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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9 여성신문] 김형오 전 국회의장 “나쁜 국회의원은 없다”

제 역할 못 하는 국회 비판

개헌 통해 정당 구조 바꿔야

여성 대표하는 비례대표 없어

“4·13 총선은 그들만의 잔치”

  ▲ 다시는 국민에게 표 받는 일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정치권을 향한 제언을     아끼지 않았다. 서울 백범김구기념관 김구 조각상 앞에 서 있는 김 전 의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무엇보다 선거가 걱정이다. 당선이 지상 목표이기에 공약 남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와 민간 또는 시민단체의 엘리트 충원 과정이 너무나 단순해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힘든 구조다. 더구나 공동체 교육이 전혀 안 돼 있다. 또 ‘백마 타고 오는’ 지도자가 환상이었음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1992년 국회에 첫발을 들인 뒤 지역구에서만 내리 5선(14~18대)을 지낸 김형오(부산대 석좌교수·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전 국회의장이 대한민국 정치 문화를 혁신하는 힘겨운 여정에 앞장섰다. “다시는 국민에게 표 받는 일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그는 후배 정치인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사심 없이 던지는 제언을 아끼지 않는다.

김 전 의장은 “국가로부터 은혜를 입은 사람이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겠냐”며 “정치적으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으로서 올바른 소리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펴낸 정치비평 에세이집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에서도 주요 정치 현안과 사회적 사건에 대한 애정 어린 질책과 대안적 비판을 던졌다.

지난 2년간 김 전 의장이 각종 매체에 발표한 기고문과 강연 원고, 새로 쓴 글 등을 묶은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는 오랜 정치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를 냉정하게 진단한 그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원고마다 저자의 해설을 새로 덧붙여 오늘의 시사점과 전망 등을 담았다.

‘진영논리, 집단이기의 덫에서 빠져나와라’ ‘비례대표, 꼭 필요한가’ ‘개헌은 왜 어려운가’ ‘차라리 국회를 세종시로 옮겨라’ ‘공무원·국회의원·노조가 문제다’ ‘새누리당 지도부에게 주는 고언’ 등 성역을 두지 않고 소신 있게 쓴 글에서 절망의 현실을 희망으로 환치하려는 충정과 염원이 읽힌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 문제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던 3월 어느 날, 서울 용산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김 전 의장과 마주했다.

-정치·사회 지도자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중동호흡기질환) 사태를 통해 지도자의 리더십을 절감했다. 나라가 갈기갈기 찢어지면서 못된 국가, 잘못된 국가의 전형을 밟았다. 리더의 자격과 조건은 많지만, 대한민국 정치 최일선에 있는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것은 포용할 줄 아는 능력과 희생할 줄 아는 자세다.”


김 전 의장은 정당은 거대하고 둔하고 미련한 공룡 정당이 돼서 소멸을 앞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리더십 교육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입시 등 경쟁을 위한 교육만 하다 보니 시민으로, 공동체 일원으로 국가에 소속된 권리와 의무를 행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대학 시험에 도움도 안 되고 출세에도 도움이 안 되니까. 그래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됐다. 이른바 정치 엘리트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것은 최근에 공천 과정에서 다 드러났다. 국민의 리더십 교육이 부족하다.”

-진정한 리더십은 무엇인가.

“거창하게 희생과 포용이라고 했지만, 가까운 예로 우리 엄마들만큼 포용하고 희생하는 리더십이 또 어디 있나. 가족을 포용하고 가정을 위해 희생한다. 그런데 그것이 왜 이웃과 사회를 향해서는 안 될까. 교육이 안 돼 있고, 하는 사람만 손해 보는 구조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정치 구조를 깨야 한다.”

-개헌을 주장하는 이유인가.

“여야 지도자와 대통령의 만남이 단 한 번이라도 잘된 적 있나. 최고 정치 지도자가 대화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 막강해서 생기는 문제다. 크게는 헌법을 뜯어고쳐야 하고 다음으로는 정당을 뜯어고쳐야 한다. 국회의원이 헌법상의 권한과 임무를 행사하지 않았을 때 어떤 책임을 부과하는 지가 없다. 국회의원이 회의장에 출석을 안 했을 때, 남에게 모욕을 줬을 때 또 정부의 기밀문서를 외부에 공개했을 때도 책임에 관한 규정이 없다.”

-국회의 구조를 바꿔야 하나.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나쁜 국회의원은 없다. 이렇게 훌륭한 의원들이 국회에만 들어가면 왜 그러냐 이거다. 국회 구조가 잘못돼서 그렇다. 정당 때문이다. 정당은 없는 것처럼 힘을 빼야 한다. 당론에 반대하면 정치 생명이 끝나버리기 때문에 당론을 따라다니는 거수기로 전락한다. 의원 각자가 헌법기관인데 그 기능을 못 한다. 당론을 없애야 한다. 그러려면 당 대표와 최고위원, 사무총장 모두 없애야 한다. 정당 국고보조금도 끊어야 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정당에 국고보조금까지 주니까 문제다. 정당은 거대하고 둔하고 미련한 공룡 정당이 돼서 소멸을 앞두고 있다.”


▲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60~70년대는 개발연대니까 직능대표성을 가진 전문가들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국회의원 수준이 너무 높다. 또 지역구 관리를 안 하는 시간에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전문성을 발휘해야 할 텐데 일부 비례대표 의원은 어떻게 하면 4년 후에 지역구 하나 차지할지 줄 서느라 바쁘다.”

-여성 비례대표가 너무 적다는 지적도 있다.

“나는 여성 비례대표가 여성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후보) 자신은 여성을 대표했다고 하지만 각계각층의 여성을 대표해서 활동한 사람은 별로 없다. 비례대표 선발방식도 지극히 폐쇄적이고 밀실에서 이뤄진다.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할지 논의가 안 됐다. 19대 국회 비례대표 여성 의원 중 제대로 일한 의원의 이름을 대봐라. 몇 명이나 나오나. 이번 선거에서도 비례대표에 부합해서 후보가 됐는지 유권자들이 엄정히 심판해야 한다. 정말 여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올라가야 한다.”

-이번 총선은 어떻게 전망하나.

“정치인들은 내가 죽느냐 사느냐, 우리 당이 이기냐 아니냐에만 관심이 있다. 더구나 양당은 누가 더 잘못하나 시합하고 있다. 국민이 정치 혐오증에 걸렸다. 아마 역대 최저 투표율이 나오지 않겠나. 관심이 없으니까. 이번 선거는 열렬한 지지자들의 조직 싸움이 될 거다. 그들만의 잔치다.”

-3년 연속 전국 규모의 선거가 치러진다.

“걱정이다. 이런 자세와 이런 후보, 이런 리더십으로 대통령 선거와 전국 동시 지방선거 같은 대선거를 감당할 수 있겠나. 체력이 안 될 것 같다. 감기도 체력이 좋은 사람에게 들어가면 금방 나가지만, 체력이 안 좋으면 골병이 된다. 그래도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같이 공감하고,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는 것을 지양하면 희망은 있다. 당장은 체제를 뜯어고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인식과 의식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이 땅에 살아갈 사람들은 국민이다. 국민은 고통 속에서도 책임을 가지고 희망의 끈을 놓치면 안 된다.”


1383호 [정치] (2016-03-29) 
홍미은 기자 (hme1503@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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