불로 향했다. 만약 19대 총선에 출마했다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이었다. 지인들이 김 동문에게 “불출마를 했는데 얼굴이 왜 편안하냐”고 많이 묻는다고 한다. 그는 제2의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심리적으로 바빴어야 했지만, 불출마를 결심한 이후 “왜들 저렇게 ‘정치’에 매몰돼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총선 현장에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와 터키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2009년 1월, 당시 국회의장으로서 터키를 공식 방문한 것이 계기였다. 김 동문의 이스탄불 첫 방문이었다. 비공식 일정으로 고고학 박물관을 방문했는데, 그곳에는 골드혼(Golden Horn)을 막았던 쇠사슬이 전시돼 있었다. 당시 비잔틴 제국에서 만으로 배가 들어오지 못하게 쇠사슬로 막아버린 것이었다. 쇠사슬로 만을 막아버리자 돌파가 어려워 그 대신 배를 끌고 언덕을 넘어서 만으로 진입했다. 우리나라 속담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지만, 김 동문은 이것을 보고 배를 끌고 산을 넘어야 일이 성사가 된다는 걸 느꼈다. 배는 바다에 있어야 하는 것인데 언덕을 넘어 간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에 감명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김 동문은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관해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을 뒤져 국내의 거의 모든 자료를 손에 넣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스티븐 런치만 교수가 쓴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The Fall of Constantinople 1453)』이었다. 그는 이 책을 줄을 너무 많이 그어 본문이 안 보일 정도로 정독했다고 한다.

그는 콘스탄티노플 전쟁에 대한 또 다른 책으로 시오노 나나미의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을 읽었다. 어린 시절부터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읽었던 김 동문이지만,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을 읽고 실망했다고 한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애정의 깊이보다 그녀의 애정이 덜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도 시오노 나나미처럼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김 동문은 수필집 두 권을 발간한 후, 건강에 대한 아내의 걱정이 심해 평소에는 책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전의 집필 작업이 흥미에 의해서였다면 이제는 연구자로서의 자세로 집필 욕구가 생겼다. 당시 정치가 무익한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였기에, 마지막으로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 1월 첫 방문한 이후, 김 동문은 총 다섯 번 터키를 방문했다. 2010년 6월, 국회의장을 그만두고, 8월에 열흘간 이스탄불에 머물면서 공방전이 벌어진 성곽과 성소피아 사원에 머물렀다. 이번 방문은 칼싸움도 실제로 보고 당시의 무속, 당시 의상도 살피며 현장감을 제대로 읽는 기회로 삼았다.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로 많은 자료를 섭렵할 수 있었다. 김 동문은 터키 국립 보아지치대학에서 방문교수로 초빙을 받아 이 대학 도서관 및 연구실 등에 머물며 저술 준비를 했다.

김 동문이 구상하고 있는 책의 이야기는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나뉜다. 큰 것은 오스만튀르크 제국과 비잔틴 제국의 전쟁이다. 이는 유럽 문명이 아시아 문명에 패배하는 역사인 동시에 기독교가 이슬람한테 패배한 역사이면서, 또한 백인이 비(非)백인에게 패배한 역사다. 서구의 입장에서는 치욕스러워 취급하지 않던 역사이지만, 비잔틴 제국의 멸망으로 중세가 끝나는 역사적인 시점이다. 좁게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술탄 메메드 2세와 마지막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1세의 리더십을 비교한다.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튀르크에 둘러싸인 하나의 섬이지만 함락에 끝까지 버틴 곳이고, 그 최후의 항전을 이끈 사람이 바로 콘스탄티누스 11세다. 김 동문은 콘스탄티누스 11세에 대해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고자, 책의 가제목도 황제와 술탄으로 정했다. 망해가는 나라의 마지막 황제로서 전투 현장에서 사라져 버리는 리더십과, 1000년의 제국을 멸망시킨 청년 술탄의 리더십 간의 비교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책에서 그는 이 두 인물을 심리적으로 또 정치·사회적으로 대비시킨다.

마지막으로 김 동문은 책을 읽을 동문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그동안 공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오다보니 공적 임무 수행에만 매몰돼 스스로 교양과 지식, 삶의 처세를 잊어왔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정치권에 몸을 담아왔지만, 내가 몸담을 수 있는 곳은 정치권만이 아니란 걸 느꼈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만큼 글로벌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한 환경에 처한 나라가 세계적으로 드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근대화 사업 이후에 우리는 세계를 상대로 한 무역을 통해 성장해왔다”며 “지금과 같은 사고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글로벌 시대에 맞는 글로벌 인식, 역사, 문화, 교양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 동문이 집필할 책은 우리와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역사와 문화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성공한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터키라는 새로운 관심사에 뛰어드는 용기를 낸 그의 눈에는 여전히 소년 같은 호기심과 열정이 가득했다.

신혜주 기자 hyeryong_v@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